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시네마   Weekly 시네마

전작 「그대 어이가리」(2023)로 전 세계 56개 영화제를 석권한 이창열 감독이 신작 「피렌체」로 돌아왔다. 「피렌체」는 권고사직과 무기력에 시달리며 삶의 방향을 잃은 중년 남자 ‘석인’(김민종)이 잠시 멈춤의 시간 동안, 젊은 시절 자신의 열정이 숨쉬던 이탈리아 피렌체로 떠나 자신을 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얻는 이야기다. 중년 관객들에게는 잔잔하면서도 묵직한 위로를, 젊은 관객에게는 삼촌, 부모님, 어른들의 삶을 들여다 볼 계기를 제공한다. 이 영화에는 이창열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녹아있다. 이 감독 역시 대기업에서 특진에 특진을 거듭하며 성공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렸던 K-직장인 중 한 명이었기 때문이다. 영화감독이라는 꿈을 포기할 수 없었던 그는 40대 중반에 명예퇴직해 지금까지 그 꿈을 좇고 있다. 개봉 1주일만에 1만 7천 관객을 동원하며 조용한 입소문으로 역주행의 신호탄을 쏘고 있는 「피렌체」는 한국영화 최초로 ‘2025 글로벌 스테이지 할리우드영화제’에서 작품상, 각본상, 감독상이라는 주요 부문 3관왕을 달성하는 쾌거를 기록했다. 최근 서울국제영화대상에서 예술영화상을 받으면서 예술성과 상업성을 동시에 잡았다는 평이다. “중년은 멈춤이 아니라 다시 시작이라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인생의 중턱에서 숨이 찰 때, 잠시 멈춰 서서 지나온 길을 바라보는 것이 결코 실패가 아님을 관객들이 느끼셨으면 합니다. 피렌체의 따뜻한 햇살 같은 위로가 여러분의 일상에 닿기를 소망합니다”라고 전하는 이창열 감독을 만났다.

윤상민 기자 cinemonde@knou.ac.kr

 

 

 

 

 

 

 

 

 

 

 

 

 

 

 

 

 

 

봉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너무 열악한 상황에서 찍느라 정말 힘들었어요. 작은 영화라고 해도 스태프들 꾸리고 고생하는 그런 공력이 들어가는 건 큰 영화랑 똑같거든요. 장편영화지만 일반 관객들은 상업영화를 기준으로 삼잖아요. 큰 영화들은 관객 취향에 맞춰서 기획을 하고 들어가죠. 예술 영화는 10%로도 채 안 되는 거 같아요. 그래도 투자 받고 하는 프로세스는 똑같으니, 마음 고생을 좀 했습니다. 그래도 저에겐 너무나도 소중한 영화입니다. 영화에 대한 꿈, 매력을 잃었다면 벌써 그만뒀을 테니까요.

 

질문을 많이 받으셨을 거 같지만요, 많은 도시 중에서도 피렌체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전작 「그대 어이가리」로 피렌체한국영화제에 초청받았었어요. 처음 피렌체에 도착해서 느낀 아름다움은 잊히지가 않을 정도로 대단했습니다. 책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피렌체에서 나고 자란 단테라는 대문호가 떠오르는 도시일 테고요. 베아트리체와의 사랑은 결국 이뤄지지 않았고, 정치에 입문했지만 결국 유배지에서 삶을 마감하죠. 거기서 위대한 『신곡』을 집필했고요. 만약 이 아름다운 도시에서 영화를 찍을 기회가 온다면, 단테의 삶 속에 제 이야기를 메타포처럼 녹이고 싶었습니다. 그러면 제게도 의미가 있을 것 같았거든요.


당시 피렌체 관객들의 반응이 기억에 남았다고요.

우는 분들도 많았고요. 영화가 끝났는데 한 분도 안 가시고 복도에서 기다리시더라고요. 안아달라고 하는 분도 계셨죠. 정말 이탈리아 사람들은 감성이 풍부하다고 느꼈습니다. 다행히 「피렌체」도 초대를 받아서 3월에 갑니다. 너무 감사하죠. 저는 당연히 가고요. 아마도 관객들이 원하는 건 김민종, 예지원 배우일 테니 같이 가야겠죠? 관객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모르겠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이 중년으로 늙어간다는 건 똑같으니까, 공감을 보여주지 않으실까 생각합니다.

