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삼국지 위·촉 인물 20명 심층 분석한 두권의 저서 펴낸 한형수 서울시립대 명예교수

삼국지 대가 한형수 서울시립대 명예교수가 삼국지의 양 대척점인 위나라와 촉나라 인물론인 두 권의 책 『삼국지 유비 한실 꿈 펼친 모신 무장들』과 『삼국지 조조 천하 꿈 펼친 모신 무장들』(박영사, 11월 4일)을 동시에 상재했다. 2017년 『삼국지 군웅할거 인물론』(홍문관)을 낸 지 꼭 8년 만이다.

 

동탁, 여포, 원소, 원술, 공손찬, 유표 등 6명의 영웅을 다뤘던 전작 『삼국지 군웅할거 인물론』이 삼국시대의 서막이라고 한다면, 이번에 출간한 두 권은 삼국시대의 본령이다. 위, 촉, 오나라가 삼국의 축을 형성했지만, 오의 손권은 천하통일의 꿈이 별로 없었다. 반면 조조는 평정으로, 유비는 한실 재흥으로 천하통일의 대척점에 서 있었는데, 한 명예교수의 표현을 빌리자면 ‘전작에서 환골탈태한’ 수준으로 두 권의 책에 담아냈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그의 삼국지 독법은 ‘인물론’이다. 잠시 그가 분석해 쓴 인물의 면면을 살펴보자.

 

“대업을 성취하려 한 역사적 인물들을 보면, 믿음과 의리를 목적으로 내세워 끝까지 이를 지켜낸 사람은 드물다. 그들이 믿음과 의리를 내세운 것은 늘상 민심을 얻기 위함이었고, 나아가 정치적 목적을 이루려는 수단이었을 뿐이다. 유비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유비는 믿음과 의리를 매우 중요하게 간직하고 실천하려 했지만, 그에 갇히지는 않았다. 이를 다른 관점에서 비춰보면, 유비 또한, 신의만을 굳건하게 지키는 것만은 아닌 교활함이 드러나게 되는 대업을 꿈꾸는 인물들의 범주에서, 예외적인 존재는 아니라 할 것이다.”(『삼국지 유비 한실 꿈 펼친 모신 무장들』 152p)

 

“많은 학술 저작에서는 당·송 이래 이뤄진 조조에 대한 평가를 계승하여, 그의 재능은 인정하지만 사람됨은 비난하는 일포일폄(一褒一貶)이 교차되는 양면적 인물로 파악되고 있다. 지난 일천 수백 년 동안 조조에 대한 인물평론이 보여 온 풍파와 굴곡진 면모가, 바로 조조가 서있는 생생한 역사적 현주소라 할 것이다. 그만큼 조조는 다면적이고도 복합적인 인물이며, 한두 관점에 의해 그의 전체 상이 파악될 수 있는 인물이 아니다. 조조에 대한 인물 평가는 무엇보다 역사적 사실에서 출발하여 판단이 내려져야 한다.”(『삼국지 조조 천한 꿈 펼친 모신 무장들』 169, 171p)

 

인물론으로 분석한 위·촉의 주군과 모신 무장들
한 명예교수는 삼국시대의 주도적인 사상이었던 유·법·도가와 함께 당시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등장했던 패도를 더해 위, 촉의 주군과 모신 무장들의 정치적 사상적, 행동적 가치성향을 분석했다. 칼 구스타프 융의 분석심리학설을 인용, 확대해 일반적 태도상의 유형을 ‘외향형과 내향형’으로 해 각 인물을 구분했고, 이를 정신기능 4가지 구분인 △사고형 △감정형 △감각형 △직관형으로 세분해 사고와 감정기능을 합리적 기능, 감각과 직관의 기능을 비합리적으로 분류했다.

 

이렇게 총 여덟 가지 성격 유형으로 두 권의 책에서 스무 명의 인물을 분석했는데, 외향적 사고형은 현실 상황에 대한 판단능력이 뛰어나고 논리적이며 설득력이 뛰어나다. 호전적 기질이 있어 강인하고 냉정하며 원리원칙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내향적 감정형은 외관상으로 조용하고 무척 여성적이라는 인상을 준다. 자기주장이 강하지 않고 양보를 많이 하며 관용을 잘 베풀고 겸손하다는 특징이 있다.

