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권유로 2011년 방송대 지원을 결심했고 기쁘게도 합격 통보를 받았다. 등록금만 납부하면 되는 단계에서 시아버님께서 급작스레 돌아가셔서 시댁이 있는 지방으로 내려가야 했다. 등록 취소까지 생각했다가 가까스로 농협 창구에서 등록금을 납부했던 순간은 평생 잊지 못할 긴박함과 간절함의 순간이었다. 그렇게 어렵게 열린 나의 대학 생활이 시작됐다.
초등학생인 두 딸을 잘 키워내겠다는 마음으로 나는 청소년교육과(현 청소년교육복지상담학과)를 선택했다. 스터디에 가입해 열심히 공부했지만, 출석수업 3일을 연달아 진행하던 시절, 아이들을 맡길 곳이 없어 늘 함께 데리고 다녀야 했다. 강의실을 오가는 아이들의 발걸음은 자연스레 모두의 시선을 끌었고, 어느새 ‘김한식의 딸들’로 이름을 알리게 됐다. 그 아이들이 이제는 대학 3학년, 2학년이 되어 각자의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으니, 그때의 분투가 헛되지 않았음을 느낀다.
1학년 2학기에는 또 다른 도전이 찾아왔다. 사촌 동생이 의류 매장을 열며 잠시만 일을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처음엔 학업에 집중해야 한다며 사양했지만, 반복되는 부탁을 외면할 수 없어 결국 일을 시작하고 말았다. 일과 학업을 동시에 병행하다 보니 스터디 참석이 어려워졌고, 홀로 공부하는 날이 많아졌다. 때로는 ‘그만둘까?’ 하는 생각도 여러 번 들었지만, 이미 시작한 공부 끝까지 해보자는 친구와 스터디 선배의 격려가 나를 지탱해 주었다. 결국 학업을 완주했고, 졸업장을 받던 날에는 감격의 눈물이 앞을 가렸다.
그러던 중 2017년 가을, 1학년 때 함께 스터디를 했던 선배가 전국총동문산악회에서 진행하는 두타산 산행에 함께 가자고 제안했다. 첫 산행 이후 산의 매력에 흠뻑 빠진 나는 산악회에 가입했고, 매달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산을 찾았다. 성실함을 인정받아 작년부터는 산행대장을 맡게 됐고, 매달 미리 코스를 답사하며 동행 대장들과 함께 코스를 선정하는 과정이 무척 즐거웠다. 번거로움보다 설렘과 책임감이 더 큰 소중한 역할이다.
나는 27대와 28대 전국총동문회에서 여성위원회 간사와 전국동문통신원 단원으로 활동하며, 임원으로서의 경험을 쌓았다. 그동안의 노고를 인정받아 두 차례 연속 공로상을 수상했을 때는 스스로가 얼마나 성장했는지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올해 5월에는 그동안 미뤄뒀던 사회복지사 실습도 마무리해 자격증을 취득했고, 이어 요양보호사 자격증도 함께 취득했다. 발달장애인과 뇌병변 장애인의 주간활동서비스를 제공하는 ‘사회적협동조합 오른’에서 실습을 진행했다. 한 달 동안 그들과 함께 생활하며 일상을 돕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지만, 내 작은 도움으로 그들의 하루가 조금 더 편안해지는 모습을 보며 깊은 보람을 느꼈다. 그 경험은 훗날 주간활동 서비스 센터를 직접 운영하며 봉사하고 싶다는 새로운 꿈까지 품게 했다.
그리고 지난 11월 7일, 나는 KNOU 리더스클럽 정기모임에서 신입회원으로 정식 참여하게 됐다. 박준희 회장의 말씀대로 봉사와 친목, 비즈니스를 통해 학교와 리더스클럽 발전을 추구하면서 많은 봉사와 활동을 이어갈 예정이다.
돌아보면, 방송대는 내게 학업을 넘어 새로운 인생의 문을 열어준 든든한 동반자였다. 이곳에서 나는 꿈을 이뤘을 뿐 아니라, 또 다른 꿈을 꾸는 사람이 됐다. 방송대는 내 인생의 전환점이자,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게 해 준 감사한 배움의 터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