 

「피렌체」는 감독님 자전적인 이야기라고 들었습니다. 한국의 여느 중년이라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기도 하고요. 어디서 아이디어를 얻으셨고, 시나리오에는 어떻게 녹이셨나요?
저는 대기업에서 특진을 거듭해 어린 나이에 간부급에 오를 정도로 치열하게 살던 직장인이었어요. 그러다가 더 늦으면 제 꿈이었던 영화를 할 수 없겠다는 생각에 명예퇴직을 했죠. 아무리 꿈이 있어도 당장 어떻게 살지 막막했을 거 아니에요? 그런 제 이야기를 기본 구조로 간략하게 시놉을 만들었습니다. 실직한 중년을 주인공으로요. 저는 와이프가 있지만, 지인의 죽음을 목도하고 영화에서는 석인이 상처하는 걸로 설정했죠. 그리고 저에게도 역시 석인에게처럼 질풍노도의 시기에 만난 외국인 친구가 하나 있었는데, 못 만나면서 연락이 끊어졌습니다. 지금은 찾을 수도 없죠. 그런 것들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어요. 제 인생과 비교해서 만들고 싶다는 생각만 있었는데, 이게 영화라는 현실이 될지는 정말 몰랐습니다. 인물, 사건, 배경이 다 나온 플롯을 구성해 뒀으니, 시나리오는 연극하는 후배 작가와 협업해서 두 달 만에 시나리오를 끝냈어요.

혹시 동창회 씬도 자전적인 경험인가요?
이런 일이 있었어요. 카톡을 정리하다가 친했던 중학교 동창 이름을 발견해서 오랜만에 연락했어요. 그런데 두 번이나 씹는 거예요. 바쁘겠지만 안부 전하면서 지내자고 세 번째 연락했는데도 답이 없길래 화가 나더라고요. 마침 다른 동창에게 전화가 왔길래, “고등학교 교장하면서 출세했다고 나 같은 독립 예술가는 무시하는 거냐?”고 물었더니, “무슨 이야기야, 걔 죽었잖아. 으이구. 동창들한테 관심 좀 갖고 살아!”라는 답이 돌아오더라고요. 충격이었죠. 저도 바쁘단 핑계로 동창회에 나가본 적이 없거든요. 그 경험을 영화에 넣은 거예요. 동창회에 꾸준히 나왔던 친구들은 계속 소통했었을 텐데, 저는 막상 가도 할 말이 없을 거 아니에요. 꿔다 놓은 보릿자루도 아니고. 그렇게 동창회 씬이 탄생했습니다.

 

이제 각 캐릭터에 대해서 질문드릴게요. 우선 무너지기 직전의 50대 중년 남자 주인공 석인 이죠. 뭐, 여자 중년이 덜 쓸쓸한 건 아닐 테지만, 자전적인 이야기라고 하셨으니까요. 감독님 잘생기신 건 알겠는데, 꼭 김민종 배우여야 했는지도 궁금하고요(웃음).
제가 로맨스를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액션도 스릴러도 안 되고요(웃음) 제가 대기업에서 오래 근무했다고 말씀드렸잖아요. 명퇴하고 나니 그 쓸쓸함은 제가 선택했음에도 되게 오래가더라고요. 우울함도 있었고, 세상이 나를 배척하는 거 같은 느낌도 들었죠. 선택은 했지만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도 컸고요. 그래서 처음에는 이걸 어떤 시나리오, 캐릭터로 구상할까 고민하다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제 나이에 제가 잘 할 수 있는 이야기, 캐릭터로 가야겠다고 생각한 거죠. 제가 로맨스 너무 잘했다면 로맨스로 갔을 수도 있죠(웃음).

