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시네마   「왕과 사는 남자」로 만담가 이미지 벗고 흥행 감독 꿈꾸는 장항준 감독

실화 바탕 영화가 관객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허들이 많다. 역사적 상상력을 어디까지 발휘할 것인가, 각색의 과정에서 웃음과 감동의 수위 조절은 어느 선까지 받아들여질 것인가 등등에 대해 창작자들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 대표 만담가로 꼽히는 장항준 감독의 눈을 사로잡은 이야기는 조선의 제6대 왕 단종 이홍위(1441~1457)였다. 단종 하면 보통 수양대군이 먼저 생각난다. 가깝게는 한국 영화의 역대급 등장씬 중 하나로 알려진 「관상」(감독 한재림)에서 “내가 왕이 될 상인가”라고 말하는 이정재 배우가 떠오른다. 멀리서 찾으면 춘원 이광수가 <동아일보>(1928~1929)에 연재한 역사소설 『단종애사』도 있지만, 최근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수양대군이나 한명회, 사육신에 포커스를 맞춰 왕위 찬탈 과정을 재현하는 데 주력했다. 장 감독은 왕위를 빼앗기고 유배 간 이후의 단종이 유배지에서 어떤 생각을 했고, 또 어떤 행동을 했을지에 집중했다. 『조선왕조실록』, 『국조인물고』, 『연려실기술』 등 현존하는 기록을 살폈다. 탁월한 스토리텔러답게 실존인물 엄흥도에 영화적 상상력을 발휘해 마을을 유배지로 유치하려 노력하는 촌장 캐릭터를 입혔고, 무력했던 이홍위가 엄흥도와 마을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 마침내 범의 눈을 갖게 되는 이야기를 창조해냈다. 비하인드 스토리 하나. 영화 후반부 금성대군의 대규모 출정씬에 기마병 설정은 없었는데, 로케이션 중 장항준 감독이 꼭 넣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제작진의 반대에도 다른 제작비를 줄이면서 스펙타클한 액션씬이 완성됐고, 김교호 동문(키스홀스앤컬쳐 대표)이 승마대역 섭외와 지휘 감독을 총괄했다. 영화는 모두가 알고 있는 결말을 향해 가는데도, 관객은 눈물바다다. 단종을 나약하고 불쌍한 어린 왕으로 바라보는 저간의 시선에 물음표를 던지며, 각박해져 가는 이 시대에, 우리가 잊고 지낸 가치를 생각해보게하고 싶었다는 장항준 감독을 만났다.

윤상민 기자 cinemonde@knou.ac.kr

 

 

시사회 반응이 너무 좋아서 흥행 청신호가 켜진 것 같습니다.
너무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사실 영화 한 편 개봉하기까지 몇 년을 준비하잖아요. 반응이 안 좋으면 몇 년 농사를 망치는 데다가, 저를 믿고 따라와 준 배우, 스태프들과 투자자들께 너무 죄송한 일이잖아요. 제가 야구 정말 좋아하는데, 사회인 야구를 하지 않는 이유가 제 에러 하나에 팀이 와해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거든요. 리뷰나 SNS에 호평들이 많아서 정말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주변에서 너무 경거망동 하지 말라고들(웃음).

 

「왕의 남자」 이준익 감독이 극찬하셨다고요.
며칠 전에 「왕의 남자」 팀에서 이준익 감독님이랑 정진영 배우, 「왕과 사는 남자」에서는 저랑 유해진 배우 이렇게 모여서 시사회를 했는데요. 이준익 감독님이 “네가 드디어 엄청난 흥행이라는 걸 해보는구나. 항준이가 이 정도야!”라고 인정을 해주시니까 정말 좋았죠. 「왕의 남자」만큼 될지 모르겠지만, 그럴 수 있다면 영광일 겁니다.

