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잘 활용한다면 인생의 즐거움이 배가될 수 있다”라는 신념으로 14개 학과를 섭렵하며 끊임없이 성장하는 방송대인이 있다. 바로 울산에 거주하는 손판철 학우(64세)다. 1970년대 중반, 경상남도 거창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부산으로 유학을 떠난 손 학우는 공업고등학교에 입학했지만, 예기치 않은 손가락 부상으로 실습 점수가 낮아 최하위 성적을 받으며 좌절을 맛보기도 했다. 이후 HD현대중공업 그룹의 HD현대일렉트릭에 입사해 42년간 생산관리, 품질경영, 보안전문가, 종합정보시스템 전산화, 협력회사 평가 및 등록 심사 등의 업무를 수행하며 직장 생활을 이어갔다. 현재는 국제표준화기구(ISO) 경영시스템인증 심사, 경영 컨설팅 및 ㈜교하산업의 품질경영 이사로 재직하며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천정희 학생기자 skyrelux@hanmail.net
손판철 학우가 방송대와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 그의 어린 시절 깊이 각인된 경험에서 비롯됐다. 부친은 새벽마다 쇠죽을 끓이며 라디오를 들으셨다. 그때 가장 먼저 시작했던 방송이 바로 사회교육 방송이었는데, 서울대학교 부설 한국방송통신대학 강의였다. ‘아버지께서도 1973년 방송대 첫 강의를 들으셨을지 모른다’는 기억은 그의 방송대 입학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쳤다.
장애물을 넘어
대입 학력고사가 끝난 후, 고등학교 선배 집을 방문했을 때 그 선배가 방송대 경영학과에 재학 중이라고 말한 것도 그의 방송대 입학에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공업계 고등학교를 나온 것을 후회한다고 말하는 선배의 이야기는 그에게 적성에 대한 오랜 갈증을 다시 한번 일깨웠다. 결국 그는 다른 대학에 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한 맺힌 적성’ 때문에 이공계를 포기하고 1982년 대입 학력고사(당시 예비고사) 성적으로 방송대 행정학과에 입학하게 됐다.
지금의 방송대는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학습 환경을 제공하지만, 손 학우가 처음 공부를 시작했던 1980년대 초에는 그렇지 않았다. 울산에 거주하던 손 학우는 출석수업과 기말시험을 치르기 위해 진주에 있는 경상대까지 가야 했다.
“울산에서 진주까지는 고속버스로 3시간 거리였지만, 당시 남해고속도로는 2차선 도로로 차가 막히면 그 자체가 주차장이었다. 실제로 시험 때 차가 막혀 경상대 입구에서 시험도 못 치르고 돌아온 적도 있었고, 등록 후에도 해외 장기 출장으로 시험에 응시하지 못한 일도 있었다.”
이러한 상황적 제약은 초창기 방송대 학습자들에게 큰 장애물이었다. 특히 시험 기간만 되면 ‘트라우마’가 있었다고 회상하는데, 시험 기간 중에 모친상을 겪었던 아픔도 있었다. 그래서 그는 지금도 과제물 작성은 서둘러서 하는 습관이 생겼다고 말한다. 혹시라도 누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
계속되는 지적 호기심과 학습 비결
손판철 학우는 1982년 행정학과 입학을 시작으로 통계·데이터과학과에 재학 중인 2025년 현재까지 총 13개의 학과를 마치고 14번째 학과에 도전 중이다. 그의 학업은 행정학과, 법학과, 경제학과, 교육과, 청소년교육과, 경영학과, 일본학과, 미디어영상학과, 무역학과, 보건환경학과, 농학과, 사회복지학과, 생활체육지도과, 통계·데이터과학과로 이어졌다. 손 학우는 “궁금하고 더 알고 싶어서 선택했기 때문에 모든 학과가 재미있었다”라고 말한다.
손 학우는 오랜 기간 방송대에서 학업을 이어오면서 자신만의 효과적인 학습 비결을 체득했다. 그의 핵심 비결은 바로 ‘시간을 쪼개서 반복 학습하는 습관’이다. 그는 학교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강의 매체(멀티미디어 강의, 음성 강의, 교재)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고 귀띔했다.
