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화제의 책


한국 대학은 공급 초과와 구조조정 요구, 지방 거점 국립대와 사립대의 위기, 입시제도 개혁 등 다양한 문제에 직면해 있다. 아마노 이쿠오(天野郁夫)의 『다시 대학개혁을 생각한다』는 우리와 유사한 경제적·사회적 변화를 한발 앞서 겪은 일본의 고등교육 변천사를 개관하면서, 현재 직면해 있는 과제를 살펴보고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는 대학개혁의 방향을 탐색한 책이다. 일본 고등교육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다룬 이 책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일본 교육 근대화의 상징, 대학
도쿄대학 교육학부 명예교수인 저자 아마노 이쿠오는 다양한 저술을 통해 일본 고등교육 시스템의 과거와 현재를 고찰해왔다. 그간의 연구와 저술을 집대성한 『다시 대학개혁을 생각한다』에서는 일본이 메이지 유신 이래 서구의 교육제도를 도입하고 자국의 문화적·사회적 특성을 반영해 발전시켜온 과정을 다루고 있다. 또 도입 초기인 19세기엔 중앙정부의 통제하에 설치 및 운영됐던 일본 대학이 20세기 이후의 고등교육 보편화에 따라 새로운 변화와 개혁을 요구받고 있는 현실을 조망한다.

 

서구의 학문과 기술을 습득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된 제국대학들은 독일을 비롯한 유럽의 대학을 모델로 한 것이었으나, 인력 양성 목적의 전문학교와 외국어교육에 중점을 둔 ‘구제(制)’ 고등학교, 실업전문학교, 고등사범학교 등 고유의 고등교육기관을 함께 운용한 일본은 19세기 후반에 자국어로 근대적 고등교육을 실시한 ‘서구 세계 외의 유일한’ 국가가 됐고, 그것이 급속한 근대화와 경제 발전의 동력이었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실제로 1930년대 중엽 일본은 인구 대비 고등교육 재학생 비율이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를 차지하게 됐다.


패전에서 촉발된 대학개혁

저자는 일본의 고등교육이 산업 및 경제 발전과 함께 지속적으로 변화해왔으나, 처음으로 진정한 대격변을 맞이한 시기는, 역설적이게도,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였다고 설명한다.


점령국인 미국이 교육을 비롯한 제도 전반에 개입함에 따라, 당시의 어느 나라에서도 유례를 찾을 수 없었을 만큼 복잡하게 분화돼 있던 일본의 교육 시스템은 소학교 6년과 중학교 3년을 포함한 의무교육, 3년제 ‘신제’ 고등학교와 4년제 대학으로 구성된 6·3·3·4제로 단순화됐다. 대학 입학을 위한 예비 단계가 2년 단축되면서 고등교육 기회의 수요는 폭증했고, 전후 경제 부흥과 맞물려 일본의 고등교육은 가파른 양적 성장세를 맞게 된다.


전후부터 현재에 이르는 일본 교육 시장의 변화를 설명하기 위한 도구로, 저자는 마틴 트로(Martin Trow)의 고등교육 발전 단계론을 활용하고 있다. 고등교육의 양적 발전이 △엘리트(elite) △대중(mass) △보편(universal)의 3단계를 거친다는 것이 이론의 골자다. 마틴 트로는 고등교육 기회가 극소수의 지도층에만 허용되는 것을 엘리트 단계로 규정하고 18세 인구 중 대학 진학자의 비율이 15%를 초과한 것을 대중 단계, 50%를 넘어선 것을 보편 단계로 구분했으며, 각 단계로 이행할 때 고등교육의 성격이 근본적으로 변화한다고 주장했다.

 

‘보편고등교육’을 이끈 시대적 변화

패전 이후 미국에 의해 도입된 민주주의는 일본의 교육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 사립대학의 설치 규제가 완화되면서 교육 기회의 공급량이 가파르게 증가했는데, 이는 전후 일본의 경제 부흥과 그로 인한 고급 인력 수요의 증가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일본의 18세 인구 대비 대학 진학자 비율은 1960년대 중반 15%를, 1990년에 50%를 넘겨 이른바 ‘보편고등교육’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근대화 측면에서 후발 주자인 한국은 1980년에 와서야 15%, 1995년에 50%를 넘겼다.)