김민종 배우는 어떻게 캐스팅하셨나요?
「그대 어이가리」가 영화제에서 수상을 많이 하면서 매일 기사가 날 무렵이었어요. 그래도 저는 다음 영화 준비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늘 있었죠. 하루는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김민종 배우가 어머니 산소를 찾아가 우는 장면을 본 겁니다. 돌아가신지 1~2년 쯤 된 상황인 거 같은데, 차 안에서 우는 그 울음이 가슴 깊은 곳에서 나오는 울음으로 느껴지더라고요. 아 맞다, 김민종이라는 좋은 배우가 있었지! 하는 생각이 들어 찾아봤더니, 활동이 별로 없는 거예요. 당시 SM 소속이어서 매니저 통해 시나리오를 건넸습니다. 묻지마 폭력으로 가정을 잃은 남자가 버텨내는 이야기의 주인공 역을 제안했죠. 그런데 빌런 역할을 하고 싶다고 답이 온 거예요. 안 되겠다 싶어서 그냥 덮어뒀다가 1년 쯤 후에 악역을 멋지게 수정한 시나리오를 다시 보냈습니다. 너무 좋다고 하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코로나가 터지면서 펀딩이 안 되면서 영화가 중단된 거예요. 그때 미국에서 「그대 어이가리」를 본 할리우드 제작자가 연출 제안을 해왔어요. 미국을 오가며 논의하던 중에 「피렌체」에 투자가 된 겁니다. 당장 김민종 배우에게 연락했죠.

 

이번에는 한 번에 OK 하던가요?
처음에는 시나리오가 어렵다면서 즉답을 피하더라고요. 며칠 지나고서야 한번 해보겠다고 연락이 왔어요. 그렇게 작년 1월부터 본격 작업에 들어간 거죠.

석인은 영화의 거의 모든 씬에 등장해요. 프리 과정에서 무엇을 주문했는지, 현장에서는 어떤 디렉션을 줬는지 궁금합니다.
리딩을 거의 두 달 정도 했어요. 그런데 김 배우가 대사도 대충하면서 뭔가 보여주지를 않더라고요. 시나리오가 재미 없어서 그런가 하는 생각도 속으로는 했습니다. 그래도 뭔가 있겠지 하는 믿음은 있었고요. 그러면서 단테의 책을 보내줬어요. 읽어보면 힘든 유배지에서의 우울한 삶이 그려질 테니까요. 그렇게 준비해서 피렌체로 갔습니다. 현장에서 제가 뭐라고 했냐면요. 첫 촬영 끝나고, ‘와, 이 배우가 준비를 했구나!’라고요.

 

‘역시 김민종!’이라는 느낌이 왔던 씬이 있다면요?
말씀드렸던 첫 촬영이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하는데 “노노! 아메리카노!”라고 하는 장면이었어요. 느낌이 너무 좋더라고요. 우여곡절 끝에 커피 마시던 표정이 너무 좋았는데 최종적으로 들어내긴 했습니다. “원래 이렇게 잘하는 배우였어요? 준비한 건예요? 이제 김 배우는 텐션만 조절하면 내가 할 일이 없겠어요”라고 말했죠. 또 30년 만에 ‘유정’(예지원)을 만나는 장면에서 설렘과 불안함이 교차하는 표정도 제가 볼 때는 완벽했습니다. 그때 김 배우에 대해서 마음이 열렸고요. 그 이후로는 제 역할은 영화를 순서대로 찍을 수 없으니 김 배우의 감정 톤, 텐션만 조절하는 정도였습니다. 너무 몰입하면 조금만 낮춰달라고 하면서요.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은 3명이지만, 사실상 석인의 1인 로드무비처럼 보이기도 하더라고요.
맥락이 맞닿아 있어요. 사실 「피렌체」는 다른 배우 없이 김민종 혼자서 오롯이 끌고 갈 수 있는 모노드라마에요. 과거와 현재를 나누면 너무 진부할 거 같아서 저만의 피렌체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과거일 수도 있고, 상상일 수도 있는 장면들이 혼재된 영화로요. 30년 만에 되돌아간 피렌체에서 젊은 시절의 자신을 좇아다니는 건 환상일 수도 있잖아요. 엔조와 대화하는 씬들도요. 연출하는 입장에서는 쿠폴라에 굳이 안 올라가도 됐고요. 그러니까 현재 석인의 로망이라고 할 수 있는 겁니다. 영화가 말하는 느낌이나 감정은 관객에게 맞겨두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영화 톤, 색감에서도 과거와 현재를 구분하지 않은 거죠. 그 안에서 상징적인 장치들을 넣었습니다. 새똥을 맞거나, 트렁크 바퀴가 빠진다거나, 노숙자들을 만나는 장면들이었죠. 메타포를 그냥 넣지는 않죠.

