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깊은 진정성, 고유성이
소거·평균화되지 않으면서
동시에 사회 전체의 ‘답’을 찾아가기 위해서는,
기술적·제도적·윤리적 차원에서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최근 대화의 빈번한 소재이자 학술 토론 주제의 하나가 ChatGPT를 위시한 AI다. 거기서 소외되면 닥칠 암울한 미래와 대비해 일찍 따라잡으면 선취할 막대한 이득에 대한 발 빠른 광고가 SNS에서도 넘쳐난다.
디지털전환 이후 AI라는 엔진을 장착한 이른바 ‘플랫폼 자본주의’는 어느 틈에 일상이 되어가고 있다. 이 플랫폼에서는 얼핏 누구나 생산과 소비의 영역을 탄력적으로 오가고 아주 수월하게 ‘나도 사장님’이 되어 자본축적에까지 제법 발을 뻗는 게 가능해 보인다. 또 예비 사장님인 소비자는 주문, 댓글, 리뷰라는 새로 중요성을 인정받는 데이터 생산자로서 능동적 만족을 제공받는 것 같다. 그렇지만 ‘나도 사장님’의 80, 90% 이상은 상징적 담론 속 그럴듯한 포장과는 달리 기획된 종속성에 묶인 수익이 미미한 플랫폼 비정규 노동자에 가까워 보인다.
소비자의 소비 편의성, 감정적 보상의 능동적 만족은 분명 사실이지만 개인의 데이터 생산이자 사적인 흔적은 알고리즘이라는 이름으로 종속과 착취를 감춘 플랫폼의 구조적 기획에 따라 뜻하지 않게 착취구조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이런 강력한 메커니즘이 기존 자본주의의 모든 활동을 플랫폼 위에 재배치하고 있다. ChatGPT, AI는 플랫폼의 개별 기능이 아니라, 플랫폼 전체를 지배하는 전략적·구조적 핵심 엔진으로 작동한다.
현재 교육현장을 휘젓는 ChatGPT와 AI에는 기존 교육이 갖지 못한 해방적인 면이 분명 존재하지만, 우리의 교육은 그 플랫폼의 구조 속으로 끌려 들어가고 있다. 교사와 학생 각자의 지식 소비 형태가 ChatGPT를 통해 재편되고 있는 것은 물론, 교육현장에서의 교사와 학생의 상호작용 자체, 즉 수업을 위한 교사의 지식생산과 (재)구성이나 그에 대한 학생의 수행이 모두 플랫폼을 매개로 재구성되고 있다. 교사와 학생이 모두 지적 노동을 ChatGPT의 지식경제 플랫폼에 위탁해 ‘아웃소싱’하는 비중이 높아질수록, 학생은 GPT가 만든 학습지를 (방문)교사를 통해 전달받는 셈이 되고, 교사는 학생을 (단순한) 매개로 하여 돌아온 GPT 생성물을 검수하는 현상이 벌어질 것이다.
분명 AI 시대에서는 한층 고도화하고 정밀해진 억압적 메커니즘의 작동뿐만 아니라 기존의 벽을 허무는 해방적 작용 역시 감지된다. AI 작동 과정에서 우리는 영향력 없는 수동적인 존재에서 벗어나 데이터 입력값이라는 형태로나마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존재로 재정의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더 나아가 개인의 깊은 진정성, 고유성이 소거·평균화되지 않으면서 동시에 사회 전체의 ‘답’을 찾아가기 위해서는, 기술적·제도적·윤리적 차원에서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우리는 이렇게 새롭고 풍요롭게 열린 양가적인 물질적 환경을 어떻게 지혜롭게 활용해 어떤 정신적 경지로 도약할 수 있을까.
앞서 열거한 부정적인 양상을 뒤집어 여러 의제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나, 우선 우리의 교육현장을 마주해 서툴게나마 다음과 같이 되새겨본다. 지금까지 교육을 통해 그 누구도 해주지 못했고 못해본 것을 ChatGPT, AI와 함께해 볼 그 어느 때보다 좋은 기회가 왔다고. ChatGPT가 내놓고 확산하는 ‘답’이 정말 내 물음에 대한 제대로 된 답인지 꼼꼼히 확인하자고. 그건 아니지, 꼭 그것만은 아니야, 그래 그런데 거기서 좀 더, 잠깐 그게 너의 최선이니, 자꾸 물어보자고. 지금 앞에 놓인 ‘답’을 이정표로 다시 생각과 정서를 더 확장·심화하며 그다음으로 더, 더 나가자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