단종을 다룬 작품들이 소설, 뮤지컬 등 다양하게 많았죠. 단종을 영화로 만들고 싶은 이유가 있었는지, 또 기존 작품들과의 차별점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단종 이야기를 하면 보통 계유정난을 떠올리죠. 훗날 세조가 된 수양대군이 나오고, 삶의 역사가 훨씬 드라마틱합니다. 그런데 좋은 작품이 너무 많았잖아요. 만약 누군가 저한테 제작비가 얼마나 들든 그 시대 영화를 만들어 보라고 권했다면, 안 했을 겁니다. 좋은 작품들이 있었는데, 굳이 제가 재생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렇다면 무엇을 봐야 할지 고민했죠. 그래서 계유정난 이후 단종의 삶을 들여다보게 된 겁니다. 사실 단종의 최후까지 기록이 거의 없어요. 몇 줄 수준이었죠. 황성구 작가가 이야기의 뼈대를 잡아놓은 거에 제가 첨삭해서 재구성했습니다.

 

역사적 기록이 적다 보니 픽션이 많아질 수밖에 없죠. 어떻게 작업하셨어요?
정말 힘든 선택이었어요. 엄흥도라는 분이 언제 태어났고 돌아가셨는지는 당연히 기록에 없었고요. 야사를 들춰보다 아들이 셋이란 걸 발견했는데, 이 또한 정확한 건지는 알 수 없죠. 기록에 나와 있는 건 단종이 죽고 동강에 시신이 버려져 몇 날 며칠 동안 썩어갔대요. 그걸 수습해서 장례를 치른 분이 엄흥도고, 이후 평생 숨어 살았다고 하더군요. 조선시대의 가치를 지킨, 누구보다 훌륭한 분이었죠. 영화에서는 그런 가치를 지키는 사람의 모습과 시선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런 면에서 유배를 온 이후 단종의 이야기가 중요했고요. 픽션이 메인 플롯이 된 이유가 바로 그건데요. 이후 역사가 없다는 거예요. 픽션이든 팩션이든 뭔가 이야기를 채워야 하는데, 그것 없이는 10분짜리 영화도 나오기 힘드니까요.

이야기를 새로 상정하는 거나 마찬가진데, 김은희 작가의 도움을 좀 받았나요?
이번만큼 김은희 작가가 안 도와준 적이 없어요. 서로 머릿속에 작기 작품이 있었으니까요. 아마 창작하는 부부라면 다 마찬가지일 건데요. 처음에는 서로 조언해 줬는데, 나중에는 글이 잘 읽히지 않아요. 저는 「시그널」 이후로는 김은희 작가 글을 안 봐주고 있습니다. 「왕과 사는 남자」는 황석우 작가의 좋은 초고가 있었어요. 지금 버전과는 상당히 달라서 많이 수정해야 했죠. 금성대군과 단종의 복위 라인이 이야기의 본격적인 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한명회가 더 깊숙이 개입해야 하고, 엄흥도와도 접촉해야겠더라고요. 엄흥도가 아들로 인해 한명회에게 약점이 잡히면서 의리냐, 생존이냐를 고민하게 만들고, 이 모든 부분들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도록 계속 시나리오를 수정했어요. 향토사학자의 기록을 보면 당시 순흥이 굉장히 큰 지역이었는데, 금성대군의 단종 복위 사건 이후 순흥 사람들이 많이 죽었대요. 또 정사에 기록된 건 아닌데 경복궁 수비대가 200명이 채 안 되었다고 해요. 금성대군이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뒤집어 엎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죠. 논픽션과 픽션을 어떻게 말이 되게 섞을지, 그 간극을 관객이 받아들이게 하는 게 어렵거든요. 역사의 빈틈이랄까요, 그런 것들이 답답할 때도 있지만 창작자들에게 큰 자극을 주는 거 같아요.

