
친구들과 간식을 ‘나눠’ 먹으면 더 좋다는 것은 한 살배기 아이도 안다. 혼자 다 먹고 싶은 본심을 거스르고 친구 입에 과자를 넣어주는 기쁨을 배운다. 가족이나 어린이집 같은 공동체에서 ‘눈치껏’ 공동생활 규칙을 익히며 성장한다. 하지만 어른들이야말로 과욕을 부려 나쁜 시스템을 만들었다. 기업들이 너도나도 도입한 ‘새벽배송’이 문제다. 지난해 5월 쿠팡의 새벽배송 노동자였던 고 정슬기 씨는 ‘개처럼 뛰고 있다’라는 마지막 메시지를 남겨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과거 2011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도미노피자는 ‘30분 배달 보증제’를 운영했다가 수많은 배달원을 죽음으로 내몬 후에야 이를 폐지했다. 이번 커버스토리 ‘새벽배송의 불편한 진실’에선 새벽배송 권하는 사회의 그림자를 살펴본다. 소비자와 기업이 우리 이웃을 나쁜 노동으로 몰아넣었던 것은 아닌지, 비정규직·플랫폼 노동을 주제로 연구하는 박은정 교수(법학과)를 만나 최신 조사 결과와 해결 방안을 들어봤다.
김민선 기자 minsunkim@knou.ac.kr
2014년경부터 자리 잡기 시작한 ‘새벽배송’은 전날 자정 즈음까지 주문하면 이튿날 아침에 받아볼 수 있는 이커머스 서비스다. 대표적으로 쿠팡, 마켓컬리, SSG닷컴, 오아시스마켓 등이 도입했다. 초기엔 새벽배송이 되는 상품들이 마냥 싸지 않았기에 일부 소비자층만 이를 누렸는데, 2020년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새벽배송 서비스 이용자층이 대폭 확대됐다. 이때 누린 편리함에 락인(lock-in)된 소비자들은 꾸준히 이를 찾게 됐고, 새벽배송 시장 규모 확장으로 이어졌다. 시장 규모는 3년 만에 약 5배 증가한 11조 9천억 원(2023년 기준) 수준으로 커졌다. 쿠팡은 택배 시장 점유율 2위로 올라섰다. 이커머스 기업은 취급 품목을 늘리며 점점 몸집을 키웠지만, 새벽배송 작업장과 노동자 안전은 이를 따라가지 못했고 결국 노동자들의 과로사로 이어졌다.
박은정 교수는 “새벽배송은 소비자와 기업 그리고 노동자가 상반된 입장으로 접근 가능하다. 이용자들도 어딘가의 노동자인데, 출·퇴근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일상에서 새벽배송이 주는 이익이 크니 이를 꼭 필요로 할 수 있다. 그러나 종사자 입장에서는 아주 강한 강도의 야간 노동일 수밖에 없어 법적 안전망과 규제가 필요한 상황이다”라고 설명했다.
열악한 새벽배송 노동환경 실태
새벽배송 시스템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1차로 물류센터에서 전날 저녁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물건들을 분류하는 노동자, 2차로 옮겨진 서브허브(혹은 캠프)에서 물건을 소분하고 포장하는 노동자, 이후 오전 7시 전까지 주문자에게 물건을 배송하는 새벽배송 노동자 등이다. 지난 2020년부터 언론에 보도된 쿠팡 사망 노동자는 20명에 달한다. 그중 절반 가까이가 야간과 새벽 시간에 일했던 위 세 부류의 노동자들이었다.
고 정슬기 씨의 업무상질병판정서를 보면, 근로복지공단은 정 씨가 숨지기 전 1주일 동안 74시간 24분을 일하고 12주 평균 73시간 21분 일한 것으로 판단했다. 12주 동안 1주 평균 60시간, 4주 동안 평균 64시간을 넘는 경우 업무와 질병과의 관련성이 강한 것으로 판단하는 고용노동부 고시 기준을 훨씬 웃돌았다. 정 씨뿐만이 아니다. 「2020년 택배 노동자 과로사 실태조사」에 따르면, 택배 노동자의 주당 노동 시간은 71.3시간으로 과로사 인정 기준인 주당 60시간을 훌쩍 뛰어넘었다. 새벽 시간에 배송할 경우, 노동자는 화장실을 찾지 못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배송 전쟁 속에서 누군가는 부품으로 전락해 소모되고 있었다. 야간노동은 국제노동기구(ILO)와 국제암연구소가 지정한 ‘2급 발암물질’이다.