먼저, 음성 강의는 출퇴근 시간과 운전 중에 주로 이용한다. USB 드라이브에 강의파일을 담아 자동차 시동을 켜는 순간 수업이 시작되도록 설정해 뒀다. 멀티미디어 강의(영상 강의)는 모바일 기기를 활용해 학습한다.
특히 U-KNOU 캠퍼스에서 영상 강의를 스마트폰과 태블릿의 ‘다운로드 보관함’에 내려받아 학습하면 시간과 장소의 제약 없이 언제든 학습이 가능하다. 그는 교육학과에서 배운 SQ3R(Survey, Question, Read, Recite, Review) 학습 방법을 다른 학우들에게도 권하고 싶다고 말한다. SQ3R을 통해 기억력과 이해도를 높이고 정보를 장기 기억으로 전환하며 시간을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
가족과 동료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
손판철 학우의 배움에 대한 열정은 그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는 가장 기억에 남는 방송대 입학 권유 대상자로 자신의 아내와 아들을 꼽는다.
그의 아내는 영양사 면허 취득을 목표로 방송대에 입학해 단 한 번의 시험으로 영양사 면허증을 취득했고, 아들은 대학에서 회계학 및 경제금융학을 전공했음에도 회사에서 환경, 안전보건 담당자가 필요하다는 점 때문에 방송대 보건환경학과에 입학해 졸업했다.
방송대의 가장 큰 장점으로는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학습할 수 있는 모바일 캠퍼스, 즉 정보통신기술을 교육에 잘 적용한 U-KNOU 캠퍼스를 꼽는다. “특히 PDF 파일로 제공되는 학습 자료는 노년기에 접어들어 시력이 좋지 않은 저에게 글자 크기를 확대해서 볼 수 있는 가장 획기적인 학습 콘텐츠라고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이렇듯 그는 방송대가 정보통신기술을 교육에 가장 잘 활용하는 ‘첨단 대학’임을 자부해도 된다고 역설한다.
또한, 방송대는 다양한 직업 분야와 사회적 계층, 연령대의 학우들이 모인 성인 학습 조직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학교 교과 내용만 학습하는 게 아니라, 사회 각 분야에서의 다양한 사람들의 경험과 지식을 공유·교류하는 것 또한 인생의 큰 공부라고 생각한다. 방송대에서 만난 학우들을 가리켜 지금까지 한 곳의 직장에서 생활하며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생생한 삶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거울 같은 멘토들’이다”라고 말했다.
그런 손 학우에게 방송대는 한마디로 ‘가장 현명한 멘토’이자 평생학습 동반자다. 그는 “학문적 지식에 대한 물음에는 열정적인 답변을 주는 교수님들이 계시고, 지금까지 공부하면서 배우는 사람보다 가르치는 사람이 더 힘들다고 생각해 왔기에 항상 감사한 마음을 잊지 않고 있다”라고 말했다.
“함께 가면 멀리 간다”
10명이 함께 출발해도 2~3명의 중도 포기자가 나오는 방송대의 현실에 대해 손판철 학우도 안타까움이 크다. “혼자 가면 빨리 가지만 함께 가면 멀리 간다”라는 아프리카 속담을 환기했다.
학업 중간에 포기하려는 학우들에게는 ‘스터디 그룹’과 항상 도움을 줄 준비를 하고 있는 학생회와 선배들을 찾을 것을 권유했다. 또한, 방송대에서 제공하는 『원격대학교육의 이해』는 입학부터 졸업까지의 학사 행정, 학습 전략 및 스마트 학습 노하우를 제공하는 가장 훌륭한 방송대 매뉴얼이므로 적극 활용할 것을 당부했다.
그는 오랜 재학 기간 방송대가 변화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러나 학습 환경이 전자 문서, 전자책 등 디지털 기술 기반의 스마트 학습 환경으로 변화함에 따라 경제적 부담이나 다른 이유로 모바일 기기를 활용하지 못하는 학우들은 ‘정보 격차’로 인해 학업 스트레스가 커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계층의 ‘모바일 정보화’ 격차를 줄이기 위한 교육 지원 프로그램 개발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스마트 기기 공동 구매, 구매 지원 사업 등의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43년째 배움의 끈을 놓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손판철 학우. 그의 끝나지 않는 도전이 어떤 ‘선한 영향력’으로 이어질지 기대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