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감성 감독은 2001년 「무사」 연출부를 할 때까지만 해도 금방 데뷔할 줄 알았다. 이후 약 20여 년 동안 그가 준비한 영화는 최종 단계에서 업계 용어로 ‘엎어졌다’. 2011년 단편 「」를 연출한 것이 다다. ‘영화 감독이 되고 싶은가’와 ‘어떻게든 데뷔작을 찍고 싶은가’ 사이에서 숱한 방황을 하다가,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영화를 하자’는 심정으로 찍은 영화 「인질」이 데뷔작이 됐다. 그간 숱한 역경 속에서 응축된 그의 내공은 스크린 곳곳에서 폭발했다. 이후 티빙 시리즈 「운수 오진 날」을 연출하며 필감성이 아니라 ‘피감성’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랬던 그가 두 번째 영화 「좀비딸」에서 완전히 달라졌다. 물론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좀비와 ‘피’가 나오긴 하지만 영화 초반부에서만 살짝이다. 오히려 영화 전반적으로 따뜻한 온기가 가득하다. 좀비가 되어버린 딸을 향한 절절한 부성애가 과하지 않아서 더 웃긴 코미디 장르와 만나 절묘한 밸런스를 잡았다. 단지 아빠와 딸만이 아닌, 할머니와 아빠 친구들까지로 가족이라는 개념이 확장되는 것처럼도 느껴진다. 그의 이유 있는 변신과 「좀비딸」이 그에게 어떤 의미의 작품인지에 대해 들어봤다.
윤상민 기자 cinemonde@knou.ac.kr

영화 너무 재밌게 봤습니다. 여름 극장가의 구원투수를 넘어서서 만루 홈런을 칠 것 같은데, 개봉 앞둔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언론시사회 직전까지 계속 후반작업을 하고 있었어요. 바로 홍보에 들어가다 보니 아직 끝났다는 후련한 기분은 아니고요. 내일 개봉이라 너무 떨리고 긴장되죠. 영화를 본 분들은 좋은 이야기만 해주시니까(웃음). 굳이 나쁜 이야기는 알려고 하지 않는 편이고요. “이 영화 보고 가족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다”라든가 “아빠한테 전화 한 번 드리고 싶었다”, “굉장히 훌륭한 육아서 같았다”, “우리 아들을 좀비로 생각하니 굉장히 편해졌다”라는 예상치 못한 반응을 들었을 때 기분이 좋더라고요.
데뷔작 「인질」이나 시리즈 「운수 오진 날」에서 스릴러 장르답게 ‘피감성’이었는데, 이번에 이름처럼 ‘필감성’으로 돌아온 거 같아요. 스릴러 장르만 강한 줄 알았는데, 두 번째 영화로 코미디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장르를 바꿔봐야겠다고 해서 선택한 건 아니에요. 이야기 자체가 가진 매력에 매료돼서 하고 싶었죠. 선택한 이유까지 말하면, 원작이 가지고 있는 질문이 너무 좋았던 거 같았어요. ‘과연 가장 사랑하는 존재가 좀비가 됐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까?’, ‘가족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이었죠. 굉장히 슬픈 이야기를 유쾌한 톤앤매너로 그릴 수 있는 게 너무 좋았어요. 원작의 이런 톤앤매너를 그대로 스크린으로 표현해보고 싶었어요. 어렵지만 도전해볼 한 가치가 분명 있다고 느꼈고요.

스릴러만 하다가 코미디 해보니 감독님 생각에는 몇 점 정도 주고 싶으세요(웃음)?
점수를 매기기는 좀 그렇고요(웃음). 나름 재밌게 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코미디 느낌을 표현하고자 노력했어요.
감독님이 생각하는 코미디 느낌이란 건 뭔가요?
상황 자체가 가진 아이러니가 단단하다고 생각했어요. 배우들과 처음 만난 리딩 자리에서 모두발언을 했는데요. 우리 작품은 코미디라고 생각하고 연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요. 배우들도 다 승낙했어요. 누구 하나라도 웃기려고 하는 순간, 코미디가 가진 가치가 무너질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코미디를 안 하고자 했던 게 이 영화의 매력이 아닐까 싶네요.