고등교육의 기회가 소수 계층의 ‘특권’이 아니라 다수 시민의 ‘권리’, 심지어 ‘의무’로 여겨지게 되면서, 그에 따른 부작용이 나타난다. 바로 학력 인플레이션과 고등교육 대상자의 전반적인 학력 저하다. 한편으로는 베이비붐 이후 18세 인구가 급감하면서 상당수의 대학이 정원 미달 문제를 겪게 됐다.

 

아마노 이쿠오는 일본의 고등교육 변천사를

개관하면서, 현재 직면해 있는 과제를 살펴보고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는 대학개혁 방향을 탐색한다.

고등교육 문제의 역사적 근원을 고찰하고 그 해결을 위한

과거의 시도를 반추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가치가 있다.


또 2000년대 자민당 정권 아래에서 신자유주의적 고등교육 개편안이 추진되면서 국립대학의 법인화, 중앙 행정기구로부터의 대학 자율화, 설치 기준과 운영의 대폭 완화를 지향하게 된다. 시대적 변화에 따라 국가의 역할이 축소되기도 하고 오히려 강화되기도 함에 따라 입시제도 운용, 대학교육의 사후 점검 등을 어떤 기관이 주관해야 하는지와 관련된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19세기 이후의 일본 고등교육사를 개관하면서 현재 제기되고 있는 복합적인 문제를 다룬 저자의 설명을 여기서 모두 소개할 수는 없지만, 이 책에서 제기된 문제들 중 대다수는 우리도 공유하고 있는 것들임에 분명하다. 근대적 교육제도의 원형은 본래 유럽과 미국에서 비롯됐으며, 그것을 계수해 변형 및 발전시킨 일본과 식민 지배하에서 제한된 형태의 교육 근대화를 강요받은 한국이 모두 동아시아 유교 문화권에 속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고등교육에 있어 일본은 우리의 거울인가

이 책에 제시된 일본 대학개혁의 문제들은 한국의 고등교육에도 다음과 같은 화두를 던지고 있다. 미적분은커녕 분수도 못 익힌 경제학부 신입생으로 대변되는 학력 저하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평생학습사회의 구체적 실현 방안은 무엇인가, 교양교육과 전문교육의 적절한 균형은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 대학원의 역할은 연구와 교원양성 중 무엇인가, 교육의 수월성과 형평성 중 어느 쪽이 우선인가, 최선의 입시제도란 무엇인가, 대학의 생존과 운영은 시장 원리에 맡겨야 할까 아니면 정부가 주도해야 할까, AI가 인간의 창의성을 위협하는 시대에 교육의 의미는 무엇인가, 세계적 연구기관으로 거듭나고 더 많은 외국인 유학생을 유치하는 방안은 무엇인가?


전반적으로 교육학 연구자와 학생들은 물론이고 교육정책 입안자들도 많은 시사점을 얻을 수 있는 책이다. 이 책만으로 획기적인 개혁 방안을 도출할 수는 없을 것이고, 당면한 과제에 대한 저자의 제언은 다분히 주관적이고 모호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고등교육 문제의 역사적 근원을 고찰하고 그 해결을 위한 과거의 시도를 반추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가치가 있다.


기자에게도 이 책은 박사학위과정 신설 등의 교육과정 개편, 브랜드 네이밍, 학생 모집, 글로벌 자유전공학부 등의 방송대 현안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


곧 입시경쟁에 뛰어들 큰아이를 둔 학부모로서도 한 가지 깨달은 점이 있다. 입시를 비롯한 고등교육 제도는 끊임없는 변혁과 진화를 겪어왔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 책의 제목은 대학개혁이 다시, 또다시 몇 번이고 생각하고 토론해나가야 할 주제인 동시에 결론이나 정답이 없는 질문임을 시사하고 있다.


이현구 기자 zuibm@kno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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