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고로 척수마비 장애인이 된 ‘은진’(김시은)은 자신을 세상 1순위로 대해주는 다정한 남편 ‘호선’(설정환)과 행복하게 살고 있다. 어느 날 병원을 찾은 은진은 임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의사로부터 축하 인사 대신 중절 수술 권유를 받는다. 유일한 자기 편이라 여겼던 남편에게조차 며칠 뒤에 임신 사실을 알리지만, 남편의 첫 마디는 “미안해”다. 사고 이후 휠체어에 제 몸 하나 맡기는 것도 겨우 적응했는데, 평온한 삶에 찾아온 존재가 은진의 온 마음을 뒤흔든다.
후천적 장애인은 아이를 낳아도 괜찮은 걸까? 7월 30일 개봉한 영화 「우리 둘 사이에」(감독 성지혜)가 던지는 질문이다. 장애 여성의 임신과 출산이라는 사회적 이슈를 섬세한 각본과 연출로 정면에서 마주하는 이 영화는 「최선의 삶」(감독 이우정, 2021) 조감독, 「찬실이는 복도 많지」(감독 김초희, 2020) 스크립터, 단편 「우라까이 하루키」(감독 김초희, 2022) 조감독 등으로 실력을 쌓아온 성지혜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장애인 여성이 임신 이후 가족과 함께 모두의 길이 아닌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는 34주의 여정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한 여성의 보편적인 성장 드라마로 담아내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화제를 모았다다. 폭염이 절정을 향해 치닫는 7월 말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성지혜 감독을 만났다.
윤상민 기자 cinemonde@knou.ac.kr

영화 정말 잘 봤습니다. 입봉 축하드리고요. 소감 한 말씀 부탁드려요.
연출부 생활을 오래 했는데, 이렇게 감독으로 연출작을 만든 것 자체가 좀 신기해요. 개봉까지 하니 더 신기하고요. 큰 영화들이 개봉하는 시기에 저희 영화도 같이 관객들을 만나는데, 많이 못 보실까 봐 걱정도 되면서 설레기도 합니다.
기자간담회에서 영화의 출발점이 코로나 시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활동을 보면서라고 하셨죠. 어떤 장면들이 감독님 뇌리에 남았는지 좀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전장연 시위 초기 모습은 휠체어를 타고 지하철을 탔다가 내리는 거였어요. 누구나 타고 내리는 지하철인데, 그 자체가 시위의 방식이 된다는 것이 문제일 수 있다는 생각을 처음 인식했습니다. 지금은 시위 방식이 많이 바뀌긴 했지만요. 기자간담회 때도 말씀드렸지만, 유튜버 ‘굴러라 구르’님의 영상을 봤는데, 공교육을 받는 12년 동안 한 번도 화재대피훈련에 참여한 적이 없다는 걸 알게 되고는 정말 놀랐어요.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같은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모두 말하지만, 휠체어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내리는 것이 시위가 되고, 화재대피훈련을 못 받는 것에 문제 제기를 하지 못한 저 자신도 부끄럽게 느껴졌습니다. 기본권이 보장되지 않는 사회에 너무나 익숙하게 산다는 것에 대해서요. 그런 생각으로 시나리오를 썼습니다.