 

한 명예교수는 인물론 중에서도 성격론으로 위, 촉의 인물들을 설명한 이유로 “내게 핵심적인 테제는 격동하던 시대에 주역 인물이 어떤 성격이었는가에 따라서 역사의 진운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즉, 주역 인물의 성격이 역사를 움직이는 조타수로의 성격을 띠게 되는 것이다. 천하를 평정하려 했던 조조에 비해 유비는 황실을 재흥하려고 했던 인물이다. 즉, 조조는 평정하려는 리더, 유비는 통합하려는 리더였다”라고 설명했다.

 

두 권의 책에는 그렇게 분석한 주요 인물들이 △사람을 품어 난세를 헤쳐 나간 능굴 능신의 영웅 유비 △세상 다스리는 이치를 터득한 출장입상의 명전략가 제갈량 △익주공략을 추동하다 꺾이고 만 비운의 지략가 방통 △일의 성패 예견 능력 지녀 익주 병탄 한중전쟁에 공헌한 책사 법정 △홀로 말에 올라 천 리 길을 간 충의와 무략의 관우 △ 당양 장판파의 대갈일성으로 적의 대군 물리친 용략의 장비 △아두 품고 적 대군 돌파한 위기 관리의 장수 조운 △양의와 후계 다투다가 반기를 든 것이 된 숙장 위연 △북벌에 일로매진 촉의 명망 잡지 못한 최후 주자 강유 등의 소제 하에 생생하게 전개된다(이상 『삼국지 유비 한실 꿈 펼친 모신 무장들』 편)

 

『삼국지 조조 천하 꿈 펼친 모신 무장들』에서는 △위나라 개창하게 된 새 역사 펼쳐 나간 난세의 영웅 조조 △치세의 현실로 버팀목 세우려다 꺾이고 만 비운의 지사 순욱 △유연함으로 드러내지 않고 패업비책을 제시하는 군사 순유 △연주 지켜 중원 장악에 공헌한 지모 담력의 패도적 참모 정욱 △주군의 가능성을 현실화시킨 채 애석하게 요절한 보좌역 곽가 △순간의 기지 임기응변에 차착 없는 모략을 펼친 변신의 달인 가후 △전투 선봉 서다 후방 군사력 견인차 역할 외눈 대장군 하후돈 △기동력 용맹 떨치나 과신에 허망한 최후 야전군 군사령관 하후연 △용의주도하며 전범 있는 지략 용맹 겸전한 방면군 사령관 조인 △합비전 용사 800명 10만 오군 물리쳐 용략 떨친 장수 장료 △교변에 능해 제갈량의 기산 진출을 막은 용략 구사한 숙장 장합 등의 인물의 분석이 눈길을 끈다.

 

책에서는 1장에 인물의 생애사를 정리해 초심자도 읽을 수 있도록 했고, 2장에서는 사상 가치성향으로 그 인물을 분석했다. 가장 핵심인 3장에서 인물을 성격유형별로 분석하는데, 각 인물들이 처했던 다양한 배경을 함께 소개해 근거로 삼았다. 마지막 4장에서는 인물에 대한 전체 논평을 제시하며, 추후 논의해야 할 부분들을 언급했다.

 

인물론으로 삼국시대 주역 인물을 분석하고 있지만, 중간중간 이들이 이런 평가를 받게 된 전투, 일화 등을 진수 『삼국지』와 『배송지주』, 『후한서』, 『자치통감』  등 참고문헌들을 통해 제시함으로써 단순한 인물 분류를 넘어서 생기를 불어넣어 가독성을 높인다.

 

삼국지에 빠져들었던 어린 시절
덕유산 자락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한 명예교수는 제법 큰 도시로 진학한 중학생 시절 중국의 4대 기서 중 하나인 『삼국지』에 푹 빠져들었다. 1954년 정음사에서 펴낸 10권 짜리 『삼국지』를 하숙방에서 읽으며 밤을 지새우던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도서관의 숲 벤치에서 『삼국지』을 탐독하던 중 바람이 불어 대나무 잎이 흔들렸고, 바로 그때 ‘역사는 흐른다’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던 기억은 어제 일처럼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고교 1학년 때 가정 형편으로 1년을 휴학하며 고향 서당에서 강지의 『통감절요』를 배웠는데, 운명처럼 권20에서 권26까지가 삼국시대 역사였다. 중학생 시절 읽었던 책이 기실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라는 소설임을 알게 됐고, 이후 대학 1, 2학년 때 『대학』, 『중용』, 『논어』, 『맹자』, 『시경』 교과목을 이수하면서 한문 원전에 익숙해졌다. 이후 삼국시대 역사서인 진수의 『삼국지』를 탐독했지만, 서울시립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사회과학 분야 연구와 강의로 삼국지와 거리를 두는 세월이 흘러갔다.