법망 밖의 비근로자
새벽배송 노동자들의 고용 형태는 흔히 프리랜서로 불리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수형태근로종사자들은 「근로기준법」 등 노동 관련법들로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쿠팡의 경우 2020년만 해도 배송 노동자들을 직고용했지만, 이후 새벽배송 시스템을 확대하며 쿠팡 배송전문 계열사 CLS(Coupang Logistic Service)를 통해 하청 및 비정규직 고용을 가능케 했다. 위탁고용된 종속적 자영업자나 긱(Gig)고용(고용주의 필요에 따라 단기로 계약을 맺거나 일회성 일을 맡는 등 초단기 노동자의 고용)이 가능해지며 노동 관련법 규제를 빠져나간 것이다.
박 교수는 “현재 근로기준법상 새벽배송 노동자들은 자영업자라는 이유로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라며 “이들도 노동법의 적용을 받아야 한다고 보고, 이들의 종속성을 증명해내는 것이 연구 목표”라고 말했다. 주당 근무시간, 새벽배송 업무로 벌어들이는 소득, 플랫폼으로부터 작업과 성과를 통제받는 등 종속성의 측면에서 새벽배송 노동자들도 충분히 근로자처럼 종속적 지위에서 노동하는 사람들이라고 봐야 한다는 것이 박 교수의 주장이다.
쿠팡 배송원을 흔히 투잡(two-job) 하는 사람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새벽배송 노동자의 경우 대부분이 전업으로 일을 하고 있다. 올해 1월 공개된 「1,021명 노동자의 건강권과 노동·사회권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응답자들의 새벽배송 관련 소득은 전체 월 소득의 평균 74.4%를 차지했다. 응답자의 52%는 새벽배송 소득이 전부였다.
근로자성 문제뿐만이 아니다. 박 교수는 기존 법률의 야간 노동을 바라보는 방식에도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근로기준법이 야간 노동에 접근하는 방식도 ‘금지한다’가 아니라 ‘추가 수당이나 보상을 해 줘라’는 방식이다. 법의 틀 자체가 굉장히 경직되고 배제하는 부분이 많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 교수는 노동 관련 법들의 파격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근로자성 증명 등 법적 지위와는 상관 없도록 노동법 틀 자체의 변화가 요구된다”라며 “2018~2019년경 참여했던 논의주제이자 여러 국회의원들이 법안으로 발의한 ‘사회적 지위에 상관없는 모든 사람을 위한 노동법’이 바로 그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다만 이들 법에서 야간 노동에 대해선 문제의식을 충분히 담지 못했지만, 향후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노동법 논의가 계속되면 야간노동에 대해서도 포함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라고 덧붙였다.
새벽배송은 없어져야 한다
새벽배송 노동자를 근로자로 인정하고, 야간근무를 규제하는 법이 마련되면 문제는 해결될까? 박 교수는 ‘아니’라고 단언했다. 궁극적으로 새벽배송은 없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장 내가 느끼는 편리함 때문에 다른 사람이 희생돼선 안 된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또한 뱀이 자신의 꼬리를 물듯, 장시간 일하다 온 소비자들이 또 다른 장시간 야간 노동을 일으키는 새벽배송을 이용하고 있다는 점을 꼬집었다. 이런 맥락에서 박 교수는 ‘모든 사람을 위한 노동법’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역설했다.
“새벽배송을 금지해야 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늘 그런 말을 한다. 밤에 10시까지 일하다 들어와서 밥해 먹을 시간도 없는데 식재료가 와 있으면 얼마나 편하냐는 것이다. 그런데 그 전제는 그 사람이 밤늦게까지 일하고 왔다는 거다. 이튿날을 준비하기 위한 생활시간이 없다는 게 문제다. 하루 8시간 정도 일하고, 일과 생활의 균형을 가졌다면 새벽배송에 대한 필요성도 적게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기존의 노동 세태와 새벽배송은 상당히 밀접한 관련성을 가지고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내가 느끼는 편리함 때문에 다른 사람이 위험한 노동을 해도 된다고 보진 않는다. 자신의 근로시간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는 동시에 새벽배송 노동을 줄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