이야기를 끌고가는 주인공 은진은 18년을 비장애인으로 살다가 사고를 당해 17년 째 후천적 장애인으로 살고있는 인물입니다. 은진의 심리 변화를 짐작해 보면, 사고 후 17년은 오롯이 자신이 장애인이 됐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는 시간을 통과하면서 심경에 많은 변화가 있었을 것 같아요. 인정하고 싶지 않다던가, 왜 나에게 이런 사고가 난 걸까, 다시 걸을 수 있을까 같은 고민들요. 그런데 결혼 후 조금은 안정된 상황에서 자신만이 아닌 아기라는 생명까지 고민하게 됩니다. 후천적 장애인의 임신이라는 소재는 어디에서 착안하셨나요?
처음 기획했을 때는 은진이가 연애하는 이야기였어요. 시나리오 쓰던 시기에 낙태죄 폐지 운동이 활발하게 벌어졌는데요. 이들의 주장을 살펴보면 ‘나는 장애여성이어서 낙태를 원하는 게 아니라, 지금 내가 아이를 낳기 원하지 않는다’는 부분이 있더라고요. 중절도 임신도 자신이 선택한다는, 사실은 자기결정권에 대한 주장이었던 거죠. 이 부분에 매료됐어요. 사람들이 아기를 낳지 않을 권리에 대해 말하고, 아기 낳는 것이 멋지지 않은 것처럼 보이기도 했는데, 왜 우리는 낳을 권리에 대해서는 말하고 있지 않지? 간절히 아기를 원하는 사람을 어쩌면 우리가 외면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거죠. 마침 시나리오에서 은진의 연애 스토리도 잘 안 풀리던 시기이기도 했고, 이 이야기에 빠져들면서 이야기의 큰 줄기가 바뀌게 된 거죠.
그렇군요.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사전 자료조사도 많이 하셨죠. 그런데 시나리오 초고 낼 때까지 인터뷰를 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고수했다고요. 만약 인터뷰를 하면 그 인물들의 생생한 이야기에 갇혀 버릴까 하는 우려 때문에요. 초고 완성 후에 인터뷰를 진행했을 텐데, 그 원칙은 고수하길 잘했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요.
네.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유튜버분들이 영상으로 공유해주시는 일상도 볼 수 있었고, 접할 수 있는 책 자료도 많았기에 충분히 이야기를 만들 수 있었고요. 그래서 좀 더 자유롭게 시나리오 플롯을 구성할 수 있었던 거 같아요. 만약 인터뷰를 먼저 했다면, 그 안에 갇혔을 거 같더라고요.

그래도 초고를 탈고한 후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시나리오에 달라진 부분이 있었겠죠?
실제 은진과 같은 장애 유형이면서 비장애인과 결혼하고 출산하신 분을 만났는데, 인터뷰가 정말 도움이 됐습니다. 제가 당사자가 아니면서 당사자성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있었거든요. 그때 그분이 시나리오를 궁금해하셔서 보여드렸는데, 정말 도움이 됐어요. 시나리오는 많이 바뀌지 않았지만, 제가 이야기를 끝까지 완성할 수 있는 용기를 받았죠. 척수장애인이면서 아기를 낳을 결정을 했고, 재활의학과 의사와 상담하면서 출산까지의 과정을 겪는데, 그런 부분에서 의사의 모습을 상상하고 어떤 식으로 대사를 써볼지 고민했는데, 그런 부분에서 도움을 많이 받았고요. 아, 이건 영화 이야기는 아닌데요. 이분이 청주시에 사시거든요. 지역에 휠체어 타는 여성들이 임신했을 때 매뉴얼이 생겼다고 말씀해주셨어요. 정말 좋았어요. 더 용기를 내서 영화를 만들자고 생각했습니다.

은진 캐릭터를 구축하기 위해서 어떤 부분을 가장 신경 쓰셨나요?
장애 여성이 임신해서 아기를 낳는 과정으로 시나리오를 바꿨잖아요. 어쨌든 영화 속에는 이 인물에게 사건이 생기고 갈등이 있어야 하는데, 저는 은진이 외부인과 갈등하거나 반목하는 걸 원하지 않았어요. 그렇게 되면 관객에게는 은진이 겪는 모든 감정의 원인이 외부인으로 비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은진 안에서 뭔가 일어나는 상황을 찾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휠체어를 탄 임신부라면 특별히 겪는 어떤 증상이 있는지도 조사해봤어요. 없더라고요. 유전적 장애가 아니라 중도장애인이라고 해서 임신해서 특별히 겪는 증상들이요. 사실 실금 같은 건 비장애인 임신부도 다 겪을 수 있는 일이더라고요. 제 편견이란 걸 알게 됐죠. 그러고 나서 방향을 바꿨어요. 태아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이 사람을 가장 흔들 수 있을 다른 방식을 찾은 겁니다.
그래서 ‘지후 언니’(오지후) 캐릭터가 탄생한 걸까요? 설정이 굉장히 독특하더라고요. 임신부가 겪는 정서적 불안을 표현하는 장치로 정말 잘 녹여낸 거 같아요.
사실 동명의 캐릭터가 다른 버전 시나리오에도 계속 있었습니다(웃음). 그런데 임신과 출산으로 소재를 바꾸면서, 고난을 함께 할 친구가 필요할 거란 생각을 했어요. 은진이 자신의 몸에 갇혀서 취약해지고 무너지는 순간을 주변 사람들과 완전히 공유하지 못할 때, 그 힘든 순간을 나눌 인물이 필요했던 거죠. 처음에는 친구로 불러냈는데, 나중에는 음,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느니 극장에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웃음).

