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은 배우가 또 한 번 인생 캐릭터를 만났다. 연극 연출을 하다가 배우로 전향한 그는 카메라 공포증으로 오랜 세월 무대를 떠나 있었다. 마트에서 간장 판매원 등으로 일하며 생활고를 해결하던 그가 호주머니에 은혜를 갚을 배우 이름을 쓴 메모를 지니고 다녔다는 건 이미 널리 알려진 일화. 2008년 뮤지컬 「빨래」로 복귀 후 작품을 가리지 않고 조연을 하다가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2019)에서 ‘문광’ 역으로 일약 전 세계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그는, 이후 「우리들의 블루스」(연출 김규태 외, 각본 노희경 외, tvN, 2022) 등에서 인생캐를 갱신해왔다. 이번 「좀비딸」에서는 ‘만찢캐’(만화를 찢고 나온 캐릭터) ‘밤순’ 할머니 역으로 또 한 번 관객에게 즐거움을 줄 예정이다. 이제는 대한민국에 없어서는 안 될, 주연으로도 전혀 부족하지 않은 배우. 조연이면서도 적절한 절제로 주연의 연기를 더욱 빛나게 해주는 배우 이정은을 만났다.
윤상민 기자 cinemonde@knou.ac.kr

‘정환’의 엄마이자 ‘수아’의 할머니 역입니다. 정환 역의 조정석 배우와 그렇게 나이 차이가 나지 않고, 실제 50대 중반이신데, 밤순 역할을 제안받고 고민이 많으셨을 것 같아요. 출연을 결심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그렇죠. 「우리들의 블루스」 같은 시리즈도 작가들이 제 나이 또래 역할로 찾아준 작품이었으니까요. 작년에 「낮과 밤이 다른 그녀」(연출 이형민, 극본 박지하, JTBC, 2024)에서 제 나이에 20대를 관통하는 연기를 하고 나니 지치더라고요. 너무 노력한 거죠. 지금 50 중반을 넘어가는데, 그 무렵에 캐스팅 제안이 왔어요. 그런데 어찌 보면 나문희, 김수미 선생님도 지금 제 나이에 이런 역할을 하셨어요. 저야 틈새시장을 노려서 이 역할, 저 역할을 해왔지만, 지금 또 이런 역할 제안이 오는 건 또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실제 할머니 연배는 아니지만, 육체적인 느낌이 ‘힙한’ 할머니를 표현할 수 있는 거니까요. 작품이 좋으면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앞으로 그런 기회가 더 많아지겠죠?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해요.
필감성 감독과는 시리즈 「운수 오진 날」(2023)로 합을 맞추셨죠. 필 감독님은 데뷔작 「인질」(2019) 때부터 쭉 스릴러 장르에 강점이 있는데, 의외로 차기작을 코미디로 선택하셨어요. 감독님의 제안을 받았을 때 어떠셨나요?
필감성 감독님 별명이 ‘피감성’이예요(웃음) 전작들 보세요. 아주 긴박한 리듬감이 시퀀스 내내 넘쳐나고, 붙잡히고, 가두고, 피칠갑 되고요. 「좀비딸」 역시 코미디 장르이긴 하지만 좀비가 있잖아요. 현장에서 보니 여전히 장르적 특성이 좋더라고요. 그 쫀쫀함 속에 좀비라는 소재를 넣은 거죠. 「좀비딸」이 기존 코미디 영화랑 다른 점은, 부자연스러움에서 나오는 웃음보다 상황에 딱 맞아떨어져서 웃음이 터지는 장면이 많다는 거죠. 필 감독님이 원래 재치가 있어요. 이야기하는 거도 좋아하고요. 코미디에 관심이 정말 많아서, 이번 작업을 하면서 저도 많이 배웠습니다. 현장에서 여러 버전으로 연기했어요. 배우들은 슛이 들어가는 현장에서 연기가 더 튀어나오거든요. 그런데 이게 선을 넘으면 작품과 상관 없는 길을 가는 거죠(웃음). 감독님이 그런 영화의 톤앤매너를 잘 조절해주셨어요. 감독님이 제가 뮤지컬 「빨래」에서 연령 초월한 배역을 소화하는 걸 재밌게 보신 거 같아요. 그래서 「좀비딸」의 밤순 역할을 제안해주셨던 거고요.

