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나물’은 ‘영화가 나에게 물었다’의 앞 글자를 딴 연재로 최근 개봉한 영화 리뷰다. 한 편의 영화에는 하나의 세상이 담겨 있다. 그리고 감독은 자신이 창조한 세상에서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영나물 리뷰’는 영화가 던지는 그 질문에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정답은 없다. 백명의 관객에게서 백 개의 영화평이 나올 수 있는 것이 영화의 매력이기에. 세상 어딘가에서 영화를 보면서 고민하는 누군가에게 닿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리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으로 쓰는 씨네마 레터.

좀비 영화 좋아하시나요? 태생적으로 공포 영화는 못 보는 성격인데 이상하게도 좀비 영화는 좋아합니다. 먹는 것 외에는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이고, 느릿느릿 움직이는 겉모습 때문에 실제로 좀비가 나타난다고 해도 잘 피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좀비 영화의 효시 격인 조지 로메로 감독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1968) 때부터 그랬던 좀비가 갑자기 뛰기 시작한 건 2003년부터였습니다. 영국 감독 대니 보일이 찍은 영화 「28일 후」에서는 분노 바이러스에 감염된 좀비들이 ‘어마무시’한 속도로 뛰며 인간을 공격합니다. 좀비에게 운동성을 부여한 이 영화는 전 세계적으로 흥행했고, 좀비 영화사에 길이 남을 획기적인 전환점이 됐습니다. 이후 「나는 전설이다」(감독 프란시스 로렌스, 2007), 「월드워Z」(감독 마크 포스터, 2013)처럼 우리가 익히 익히 아는 영화들에서 좀비는 더 빠르게 달리고, 더 강력해진 힘을 과시합니다. 「부산행」(감독 연상호, 2016), 「킹덤」(연출 김성훈, 극본 김은희, 2019)으로 대표되는 한국 좀비들도 마찬가지고요.
색다른 좀비 영화의 여름 극장가 습격!
2025년 7월 30일, 색다른 좀비 영화 한 편이 개봉했습니다. 개봉 첫날 43만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 모으며 텐트폴 영화임을 단번에 입증했는데요. 바로 「좀비딸」(감독 필감성)이 그 주인공입니다.
‘호랑이도 춤출 수 있다’라고 믿는 맹수훈련사 ‘정환’(조정석)은 댄스 열정을 불태우는 중학생 사춘기 딸 ‘수아’(최유리)와 하루하루를 알콩달콩(?)하게 보내고 있습니다. 어느 날 서울에 좀비 바이러스가 급격히 퍼지고, 좀비가 돼버린 103호 아주머니의 습격을 피해 집 밖으로 나왔지만 이미 거리는 좀비들로 가득합니다. 차를 가지러 간 사이에 수아는 좀비에게 물리고, 정환은 감염된 딸을 지키기 위해 엄마 ‘밤순’(이정은)이 사는 바닷가 마을 은봉리로 향합니다. 정부는 군대를 보내 감염자 소탕 작전을 펼치는데요. 차마 딸이 총에 맞는 걸 볼 수 없는 정환은 딸을 죽이고 자신도 목숨을 끊으려 합니다. 하지만 정환 역시 누군가의 자식이죠. 밤순이 따끔하게 혼을 내던 중, 어? 수아가 어렴풋이 사람 말을 알아듣는 것 같습니다! 아빠와 함께 춤 연습을 했던 노래를 틀어주자 느리지만 댄스를 합니다. 밤순 할머니의 따끔한 효자손을 무서워하기도 해요. 수아에게 기억이 남아 있다는 확신이 든 정환은 맹수보다 사납고, 사춘기보다 예민한 좀비딸 트레이닝에 돌입합니다.