그렇죠.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서 자세히 질문할 수는 없지만, 영화 후반부에서 지후 언니가 좀 공포스럽게 느껴지더라고요.
맞아요. 관객이 그 장면을 공포스럽게 느끼길 바랐어요. 편집을 다 하고 보니 은진이 그 상황에서 느끼는 감정이 공포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기존 촬영분도 좋았지만 너무 슬퍼하면서 끝나는 것 같았어요. 물론 슬픈 것도 맞지만, 현실을 깨닫게 되면서 길을 잃고 공포스러워야 할 것 같아서 재촬영을 했는데요, 전혀 후회하지 않습니다. 아, 지후가 씩 웃는 장면은 본 촬영 테이크를 썼어요. 그 느낌이 안 나서요.
스릴러 영화에도 재능이 있으신 거 같습니다만, 혹시 공포영화 좋아하세요?
그런 이야기를 좀 듣기는 했어요(웃음). 좀 좋아하긴 해요. 아리 에스터 감독의 「유전」(2018)이나 「미드 소마」(2019) 같은 영화들 좋아합니다.

그러실 것 같았습니다. 차기작으로 공포영화 기대해보겠습니다. 이제 남편 호선 이야기를 해보죠. 정말 현실에 존재할까 싶은 말도 안 되게 착한 인물인데요. 「폭싹 속았수다」(연출 김원석)의 ‘관식’(박보검)부터 「우리 둘 사이에」의 호선까지, 이 시대의 남성들이 설 자리가 굉장히 좁아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웃음). 호선 캐릭터는 어떻게 만들려고 하셨나요?
앞에 말씀드렸지만, 만약 호선이 조금이라도 은진을 비난하거나 몰아세우면 은진이 겪는 모든 증상이 호선 때문으로 보일 거 같았어요. 안타고니스트가 아닌데 너무 쉽게 그렇게 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인물이니까요. 그래서 더 다정하고 은진을 위하는 캐릭터로 설정했어요. 그래야 은진이 자기 몸으로 겪는 상황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설명할 수 있으니까요. 개인적으로는 다정한 사람이 멋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또 제 첫 영화의 남자주인공은 다정하고 멋있는 사람이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었고요. 설정환 배우가 그런 면에 정말 부합하게 다정한 연기를 해줬고요. 그러면서도 중도장애 부인을 둔 남편이 느끼는 외로움이나 막막함도 잘 표현해줘서 너무 감사하죠. GV에서 만난 한 관객이 “남자주인공이 너무 비현실적이고 판타지 같다”고 말씀하셨던 게 기억나네요(웃음).

영화 중반에 가족의 돌봄으로부터 방치된 소년 진우가 나옵니다. 이 에피소드를 넣은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은진과 호선이 아이 한 명을 함께 돌보는 상황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리고 그 아이를 먼저 만나는 인물은 호선이어야 했고요. 아이에 대한 생각이 없다가, 아이가 은진과 같이 있는 모습을 보면서 그다음을 생각하면 좋겠다 싶어서요. 아이들은 사실 부모가 보지 않는 순간에도 자라잖아요. 어떻게든요. 그걸 상상하면서 쓴 장면이에요. 은진과 호선이 아이를 100% 케어하지 못하는 순간이 분명 올 테고, 공백이 생길 텐데 그래도 그 안에서도 아이는 나름 성장하는 게 있을 테니까요.

