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   동시대 예술 산책

‘동시대 연극’은 과거의 계보를 계승하면서도,
현재의 관객과 사회에 질문을 던지고,
새로운 해석과 감각을 제공하는
열린 형식의 예술이다.
그 어떤 예술보다도 현실과 밀착된
이 예술은 오늘의 인간을 이해하고,
함께 사유하는 데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동시대 연극은 ‘지금, 여기’라는 시간성과 공간성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예술이다. 이는 단순히 현대 연극의 연장선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맥락과 관객의 존재를 반영하며 현재성을 중심으로 존재하는 예술 형식이다. 그러므로 동시대 연극은 고전 연극의 형식에서 벗어나 시대의 변화에 적극적으로 반응하고, 새롭게 구성된 사회적 질문을 무대 위로 소환한다. 시간에 종속되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사회를 예민하게 감각하며 진화해 나아가는 것이다.

 

시대의 감수성에 깊이 반응하다
이처럼 동시대 연극은 단순히 시대적으로 ‘현대에 만들어진 연국’이라는 의미를 넘어서,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구조와 분위기, 그리고 개인과 공동체의 갈등을 무대 위로 끌어 올리는 예술이다. 동시대 연극은 그 자체로 변화하는 사회와 함께 움직이며, 정해진 형식이나 주제에 머물기보다는, 관객이 처한 현실의 맥락과 감정, 시대의 감수성에 깊이 반응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는 연극이 과거보다 더욱 능동적인 방식으로 관객과 관계를 맺고, 그들의 참여와 해석을 통해 의미를 완성하는 예술로 진화했음을 의미한다.

또한, 동시대 연극은 다양한 장르와 기술, 미디어와 결합하며 새로운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 디지털 기술, 가상현실(VR), 인공지능(AI), 다큐멘터리적 접근 등은 동시대 연극의 표현 범위를 넓혀주며, 예술과 사회, 과학이 교차하는 접점을 만들어낸다. 이 과정에서 연극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뿐만 아니라 시대와 관객, 사회를 연결하고 질문을 던지는 장으로 기능한다.
무엇보다 동시대 연극은 명확한 경계선이나 정의로 구획을 나눌 수 없는 유연한 예술이다. 형식보다는 맥락, 정답보다는 질문을 중시하며,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의 삶과 공동체의 이야기를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낸다. 그렇기 때문에 동시대 연극은 현재 우리의 문화적 감수성을 가장 선명하게 담아내는 거울이자,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상상하게 하는 플랫폼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동시대 연극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가장 가까운 시대적, 공간적 배경에 있는 현대 연극에 대해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가 없다. 현대 연극부터 동시대 연극까지 순차적으로 알아보기로 하자.
 
현대 연극의 출현과 여러 특징
20세기 초반, 대전환의 시기 출현한 연극들을 현대 연극이라고 한다. 과거 귀족 중심의 고전 연극은 부르주아 계층의 대두와 더불어 관객층의 변화에 직면했고, 두 차례의 세계대전은 인간의 존재 자체에 대한 의문을 던지게 했다. 이러한 사회적 격변은 곧 연극의 형식과 주제를 뒤흔들었고, 예술은 고정된 틀을 벗어나 새로운 언어와 시도를 해야 하게 됐다. 현대 연극은 이 같은 시대적 위기와 불확실성에 대한 예술적 대응으로 태동했으며, 그것은 연극이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의 전환을 의미했다.
현대 연극은 전통적인 서사 구조나 인물 중심의 갈등 양식을 해체하며 시작되었다. 반사실주의의 등장은 고전적 리얼리즘을 부정하고, 인간 존재와 현실 인식에 대한 새로운 질문을 던졌다. 이러한 해체는 무대 위에서의 언어, 공간, 시간, 인물 등을 새롭게 재구성하게 했다. 예를 들어, 관객의 몰입을 유도하기보다는 거리를 두게 만드는 기법들이 주요하게 활용되었고, 무대 장치는 현실 재현이 아닌 상징적 효과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한편, 연극의 역사에서 다양한 사조들은 저마다 고유한 질문을 품고 등장했다. 브레히트는 서사극을 통해 관객이 연극을 감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대신 비판적으로 바라보도록 만들었고, 메이어 홀드는 생체역학이라는 기법으로 배우의 신체를 연극의 중심으로 가져왔다. 아르토의‘잔혹 연극’은 감각을 자극하며 관객의 내면을 흔드는 강렬한 체험을 지향했다. 베케트와 이오네스코의 부조리극은 인간 삶의 불합리와 언어의 무능함을 무대에 드러냈다. 이렇듯, 저마다의 색채와 고민을 각자의 방식으로 표현하고 풀어나가는 시대가 있었다.
현대 연극은 관객을 단순한 수용자가 아닌, 능동적인 참여자로 재정의했다. 제4의 벽을 허무는 시도는 그 자체로 연극의 윤리적 전환을 뜻했다. 이는 관객이 연극의 세계에 몰입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연극 바깥의 현실을 자각하게 하는 효과를 노린 것이었다. 무대와 객석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연극은 하나의 사회적 공간이자 토론의 장으로 기능하게 된다. 관객이 감상자에서 질문자가 되면서부터, 연극은 더 완결된 이야기보다 열린 질문을 가진 예술이 되어갔다.
각국의 사회 정치적 환경은 연극 사조와 형식에도 다양한 변이를 불러왔다. 유럽에서는 서사극, 기록극, 부조리극 등이 활발히 전개됐고, 미국에서는 심리적 사실주의와 실험극이 주요 흐름을 이뤘다. 예를 들어, 아서 밀러나 테네시 윌리엄스는 미국 중산층의 불안과 정체성 혼란을 사실주의적으로 그려냈고, 이탈리아의 피란델로나 스페인의 로르카는 사회와 개인의 충돌을 극시적으로 재현했다. 이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현실’을 무대화했다.
20세기 후반 이후, 연극은 고정된 극장 공간을 벗어나 다양한 공간과 매체로 확장됐다. 퍼포먼스와 해프닝은 회화, 음악, 사진 등 타 예술과의 융합을 전제로 하며, 연극이 극장에서만 존재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뜨렸다. 해프닝은 미리 짜인 각본 없이 관객의 즉흥 참여를 유도하며 연극의 경계를 흐렸고, 피터 브룩이나 밥 윌슨 등은 연출과 무대 구성의 극적 실험을 통해 연극을 하나의 종합 예술로 끌어올렸다. 탈 장르가 시작되면서 새 장르가 열린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시대가 온 것이다.
예지 그로토프스키의‘가난한 연극’은 기술과 자본에서 벗어나 배우의 신체성과 관객과의 교류에 집중했다. 이는 연극이 영화나 텔레비전과 경쟁하기보다는, 그들만이 가질 수 있는 본질적 요소로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의상이나 세트는 최소화됐고, 연극은 오히려‘결핍’ 속에서 더욱 본질적인 표현력을 회복할 수 있다는 관점에서 전개되었다. 이는 연극의 존재 의미를 다시 묻는 철학적 접근이었다.

