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OU광장   독자 기고

천리 밖까지 바라보려면 한 층 더 오르라.

이제 나는 그 한 층을 오를 준비를 한다.


11월 초, 입동이라 하지만 산하는 노랗고 붉게 물들어 단풍 나들이하기 좋은 날씨다. 잠시 밖으로 나가고 싶은 충동이 일었으나 곧 마음을 다잡는다. 한 달 뒤면 있을 기말평가가 정신을 차리게 한다. 나들이도 좋지만, 차분히 앉아 공부하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부쩍 ‘졸업’이라는 단어가 자주 떠오른다. 방송대 입학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4년이 흘렀다. 지인이 “어학은 시간이 필요한 과목이니 편입하지 말고 1학년부터 시작하라”라고 조언했다. 그 말을 따라 50여 년 전 졸업한 고등학교로 찾아가 졸업증서를 떼고 입학원서를 낸 것이 엊그제 같다. 돌이켜보면 그 세월은 헛된 시간이 아니었다.


젊은 시절 중국어 공부를 꿈꾸며 여러 번 도전했으나 번번이 좌절했다. 지금도 서가에는『신공략 중국어』,『301구로 끝내는 중국어회화』, 사전이 그대로 꽂혀 있다. 이제야 인생의 버킷리스트 하나를 마무리한 듯한 마음이 든다.


8년 전 정년퇴직 후 자연스럽게 공부 쪽으로 눈을 돌렸다. 전공은 아니었지만 교직 초년 시절 한문을 상치 과목으로 가르친 인연이 있어 다시 한문을 배우고 싶었다. 전주 한옥마을의 시민강좌에 참여하다가 ‘이왕이면 제대로 해보자’는 마음으로 연수 과정에 입학해 3년을 다녔다. 기초가 부족해 따라가기 어려웠지만, 졸업 자체로 만족했다.


졸업 무렵, 지인이 방송대 입학을 권유했다. 한문과 연계된 학과를 찾다 보니 중어중문학과가 눈에 들어왔다. ‘고문(古文)에만 머물지 말고 현대문도 알아야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질 수 있다’라는 생각에 망설임 없이 입학했고, 그렇게 4년이 흘렀다.


배움의 길은 결코 쉽지 않았다. 단어도 문장도 잘 외워지지 않고, 사성(四聲)은 매번 새로웠다. 나이가 들수록 기억력이 예전 같지 않았다.『중용』의 “남이 한 번에 능하거든 나는 백 번을 하고, 남이 열 번에 능하거든 나는 천 번을 해야 한다(人一能之어든 己百之하며 人十能之어든 己千之니라)”라는 구절을 떠올리지만, 그것은 책 속 이야기일 뿐이었다.


그래도 중간과제와 출석수업을 성실히 해냈다. 올해는 서부 아프리카를 다녀오느라 대체시험으로 대신하기도 했다. 학점에 크게 연연하지 않았지만, 그동안 내가 받은 학점 중 가장 낮은 성적을 받았을 때는 “조금 더 공부할 걸”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새벽이면 근처 건지산을 걸으며 중국어 단어와 문장을 외운다. 졸업을 그리며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는 사색의 시간이다. 이제 남은 건 마지막 기말평가뿐이다. 잘 마무리하고 멋지게 졸업하자고 다짐한다.


인생 후반기에 방송대를 만나 공부할 수 있었던 것은 평생의 복이라 생각한다. 코로나로 외출이 어려웠던 시절, 중국어와 씨름하며 보낸 시간은 지금 돌이켜보면 현명한 선택이었다. 방송대는 참 좋은 대학이다. 흔히 졸업이 어렵다고들 하지만, 입학해보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알찬 교재, 훌륭한 교수진, 체계적인 커리큘럼, 반복 가능한 학습 시스템 등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다. 방송대는 평생교육을 실현하는 곳이자 인생의 든든한 동반자다.


어느 노(老)철학자는 “일 없으면 녹슨 인생이고, 가치 실현을 위해 공부하고 독서하라”라고 했다. 방송대에서 배움의 길을 걸은 것은 내 인생 후반의 가장 잘한 선택이었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고, 끝이 있으면 다시 시작이 있다.” 이제 또 다른 시작을 위해 출발선에 서고 싶다. 중국 당나라의 시인 왕지환은 이렇게 노래했다. “욕궁천리목, 갱상일층루(欲窮千里目, 更上一層樓).” 천리 밖까지 바라보려면 한 층 더 오르라. 이제 나는 그 한 층을 오를 준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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