데뷔작이라 모든 장면이 다 기억에 남으시겠지만, 가장 좋아하는 씬을 하나 꼽아주신다면요.
은진이가 병실에서 검사 대기 중에 지후 언니가 와서 잠깐 병원 밖으로 데리고 나가잖아요. 아기 낳고 나면 가장 하고 싶은 게 뭔지 물어보면서요. 지후 언니는 아이가 장화랑 우비 사서 물장난 하게 해주고 싶다고 말하는데, 그때 은진이 “나도 그거 좋아했는데!”라며 활짝 웃어요. 그 장면에서 은진이 아이처럼 웃는 모습이 너무 좋더라고요. 어린이의 마음이 느껴지기도 하고, 힘든 와중에 기쁨을 찾은 거 같기도 해서요. 영화를 보면 아기가 과연 잘 자랄 수 있을지에 대해 확신을 주는 게 잘 없는데,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서 아기의 처음을 같이 할 수 있겠구나 싶었던 장면이기도 합니다.

13회차로 크랭크업하셨다고요. 현장에서 가장 어려웠던 씬은 뭐였나요?
사실 기술적으로든 감정적으로도든 어려운 씬은 아니었는데요. 은진이가 아기를 낳아야 될 수도 있다고 복도에서 울고 병실로 들어와서 엄마와 호선을 만나는 장면이었어요. 병원 세트에서 4~5회차에 몰아서 찍었는데, 어떻게 찍어도 병실 안이 다 똑같이 느껴지고, 배우들도 아름답게 보이지 않아서 어려웠어요. 앵글도 계속 바뀌게 됐고요.

그러면 가장 좋았던 씬은요?
오프닝이죠. 호선과 은진이 계단 내려와서 휠체어 굴리면서 카메라에 막 다가오는 장면을 찍을 때 배우들, 스태프들 전부 좋아했던 거 같아요. 또 있어요. 은진이 힘들었다고 말하는 장면 바로 앞에 복도로 나오면서 우는 장면이 있는데요. 사실 그 장면 찍을 때 걱정을 좀 많이 했거든요. 배우들이 스케줄이 다들 바빴거든요. 코너를 돌아 나오면서 바로 울어야 하는 장면이었는데, 첫 테이크를 OK로 쓸 정도로 표정부터 너무 좋았어요. 이건 정말 김시은 배우에 대한 예찬인데요. 첫 테이크부터 정말 준비가 돼 있는 배우입니다. 버릴 게 없이 처음부터 다 보여줄 수 있는 배우예요. 그때가 촬영 막바지였긴 했지만, 김시은 배우에 대한 신뢰가 더 생겼어요.

김시은 배우 얼굴에 아이 느낌이 남아 있어서 그런지, 시은 역할에 정말 딱이었던 것 같습니다. 캐스팅은 어떻게 하셨어요?
제가 참여한 「찬실이는 복도 많지」(감독 김초희, 2020) 때도 같이 했고, 「장손」(감독 오정민, 2024)에서는 강태호 배우랑 부부로 나왔어요. 초반에 은진 캐릭터 캐스팅이 잘 안 됐어요. 그때 강태호 배우가 시나리오 한번 봐도 되겠냐고 해서 줬더니, 김시은 배우가 생각난다고 보여줘도 되냐고 드렸죠. 다행히 너무 하고 싶다고 답을 주셨어요.
오지후 배우와 설정환 배우는요.
지후는 원래 제 친구예요. 단편영화 감독들 지인이 겹치기도 하고요. 저는 단편 「꼬마 이모」, 「이불」 같은 작품을 함께 하면서 처음 만났고요. 배우를 좀 알고 있어서 시나리오 쓸 때부터 지후 캐릭터를 염두에 뒀죠. 설정환 배우는 대표님이 소개해주셨어요. 드라마에서 주로 활동했는데 미운 캐릭터를 밉지만은 않게 연기하는 게 느껴져서 만났죠. 그런데 너무 잘 생겨서 걱정이 되더라고요. 청초하다고 해야 할까, 그런 분위기가 있어서요. 이 배우가 호선을 맡으면 더 처연하게 느껴지겠다 싶었죠. 그런데 사실 호선 캐릭터에서 ‘얼굴이라도 포기했어야 했다’라는 말도 주변에서 듣긴 했습니다(웃음).