 

1992년 우연히 몇몇 교수와 관악산 등반을 하면서 삼국지 이야기를 나눈 것이 계기가 돼 여러 학과 교수들이 함께 모이는 ‘삼국지를 사랑하는 교수들의 모임’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몇몇 애호가들과 함께 ‘춘하추동’ 정례적으로 세미나를 개최했는데, 20여 년간 진행됐다. 2009년 정년 퇴임을 하면서 2008년부터 매주 열었던 서울시민대학 문화원의「삼국지와 삶과 세계」 강좌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지난 11월 10일 구립 강남시니어플라자에서는 2008년부터 방학 없이 연중 이어왔던 강의에 참여한 수강회원들의 주도로 출간간담회가 열리기도 했다. 그는 “10년 넘게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매주 내 강의에 참석했던 수강회원들의 존재가 집필을 마치는 데 큰 원동력이 됐다. 이로 17년째 매주 100분씩 강의를 해왔는데, 20년을 채울 수 있을까”라며 미소를 지었다.

 

2015년에는 중국어문연구회, 중국학연구소 주최의 세미나 등에서 삼국지 인물 유형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고 전문학술지에 게재하기도 하면서 그의 연구는 깊이를 더해갔다. ‘역사를 흐른다’라는 문제의식은 이제 ‘삼국시대를 이끌어가는 추동력은 무엇인가’라는 테제로 바뀌었다.

 

1,800년 전 고전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의미가 있는 이유는?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읽을 때마다 새로운 깨우침을 주는 것이 고전의 매력이다. 그런 고전 목록에서 늘 상위권에 차지하는 삼국지는 삼국시대라는 역사 속에서 인간과 사회는 어떤 것인지, 세상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지금 우리가 지금 다시 읽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삼국지는 청소년 시절 읽었던 나관중 소설 『삼국지연의』는 권모술수와 폭력, 잔혹함이라는 점에서 비판을 받았죠. 역사가 진수의 『삼국지』와 배송지의 『배송지주』 같은 문헌을 중심으로 한 이번 책들을 펴내면서 그런 부정적이고 허황된 면을 많이 걷어냈어요. 역사가 E.H.카는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말했는데, 이 책을 읽어보면 나라와 세상 속에서 나는 어떤 존재이고, 이 세상과 역사 속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가며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합니다.”

 

왜 오나라 인물론은 나오지 않았을까? 한 명예교수는 이도 이미 초고는 거의 끝난 상황이라고 했다. 손권. 주유, 장소, 노숙, 육손, 황개, 태사자, 여몽, 제갈각 등의 인물을 분석했다. 하지만 삼국지에서 독자의 관심도는 위, 촉의 인물에게 거의 80% 정도라는 점을 감안해 먼저 두 권을 냈다. 그는 오나라편과 함께 마지막 책으로 사마의, 등애, 종애, 종회, 두예, 왕준 등을 분석하는 삼분귀진 편을 완성하는 것을 숙제로 남겨놓고 있다고 말했다.

 

인터뷰 말미에 한 명예교수가 21세기까지 전 세계의 경찰국가 역할을 자임한 미국에게 중국은 풍부한 자원, 우수한 인력 그리고 오랜 역사라는 뒷심으로 도전하고 있는 현 세계 정세를 삼국시대에 빗대 표현했다.

 

“우크라이나가 미국과 NATO에 투항해버렸어요. 러시아가 가만히 앉아 당할 수 없으니 침공한 건데요. 저는 젤렌스키를 삼국시대 형주성의 유표 아들 유종에 비유할 수 있다고 봅니다. 도망갈 곳이 없던 손권이 바로 러시아가 되고요. 삼국지에서는 손권이 유비와 손을 잡고 불가능한 싸움이지만 뒤집었어요. 그래서 형주가 분할돼 북쪽은 위나라가, 동쪽은 오나라가, 서쪽은 촉나라가 됐습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점령 지역인 돈바스 그러니까 국토의 20% 가까이를 빼앗기면서 결국 정전 쪽으로 가고 있는 형국입니다. 현 정세를 바라보면서 유종이 그때 그런 선택을 한 것이 겹칩니다. 형주를 조조에게 바친 것과 젤렌스키가 미국에 투항한 상황이요. 좋거나 싫거나 우리나라는 중국을 알아야 합니다. 중국을 아는 텍스트로 『삼국지』는 다양한 국제 정세를 보는 안목과 시야를 제공해주죠. 여러분에게도 제 책이 다소 그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윤상민 기자 cinemonde@kno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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