원작 웹툰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놀라운 싱크로율을 보이시더라고요.
솔직히 말하면 더 작은 할머니가 나오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알았다’하고 팍 때리는 장면 같은 거 찍을 때, “감독님, 다이어트 좀 할까요?”라고 물어보기도 했죠. 분장팀이 어떻게든 해보겠다며 말리더라고요. 표정이 사는 특수분장을 여러 버전으로 테스트해서 좋은 결과물이 탄생한 것 같아요. 사실 다이어트는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연출 모완일, 각본 손호영, 넷플릭스, 2024) 때부터 하고 있습니다(웃음).
정말 시골에서 볼 법한 할머니였던 거 같아요. 원작 웹툰과 의상도 똑같고요. 캐릭터는 어떻게 잡았나요?
아버지와 딸의 관계를 그냥 지켜보는 게 아니라, 자신에게는 중요한 자식으로 보는 시선도 있어야 했어요. 믿어주는 마음이라고 할까요? 또 시골 가면 자식들 다 서울 보내고 친구들과 편하게 술자리 하는 모습을 보여주려 했죠. 이런 부분은 특별하게 준비한 건 없고, 함께 출연한 ‘칠곡 할머니들’ 다큐멘터리를 감독님이 주셔서 참고했습니다. 이렇게 아픈 사연들을 시로 쓴 할머니들이 춤도 추면서 세상 즐겁게 사시더라고요.

너무 사랑스럽고 깜찍한 할머니였습니다(웃음).
저도 좀 괜찮았던 거 같아요(웃음). 「우리들의 블루스」 할 때는 귀엽다는 이야기는 못 듣고, 3단으로 화낸다는 소리만 들었는데요. 아, 그러고 보니 제가 이마를 깐 작품들에서 귀엽다는 말을 좀 들었네요. 제가 머리 까면 얼굴이 환한 달덩이처럼 동그스름해요. 「기생충」에서 문광도 그랬고, 「미스터 션샤인」에서 ‘함안댁’ 할 때 귀엽다고(웃음).
조정석 배우가 “이정은 배우는 천재다. 감독이 컷 안 하면 계속 애드리브 할 거다”라고 말하더라고요.
정말 공포스러운 때는 컷이 안 날 때예요(웃음) 도대체 어디까지 가려고 컷이 안 나오는 거지? 머리 속에 온갖 생각이 드는데, 거기서 멈추면 왠지 제가 진 것 같잖아요(웃음) 상황은 알죠. 부삽 갖고 수아 죽여야 한다고, 빨리 하자고 정환과 실강이를 벌이는데, 컷 소리 날 때까지 애드리브를 계속 했어요. 그런데, 사실 정석 씨가 천재죠. 진지함을 뚫고 나온 코미디라고 할까, 정석 씨가 연기하고 나면 상황이 싹 바뀌어 있어요. 그런 걸 너무 잘해요. 온 몸에 감각이 있는 거 같아요. 말도 안 되는 좀비가 있는데, 정석 씨가 연기하면 마치 정말 있는 거 같은? 평상시에도 저러고 다닐 거 같은 게 왠지 ‘납뜩이’ 되는(웃음)?

