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제49회 방송대문학상

여름 감기
―기억의 체온에 대하여
                                                                    이은희

 


그날, 코르시카 해변에서 만난 손부채를
응급약 넣어둔 서랍에서 다시 만났다

떠나간 시간 한 조각이 간질이는 목 안에서
자잘한 알약처럼 파도 소리는 구르다가 사르르 녹았다

바람 따라 다다른 섬은 파란 귀
페니키아 상인들 그림자 낮게 깔려
햇살 속 흔들리는 돛단배는 먼 기억을 깨우는 나비 떼

 

물길이 무릎을 감싸며 흐르던 그 섬엔
부채 끝에 얹어 날려 보내는 돌 하나 둘 쌓여
머지않아 돌담 하나쯤 생겨날 거야

에메랄드빛 중심에서 울음을 토해낸 어린 나폴레옹처럼
나도 한때는 세상을 흔들 수 있으리라,믿었지

자유를 향한 조상들의 속삭임은 마키스 덤불 사이로
바람 되어 흐르는 흙냄새, 파도 소리

 

뜨거운 날들 위에 이유 없이 남기는
빛의 진동은, 어디서나 같은 질문을 던진다

 

여름 한가운데 문득 끈적하게 찾아온
감기의 뒷장에 쓴맛 한 줄기 흘려 넣는 부채는
조용히 코르시카 파도를 넘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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