유배 후의 기록이 없는 주인공인 단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상상력을 발휘했나요?
당시 단종은 적통 중의 적통이었어요. 할아버지가 세종대왕이고, 아버지가 문종, 할머니와 어머니가 모두 중전인 왕은 거의 없었거든요. 태어나자마자 원손, 왕세손, 왕세자를 거쳐 조선 제6대 왕이 된, 지금으로 치면 헌법적 가치를 가진 유일한 인물이 단종이었던 거죠. 그런데 할아버지,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도 왕위에 오르고 2년 만에 돌아가셨어요. 어머니는 자신을 낳다가 돌아가셨으니, 단종을 지켜줄 사람은 김종서, 황보인 장군 같은 고명대신과 왕족들뿐이었는데, 숙부 수양대군이 방향을 튼 겁니다. 12살 아이가 왕위에서 물러나게 된 거죠. 그런 결과적인 이미지로 우린 단종의 이미지에서 나약함을 떠올립니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1998)를 보면 한 명을 구하기 위해 1개 소대 스무 명이 다 죽어요. 군인들이 피 흘리며 죽어가면서 “제발 라이언이 우리 목숨을 걸고 살릴 가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라고 이야기하죠. 단종은 그런 점에서 마찬가지였어요. 모두가 수양대군은 나쁜 놈, 단종은 불쌍한 임금이라고 하는데, 저 역시 단종은 좋은 사람이었으면 좋겠고, 기왕이면 성군의 자질을 가진 사람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제 기록에도 총명해서 세종의 총애를 받았고, 활을 잘 쐈다고 해요. 지키고 싶은 소년 왕의 이미지가 떠올랐습니다. 그래야 복위 운동 때 멸문지화를 당했던 수많은 신하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은 거니까요.

박지훈 배우는 단종의 현신처럼 느껴집니다. 캐스팅을 위해 삼고초려하셨다고요.
「프로듀스 101」은 못 봤고요. 추천을 받아서 「약한 영웅 class1」을 봤는데, 응축된 분노의 에너지를 담아내는 폭발력 있는 연기에 정말 놀랐습니다. 단종 이홍위는 꼭 박지훈이어야 했죠. 시나리오를 보내고 만났는데 딱히 한다, 안 한다, 말을 안 하는 거예요. 네 번째 만남에서야 하겠다고 하더라고요. 아마 끝까지 거절했으면 다른 배우를 찾았겠지만, 이 정도의 단종, 이홍위는 절대 나오지 않았을 겁니다. 너무 잘했고, 너무 잘난 배우예요. 아, 그리고 캐스팅할 때만해도 지금처럼 팬덤이 엄청나지는 않았거든요. 저는 오히려 배우로서 뚜렷한 이미지가 없는 게 좋다고 느껴서 캐스팅했는데, 그 후에 글로벌 스타(!)가 되셔서 너무 기분이 좋았습니다(웃음).

 

눈빛 연기가 정말 일품이었습니다.
촬영 들어가기 전부터 대화를 많이 했어요. 아마 1:1로 가장 이야기를 많이 나눈 배우였을 겁니다. 눈빛이 초롱초롱해요. 예를 들어 관아에서 한명회랑 붙는 씬에서 이런 톤으로 해주면 좋겠다, 라고 요구하면 톤까지 다 맞춰왔어요. 유해진 배우와 붙는 씬을 보면 관객도 느끼실 거예요. 단종과 엄흥도에 다른 배우는 상상이 안 되죠. 배려하고 존중하고 서로 아끼는 마음이 연기에도 반영이 되니, 감독으로 정말 복 받았다 싶었습니다.

 

엄흥도 역의 유해진 배우는 처음부터 염두에 두신 건가요?
오랜 친구기도 한데요, 시나리오 쓸 때부터 자동적으로 유해진 배우가 떠올랐어요.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시나리오를 건넸는데, 하고 싶다고 말씀해 주셔서 제작진들이 속으로 쾌재를 불렀죠(웃음). 촬영하면서는 유해진 배우가 연기한 엄흥도가 시나리오를 찢고 나왔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엄흥도의 인간적인 면을 강조하고 싶었는데, 유해진 배우가 시나리오보다 훨씬 더 캐릭터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줬어요. 감사하죠. 그런데 유해진 배우 외모야 말로 60년대 한국인의 진짜 외모 아닌가요(웃음)? 옛날 시골 장터에 가면 볼 수 있는 내추럴한 한국인의 모습인데, 요즘은 다들 눈부신 외모의 발전을 이룬 거 같기도 하네요.