 

그런 의미에서 시계 장면도 의미심장하더라고요.
마찬가지입니다. 시계는 흘러온 시간, 인생을 의미하는데 그건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는 거죠. 피렌체에 와서 석인은 노숙자를 몇 번이나 지나치지만 다 외면해요. 그러다 마지막에 그에게 시계와 함께 모든 걸 다 주고 갑니다. 그 노숙자도 환상일 수 있겠지만, “아프지 마, 잘 살아”라고 하죠. 그건 석인 자신에게 하는 말일 수도 있고, 죽은 와이프에게 하는 말일 수도 잇는 거예요. 그런 자신 안에 있는 상상이나 세계관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들을 혼재해서 넣었습니다.

영화에서 이해가 안 갔던 부분이, 깜빡깜빡하는 석인의 모습이었습니다. 영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저는 상처한 후에 그런 증상이 생겼다고 짐작했거든요. 그런데 후반에 석인은 절친 엔조의 결혼식에 못간 이후 그런 증상이 생겼다고 말해요. 해고 통보를 받고 나서 사무실을 훑어보면서 과거를 회상할 때 젊은 시절의 석인은 빠릿빠릿했거든요? 석인의 이런 설정은 언제부터 시작된 건지, 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던 건지 설명해주신다면요.
석인이 깜빡깜빡 하는 건 상실감이라고 생각했어요. 어제까지는 아무렇지도 않았다가 어느 순간 확 무너지는 게 중년이잖아요. 어느 날 갑자기 전혀 예상치 못했던 데서 훅 뭐가 들어오면 순간적으로 확 무너지는 것들이 있었던 거 같아요. 석인은 평생을 바쳐온 회사에서 창업주 아들에게 잘립니다. 그러고 나서 느끼는 상실감이 얼마나 컸을까요? 평생 희생을 강요당하면서 살아왔는데 결국 해고당한 거니까요. 석인 입장에서는 만감이 교차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 때문에 여유조차 없어서 엔조에게서 왔던 수백 통의 메일도 스팸으로 처리했거나 못 봤던 거죠.

30년 만에 피렌체로 돌아온 석인은 유정을 만나 “여기는 변한 게 하나도 없네요”라고 말하죠. 어떤 의미를 담았을까요?
피렌체는 똑같아요. 30년 전 석인은 뭔가를 빨리 이뤄내야 했습니다. 그런데 30년 만에 멈춰서서 상실의 고통을 겪고 나니, 엔조가 그때 했던 말들이 마음에 들어온 거겠죠.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에서 현재를 즐기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라는? 지금까지 살아온 삶과 달랐지만, 이제는 좀 그런 면을 수용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겠죠. 피렌체는 변함 없이 똑같은데, 자신은 그런 삶을 살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도 뭍어있을 테고요.

그래서 엔조와 석인을 젊을 때부터 지향하는 바가 다른 캐릭터로 설정하셨군요. 현재의 삶에 만족하는 사람과 정상을 향해 달려가는 성취지향적인 사람으로요. 말씀하신 것처럼 석인은 노숙자도 만나고 수녀님도 만납니다. 엔조가 보낸 거 같기도 하고 신이 보낸 거 같기도 해요.
일단 석인이 이탈리아에 간 목적은 엔조를 만나는 거였어요. 신이 어딨냐는 석인에게 엔조는 늘 “네 옆에 있는 신을 모른 척 하지 마”라고 했었죠. 노숙자는 석인의 삶을 반추하게 합니다. 수녀님은 석인이 엔조에 얽힌 진실을 알게 된 후 만나죠. 생각하기 나름이지만 그런 면에서 수녀님은 엔조가 석인에게 보낸 메신저로 볼 수도 있을 거 같아요. 그래서 이후에 노숙자를 만날 때 그 감정이 결합이 되는 거고요.

