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재일조선인 시인 김시종, 삶을 말하다 ①]

시집『경계의 시』와 산문집『재일의 틈새에서』로 잘 알려진 재일조선인 시인 김시종(1929~ )은 ‘영원한 경계인’이다. 오래도록 남·북한 어느 국적도 선택하지 않은 채 ‘조선적’을 지닌 재일조선인으로 살아온 김시종은 1998년, 50여 년만에 고향을 찾았고 2003년 제주에 있는 부모님의 묘소를 찾기 위해 한국적을 취득했다. 그의 독특한 삶과 시적 편린을 눈여겨본 일본 <아사히신문(朝日新聞)> 나카노 아키라(中野晃) 논설위원이 지난 7월부터 2개월 동안 <아사히신문>에 김시종의 삶을 소개해 화제가 됐다. 이 기사를 접한 김석희 경희대 교수(일문학)가 김 시인과 <아사히신문>의 동의를 얻어 번역해 KNOU위클리에 보내와 문화면에 5회(월 1회)에 걸쳐 나눠 싣는다. 일본의 경제보복에 따른 ‘No Japan’ 분위기가 장기화되고 있는 한일 관계 국면에서, 김 시인의 삶을 들여다보는 일은 여러모로 의미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김 교수의 지적처럼, 그의 삶은 ‘동아시아 근현대사의 그늘’인 동시에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이기 때문이다. 이번 호에서는 김 시인의 글과 김석희 교수의「김시종 시인은 누구인가?」를 함께 소개한다. 올해로 90이 되었다‘자이니치(在日)’를 70년 살아왔다는 뜻이 되기도 합니다. 1949년, 한반도의 남쪽 방향 80킬로미터 지점에 있는 제주도에서 일본으로 왔습니다. 지나간 세월에 뒤처져 시들어버린 나입니다. 일본이 지배했던 식민지 조선에서 태어나 일본어로 교육을 받았습니다. 의식이라는 것은 말의 축적이지만, 나의 의식 밑바닥에 깔려 있는 것은 소년기를 형태지은 언어, 일본어입니다. 완전히 ‘황국(皇國)소년’이 되어 있던 저는,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패전으로 땅 밑으로 떨어지는 몰락감을 맛보았습니다. ‘해방’되어 조선인으로 되돌려진 그 순간 내가 쌓아온 일본어는 ‘어둠의 언어’가 되고 말았습니다. 조선어를 읽고 쓸 줄 몰랐던 나는 손톱으로 벽을 긁는 심정으로 배웠습니다.미국과 소련에 의해 점령당한 조국해방을 맞이했을 조국은 분단됐습니다. 1948년, 남쪽만의 단독 선거에 반대하는 무장봉기가 제주도에서 일어났고, 관헌의 진압으로 수만 명의 도민들이 학살됐습니다. 나는 이 ‘4·3 사건’ 봉기 측에 가담했다가 쫓기는 몸이 되어 이듬해인 스무 살 때 일본으로 도망쳤습니다. 나는, 거친 일본어로 시를 써 왔습니다. 유소년기부터 일본의 근대문학에 익숙해 몸에 익은 유려한 일본어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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