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지식과 신념을 먹고
몸집을 키운 내 정서와 감정이 그대에게
적대하며 부린 느닷없는 몸부림은
또 건강한가 물어본다.
미국 소설가 마크 트웨인(Mark Twain, 1835~1910)의 작품 중에 『신비한 이방인(The Mysterious Stranger)』이라는 꽤 풍자적인 중편소설이 있다. 트웨인의 유고 작품인 이 소설은 도덕성의 본질, 악의 존재, 운명의 역할 등 철학적이고 존재론적인 주제를 탐구하며, 작가의 냉소적인 분위기와 종교, 인간 성품에 대한 회의적인 태도를 잘 보여준다.
이 소설에는 ‘사탄(Satan)’이라고 불리는 초자연적인 이방인이 등장한다. 이 이방인은 인류에게 ‘사탄’으로 알려진 바로 그 존재와 같은 가문에 속한 젊은 조카다. 그는 자신의 위대한 집안에서 죄를 지은 유일한 존재인 악명 드높은 ‘그’ 삼촌과는 달리 자신은 ‘깨끗하게’ 살아왔다고 말한다. 삼촌의 귀여움을 받던 지금의 이 사탄이 하는 일은 1590년 ‘에젤도르프’라는 ‘똥멍청이’ 마을을 배경으로 주인공인 ‘나’ 테오도르를 포함해 세 명의 소년들을 데리고 다니며 이 세상이 어떤 곳인지 체험하게 해주는 꽤나 기괴하고 섬뜩한 일종의 ‘성장’ 가이드이다.
사탄이 시공간을 넘나들며 소년들을 데리고 다니며 보여주는 이 인간 세상은 허위와 부조리, 종교를 앞세운 자기 고집과 잔혹 행위, 노골적인 탐욕과 착취와 마녀사냥과 전쟁, 극히 편협하면서도 자신이야말로 옳다는 ‘도덕감각’을 무기로 온갖 악덕이 자행되는 곳이다. 어지럽고 토할 것 같은 ‘나’는 보다 못해 너무나 ‘짐승 같은(brutal)’ 짓이라고 토로하자, 사탄은 짐승은 그런 짓을 저지르지 않는다며 짐승을 모욕하지 말라고 훈계한다. 사탄의 비판은 명확하다. 그런 짓은 인간들이 인간들이기에 저지르는 ‘인간다운(human)’ 짓거리다. 이렇게 ‘인간답다’는 단어는 최악의 비난이 된다.
물론 트웨인이 열거한 이런 참상들 중 지금은 어느 정도 누그러져 과거의 역사 속으로 멀어져간 광경도 있으나 여전히 오늘날의 생생한 현실이라고 해도 무방한 것도 많다.
역시 사탄 집안의 핏줄답게 그 젊은 사탄이 이끄는 대로 소년들과 함께 다니며 인간 세상을 들여다보면, 사탄 집안 내력에 있는 예의 그 악마적 유혹에 감염되지 않아도 정떨어지는 인간 세상에 등을 돌리고 싶은 생각이 들 법하다.
인간들끼리 벌이는 짓들이 차마 뭐라 할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하기만 한데, 여기에 사탄은 충격적인 장면을 더한다. 사탄 본인이 진흙으로 손가락 크기만 하게 만든 사람들이 마을을 이뤄 살다가 어느 틈에 서로 뜻 없이 피를 흘리며 죽기 살기로 싸우자, 이편저편 가릴 것 없이 모두 손가락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터뜨려 죽이고 손가락에 묻은 피를 마치 벼룩을 죽인 손톱에 묻은 핏자국을 닦아내듯 손수건으로 닦아낸다.
인류는 아직도 전쟁 중이다. 마크 트웨인이 소환한 그 젊은 사탄이 없어도 오늘의 세상에서는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이 사탄이 되어 오만가지 이유를 들며 소중한 젊은 생명들을 전쟁터로 내몰아 손톱으로 짓눌러 죽이고 있다.
그대의 두려움, 불안, 눈물을 우리가 함께 향해 갈 공감의 통로를 넓혀줄 재료로 활용하지 못한 채 무지의 징표요 비웃음의 재료로 낭비하지 않았는지 반성하는 하루, 나의 지식과 신념은 과연 이 세상에게 안전한가, 어느 추하고 삿된 전쟁의 연료가 되어 이 세상을 벼랑 끝으로 한 걸음 더 가깝게 몰아붙이지 않았는가 물어본다. 나의 지식과 신념을 먹고 몸집을 키운 내 정서와 감정이 그대에게 적대하며 부린 느닷없는 몸부림은 또 건강한가 물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