마지막으로 유정 캐릭터죠. 엔조야 이야기 설정상 그렇다고 해도, 석인은 젊은 시절을 연기하는 배우가 있는데, 유정만 예지원 배우가 30년 전과 후를 함께 연기합니다. 그렇게 설정한 이유가 있을까요?
가뜩이나 영화가 왔다갔다 하는데, 유정까지 1인 2역 하면 감정이 분산될 거 같았어요. 엔조는 쭉 혼자였기에, 유정이라는 구심점이 필요할 거 같았습니다. 그리고 유정은 외국인과 결혼해 외국에 살고 있잖아요. 그런 분들은 크게 안 변하는 거 같더라고요(웃음). 감정의 분산을 최대한 줄여보려고 그렇게 설정했습니다.

 

유정이 석인의 변화에 실질적인 트리거가 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조금 수동적이라고 할까요?
사실 처음에는 역할이 더 작았어요. 그런데 예지원 배우가 가진 에너지를 보면서 점점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구심점으로 두고 역할을 키웠습니다. 그리고 예지원 배우가ㅣ 가진 예술적인 끼도 있잖아요. 후반부에 한복 입고 춤을 추는데, 한국에서 그런 연기는 예지원 배우 말고는 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대역 없이 갔습니다. 예지원 배우가 어렵다고 승무를 하자고 제안했는데, 절대 반대했죠. 의미가 전혀 다른 춤이었으니까요. 유정은 고향이 그립냐는 질문에 ‘절대 아니’라고 말하고, 행복이 뭐랄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그럼 죽어요?’라고 답하죠. 강한 부정은 긍정이잖아요. 그래서 춤은 살풀이가 될 수밖에 없었던 거죠.

영화 후반부 석인의 오열씬이 압권이었습니다. 응축됐던 감정이 폭발하는 씬인데, 어떤 감정을 담고 싶었는지, 김민종 배우에게 어떤 디렉션을 줬는지 궁금해요.
젊은 시절 석인과 엔조가 걸었던 그 길을 중년의 석인이 다시 걷죠. 젊은 석인이 지름길로 올라가고, 엔조는 정상적인 길을 걸었었는데, 중년의 석인은 엔조가 걸었던 길을 따라 올라가요. 그리고 엔조에게 자신의 응축된 감정을 다 쏟아낸 거죠. 그 장면을 찍을 때 풀샷으로 한번 찍고, 얼굴을 따서 교차로 보여주려고 했는데 감정이 안 맞는 거 같더라고요. 그래서 일단 멀리서 한번 원씬원컷으로 찍었고요. 오열하는 장면은 가까이서 찍는데, 첫 테이크에서 모든 스태프들이 다 울었습니다. 김민종 배우가 그렇게 서럽게 우는데 정말 대단하더라고요. 그런데 미중년의 얼굴이 너무 눈물, 콧물 범벅이 되니까 결국 못 쓰고 두 번째 테이크로 완성했습니다.

 

알겠습니다. 촬영에 대해서 질문드릴게요. 이탈리아에서는 얼마나 머물면서 몇 회차로 찍은 건가요?
14회차로 3주 만에 다 찍었어요.

촬영이 순조롭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에피소드 하나 말씀해주신다면요.
이탈리아는 한 달에 절반 비가 온대요. 그런데 촬영할 때만 비가 안 왔어요. 마지막 두오모 성당을 올라갈 때도 폭우가 내렸습니다. 꼭대기에 도착해서 촬영 시간이 15분 남았는데, 그때 비가 그치고 구름이 밀려나면서 새들이 막 날아다니더라고요. 10분 만에 찍을 수 있었어요. CG가 아니라니까요. 다 찍자 마자 폭우가 다시 쏟아부었죠. 정말 하나님이 도우신 거 같아요.

