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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0대 시절에 북한에서 이탈했다. 곧바로 낯설고 두려운 환경인 중국에서 수년간의 타향살이가 시작됐다. ‘어떻게 해서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존 본능으로, 육체적·정신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러다 한국으로 입국해 또 다른 삶을 맞이했다. 정착을 위해 몸부림치면서 살던 시기였다. 배움이란 눈곱만큼도 생각할 수 없었던 사치였고, 이를 악물고 ‘자유의 땅’에 적응해야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결혼하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됐다. 애들을 잘 먹이고 잘 입히고 건강하게 키우는 것이 엄마의 숙명이고 아내의 본분이라 생각하면서 살았다. 그런 나에게 배움과 대학 진학의 길로 이끌어준 사람은 지금 나의 곁에 있는 남편이었다.


“아이들에게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멋진 엄마로 살면 좋겠다”라는 남편의 조언과 권유를 따라 중국에 체류하면서 익힌 중국어를 체계적으로 다시 배우고자 2018년 방송대 중어중문학과에 입학하게 됐다. 이렇게 만난 방송대는 단순한 지식만 배우는 것이 아닌 ‘배움의 즐거움’까지도 느낄 수 있게 한 곳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여 년 만에 다시 시작하는 공부였다. 공부 내용도, 공부하는 방식도 모두 낯설고 어려웠다. 주변의 권유로 스터디에 들어가 따라가기 시작했다. 스터디는 선후배들과의 두터운 교우관계가 잘 형성돼 있어 큰 도움이 됐다. 또한 해마다 학생회와 동문회가 화합하는 마라톤, 체육대회, 등반 등 다양한 활동들이 있어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는 기회들도 많았다.


방송대는 학업과 생계를 동시에 챙겨야 했던 나에게는 정말 안성맞춤이었다. 시간적, 경제적 부담을 최소화하고 공부해야 했는데, 유연한 학습환경 시스템이 구축돼 있어 언제 어디서든 학업을 이어갈 수 있어서 큰 도움이 됐다.


40대 나이로, 더구나 탈북민으로서 대학에 진학해 공부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새롭게 시작한 공부에서 특별한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주어진 틀 안에서 살아야 했고, 체제 중심의 교육 속에 성장했던 북한에서와 달리, 다양한 선택이 가능하고 폭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는 남쪽의 교육을 접하면서, 삶의 의미와 가치를 더욱 깊이 생각할 수 있게 됐다.

 

 ‘나’라는 좁은 울타리 안에서 살던 나는 누군가를 위해 봉사도 하고 리더십도 발휘할 수 있게 변화하고 성장했다. 친절하고 꼼꼼한 학과 교수님들의 깊은 가르침도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또한 언제나 신뢰와 지지를 보내주던 학우들의 따뜻함도 잊지 못할 것이다.


멋진 선배들의 뒤를 이어 4학년에 들어서면서 ‘중어중문학과 전국총학생회장’을 맡아 열심히 뛰었던 기억은 지금도 가슴을 쿵쾅거리게 한다. 영광스러운 자리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잘할 수 있을지 걱정도 앞섰지만, 학우들의 많은 도움 속에서 멋진 리더로 성장하는 값진 경험을 했다.


졸업한 지금에 와서 돌아보니 방송대는 나에게 배움이라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줬고, 탈북민이라는 한계를 넘어 더 넓은 세상을 향해 달려갈 수 있는 용기를 심어줬다. 그것은 지난날 절박한 생존 앞에서 힘겹게 버텨야 했던 인생의 가장 낮고 어두웠던 시절에 대한 보상이었다.


앞으로도 나는 방송대에서 배운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더 성장하고 나와 같은 길을 걸어온 탈북민들에게 작은 희망이 될 수 있는 멋진 삶을 살아갈 것이다. 방송대는 내 인생을 바꿔준 배움의 출발점이었고 앞으로도 내 삶을 밝혀주는 등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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