조정석 배우가 “대본대로 연기했더니 코미디가 됐다”라고 하더라고요.
아이고, 겸손한 말씀이죠. 잠깐 말씀드렸지만, 이 상황에서 코미디를 한다고? 이게 저희 영화의 코미디 포인트였어요. 조정석 배우가 귀신 같이 잘 포착해서 표현해준 게 큰 역량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예를 들면 옆집 아주머니가 좀비가 돼서 쳐들어 왔는데,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경찰에 신고합니다”라고 말하거든요. 웃긴 그 자체로만 하면 밋밋할 수 있는 장면이었는데, 조정석 배우가 본인만의 위트로 순식간에 두 대사 사이에서 변하는 걸 보면서 너무 짜릿했던 기억이 나네요.
기존 좀비영화들과는 확실히 달라요. 좀비가 떼로 등장하는 영화 초반부는 너무 무섭지만도 않거든요.
이곳을 꼭 벗어나야만 하는 무서운 상황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만약 그 장면이 장난처럼 나오면, 정환(조정석)과 수아(최유리)가 굳이 시골까지 가서 숨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장르적으로 화끈하게, 쫄깃하게 표현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죠. 다만, 가족 코미디라는 밸런스를 깨면 안 된다는 게 중요했기에, 사실적인 기반에서 백주대낮에 우리 동네에서 벌어질 것 같은 분위기로 찍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좀비에게 전사를 부여했는데요. 자세히 보면 할머니 좀비는 배영을 하면서 등장해요. 아침에 수영반 다녀와서 기억이 남아 있다는 설정이고요. 택배 기사는 계속 테이프를 뜯고 있죠. 이것 역시 좀비가 되어도 기억이 남아 있다는, 영화에서 중요한 복선이기도 했죠. 그래서 안무가에게 좀비들에게 서사를 부여해서 어딘가 모르게 그들의 움직임이 웃기게 해달라고 요청했어요(웃음)

정환과 수아가 좀비 떼를 뚫고 나갈 때 하는 댄스들은 연습을 하지 않았다고요.
그렇죠. 최유리 배우는 움직임을 연습하긴 했지만, 조정석 배우의 경우 대본에 ‘수아와 같이 춤을 춘다’ 정도였거든요. 연습하면 즉흥성 안 나온다고 봤는데, 조정석 배우가 워낙 댄스가 좋았으니, 현장에서 기대가 많았어요. 물론 고생했죠. 가방도 메고 춤을 춰야 했으니까요. 이 장면 편집할 때 정말 많이 웃었습니다.
그러니까 좀비를 사실적이면서도 코미디적이게 밸런스를 잡으려고 노력했다는 거네요.
제 출신이 ‘청불’이다 보니 수위 조절이 중요했습니다(웃음) 초반에는 무섭고 짜릿하게, 사실적인 느낌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느낌과 코미디가 51:49 정도로 밸런스를 맞춰야겠다고 한 거죠. 사실 좀비 스펙터클에 초점을 맞춘 건 아니에요. 처음에는 아빠를 먹이로 인지하다가 점차 자기를 지켜주는 존재로 인지하는 과정이 중요했죠. 최유리 배우와 분장팀, 안무팀이 좀비 4단계 동작과 3단계 표정을 만들었어요. 구체적으로 말하면 수아가 반려동물처럼 보였으면 했거든요. 가족처럼요. 늘 좀비가 가족이 될 수 있을가 궁금했는데, 최유리 배우 역시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 생각을 하면서 연기했다고 하더라고요. 점차 아빠에게 동화되고, 인간 세상에 물들어가는 모습이요.

만화 같으면서도 현실인, 둘 사이의 경계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그런 밸런스는 어떻게 맞추려고 하셨나요?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였죠. 그래서 프리 프로덕션 시작할 때 채경선 미술감독을 제일 먼저 만나서 “나는 사실적인 동화, 동화적인 사실성을 표현하고 싶다”라고 말했어요. ‘옛날 옛날에 예쁜 마을에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좀비가 살고 있었어요’라고 시작하는 동화처럼요. 그런데 너무 사실성이 떨어지면 안 될 거 같아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영화 「부산행」을 언급한 대사를 계속 넣으면서 공감을 주려고 했고요.
연출 제안을 받기 전에 웹툰은 알고 있었나요?
사실 제목만 알고 있었지, 내용은 몰랐죠.