많은 애드리브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대사 꼽아주신다면요?
동배 놀리는 장면에서 “토르라니 도른 거 아니냐?”죠. 사실 멀리서 찍어서 목소리는 안 들어갈 줄 알았어요. 우리끼리 그냥 “야, 토르? 토르? 도른 거 아냐?” 이러면서 의식하지 않고 배우들끼리 장난치면서 한 말인데, 감독님이 쓰셨더라고요. 사실 대부분은 주어진 대본에 충실하게 연기했습니다. 필 감독님과 궁합이 좋았던 건 애드리브를 했을 때 영화 전체의 톤앤매너에 맞게 조율을 잘해주시는 거였어요. 예를 들어서 밤순이 수아를 씻기는 장면에서 “아유, 안됐다”하고 안쓰러워하는데, 갑자기 수아가 ‘크르르’하고 물려고 하잖아요. 저는 머리를 확 물에 집어넣고 싶었거든요. 그러면 감독님이 “워워워, 조용히 집어넣어 주세요”하며 조절해주셨어요. 그러면 다음에 “이씨” 한 마디만 얹으면 되니까, 그런 면에서 감독님과의 합이 좋았죠.
마을 잔치에서 2NE1의 「내가 제일 잘나가」를 온몸으로 부르는 장면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연습하신 거예요?
한 달 반 전에 춤 선생님을 붙여주셔서 연습했죠. 그 장면을 찍을 때 밤순은 양가적 감정이라고 생각했어요. 좀비가 된 손녀를 위해서라면 피해야 할 자리인데, 밤순이 너무 좋아하는 음주가무가 깔리는 자리니까 흥분이 되는. 칠곡할머니들도 같이 춤을 추셨잖아요. 안무를 아무리 외워도 돌아서면 까먹어요. 그래도 어머님들보다 제가 조금 젊으니까, 중요한 대목은 제가 할게요 했죠. 총 쏘는 장면은 즉흥적으로 현장에서 만든 장면이에요. 술 취한 모습으로 정말 코믹하게 찍어서 좋게 나올 거라 생각했는데, 수아, 정환, 동배의 놀이동산 장면과 교차편집이 되다 보니, 감독님이 못 쓴 장면들이 있다고 미안하다고 하더라고요. 100만 관객 돌파하면 「좀비딸」 배우들이랑 「케이팝 데몬 헌터스」 안무를 한다고 조정석 배우 혼자서 공약을 해버려서 걱정입니다(웃음).

사투리도 입에 딱딱 붙던데, 어떻게 연습하신 건가요?
사실 이런 자리에서 말하는 게 좀 뻘쭘한데요. 사실 사투리 선생님을 다섯 분을 찾아서 대사를 녹음해 달라고 했어요. 또 어떤 상황에서는 어떻게 애드리브를 할지도 같이 요청 드려서 연습했죠. 사투리는 사실 리얼감을 갖게 해주는 기본요소라 생각하지만, 아무리 연습해도 도달하지 못하는 데가 있다고 느껴요. 지금은 그런 부분들이 좀 용서가 되는데, 예전에는 한참 연습을 했는데, 왜 이렇게까지 해도 빛이 안 날까, 더 그 지역 사람처럼 하고 싶은데 하는 생각을 했죠. 지나친 욕심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그래도 노력해가는 과정을 중시해야겠다는 생각을 요즘 많이 하죠. 예전에는 결과에 집착했다면요. 근데 결과에 집착하면 일단 가보려고 하지 않나요? 과정을 나눌 수 있다면 배우로 더 많은 시도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덜 지치는 방법을 찾고 있는 중입니다.
그렇게 노력하신 걸 말하는 게 왜 뻘쭘해요?
내가 내 자랑하는 거 같아서요. 그런데 배우들이 자기가 노력한 거 솔직히 이야기할 필요는 있는 거 같아요. 보는 관객은 배우가 천부적 재능을 가졌다고 쉽게 말할 수 있지만, 그건 아니거든요. 최근에 「오징어게임」(연출 황동혁, 넷플릭스 2021~2025)의 이병헌 배우 영어 인터뷰 영상을 봤어요. 몇 년 전 인터뷰랑 최근 인터뷰 전부요. 점점 선택하는 어휘가 많아지고 자연스러워지더라고요. 이 사람이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정말 외국어 연습하는 사람들의 노력은 칭찬해줘야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도 제가 한 건 자랑 같아서 말을 못했고요.

혹시 이제 와서 하고 싶은 자랑이 있다면요(웃음)?
없어요, 없어(웃음). 사실 요즘 “러브씬도 잘 하실 거 같아요”라는 이야기를 들어요. 전 부끄럽고 좀 두려움이 있는데 말이죠. 그런데 예전 작품들에서 만났던 상대 배우들 복이 많더라고요.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차승원 배우, 「자산어보」에서 설경구 배우가 그랬고요. 「한 번 다녀왔습니다」에서 안길강 선배도 그랬고, 「낮과 밤이 다른 그녀『에서 최진혁 배우와도 풋풋한 감정을 느꼈기에, 나는 참 운이 좋구나 싶어요. 나이 들어도 그런 씬들이 풋풋하게 느껴졌다고 해주는 분들이 최근에 계셔서요. 이제는 말할 수 있다(웃음)?
설경구 배우는 「자산어보」에서 집에서 이야기나누는 장면이 가장 좋았다고 하더라고요.
팔이 안으로 굽네(웃음). 정말 친해요. 내가 뭘 해도 받아줄 수 있는 상대가 제일 좋은 동료인 거 같아요. 그래서 뭐든 질러보는 거야! 무심하게 툭툭 던지는 대사도 좋아하고.