영화 앞부분만 소개했는데 벌써부터 재밌습니다. 정환 역을 맡은 조정석 배우는 충무로에서 ‘여름의 남자’로 불리는데요. 942만 관객을 동원한 「엑시트」(감독 이상근, 2019)와 471만 관객을 동원한 「파일럿」(감독 김한결, 2024) 모두 7월 31일에 개봉해 대박이 났기 때문이죠. 「좀비딸」 개봉은 7월 30일이니 잘 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드네요. 생활 연기의 달인 조정석 배우는 시나리오를 보고 “이거 난데!”라고 외쳤다고 해요. 부녀가 보아의 「No.1」에 맞춰 추는 손가락 안무 장면, 생일이면 함께 갔던 놀이공원 장면 등등 정환은 영화 내내 딸바보의 진면목을 보여주는데요. 실제 촬영장에서는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자제하지 못해 눈물을 바가지로 쏟았다고 했습니다. 좀비가 된 수아를 대하는 정환의 모습에서 여섯 살 딸 아빠인 자신의 모습을 봤기 때문이죠. 영화를 찍기 전까지는 이렇게까지나 부성애가 많은 줄 몰랐는데, 찍고 나서 원래부터 부성애가 있던 걸 발견하게 됐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아래 조정석 배우 인터뷰 QR코드를 찍어서 확인하세요!

글로벌 조회 수 5억 뷰 기록한 웹툰이 원작
사실 「좀비딸」은 동명의 웹툰이 원작입니다. 일본, 스페인, 북미, 태국, 대만 등에서 글로벌 누적 조회수 5억 뷰를 기록했고, 출간된 단행본도 7권이나 됩니다. 영화 개봉에 맞춰 웹툰을 정주행하는 관객들도 늘었다고 해요. 그래서 원작 팬들은 웹툰의 실사화를 기대하면서도 「좀비딸」의 또 하나의 주인공이자 정체성이라고까지 평가받는 고양이 ‘애용이’를 과연 영화에서 구현해낼 수 있을 것인가를 두고 우려감을 표하기도 했습니다. 길냥이를 키우고 있는 필감성 감독 역시 “애용이는 우리 영화의 정체성”이라고 인정했고, 촬영 경험이 있는 치즈태비를 전국에 수소문했죠. 예선을 통과하고 최종 ‘털 날리는’ 오디션에 올라온 고양이는 네 마리! 세 마리 고양이는 촬영장에 들어오자마자 숨기 바빴는데, ‘금동이’는 마치 집에 온 양 배를 깔고 드러눕는 대범함을 보였답니다. 츄르 한 입이면 풀파워로 촬영에 임한 연기파 냥이 ‘애용이’ 덕분에 당초 계획했던 CG 분량이 대폭 줄어들었다는 후문도 있더라고요.

밤순 역을 맡은 이정은 배우는 또 어떻고요. 이번 영화로 또 한 번의 ‘인생캐릭터’를 갱신할 것 같습니다. 마치 웹툰 화면을 뚫고 나온 것만 같은 200%의 캐릭터 싱크로율을 보여주거든요. 가장 만화적인 캐릭터지만 영화 내내 완급 조절이 대단합니다. “더 웃길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면 정환과 수아의 감정선에 방해가 된다”라고 말하는, 절제하는 데서 코미디의 진가가 발휘된다는 걸 아는 내공 있는 배우 이정은의 인터뷰가 궁금하시면, 아래 QR 코드를 꼭 찍어보시길!