통상 원작이 있는 작품은 실사로 영화화되고 나면 원작 팬들의 반응이 갈리죠. 어떻게 집중하려고 했나요?
저 또한 원작의 팬이라 작품이 가진 주제와 톤앤매너를 해치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요. 원작이 단행본만 7권 되는 방대한 분량이다 보니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어요. 후반부는 집중력을 끌어올리기 위해서 인물들을 간소화하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그 와중에서 이야기를 틀었다기보다는 인물들의 캐릭터 방향성에 의해 자연스럽게 정리된 거라고 봐주시면 좋겠어요. 방대한 분량을 다 가져갈 수 없으니 가족애, 정환의 의지 이 두 가지를 중요한 주재로 놓고 작업했습니다.
원작은 ‘새드앤딩’입니다. 영화는 다른 결말을 선택했습니다. 이유가 궁금해요.
이 영화가 가족 코미디 영화였으면 했어요, 정환이 의지로 수아를 인간으로 되돌리려 하다가 어느 순간 수아가 좀비든 뭐든 그 자체로 인정해주고 사랑해주는 이야기로 생각했습니다. 스포가 될 수 있으니 자세히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새드앤딩이 될 경우 모든 것이 좌절되죠. 제가 생각한 가족 코미디 자체가 부정되는 겁니다. 다행히 웹툰 원작 작가님이 영화의 바뀐 결말에 만족했고, 응원해주셨습니다.

이윤창 원작 웹툰 작가도 까메오로 깜짝 출연하던데, 누가 아이디어를 낸 건가요?
제 아이디어입니다. 「운수 오진 날」에서도 원작 작가가 승객으로 출연했어요. 본인이 만든 세계를 실사화한 영화, 드라마에 본인이 출연한다는 게 너무 재밌어요. 그런데 이윤창 작가님이 원래는 좀비로 출연하고 싶으셨대요. 너무 더운 날 분장도 두 시간 넘게 걸리는 거라 누가 될 거 같았죠. 캐리커쳐 작가라는 캐릭터를 따로 만들었어요. 덕분에 그때 작가님이 그려준 그림이 앤딩씬에서 중요한 소품으로 활용됐습니다. 세계관이 겹치는데, 원작 팬들에게 좋은 선물이 될 거라 생각했어요.
이제 배우 이야기를 해보죠. 조정석 배우는 처음부터 원픽이었다고요.
조정석 배우 아니었으면 못했을 거예요. 원작 볼 때부터 떠올렸던 배우입니다. 시나리오 작업 때도 매 순간 생각했어요. 조정석 배우가 가진 특유의 리듬감과 위트 그리고 페이소스를 발현할 수 있는 장점 같은 면을 볼 때 이 장르 안에서는 조정석 배우가 유일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연애편지 드리는 심정으로 제안을 드렸는데 흔쾌히 “이거 난데!”라고 말씀하셨다고(웃음). 너무 기뼜죠. 제가 생각한 것보다 정환을 훨씬 잘 표현해주셔서요.

애드리브도 많았나요?
애드리브 비중이 많지는 않았어요. 조정석 배우는 애드리브를 하면 시나리오가 가진 고유의 리듬감을 깰 수 있다고 생각했대요. 그런데 텍스트 행간의 것들을 조정석만의 위트로 표현해주셔서 정말 탄복했습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하고 바로 조정석이 되어서 “경찰에 신고할 겁니다”라고 하는 게 정말 매력적이었죠.
반면에 동배 역을 맡은 윤경호 배우 별명을 ‘그만하실게요’라고 정해주셨다고요. 계속되는 애드리브에 혹시 캐스팅을 후회한 적은 없었는지 궁금합니다만(웃음).
재밌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습니다. 캐스팅 후 윤경호 배우가 면담 신청을 했어요. 만났더니 “감독님은 코미디가 어떤 거라고 생각하세요?”하고 묻는 거예요. 그래서 “코미디를 안 하는 게 코미디 같아요”라고 답했더니, 너무 좋아하는 겁니다. “그러면 애드리브도 안 하고, 웃긴 표정도 짓지 않겠다”고 선언하길래, “바로 그거다”라며 둘이 의쌰의쌰했어요. 그런데 첫 촬영이 토르였어요. “감독님, 이거 어때요?” 하면서 막 애드리브를 던지는데, “아니, 경호씨 우리 이러지 않기로 했잖아요. 그때 만남을 기억해보세요”라고 했죠(웃음). 의욕이 많으셨던 거 같아요.