 

한국 현대 연극의 동시대성 모색
한국 연극 역시 이 같은 흐름 속에서 동시대성을 반영하고 있다. 국립극단의 기획작과 소극장 중심의 독립 연극들, 기술을 접목한 미디어 연극 등은 각각의 방향에서 오늘의 사회를 반영하고 있다. 특히 관객과의 직접적인 교류를 중시하는 작업이 활발히 이어지고 있으며, 젊은 연출가들은 기존 연극 문법에도 전하면서 새로운 해석을 모색하고 있다. 이는 한국 사회 내의 정체성, 젠더, 계급, 기억과 같은 주제를 연극적으로 재구성하는 작업으로 이어진다.
동시대 연극을 이해한다는 것은 공연을 관람하고 줄거리나 형식을 파악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지금 이 시대,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과 사회, 문화, 정서를 예민하게 감각하는 일이며, 연극이라는 예술을 통해 그 감각을 해석하고 확장해보는 과정이다. 동시대 연극은 현재의 관객과 세계를 반영하고, 질문하고, 때로는 불편하게 만들며 응답을 요구한다. 따라서 이를 이해한다는 것은 작품 그 자체뿐만 아니라, 그것이 발생한 시대적·사회적 맥락을 함께 읽어내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동시대 연극은 기존의 형식에 머물지 않고 다양한 장르와 매체, 기술, 참여 방식을 통해 끊임없이 변모한다. 그러므로 동시대 연극을 이해하는 것은 고정된 정의를 찾는 일이 아니라, 유연하게 사고하고 열린 시각으로 예술과 사회의 상호작용을 바라보는 태도이기도 하다. 연극 속 인물의 목소리, 무대 위의 움직임, 조명과 음악의 배치, 관객과의 거리까지도 모두 이 시대의 문화적 언어이자 메시지다.

여전히 연극이 유효한 이유
그러므로 동시대 연극을 이해한다는 것은 지금 우리의 삶과 세계를 이해하는 또 다른 방식이며, 연극이라는 장을 통해 사회를 질문하고, 타인과 공감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해보는 적극적인 행위이다. 그것은 단순한 해석이 아니라, 참여이고, 사유이며, 연대다.
결국, 오늘날의 연극은 특정 작품을‘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작품이‘왜’ 지금 만들어졌고, 어떤 질문을 던지고 있는가를 함께 고민하는 일이다. 연극은 완성된 예술이 아니라, 사회와 관객과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에 주목하는 예술이며, 그렇기에 지금 이 시대에도 살아남아 있는 것이다. 역사의 흐름과 사회의 변화 속에서도 연극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는 단지 예술의 지속성 때문이 아니라, 연극이 끊임없이 ‘지금, 여기’에 대해 말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날의 연극인 ‘동시대 연극’은 과거의 계보를 계승하면서도, 현재의 관객과 사회에 질문을 던지고, 새로운 해석과 감각을 제공하는 열린 형식의 예술이 된다. 그 어떤 예술보다도 현실과 밀착된 이 예술은 오늘의 인간을 이해하고, 함께 사유하는 데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나여랑 공연평론가
한예종 연극원 연극학과를 졸업한 후스페인과 한국을 오가며 연극 평론, 극작,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평론집 『여기, 그리고 지금』, 희곡집 『시간의 감옥』, 『리듬으로 사유하기』(공저)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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