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제29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배우 특별전 ‘더 마스터 이병헌’

“말해 봐요. 나한테 왜 그랬어요?”(「달콤한 인생」), “모히또 가서 몰디브나 한잔 할라니까.”(「내부자들」), “그대들이 죽고 못 사는 사대의 예보다, 내 나라 내 백성이 열 갑절 백 갑절은 더 소중하오!”(「광해, 왕이 된 남자」), “합시다, 러브.”(「미스터 션샤인」), “인생의 절벽 아래로 뛰어내린대도 그 아래는 끝이 아닐 거라고 당신이 말했었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당신을 사랑합니다.”(「번지점프를 하다」)

 

「오징어게임」, 「킹 오브 킹스」, 「승부」 … 화제의 중심엔 그가 있었다
7월의 폭염보다 더 뜨거운 배우 이병헌이 30년 넘는 연기 인생 중 만난 히트작에서 남긴 명대사들이다. 왜 이병헌이 ‘아열대 기후’라는 소리를 듣는 2025년 한국 여름의 불볕더위보다 더 뜨거운지 이유를 묻는다면, 대답할 거리는 차고 넘친다. 첫째, 전 세계를 열광시킨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게임 시즌 1~3」(연출 황동혁)에서 안타고니스트 ‘프론트맨’ 역할로 극을 이끌어갔는데, 시즌 3은 공개 하루 만에 93개국 1위라는 대위업을 달성했다(국내 공개일 6월 27일). 둘째, 해외에서 먼저 개봉해 북미 박스오피스 1위, 아시아 애니메이션 2위라는 대기록을 달성한 K-애니메이션 「킹 오브 킹스」(감동 장성호)에서 찰스 디킨스 목소리 역을 맡아 아들에게 예수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때론 격정적으로 전했다(국내 개봉 7월 16일).

또 있다. 소니가 기획해 저승사자, 갓, 호랑이 등 한국 전통문화를 알린 K-아이돌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도 최종 빌런 역할의 목소리 연기로 참여했는데, 미국, 프랑스, 일본 등 30여 국가에서 넷플릭스 1위를 차지하며 팬들의 속편 제작 요청이 끊이지 않고 있다(국내 공개일은 6월 20일). 오리지널사운드트랙은 발매 3주 차에 1억 스트리밍을 돌파했으며, 빌보드 메인 앨범 차트 ‘빌보드 200’에 진입 후 2위로 올라섰다(7월 14일 기준). 시간을 조금 거슬러 올라간 지난 3월에는 ‘조훈현 국수에 빙의했다’라는 평을 받은 영화 「승부」(감독 김형주)로 214만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 모으며 위기의 극장가에 구원투수가 됐다.

 

모든 화제의 현장에 그가 있었다. 그래서일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집행위원장 신철)는 매년 한 배우를 집중 조명하는 ‘배우 특별전’을 진행하고 있는데, 올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주인공으로 이병헌을 선정했다. 7월 4일 현대백화점 중동점에서 열린 제29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배우 특별전 ‘더 마스터, 이병헌’ 기자회견을 진행한 신철 집행위원장은 “이병헌 배우를 소개하기 위해 다시 여러 작품을 살펴봤는데, 정말 연기를 겁나게 잘하더라. ‘더 마스터’가 이병헌을 수식하는 단어인데, 작품을 보면 볼수록 ‘더 몬스터’라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해 현장에 웃음을 터뜨렸다.

거듭된 칭찬에 민망하다며 멋쩍은 웃음을 짓던 이병헌은 “막연하게 어릴 때 선배님들께서 저렇게 ‘쟁이’처럼 파고들어 평생 일궈놓은 작품들로 특별전 하시는 모습을 보며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을까?’ 생각했던 기억이 문득 났는데, 제게도 그런 날이 왔다는 게 너무 뿌듯하고 보람도 느껴진다”라고 답했다.

 

1992년 데뷔해 2009년 할리우드 진출
이병헌의 데뷔작은 1992년 KBS 드라마 「내일은 사랑」(연출 윤석호 외)이다. ‘건축공학과 91학번 신범수’ 역으로 일약 청춘스타 반열에 오른 이병헌은 「백야 3.98」(연출 김종학, 1998), 「해피투게더」(연출 오종록, 1999) 등 드라마에서 주로 활동했다. 2000년대에 접어들며 「공동경비구역 JSA」(감독 박찬욱)와 「번지점프를 하다」(감독 김대승)로 충무로에서도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후 김지운 감독과는 「달콤한 인생」(2005),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 「악마를 보았다」(2010) 3부작을 함께 하며 매력적인 빌런 역할을 소화했고, 「광해, 왕이 된 남자」(감독 추창민, 2012)와 「남한산성」(감독 황동혁, 2017)으로 시대극마저 접수했다. 「내부자들」(감독 우민호, 2015)과 「마스터」(감독 조의석, 2016)는 관객에게 선 굵은 캐릭터로 각인됐다.