처음엔 감독님이 윤경호 배우를 자제시켰는데, 이후 편집실에서 윤경호 배우 장면들을 보면서 ‘아, 더 놀게 놔줄 걸’ 하는 생각을 하셨다고 윤경호 배우가 말하더라고요. “이겼다!”라고 웃으면서요(웃음).
음, 사람마다 약간 해석이 다를 수 있고, 기억도 달라질 수 있는 거고요(웃음) 물론 정말 재밌는 부분이 많긴 했지만, 다른 배우와의 연기합에서 톤이 있잖아요. 그걸 조율하는 게 감독의 일이고요.
알겠습니다. 딸 수아 역의 최유리 배우 캐스팅 비하인드가 궁금하네요.
「외계인」에서 그 친구가 가진 이미지가 너무 좋았어요. 사람을 항상 무장해제 시키는 게 있더라고요. 그러면서 묘한 슬픔도 있고요. 좀비 분장하면 묘하게 잘 어울릴 거란 생각이 있어서 캐스팅 1순위였습니다.

현장에서 그렇게 어른스러웠다고요.
경탄스러웠던 부분이 많았았어요. 가장 먼저 합류했어요. 좀비 모션도 익혀야 하고, 분장 테스트도 많이 해야 했고 정말 할 것들이 많았어요. 테스트도 많이 했는데, 저랑 정기적으로 만나때마다 장족의 발전을 보여주더라고요. 또 정말 수용을 잘해요. 항상 “해보겠습니다”, “너무 재밌었어요”, “감사합니다” 이 3종 세트를 계속해요. 촬영 초반이라 그런가 했는데, 정말 어려운 촬영 때도 똑같아요.
가장 힘들게 찍은 씬이 수아 아빠(조한선)가 나오는 장면이었는데요. 밤인데 비도 뿌려야 하고, 산속이었거든요. 수아는 가장 해비한 좀비 분장을 몇 시간 걸려서 해야 했고, 가장 두꺼운 렌즈를 껴서 시야 확보도 안 되는 상황이었어요. 그런 순간에서도 정말 불평 한 마디 없이 해내더라고요. 한 순간도 흔들리지 않고요. 그 나이대 배우 중에 그렇게 할 수 있는 배우가 또 있을까요? 최유리 배우의 퍼포먼스가 너무 강렬해서, 그 씬을 찍고 “유리야, 오늘부터 너를 존경하기로 했다”라고 했더니, 대답이 또 걸작이에요. “감사합니다”라고(웃음)
모든 배우가 1순위였다고 하셨는데, 이정은 배우는 어땠나요? 조정석 배우는 ‘천재’라고 표현하더라고요.
‘밤순’은 이정은 배우 말고 다른 배우가 할 수 있다고 단 한 순간도 생각 안 했어요. 캐스팅 안 되면 영화 엎을 거라고 주위에 이야기 했을 정도였죠. 다행히 「운수 오진 날」 작업을 같이 하던 중이어서, 흔쾌히 수락해주셨어요. 사실 조정석 배우의 엄마로 나와야 하니 연령대도 안 맞고, 만화적 캐릭터이기도 해서 안 하실 수도 있었는데 말이죠. 저는 이정은 배우를 ‘마술사’라고 불러요. 어떤 면에서 굉장히 테크니컬한 배우인데, 어떤 씬도 분석하지 그만의 방법으로 그 장면을 채워내는 방법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선배님은 배트맨도 가능하실 거 같아요. 심지어 선배님이 연기하는 배트맨을 보고 싶어요”라고 말할 정도였죠.

조여정 배우는요?
항상 같이 작업하고 싶었는데 기회가 없었죠. ‘연화’라는 캐릭터의 불안정한 멘탈을 러블리하고 코믹하게 표현할 수 있는 여배우가 누가 있을까 고민했어요. 그때 「기생충」에서 “이즈 잇 오케이 위드 유?”라는 대사를 하던 조여정 배우가 떠오르더라고요. 우리 영화에서 “어디 잡아 죽일 좀비 하나 없나?”가 딱 매칭되더라고요. 또 연애편지 드리는 심정으로 제안했는데 흔쾌히 해주셔서 기뻤던 기억이 나네요.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원작에서도 가장 중요한 캐릭터인 반려묘 ‘애용’이는 오디션을 보고 뽑으셨다고요.
애용이는 「좀비딸」의 정체성이라 절대 타협할 수 없었죠. 원작에서도 치즈냥이었는데, 다른 고양이를 하면 원작 팬들이 실망할 수 있다는 주변 우려가 많았고요. 저 역시 아깽이 때 데려온 길냥이를 키우는 집사인데요. 엄청 개냥이에요. 그래서 무모한 자신감이 있었죠. 우리 집 고양이 같은 개냥이가 치즈냥 중에도 있을 거라는(웃음). 전국에서 촬영 경험이 있는 치즈냥을 섭외했고요. 최종 4마리를 만났어요. 오디션이라고 하긴 그렇고, 카메라 두고 반응 테스트를 했는데, 다른 고양이들은 다 숨고 도망쳐요. 그런데 이 고양이만 애용이처럼 배를 깔고 눕더라고요. 안았더니 또 축 늘어져요. 마치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하는 표정을 지으면서요.