이번 「좀비딸」에서는 어떤 장면이 그랬나요?
정석 씨랑 저랑 “어, 기억이 있어, 살아 있어!”하면서 이상한 춤을 출 때죠. 살아 있는 걸 발견했을 때, 제 대사는 별로 없었어요. 그런데 변화될 때의 짜릿함? 그때 유리 배우가 움직임을 너무 잘했고, 기억을 발견한 기쁨이 코미디로 이어지는 그 감정선이 너무 좋았어요.
수아 역할을 한 최유리 배우에 대한 칭찬이 자자하더라고요.
또래랑 다른, 뭔가 예술가적인 감성이 있는 배우에요. 모든 스태프에게 감사함을 표현하는 자세를 보면 존중할 수밖에 없더라고요. 굉장히 겸손한 배우구나 했죠. 촬영이 길어져도 은근과 끈기로 이겨내요. 밤순에게 쪼는 장면도 단계별로 올라가거든요. 살살 때릴 거 세게 때리고 했는데, 그럴 때도 잘 이해해주더라고요. 유리 배우가 수아 역할을 한 게 좋은 건, 요즘 부모들은 자녀 양육에 어려움이 많잖아요? 맨날 오은영 선생님 채널만 보고요. 그런 상황에서 10대들의 좀비스러움이랄까? 사춘기 겪는 아이들이 어려운 존재라는 거를, 원작 작가가 좀비가 되어버린 내 딸을 바라보는 부모의 입장을 빗대서 엮은 게 흥미로운 지점 같아요. 약간 10대를 바라보는 우리 세대의 관점이 들어가 있는 거 아닌가 싶은.

조정석 배우는 고양이 ‘애용이’ 몸값이 오를 것 같다고 하던데, 애용이랑 연기는 어떠셨어요?
진짜 애용이의 눈이 뭔가를 좀 알고 있다는 느낌(웃음)? 본능적인 연기가 나오더라고요. 같이 연기한 배우들도 애용이처럼 연기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할 정도였으니까요. 물론 훈련을 받아겠지만, 감정을 읽는 특수한 능력이 있는 것 같더라고요. 저도 20년 동안 반려견이랑 함께 해서 동물이랑 연기하는 게 편한데요. 너무 귀엽고, 멋진 고양이 배우라고 생각합니다.
「좀비딸」이 기존 좀비 영화와 다른 점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좀비를 훈련할 수 있다! 이건 어떤 영화에서도 없었던 거 같아요. 웹툰에서도 그랬지만, 좀비가 기억 일부분을 갖고 있다는 걸 발견하는 부성애도 놀랍고요. 웹툰에서 정환의 직업은 번역가인데, 영화에서는 맹수조련사로 바뀌었잖아요. 동물에게도 사람의 인격 같은 무언가가 있다거나, 기억을 가지고 있다거나, 뇌 구조에 대해 연구는 인물을 등장시켜서 이 정도면 죽은 존재가 아니라 살아있는 거다라고 가능성을 보게 되는 게 우리 영화에서 가장 특이한 지점이라고 생각해요. 할리우드 영화에서 좀비는 늘 사람을 해치거나, 인간이 제거해야 할 존재로 설정하는 데 반해 우리 영화에서는 한번 생각해보자, 우리가 왜 좀비를 공포스럽게 느끼는지, 좀비에게는 정말 악한 부분만 있는 건지, 그런 부분들에 있어서 다른 것들을 생각하게 하는 매력이 있는 것 같아요.