2009년에는 「지.아이.조-전쟁의 서막」(감독 스티븐 소머즈)에서 주연 ‘스톰 쉐도우’ 역으로 할리우드에 진출했고, 브루스 윌리스 등 액션 스타들과 합을 맞췄다. 통상 할리우드에 진출하는 동양인 배우에게는 전형적인 아시아인 또는 희화화된 역할이 부여되는 데 반해, 이병헌은 거의 모든 필모그래피에서 주연급으로 활동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이병헌 배우는 35년 동안 40여 편의 영화와 30여 편 드라마에 출연했다. 김형석 영화평론가는 “그의 필모그래피는 다양한 장르를 만나며 영역을 확장했는데, 특히 2010년대 이후 그가 보여준 캐릭터들은 마치 정성 들여 세공한 예술 작품과도 같다”라고 평하기도 했다. ‘연기신’ 이병헌에게 연기란 무엇이고, 연기를 계속하게 만드는 힘은 무엇일까? 「오징어게임」에서 악역을 맡은 것 때문에 아들이 자신을 멀리한다며 너스레를 떤 그가 관록이 묻어나는 답을 들려줬다.

 

“성인이 된 순간부터 연기를 시작했는데요. 지금까지도 저는 종종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내가 정말 잘하고 있는 걸까?’ 연기에 정답이란 없기에, 때론 막연하게 고민하고 스스로와 치열하게 몸부림치게 됩니다. 그런 와중에 생각지 못했던 창의력이 불쑥 떠오르고,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빛나는 결과물이 만들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 순간들이 연기를 계속하게 만드는 힘인 것 같습니다.”

연기를 잘하기 위해 배우들이 가져야 할 필수 덕목은 ‘공감대’라고 강조했다. 세상에 수많은 사람이 있고, 각자의 처지가 다르기에, 폭넓게 공감대를 가지고 사람을 대하고 관찰하는 것이 그만의 연기 비법이었다. 가장 한국적인 전통놀이로 2021년부터 전 세계인을 사로잡은 시리즈 「오징어 게임」의 흥행 비결 역시 공감대에서 찾았다.

 

“처음 대본을 봤을 때 정말 재밌게 읽었지만, 너무 실험적이어서 이건 쫄딱 망하거나 성공하거나 둘 중 하나라고 봤어요. 제가 어릴 적 놀던, 아이들 문화의 전통놀이를 소재로 한국 문화를 보여준 거였는데, 문화와 언어가 다른 전 세계 사람들이 사랑해 준다는 건, 어쩌면 그들도 함께 겪고 있는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문제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여러 소재가 있지만, 인간성의 부재라는 큰 주제에 공감해 주신 거 같기도 합니다.”

 

“캐릭터를 살아 있는 인물로 만들어 가는 과정은
가끔은 아무 생각 없이 백지를 마주하고 있는 것처럼
막막하고 고독한 시간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과정을 견디고 또 마주하다 보면,
언젠가 한 인물로 피어나고, 숨을 쉬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차기작은 박찬욱 감독의 「어쩔 수가 없다」
숨 쉴 틈 없이 바쁜 그의 차기작은 9월 3일 개봉 예정인 박찬욱 감독의 12번째 영화 「어쩔 수가 없다」이다.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은 평범한 중산층 남자 ‘유만수’ 역을 맡았다. 박찬욱 감독은 그를 두고 “현장에서 요구를 많이 하는 편인데, 투덜대면서도 정말 잘 해낸다. 즉흥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건 준비가 많이 돼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와 함께 작품을 했던 다른 감독들 역시 ‘최고의 배우’라고 입을 모은다. 김지운 감독은 “연기에 있어서 완벽한 균형을 갖췄다”라고 말했고, 황동혁 감독은 “세월이 지날수록 멋있어지고 연기력도 깊어지는 산삼 같은 배우”라고 평했으며,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엄태화 감독은 “수다 떨다가 슛 들어가기 직전에 스위치를 켜듯 연기 모드로 바꾼다. 그의 연기의 힘은 관객을 무장 해제시키는 촉촉한 눈에서 온다”라고 상찬했다.

 

그렇다. 눈빛 하나만으로 수많은 대사보다 더 묵직한 감정을 전달할 수 있는 대체 불가의 배우가 바로 이병헌이다. 30년 넘게 봐서 익숙해질 법도 한데, 관객은 아직 그의 연기가 궁금하다. 조금은 이르게 찾아온 그의 특별전이 이번으로 끝나지 않고 10년, 20년 후에도 또 열릴 수 있을까? 오래 살아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부천=윤상민 기자 cinemonde@kno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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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yun***
    눈빛 만으로도 상대를 압도하는 강렬한 카리스마의 이병헌 배우 글 잘 보았습니다! 차기작 (박찬욱 감독) 기대됩니다
    2025-07-17 20:25:08

사람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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