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OU광장   강성남의 그노시스

조지 오웰은 글쓰기란 “끔찍하고 기진맥진한 투쟁과 같다”라고 했다. 나의 경험에 따르면 끔찍한 건 ‘없는 집에 제삿날이 돌아오듯이’ 글감이 빈약할 때 찾아오는 감정이고, 기진맥진함은 초고를 수없이 퇴고할 때 겪는 기분이다. 글감을 생각하고 퇴고하는 일은 완성을 향한 투쟁일 수밖에 없다. 엄밀히 말하면 요즘은 원고를 워드 프로세서로 처리한다. 종이 위에 쓰는 게 아니기 때문에 ‘글 쓴다’라고 말하기가 어색할 수도 있다. 하지만 글짓기는 생각의 실험실이자 정거장인 건 분명하다. 시행착오와 함께 멈춤과 떠남이 반복되는 게 글짓기의 묘미라면 묘미이기 때문이다.


글쓰기에서 충동적으로 마구 써대는 건 금물이다. 충동적인 생각은 ‘정신적인 설사’와 같다. 아무리 언어의 설사라고 해도 모든 설사는 멈추도록 치료해야 한다.


글쓰기는 건축과 닮았다. 좋은 글은 쓰고, 고치고, 다시 쓰는 단계별 공정(工程)을 거쳐야 완성된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한 핵심은 ‘무엇을 쓸 것인지’를 정하고 글의 뼈대를 세우는 데 시간을 투자하는 일이다. 아이디어를 벼리는 시간을 정해두고, 성급히 글부터 쓰려는 충동을 억눌러야 한다.


프로 작가는 마치 보석세공사처럼 언어의 배열과 문장의 직조에 공을 들인다. 그런데 이런 언어들이 심장이 뛰는 사람의 가슴이 아니라 기계에서 나온다고 생각하면, 기계가 쓰는 글이 아무리 그럴듯해도 크게 공명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글쓰기에 챗GPT를 활용하지 않는 나만의 고집이 여기에 연유한다.


‘새들은 연못가의 나무 위에서 잠들었는데, 어디선가 나타난 스님이 달빛 아래의 문을 조용히 두드린다(鳥宿池中樹 僧敲月下門).’


이 시의 작자 가도(賈島)가 ‘스님이 문을 두드린다(敲, 두드릴 고)’라고 해야 좋을지 ‘스님이 문을 민다(推, 밀 퇴)’라고 해야 좋을지 정하지 못하고 망설이다가 한유(韓愈)를 만나 그의 조언으로 퇴(推)를 고(敲)로 고쳤다는 데서 유래한 말이 퇴고(推敲)다. 문을 두드리는 것은 집 안에 있는 사람에게 열어달라고 신호를 보내는 것이고 미는 것은 손수 여는 거다. 앞 구와 관련지으면 문을 두드리면 그 소리로 인해 잠든 새가 깰 수도 있는 데 비해 밀 때는 밤의 고요함을 지킬 수 있을 텐데 왜 두드린다고 했을까 싶다. 한유는 취옹(醉翁) 구양수에게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이다.


글쓰기는 건축과 닮았다. 좋은 글은 쓰고,

고치고, 다시 쓰는 단계별 공정(工程)을 거쳐야 완성된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한 핵심은
‘무엇을 쓸 것인지’를 정하고 글의 뼈대를 세우는 데
시간을 투자하는 일이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무기여 잘 있거라』를 39번이나 암니옴니 따져가며 오랫동안 퇴고했다고 한다.

 

나는 퇴고 과정에서 쓴 글을 소리 내어 읽곤 한다. 이러면서 귀가 눈보다 훨씬 더 똑똑하다는 걸 깨달았다. 눈은 리듬을 보거나 원치 않는 반복을 듣지 못하지만, 눈보다 느린 귀는 그걸 알아차린다. 유의해야 할 건 소리 내어 읽으면서 힘을 빼고 문장의 리듬감을 느껴야 한다는 점이다. 이렇게 칼럼을 5년 8개월에 걸쳐 썼다.


니코스 카잔차키스는『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자유는 묶인 끈이 남들보다 조금 더 긴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소설 속 주인공 조르바에 따르면 산다는 건 감옥살이나 종신형처럼 고역스러운 일이지만 인간의 영혼만은 한없이 자유로운 것이어서 어디에도 가둘 수 없고 그 누구도 지배해선 안 된다.


자유를 다룬 영화 이야기로 마무리한다. 우리나라에서 개봉했던「쇼생크 탈출」로 알려진 영화의 원제목은「쇼생크 구원(Shawshank Redemption)」이다.


‘쇼생크’는 이집트 제22왕조의 창시자(B.C. 945~730)인 파라오 ‘셰숑크 1세(Shoshenq I)’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구약성경에서는 ‘시삭(Shishak)’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주인공 앤디가 감옥(억압의 장소)에서 탈출하는 과정은 성경 속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Exodus)을 연상시킨다. 앤디가 성경책 속에 숨겨둔 망치를 꺼낼 때 펼쳐진 페이지가 마침「출애굽기(Exodus)」인 점이 이러한 해석을 뒷받침한다.


이 영화에 나오는 대화다. “참 이상하지, 이 감옥의 벽돌 말이야. 처음에는 싫어하다가 곧 적응하게 되어버리고 어느 순간엔 의지하게 되거든!”, “오줌도 허락 없이는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아!” 바짝 쪼인 끈에 매여 지내다 보면 몸에 밴 습관을 털어내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이 대화는 일러준다. 자유는 고귀하다. 영화에서는 모차르트의 오페라「피가로의 결혼」중 3막에 나오는 ‘편지의 이중창’ 아리아가 흐른다. 주인공 앤디가 감옥의 독방에서 이 음악을 틀어 죄수들에게 자유를 느끼게 하는 상징적인 명장면이다.


2020년 4월부터 나는「강성남의 그노시스」에 매여 있었다. 3주마다 칼럼을 쓰며 5년 8개월에 걸쳐 13만7천200여 자로 글짓기를 했다. 짓기를 마친 ‘글’ 건축이 어떤 모습일지를 찬찬히 들여다볼 참이다.


이 칼럼을 끝으로, 나는 내가 글쓰기 투쟁에서 몸에 밴 습관의 감옥에서 얼마 만에 탈옥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부족한 글을 읽어주신 독자에게 감사드린다. 삽화와 ‘너트 그래프(nut graph)’를 적절히 넣어준 최익현 선임기자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아듀, ‘강성남의 그노시스’!

방송대 명예교수·행정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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