영화에서 단종과 엄흥도의 관계가 핵심이죠.
두 사람의 관계는 몇 단계 변화를 거칩니다. 첫 번째는 주인과 손님이죠. 잘 모시면 마을에 이득을 가져다줄 그러다가 다시 한양으로 돌아갈 귀한 손님이요. 그런데 신분을 알게 되면서 그 손님이 애증의 대상으로 바뀌죠. 그러면서도 상전과 아랫사람이라는 관계는 유지되는데요. 밥을 먹으면서 두 사람이 친구가 됩니다. 조선시대에 상상할 수 없는 일이죠. 평생 한 번 못 먹었을 쌀밥을 나눠 먹는 친구 같은 수평적 관계로 내면에서는 이동합니다. 마지막으로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로 간다고 생각해요. 신분이 다르고 여전히 섬겨야 할 대상이지만, 엄흥도가 바라보는 이홍위는 자식 같은 존재가 된 거예요. 그렇게 관계가 변했기에 삼족을 멸한다는 경고에 시신을 수습하러 간 거겠죠. 외피로 보자면 조선의 가장 중요한 가치인 ‘충효’ 같은 것들이 두 사람의 관계를 변화시켰다고 봤어요.

이홍위가 청령포에 들어갈 때 뗏목을 타고 건너가더라고요. 사료에 없는 장면인데 이렇게 설정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지금도 청령포에 들어가려면 관광선을 타고 들어가야 해요. 1457년에는 버려진 섬이었기에 다리도 없었을 것 같았고 그러면 뗏목이 있었을 거라 상상했죠. 얕아 보이지만 건너기는 힘든 강에 단종이 갇힌 겁니다. 그렇게 설정하면서 또 하나의 의미가 부여되었는데요. 단종이 살아남아서 저 강을 건너 다시 집으로, 경복궁으로 돌아가 왕이 된다는 거였죠. 결국 그 강을 죽어서 건너게 되었지만요.

코미디 장르가 장기인 감독이신데, 이번 영화에서 코미디 분배는 어떻게 구성하려고 했나요?
장기죠. 고맙습니다(웃음). 이런 영화에서 코미디는 정말 중요하죠. 저도 나이가 들다 보니 바나나 껍질 깔아놓는 것 같은 작위적인 코미디는 못 보겠더라고요. 엄흥도라는 캐릭터에서 발생하는 코미디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정도 욕심도 있고, 또 인간적이면서도 아들을 출세시키고 싶은 욕망이 있는, 우리와 비슷하게 속물적인 어른이 이홍위를 만나면서 성장하는 거죠. 나중에 목숨을 걸고 강물에 뛰어들어 시신을 건져낼 수 있는 인물로요. 이 영화에서 성장하지 않는 캐릭터는 중심이 될 수 없다고 봤어요.

유일하게 성장하지 않는 인물이 한명회였죠. 전무후무한 캐릭터를 창조하셨어요.
성장하지 않기에 어떤 전형성을 보여줄 것인가가 중요해지죠. 유지태 배우에게 조금 다른 한명회를 해 보자고 제안했어요. 지금까지 우리가 봤던 한명회들은 뭐, 저 같은 사람도 조금만 헬스해서 싸워도 이길 수 있을 거 같았거든요(웃음). 당대 기록을 보면 우리가 방송에서 익히 봐왔던 한명회랑 너무 달라요. 그건 후세에 부관참시 당한 이후 간신으로 기록된 것들을 참고했기 때문이겠죠. 당대 기록에는 기골이 장대하고 무에 능했다고 해요. 얼굴도 잘생겼고요. 사실 개국공신의 손자니까, 조선시대 최고 명문가 자식입니다. 할아버지, 아버지 모두 벼슬을 지냈고, 본인만 급제를 못했어요. 실제 우리가 아는 거랑 달라서 정말 잘 되었다, 내 의도와 더 부합할 수 있겠구나 싶었죠. 떠오르는 배우는 유지태뿐이었고요.

유해진, 박지훈, 유지태, 전미도, 오달수, 안재홍, 박지환, 김민 등등 연기를 정말 잘하는 배우들만 캐스팅하셨어요. 감독님 인복이 너무 좋은 거 아닌가요(웃음)?
인복이라 볼 수 있죠. 그런데 뒤집어 생각해 보면, 그 배우들을 누가 뽑았습니까(웃음)? 감독 10명에게 똑같은 시나리오를 주고 캐스팅해 보라고 하면 다 다른 배우 골랐을 걸요? 제 캐스팅 원칙은 딱 하나였어요. 연기! 궁녀 매화 역할은 사실 비중이 크지 않잖아요. 그 나이대 연기자 중에서 가장 신선하고 연기를 잘하는 배우가 누구인지 고민하다 떠올린 배우가 바로 전미도였습니다. 분량이 적어서 고사할 거라 예상했는데, 하겠다고 해서 너무 놀랐죠. 오죽하면 제가 촬영 감독님께 전미도 배우가 OK 했다고 말했더니 “왜 하겠대요?”라고 되물을 정도였으니까요. 만들면서 분량은 늘어났지만요.