CG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고요.
예고편에 나온 소파에 앉아 TV 보는 장면도 고양이가 직접 한 거예요. 계란밥 보면서 혀 낼름낼름 하던 것도요. 사전에 CG로 해야지 했던 부분도 상당 부분 연기로 해서 너무 놀랐어요. 사실 훈련 없이 될 때까지 기다린다는 마음이었는데, 바로 현장 적응하는 걸 보면서 ‘대배우다’, ‘천재적인 배우다’라고 생각했습니다(웃음).
영화에 보아의 「넘버원」과 2NE1의 「내가 제일 잘나가」가 중요한 곡으로 쓰입니다. 특별히 두 곡을 선정한 이유가 있을까요?
두 노래의 팬인데요. 「넘버원」은 영화랑 잘 맞는다고 생각했어요. 발랄하지만 슬픈 느낌이 나는데, 영화와 맞닿아 있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손가락 안무도 인상적이어서 영화에서 그 안무를 반복적으로 쓰고 싶었습니다. 「내가 제일 잘나가」는, 음봉리 할머니들의 스웩을 보여주기에 그보다 더 맞는 곡은 없었죠. 놀이공원 장면과 교차편집 되는데요. 동배와 수아, 정환이 놀이공원을 활보하는 모습과 음봉리의 멋진 할머니들의 모습을 중의적으로 표현해내고 싶었어요.

은봉리 마을이 너무 아름답던데, 세트라고 해서 놀랐어요. 실제 장소는 어디인가요?
로케이션 헌팅팀에게 제가 요구한 건, ‘약간 높은 언덕에 바다가 내려다 보이고, 마루에 앉았을 때 바다 보이는 곳이엇으면 좋겠다’였습니다. 전국을 돌아다녔지만, 그런 곳은 없었죠. 그러다 남해에서 부지를 찾아서 집을 짓기로 한 거죠. 종이 한 장까지 소품을 다 가져다가 채경선 감독이 만들어낸 겁니다. 장소는 남해시고요.
감독님 이야기를 좀 해보죠. 2001년 「무사」 연출부로 시작해 20여 년 만에 데뷔작을 찍었죠. 이후 시리즈 「운수 오진 날」 10부작을 했고요, 올해 두 번째 작품이 나왔어요.
텀이 많이 긴 건 아닌데, 최근 코로나도 터졌고, OTT도 생겼죠. 판이 다이나믹하게 바뀌었어요. 「무사」 때 경험과는 완전 다른 상황이 된 거니까요.

입봉 이후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하시는데, 예전과 뭔가 달라진 게 느껴지나요(웃음)?
어둠의, 고난의 터널이 길었기에(웃음). 항상 이 상황 자체에 충실했던 거 같은데, 이제는 이야기 자체에만 집중하는 모드가 된 것 같습ㄴ다. 일희일비하지 않고요. 이 또한 어떻게 도리지 모른다는 생각?워낙 그동안 어둠의 세월에서 많이 겪었잖아요. 거의 될 뻔하다가 안 된 경우를 너무 많이 겪어서 만성이 된 거 같아요. 지금 「좀비딸」을 많이 기대해주시는데, 마냥 좋지만은 않다는, 그런 마음가짐이 이어지고 있는 거 같습니다.
20여 년을 버티면서 계속 영화를 하게 만드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무도 저를 인정하지 않아도 ‘난 될 거 같은데?’ 하는 무모함이요. 어느 순간 저를 인정하지 않는 시선들이 생겼는데도 ‘그런데 나는 될 건데?’ 하는 생각을 했던 거 같아요. 지금 돌이켜보면 너무 무모했지만요. 될 것 같은 문턱에서 결국 안 됐던 많은 상황에서도 근자감이 컸어요. 애시당초 안 될 일이었으면, 여기까지 올 수도 없었겠지 하면서요.

