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부터 18세기까지 유럽 지식인들은 국가와 사회의 존재 이유, 그리고 이들이 어떻게 운영돼야 하는지에 대해 깊이 있는 논의를 전개했다.
이러한 논의는 크게 두 가지 사상적 전통, 즉 ‘공화주의(시민적 인문주의)’와 ‘자연법학’으로 나눠지며, 이 두 흐름은 정치철학을 넘어 도덕, 역사, 세계관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 공화주의 전통은 종교개혁, 과학혁명, 산업혁명, 영국 내전, 미국 독립 전쟁, 프랑스 혁명 등 근대 서양의 굵직한 사건들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공화주의의 기본 전제: 공화국의 불안정성
공화주의자들은 자유로운 공화국이란 본질적으로 불안정한 체제라고 보았다. 이들이 말하는 ‘공화국’은 시민들이 자유롭게 살아가는 법치국가를 의미한다. 오늘날 흔히 생각하는 ‘공화국’이 왕이 없는 체제만을 의미하는 것과 달리, 당시에는 군주가 존재하더라도 시민이 자유를 누릴 수 있다면 공화국으로 간주됐다.
그러나 공화국은 언제든 쇠퇴하거나 멸망할 수 있으며, 아무리 잘 운영되는 국가라 해도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힘이 약해져 소멸에 이른다고 여겨졌다. 이는 인간의 생명에 비유되곤 했다. 아무리 건강한 사람도 결국 노쇠하고 죽음을 맞이하듯, 국가 역시 영원할 수 없다는 인식이 깔려있었다.
특히 모든 시민이 통치에 참여하는 민주정은 더욱 유지하기 어렵다고 평가됐다. 많은 사람이 정치에 참여할수록 혼란과 분열이 커지고, 덕성 없는 시민이 늘어날수록 국가의 안정성은 더욱 위협받는다고 보았다.
공화주의자들은 국가의 흥망성쇠가 단순히 제도나 법률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의 품성, 운명, 그리고 역사적 상황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고 인식했다. 따라서 공화국을 유지하고 번영시키기 위해서는 법과 제도만이 아니라 시민 개개인의 품성과 태도, 그리고 공동체에 대한 헌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공화주의자들은 당파적 이익에 집착할 경우,
국가가 소수 지도자나 특정 집단의 덕성에만 의존하게 되어
위험해진다고 보았다.
따라서 시민 모두가 공공의 이익을 우선시하고,
위기 상황에서 힘을 합쳐 국가를 지키는
애국심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운명의 여신 ‘포르투나’와 공화국의 미래
공화주의 전통에서 자주 등장한 개념이 바로 ‘포르투나(Fortuna)’다. 포르투나는 고대 로마 시대부터 인간의 삶과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운명의 여신으로 여겨졌다.
이 여신은 인간의 성공과 실패, 전쟁의 승패, 농사와 장사까지 모든 것을 주관하는 존재로 인식됐다. 공화주의자들은 포르투나가 언제 누구에게 미소를 지을지 예측할 수 없다고 보았다. 아무리 현명하고 유능한 지도자가 있어도, 아무리 견고한 제도를 가진 국가라 해도, 포르투나가 등을 돌리면 한순간에 몰락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불확실성 때문에 공화국의 미래는 항상 위태롭고 불안정하다고 인식됐다.
하지만 공화주의자들은 삶을 운명에 맡기고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태도를 취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어떻게 하면 포르투나가 자신들에게 미소를 지을 수 있을지, 즉 운명의 여신의 호의를 얻을 수 있을지 적극적으로 모색했다. 인간이 운명을 완전히 통제할 수는 없지만, 최선을 다해 운명을 유리하게 만들려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이처럼 공화주의 정치언어에서 포르투나는 국가의 운명이 결코 고정돼 있지 않으며 언제든 변화할 수 있다는 경계심과 실천의식을 일깨우는 개념이었다. 따라서 공화주의자들은 국가의 번영과 존속을 위해 시민 각자가 자신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가의 운명이 불확실하다는 자각은 오히려 그들에게 위기의식과 책임감을 심어주었고, 공동체의 미래를 위해 각자가 덕성을 함양하고 공공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태도를 갖추도록 이끌었다.
덕성(virtu)의 중요성
인간이 포르투나의 호의를 얻기 위해서는 ‘비르투(virtu)’, 즉 덕성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공화주의자들은 주장했다. 여기서 말하는 덕성은 단순히 도덕적 선함이나 착함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그것은 과거에 남성-시민-인간의 자질로 여겨진 남성다움, 용기, 유능함, 강인함, 정직함과 같은 본성들을 제대로 발휘하는 상태를 의미했다.