여기에 최근 「중증외상센터」(에서 대장항문외과 한유림 과장 역으로 시청자들에게 눈도장을 확실히 찍고 ‘쁘띠유림’이라는 별명까지 얻은 대세 배우 윤경호가 영화에서 정환의 친구이자 은봉리의 건강을 책임지는 약사 ‘동배’로 등장합니다. 처음에는 수아를 신고하려고 하지만, 신약 개발이 임상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무인도에 수아를 데려가 사회 적응 훈련을 돕죠. 수아의 기억을 살리기 위해 놀이공원에 가자는 정환의 간절한 제안을 듣고, 코스프레 의상을 착용하면 30% 할인을 해준다며 어벤져스의 ‘토르’ 옷을 입고 나타나는데요. “토르? 도른 거 아녀?”라는 대사에 그만 빵터지고 맙니다. 인터뷰 때 질문을 했더니 ‘애드리브’였다고 하더라고요. 윤경호 배우의 또 다른 애드리브가 궁금하시다면, 이제 말 안 해도 아시죠? QR 코드!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참, 「좀비딸」의 안타고니스트는 정환과 동배의 초등 동창 ‘연화’이고요, 좀비가 돼버린 연인을 자기 손으로 죽여야 했던 전사를 가진 캐릭터입니다. 조여정 배우가 ‘맑은 눈의 광인’ 역할을 톡톡히 소화해냅니다. 조여정, 조정석, 윤경호 배우는 동갑내기 친구들입니다. 현장이 정말 훈훈했다고 해요.

영화에서 수아와 정환이 숨어지내는 은봉리 마을은 정말 예쁩니다. 필감성 감독은 ‘옛날옛날 한 아름다운 바닷가 마을에 세상에 남은 마지막 좀비가 살고 있었답니다’라고 시작하는 동화처럼 약간 판타지스러우면서도 사실적인 장소를 찾고 싶었대요. 언덕에 집이 있고, 아늑한 집 마당에서 바닷가가 내려다 보이는 그런 곳이요. 로케이션 헌팅팀이 전국을 뒤져서 찾아낸 은봉리는 경남 남해시였습니다. 장소는 찾았는데 고사리밭이었다고 해요. 영화에서 보시는 구불구불 언덕길부터 밤순의 정겨운 집, 마당의 평상, 아늑함이 느껴지는 방까지, 전부 세트로 지은 집이라고 하니, 더 놀랍습니다.
갑자기 왠 집 이야기를 하나 싶으셨나요? ‘영나물 리뷰’라면서 질문 없이 영화 이야기만 실컷 했는데요. 사실 직전에 집 이야기를 꺼낸 이유가 바로 그겁니다. 이미 눈치 채셨겠지만,「좀비딸」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좀비가 된다면?’이라는 질문을 관객에게 던지고 있습니다. 필 감독은 물론 배우들이 GV에서 관객들에게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라고 해요. 영화 후반에는 수아를 죽이려 했던 연화조차도 수아를 돕게 되는데요. 밤순 할머니부터 동배 삼촌, 그리고 은봉리 이장님을 비롯한 주민들과 은봉중학교에 세 명밖에 없는 친구들까지, 정말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인디언 속담이 절로 느껴집니다.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아빠가, 엄마가, 아니면 아들이 좀비가 됐다면? 시선을 조금 유연하게 해볼까요? 지금 가장 사랑하는 부모님, 자식, 연인이 어떤 위험에 빠져 있다면 어떻게 할 건가요? 집이란 어떤 공간이고, 마을이란 어떤 온기를 가진 공동체여야 할까요? 필감성 감독은 “어떤 재난도, 어떤 어려움도 사랑을 통해 이겨낼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라고 밝혔는데요. 만나 보니 위트가 넘치는 연출자더라고요. 아래에 QR 코드!

아, 지면이 좁아 이정은 배우와 시 쓰고 랩하는 ‘칠곡 할머니’들이 힙한 할머니들의 스웩을 보여준 2NE1의 「내가 제일 잘 나가」 공연 장면 이야기는 못 하겠네요. 부디 극장에서 확인하시길. 「‘웃음과 감동을 다 잡았다’라는 진부한 표현 말고 이토록 재미있는 영화를 어떻게 더 잘 설명할 수 있을까요? 지난달 25일부터는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영화 관람권 할인 쿠폰을 지급하고 있습니다. 「좀비딸」이 침체에 빠진 한국 영화계에 구원투수가 될 수 있을지, 어쩌면 역전 만루 홈런을 칠 수 있을지 정말 기대가 됩니다. 폭염을 피해 시원한 극장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좀비딸」 관람을 강력히 추천합니다!
윤상민 기자 cinemonde@kno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