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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검정고시로 중학교 과정을 마쳤던 필자는 세월이 지나면서 잊고 살았던 학업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됐다. 그리고 2009년 마흔여섯 살이라는 나이에 경복고등학교 부설방송통신고등학교를 알게 되어서 입학을 했다. 나이가 들었지만 십대 고등학생 같은 마음으로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며 학생회 활동과 함께 열심히 학창시절을 보냈다.


졸업을 앞두고 대학 진학에 대해 고민했는데, 당시만 해도 방송대는 졸업하기 어렵다는 것이 통설이어서 다들 사이버 대학으로 진학했지만, 과감하게 방송대 법학과를 선택했다. 업무와는 전혀 관계가 없었고 다만 지식을 넓힌다는 생각에 뭔지 모를 강한 끌림이 나의 마음을 이끌었다.


방송대는 원격대학이라는 한계가 분명히 존재하기에 학우들의 소속감이 약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법학과 청심스터디를 통해 동기애와 동문 선후배와의 끈끈한 소통을 경험했고, 특히 길라잡이를 자처한 선배들 덕분에 학업을 무리 없이 마칠 수 있었으며, 이후에도 동문으로서 작은 역할을 할 수 있게 됐다.


재학 시절부터 법률봉사단에 입단해 전문상담원들의 상담과 봉사의 모습을 통해서 ‘사람이 재산이다’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 누군가의 수고와 봉사가 힘없고 어려운 이웃에게 희망을 주고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유기적인 세상의 이치와 삶의 의미를 새삼 되새기게 된다.
‘내게 없는 것에 대한 원망이나 아쉬움보다는, 내게 있는 것으로 감사하고 그것을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법적인 지식이나 능력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업무적으로도 법률과는 거리가 멀어서 몇 번이고 고사한 끝에 결국 법률봉사단을 이끄는 단장으로 취임하게 된 것은 단원들의 권유가 컸고, 화합하는 모임을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을 해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코로나19 팬데믹을 전후해 법학과 동문회에도 어려움이 있었고, 다시금 법학과 동문회를 세워나가는 데 법률봉사단이 함께 참여하고 힘을 실어줬으며 재학생들과의 소원해진 관계도 다시 정립하는 데 마음을 쏟았다.


돌이켜보면 법률봉사단이 드러나지 않게, 묵묵히 그 역할을 해냈다고 자평할 수 있을 것 같다. 법률봉사단은 일상생활에서 법적인 지식이 없어 법률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힘없고 뒷배 없는 사람들에게 무료 법률상담으로 도움을 주고 말 못 할 고민을 들어주는 편안한 친구 같은 기본적인 역할에 충실했다. 그리고 매월 월례회와 1년에 한 번 MT, 그리고 변론대회에 참여하고 후원했으며, 그 밖의 각종 행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여러모로 큰 역할을 했다.


뿐만 아니라 올해 11월 초에 세 번째로 ‘사랑의 연탄나눔봉사’를 했다. 연탄 2,000장을 후원하였고, 그중 1,000장을 20여 명이 직접 땀 흘리며 나르면서 AI가 인간의 일들을 대신하고 첨단을 달리는 이 시대에도 판잣집들이 즐비한 구룡마을에서 사랑의 온기를 나눌 수 있음에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선배들이 닦아놓은 길을 우리는 잘 다듬어 걸어가며, 이후에 이 길을 후배들도 더욱 아름다운 길로 조성해 나가면 참 좋겠다. 나는 입버릇처럼 말하는 것이 있다. “사랑은 주는 것이다, 많건 적건 간에….” 그 같은 삶을 알게 한 방송대가 소중하고, 그 여정에 법률봉사단이 있어서 나를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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