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는 제도가 아니라,그 제도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의식과 태도 속에 있다.
다음 세대에게 어떤 사회를 남길 것인가.
이는 결국 ‘지금, 여기’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는가에 달려있다.
“문명은 아주 얇은 막일 뿐이다. 그 아래에는 우리가 외면해 온 본능이 도사리고 있다.”
노벨문학상 작가 윌리엄 골딩의 소설 『파리대왕』은 인간 사회의 질서가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무인도에 표류한 후, 문명과 질서를 지키려 했던 소년들은 결국 두려움과 욕망의 유혹 앞에 무너지고, 그들 안에 있던 폭력성과 광기가 현실로 드러난다. 무너진 것은 섬 위의 사회만이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내면이 파괴됐음을 마주해야 했다.
2024년 12월, 한국 사회도 그와 비슷한 위기를 경험했다. 기이한 정치공학에 힘입어 등장한 정권은 비판을 배척하며, 사회 전체를 통제하려는 방향으로 빠르게 기울어갔다. 뭔가 불편하고 믿기 힘든 기괴한 광경들이 계속해서 벌어졌다. 그 정점에서 계엄령이 선포됐고, 계엄령을 직접 발표한 대통령은 123일의 시간이 지나고서야 탄핵당했다. 그 안에는 계엄을 맹목적으로 지지하며 정치적 광기를 정당화한 세력 그리고 그들의 선동에 휘말린 사람들의 무분별한 폭력이 몰아치고 있었다.
광장에서는 물리적 충돌과 심리적 분열이 이어졌고, 많은 언론이 기묘하게 칼춤을 추었으며, 민주적 토론 공간은 급속히 위축됐다. 『파리대왕』속 소년들이 ‘짐승’이라는 실체 없는 공포에 휘둘리며 이성을 상실했듯이, 한국 사회 역시 누군가를 ‘국가의 적’이자 ‘불순세력’, ‘공산주의자’로 규정하고 그 말 한마디로 폭력을 정당화하려는 시도가 이어졌다.
하지만 이 나라의 시민들은 끝내 침묵하지 않았다. 장갑차를 맨몸으로 막아서고 곳곳에서 촛불과 응원봉을 들고 어둠을 밝히려 했다. 무너지는 질서의 한가운데서 민주주의의 원칙과 상식을 지키려는 시민들의 고뇌와 각성이 있었다. 그 각성은 단순한 저항이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는 누구인가?’, ‘어떤 사회를 원하는가?’를 묻는 집단적 성찰이자 행동이었다.
『파리대왕』의 마지막 장면에서, 불타는 섬과 광기에 젖은 소년들 앞에 해군 장교가 등장한다. 하지만 그는 영웅도 구원자도 아니다. 그는 단지 그들이 저지른 일을 목격하고 말없이 바라볼 뿐이었다. 구원이란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공동체의 붕괴를 막는 것은 결국 공동체 안에서 깨어난 시민들의 힘이다.
2024년의 한국 사회는 파국 직전까지 내몰렸지만, 결국 민주주의를 다시 붙잡았다. 그것은 제도가 잘 작동해서만은 아니었다. 시민들의 지성과 책임감, 그리고 상식에 대한 뚜렷한 믿음이 이 사회를 지탱시켰다.『파리대왕』은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지금 어떤 민주주의를 살고 있는가. 우리는 여전히 문명의 힘을 신뢰하며 길을 찾으려 하는가, 아니면 공동체를 깨뜨릴 돌멩이를 손에 쥐려 하는가.
2025년 한국 사회는 여전히 위태로운 줄 위를 걷고 있다. 정치적 선동은 반복되고, 진영 간 불신의 행태는 뿌리 깊다. 그러나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위기를 이겨낸 것은 강요된 침묵이 아니라 성찰하는 시민이었고, 폭력이 아니라 상식이었으며, 지시가 아니라 질문이었다. 민주주의는 제도가 아니라, 그 제도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의식과 태도 속에 있다. 다음 세대에게 어떤 사회를 남길 것인가. 이는 결국 ‘지금, 여기’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는가에 달려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