「좀비딸」에서처럼 사랑하는 가족이 물린다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일단은 케어할 거 같아요. 선택이 어려운 지점이긴 한데, 무언가 어떤 실마리라도 있다면요. 나를 보호하는 측면에서 묶어두긴 하겠지만, 기대를 갖고 조금씩 바꿔보려고 노력할 거 같아요. 사실 인정하기가 어려울 거 같긴 해요. 고령의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데, 당신들 기억이 쇠퇴하는 걸 하루하루 느껴요. 내 부모님이 내 부모같지 않은 행동할 때, 이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계속 고민하는 거 같아요. 수아가 좀비가 된 것처럼, 부모님도 그렇게 변해가는 거 같고요.
타인은 지옥이다(연출 이창희, 각본 정이도, OCN, 2019)에서 엄청난 악역을 맡았는데, 역시나 너무 잘하시더라고요. 무서운 인물과 귀여운 할머니를 자유자재로 오가는 비결은 뭘까요?
그 작품 엄마가 너무 싫어해요(웃음). 비결이라고 하면, 철딱서니 없음(웃음)? 사실 제가 악역을 안 해봐서 정말 부담스러웠어요. 그런데 감독님이 “선배님, 나중에 멋있게 죽여드릴 테니까, 사람 죽일 때 죄의식 갖지 마시고 즐겁게 죽여주세요”라고 말해주더라고요. 그 이야기에 너무 섬뜩했는데, 이 캐릭터를 표현하려면 그 방법밖에는 없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감독님께 “10대들이 저 따라하지 않게 정말 멋지게 죽여주셔야 해요”라고 약속을 받은 후에는, 놀이처럼 찍었습니다. 제가 약간 병적으로 의심이 많아서요. 「좀비딸」 때도 밤순 같은 할머니가 진짜 시골에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어요. 그런데 촬영장에 갔더니 그런 어머니들이 많은 거예요. 필 감독님이 “선배님 보세요. 이렇게들 살잖아요”라고 하시는데, 그게 저한테는 연기하는 단단한 근거가 됐어요. 캐릭터를 어떻게 몸에 붙일 수 있을까 생각할 때 그런 근거는 동아줄 같거든요. 그래서 감독의 지침이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밤순이 술 먹고 흥 넘치는 장면에서 애드리브로 더 질러보고 싶은 생각은 없으셨나요?
모든 캐릭터에서 제가 찾은 걸 다 담을 순 없어요. 제가 캐릭터에 너무 빠져들면, 정환의 부성에가 축소되는 게 있죠. 「자산어보」도 마찬가지였어요. 설경구 배우와 변요한 배우의 라인을 살리려면 제 걸 다 담을 수는 없죠. 그런 점이 필 감독님과 잘 맞았어요. 만약 「좀비딸」 번외편을 제 이야기로 만든다면, 이번에 담지 못한 걸 다 하고 싶기 합니다(웃음).
연기에서 완벽주의를 추구하시나요?
완벽주의는 아니고 도달하고 싶어요. 그런데 일상에서는 거의 말썽투성이 10대 같죠. 맨날 체육복 입고 다니면 사람들을 어떻게 사귀니! 하는 소리 들으며 엄마한테 등짝도 맞으면서요. 하하.

요즘 지쳤다고 하셨던데,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지쳤다는 건 체력적인 부분이지 멘탈이 나간 건 아니에요. 지금까지 주변에서 필요하다고 하면, 혹은 작품은 작지만 정말 좋을 때나, 여하튼 열심히 달려왔어요. 작품 들어올 때 많이 하라고들 하시는데, 그런 상대적 기준에 따라갈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점점 들어요. 제가 즐길 수 있는 작품을 시간을 두고 선택해야겠다고요. 김혜자 선생님도 저한테 “겹치기 출연 많이 하지마”라고 하셨거든요. 이렇게 배우가 된 내가 자유롭게 시간을 선택할 수 있는 자신감을 가지라고 저한테 말해주고 싶네요.
이제 한국에 없어서는 안 될 배우가 되셨죠. 필모그래피가 빡빡한데요. 본인의 대표작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영화는 「기생충」이고, 드라마는 「미스터 션샤인」이죠. 워낙 많은 분들에게 제 인지도를 높일 수 있는 작품이지만, 과거는 뭐 지나간 남자친구죠(웃음). 지금은 「좀비딸」 많이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