뭔가 비법이 있는 건가요? 아니면 감독님의 위상이 달라졌다거나(웃음)?
뭔가 맞아 떨어진 거죠. 타이밍과 운 그러니까 ‘여름의 남자’ 조정석 배우가 워낙 좋은 스코어들을 내셨잖아요. 그것도 큰 작용을 했던 거 같아요. 이전에 대박이 난 작품의 개봉일이 공교롭게도 7월 30일이거든요. 곧 약속의 7월 30일이네요(웃음)
스릴러와 코미디 중에서 어떤 게 더 어려우세요?
둘 다 어려운데, 쾌감이 다르더라고요. 극장에서 스릴러 영화를 관객과 같이 보면 무서워하면 쾌감이 있죠. 관객들이 저 장면에서 쫄려 하는구나 해서 보면 기쁘고요. 근데 코미디는 제가 의도치 못한 장면에서 웃을 때가 쾌감이 상당하거든요. 다른 즐거움이 있다고 말씀드릴게요.

장르 바꿔보니 어떻든가요?
현장 자체가 재미 떠나서 달랐어요. 예전에는 ‘어떻게 하면 창의적으로 사람을 괴롭힐까’, ‘어떻게 하면 남들이 안 한 방식으로 죽일 수 있을까’ 하면서 스트레스 호르몬이 많았어요. 이번 현장은 ‘어떻게 하면 관객을 따듯하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 보니 엔돌핀, 긍정 호르몬 나오는 현장이었습니다. 제게도 재밌는 경험이었죠.
차기작은 뭐로 준비 중이세요?
말씀드리기 그렇지만 여러 제안이 오고 있습니다. 영화나 OTT에 구분은 두지 않아요. 영상으로 하는 건 똑같으니까요. 저는 캐릭터 디벨롭에 더 관심이 많아요. 그것만 매료되는 부분이 있다면 경계는 안 두는 편입니다.

「좀비딸」 역시 모든 캐릭터들의 전사가 잘 표현됐어요. 행동의 이유가 있죠. 캐릭터를 기능적으로 소비하지 않으려는 감독님만의 철학일까요?
제가 가장 관심 있는 건 캐릭터입니다. 이야기에서도 캐릭터의 선택에 끌려요. 전작들도 그랬고, 「좀비딸」 역시 주인공이 ‘나는 과연 수아를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고민하죠. 다른 캐릭터도 마찬가지입니다. 손녀딸이, 친구 딸이 좀비가 됐는데 나는 어떡하지 하는 고민을 하죠. 그게 영화나 시리즈를 만들 때 흥미로운 지점인 거 같아요. 사실 최고의 스펙타클은 배우에게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어떤 거대한 장면보다 배우의 표정 하나가 줄 수 있는 감동을 대체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인물에 관심이 많이 가는 거 같아요.
평소에 캐릭터를 어떻게 발굴하는 편이세요?
배우들 유심히 보면서 이렇게 하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저 배우에게 이런 새로운 얼굴을 찾아보면 어떨까 하고 기대하는 편이고, 그게 나왔을 때 같이 모니터 보면서 ‘거봐’ 하며 즐거워하는 편이죠. 평소 사람 관찰하고 이야기 듣는 걸 좋아해요. 그래서 저는 여행을 가면 카페 앉아서 딴 거 하는 척하면서 다른 사람 관찰하는 게 즐거워요. 영화의 리액션씬을 찍을 때 가장 즐거운데요. 한 관객이 “이 영화 리액션 코미디네요”라고 해주셔서 기뻤어요. 알아봐 주신 거 같아서요.

이 영화가 감독님의 영화 인생에 어떤 영화로 남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면요.
「좀비딸」은 제게 각별한 영화인 거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수아 나이와 딸 나이가 비슷해요. 제게는 마치 딸에게 보내는 영화 같은 개인적 각별함이 있고요. 또 직전 작품과 다른 길 선택했다는, 필모그래피에서 중요한 작품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좀비물인데 영화가 따뜻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가 관객에게 어떻게 다가가면 좋겠다고 생각하세요?
내가 가장 지키고 싶은 대상에 관한 생각을 한번 해보면 좋겠어요. 극장을 나서며 가족에 대한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거죠. 「좀비딸」은 아빠와 딸만의 단순한 가족 이야기가 아니라, 나오는 인물 모두가 가족 같아요. ‘아이 하나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속담처럼, 처음에는 수아를 부정하다가 인정하게 되고, 친구, 할머니 심지어 적이었던 연화까지 함께 수아를 키우잖아요. 어쩌면 이게 진정한 가족이 아닐까요? 이 영화가 분명 그 지점까지 확장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영화에서 좀 의도하기도 했습니다. 후기 중에 그런 반응들이 있어서 반가웠죠.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질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합니다. 요즘 가족의 테두리가 많이 좁아졌는데, 이 영화에서 그런 부분을 조심스럽게 이야기해보고 싶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