그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었군요.「우리 둘 사이에」는 편집 후에 바뀐 제목이라고요. 원제는 뭐였나요?
「불편해도 괜찮아」였는데, 동명의 책이 있더라고요. 작가님께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는데, 편집을 마치고 보니 영화랑 제목이 안 어울리더라고요. 마지막에 은진이 병실 들어가는 촬영을 할 때 전 스태프가 모여서 제목을 바꿔야겠다며 여러 후보들을 이야기했는데 기억이 안나는 걸 보니 마음에 안 들었나봐요(웃음).
영화 이야기는 이쯤 하고요. 이제 감독님에 대해서 질문을 몇 개 드리겠습니다. 장애인 임신부처럼 평소에도 사회적 약자 층에 관심이 많았나요?
관심은 원래부터 있었던 거 같아요. 결정적으로 고민을 많이 하게 된 건, 유형이 완전히 다르긴 한데요. 「최선의 삶」 조감독을 할 때 가출청소년들을 인터뷰하면서 관심을 갖게 됐어요. 자문을 구하려 정신과 의사 선생님을 만났는데, 정신질환은 관리가 되면 사회로 돌아올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 의사 선생님은 조현병 환자들을 주로 돌봤는데요. 재활해서 다시 사회로 보낼 수 있게 편의점이랑 카페를 운영하셨더라고요.

감독님들 인터뷰 때 질문을 하면 보통 중학교 2학년 때 영화감독이 되기로 결심했다고들 하던데, 감독님은 언제,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8월의 크리스마스」(감독 허진호, 1996)를 봤는데, 너무 좋았어요. 누가 봐도 그랬을 거예요. 거기서 슬픔을 표현하는 방식이 굉장히 다르다고 느꼈던 거 같아요. 영화감독이 되고 싶다기보다는 이런 걸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이후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했고, 대학원에서는 연출을 전공했어요. 대학원 동료들 영화에서 스태프를 계속 했는데 참 좋았어요. 자연스럽게 현장에 익숙해진 거죠.
좋아하는 영화나 영향을 받은 감독이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이 영화 만들면서는 「캐롤」(감독 토드 헤인즈, 2016)를 많이 봤고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 1995)도 정말 열심히 봤습니다(웃음). 자코 반 도마엘 감독의 「미스터 노바디」(2013)를 개인적으로는 정말 좋아하고요. 감독님 영화 중에 다운증후군을 다뤘던 「제8요일」도 좋았어요.

켄 로치 감독이나 모흐센 마흐말바프 감독처럼 영화가 사회를 바꾸는 도구가 되길 바라시나요?
그 정도까지는 모르겠는데요, 이 시나리오를 쓰게 됐을 때 결정적인 건 있었죠. 세상은 못 바꿔도 영화는 만들 수 있겠다는. 이 소재로 영화 만들어야지 했던 생각은 전에는 한 번도 없었거든요. 만약 제가 장애인 소재 영화를 만든다면 조현병 환자를 다룰 줄 알았어요.
차기작을 계획할 수 있는 순간이 꼭 오길 바란다는 겸손의 말씀을 하셨는데요. 영화를 본 저 역시 감독님의 차기작이 궁금해집니다. 국문학과 출신답게 「공무도하가」와 관련된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하셨는데,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신다면요.
「공무도하가」는 고대가요인데요. 고려시대, 원나라 때 있었던 공녀 제도와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사실 이 이야기를 정말 계획하기가 현재로서는 안 될 것 같지만 언젠가는 꼭 해보고 싶어요. 공포 소재가 좀 들어갑니다(웃음).

7월 30일 개봉인데요. 문화체육관광부의 영화 쿠폰이라는 단비가 있어 희망적이긴 하지만, 같은 날 「좀비딸」(감독 필감성) 같은 텐트폴 영화와도 경쟁을 해야 해서 부담이 될 것 같아요. 각오 한 말씀 주신다면요.
그렇게 말씀하시니 각오를 세우기가 좀 어려운데요(웃음). 저는 사실 은진이랑 같은 상황에 처한 사람은 아니잖아요. 은진을 이해하기 위해 나름의 이해를 하려고 해봤습니다. 내가 믿는 것이 나를 배신할 때가 있는데요, 그걸 생각하면서 은진을 이해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원하는 대로 다 이루면서 사는 사람은 없잖아요. 쉽게 배신당하고 쉽게 취약해지는 것 같은데, 은진도 영화 마지막에 자신의 취약함을 깨닫고 인정하는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관객들이 좀 위로를 받아가시면, 더운 여름에 좀 따뜻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웃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