 

석인은 과거의 자신을 마주하고 친구를 떠나보내줬지만, 현실에서 어디로 나아갈지에 대한 결말은 영화에서 제시되지 않습니다. 이른바 열린 결말인데요, 관객마다 다르겠지만, 감독님은 석인이 어떻게 살아가길 바라세요?
그 마지막 장면에서 석인의 표정은 한 번도 긍정하지 않았던 신에 대한 인정일 수도 있죠. 또 해고당했지만 죽을 수는 없으니 살아야 하잖아요. 그러니 피렌체에 무거운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자기만의 삶을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새들이 자유롭게 나는 장면이 마치 천국처럼 느껴졌거든요. 천국은 아무나 경험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죽어야 갈 수 있는 곳이죠. 비록 살아있는 현실이 지옥 같지만, 그런 걸 내려놓고 현실에서 천국의 삶을 좇겠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주고 싶었습니다.

차기작은 뭐로 준비 중인가요?
차기작은 아까 말씀드린 할리우드와의 작업인데요. LA 폭동 때 2,300개 마트 중에 유일하게 멀쩡했던 한 마트 이야기입니다. 흑인들과 갱들이 오히려 폭동으로부터 마트를 지켰대요. 마트 주인이 흑인들에게 너무 천사처럼 베풀어줬더니 ‘마마’라고 부르며 따르기 시작했대요. 그 작업을 하러 이달 말에 미국으로 갑니다. ‘2025 글로벌 스테이지 할리우드영화제’에서 「피렌체」를 본 관객들의 반응이 폭발적이었는데, 감성이 이렇게나 풍부하나 싶더라고요. 요즘 관객들은 빠른 템포의 이야기에 젖어 있는데, 이 작업은 전작 「그대 어이가리」나 「피렌체」처럼 좀 느린 템포로 갈 거예요. 물론 빠르게 전환하는 장면들도 들어가겠지만요. 김민종 배우는 여기서 한인마트 여주인의 남편 역할을 이미 제안해뒀습니다. 미국에서의 작업에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으면 이전에 써둔 묻지마 폭력에 가족을 희생당한 사람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 계획이고요.

 

이러다가 김민종 배우가 감독님의 페르소나가 되는 거 아닌가요(웃음)?
저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배우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모르겠네요(웃음). 그런데 정말 너무 좋은 배우입니다. 연기 내공이 천재적입니다. 그리고 연기도 연기지만 인성이 말이에요. 인생 살아가는 데 저런 분과 함께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 그렇게 훌륭한 사람이고요. 「피렌체」 상영을 위해 극장을 대관하는 지인들도 많더라고요(웃음).

이탈리아를 비롯해서 해외 개봉도 하나요?
해외 배급사 결정돼서 이탈리아에서는 개봉을 할 겁니다. 지난주에 주한이탈리아대사관에서 영사님, 관장님 등등 몇 분이 찾아왔어요. 영화 너무 잘 봤다며 감사장까지 주시더라고요(웃음). 그리고 「마마」(가제)를 제작하는 할리우드 제작자가 「피렌체」를 감명 깊게 봐서, 북미권 개봉에도 힘을 써준다고 하더라고요. 이번 미국 출장에서 좀 더 이야기를 나눠봐얄 것 같습니다.

 

타깃층인 중년 관객을 포함해 마지막으로 관객에게 한 말씀 해주신다면요.
전작도 그렇고 이번 「피렌체」도 삶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제목만 보고 임팩트 있는 액션 영화를 기대하고 오는 분들도 있을 것 같은데요. 「피렌체」는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영화죠. 바쁘게 사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때로는 주변을 돌아보고 가족들과 좋은 시간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인생이 하루 이틀은 아니잖아요? 자신의 삶도 돌아보고, 지인들을 챙기면서 삶에 늘 감사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루하루 행복을 추구하면서 살면 좋겠습니다. 저 역시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고요.


2좋아요 URL복사 공유
현재 댓글 0
댓글쓰기
0/300

사람과 삶

영상으로 보는 KNOU

  • banner01
  • banner01
  • banner01
  • banner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