예를 들어 칼은 잘 들어야 진정한 칼이고, 음식은 맛있어야 음식의 본분을 다하는 것처럼, 인간 역시 자기 본성을 충분히 발휘할 때 비로소 덕성 있는 존재가 된다고 본 것이다. 고대 로마에서는 이 덕성이 특히 ‘남성다움’과 연결됐다. 강인하고 용감하며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는 모습이 진정한 덕성으로 여겨졌다.
이러한 덕성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갖은 훈련과 교육, 그리고 역사에서 교훈을 얻는 과정을 통해 길러진다고 인식됐다. 따라서 아무나 저절로 덕성 있는 시민이 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자기 단련, 학습, 공동체 경험이 요구됐다. 공화주의자들은 덕성 있는 시민이 많아야 국가가 튼튼해진다고 보았다. 그러나 그들은 현실적으로 덕성 있는 시민은 극히 소수에 불과하므로 이 소수만이 통치에 참여해야 한다고 믿었다.
공화주의 전통에서는 여성과 하층민 등 일부 집단의 정치 참여를 제한하는 경향이 강했다. 이는 당시 덕성의 개념이 남성다움과 연결돼 있었고, 정치적 판단력과 공공성 역시 특정 계층의 전유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화정이 곧 민주정과 동일한 의미를 지니는 것은 아니었으며, 실제로는 덕성 있는 시민(주로 남성, 재산을 가진 계층)이 통치를 독점하고 국가를 지도하는 공화정이 더 이상적인 모델로 여겨졌다.
이런 맥락에서 모든 시민이 함께 나라를 다스린다는 의미의 민주정은 국가를 쉽게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고 그들은 우려했다. 민주정에서는 많은 시민이 통치에 참여하는데, 이들 가운데는 덕성이 없는 시민도 많고,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공화주의자들은 판단했다. 그래서 무질서와 혼란이 쉽게 발생하고, 국가가 금방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혼합정체의 이상과 제도적 균형
공화주의자들은 단일 정부 형태에 의존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인식했다. 고대 로마의 키케로(Marcus Tullius Cicero, 기원전 106~43)와 같은 사상가들은 국가의 쇠퇴와 몰락을 막기 위해서는 혼합정체, 즉 군주정, 귀족정, 민주정의 요소를 적절히 결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혼합정체론은 중세를 거치면서도 맥이 이어져, 르네상스 이후 공화주의자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혼합정체란 각 정치체제의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보완하는 방식으로, 권력이 한곳에 집중되는 것을 방지하고, 다양한 사회집단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구조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로마 공화정에서는 집정관, 원로원, 민회가 서로 견제와 균형을 이루며 국가를 운영했다.
이러한 제도적 균형은 국가가 특정 계층의 이익에만 치우치거나, 지도자 1명의 실수로 인해 전체가 흔들리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했다. 공화주의자들은 로마가 제정으로 전환되면서 황제 1명의 덕성에 국가의 존망이 달렸고 시민들은 점차 정치적 무관심과 나약함에 빠져 결국 멸망에 이르렀다는 역사적 교훈을 중요하게 여겼다. 따라서 혼합정체와 제도적 균형은 공화국의 장기적 존속을 위한 필수조건으로 간주됐다.
공화국을 지탱하는 힘: 애국심과 시민군
공화주의 전통에서 공화국을 지키는 핵심 요소로는 ‘애국심’과 ‘시민군’이 강조된다. 애국심은 특정 계파나 당파가 아닌, 공동체 전체에 대한 헌신과 충성을 의미한다. 공화주의자들은 당파적 이익에 집착할 경우, 국가가 소수 지도자나 특정 집단의 덕성에만 의존하게 되어 위험해진다고 보았다. 따라서 시민 모두가 공공의 이익을 우선시하고, 위기 상황에서 힘을 합쳐 국가를 지키는 애국심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시민군 역시 공화국의 핵심 기반으로 여겨졌다. 공화주의자들은 용병이나 직업군인과 달리, 시민군은 각자가 자신의 조국을 지키겠다는 자발적 의지와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시민군의 존재는 시민들이 정치적 주체로서 자각하고, 공공의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만드는 중요한 동기로 간주됐다.
이처럼 애국심과 시민군은 공화국의 존속과 번영을 위한 두 축으로, 덕성 있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국방과 정치에 참여할 때만이 공화국이 외부의 위협이나 내부의 분열을 극복할 수 있다고 여겨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