안재홍 배우와는 「리바운드」로 인연이 있죠.
시나리오 주면서 “재홍아, 작은 역할 하나 맡아주면 좋겠어”라고 했는데, 시나리오 너무 재밌다면서 노루골 촌장을 하겠다는 거예요. 특별 출연이긴 한데, 생각해 보니 안재홍 배우가 조그만 수염을 붙인 잘사는 촌장 모습이 너무 재밌을 거 같더라고요. 유해진 배우와 색이 다른 연기를 보여줄 거 같아서 너무 감사했죠.

엄흥도 아들 태산 역에는 김민 배우를 캐스팅하셨어요. 벌써 세 작품을 함께 하셨죠.
아까 말씀드렸지만, 야사에 엄흥도 아들은 3명으로 나와요. 그런데 세 명이나 있을 필요가 없어서, 가상의 인물 한 명으로 통합한 거죠. 유해진의 아들로 나와야 하니까 극단적 미남은 맡을 수 없는 역할이었고요(웃음). 김민 배우가 실제로 보면 잘 생겼는데, 아주 유심히 보면 ‘계량형 20대 유해진’ 같은 느낌이 살짝 있습니다(웃음). 워낙 민이랑 작품 많이 해서 연기 잘하는 건 알고 있었고 사석에서도 자주 만나면서 사람 됨됨이가 좋은 걸 아니까 같이 하게 되었죠.

금성대군 역에 이준혁 배우를 캐스팅하시면서 고귀한 왕족 혈통의 얼굴 라인업을 완성시키셨습니다(웃음).
금성대군은 마지막까지 단종을 지킨 거의 유일한 충신이자 삼촌이죠. 단종 편에서는 유일하게 힘을 가진 인물이었고요. 실현되지 못할 정의를 꿈꾸며 다시 역사의 물줄기를 정방향으로 세우려는 올곧고 왕족의 기품을 가진 인물이 필요했습니다. 이 캐릭터는 무조건 멋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잘 생기고, 기개가 있고, 젊은 배우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이준혁 배우를 하자는 의견이 나왔어요. 흔쾌히 승낙해 주더라고요. 영화에서 말하는 태도나 발성 같은 부분도 감사했지만, 캐스팅 이후 「나의 완벽한 비서」가 터진 겁니다(웃음)! 원래도 인기가 많은 배우였는데, 월드 스타가 된 거죠. 천운이라 생각했습니다.

그 외에도 주연급 배우들이 사육신 등 단역으로 많이들 출연했더라고요. 친분을 악용하신 건가요(웃음)?
장현성 배우는 좀 악용한 케이스죠(웃음). 제작자와 PD가 영화 초반에 고문당해 죽는 양반은 좀 임팩트가 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줬어요. 그렇다고 성동일 배우나 손석구 같은 배우가 고문을 당하고 있으면 뭔가 영화에 몰입이 안 될 거 같더라고요. 그런 면에서 장현성 배우는 너무너무 고문을 당하기 좋은 마스크를 가지고 있죠(웃음). 스무 살 때부터 아는 친구인데, 실제로 절개도 곧아요. 문제가 하나 있었는데, 1~2분 나오는 씬 때문에 촬영장에 몇 번이나 와야 했어요. 까메오라고 하루만 오면 된다고 했고, 얼굴 본을 뜬다는 이야기는 절대 안 했죠. 안 한다고 그럴까 봐서요(웃음). 한다고 결정한 다음에 그 이야기를 했더니 가만히 안 두겠다고 하더라고요. 뭐 어떡해요, 하기로 한 건데. 감독은 사실 그렇게 밀어붙이는 게 있어야 할 때가 있거든요. 미안한 건 미안한 거지만, 까메오 중에 가장 잘한 배우였다고 생각해요. 아이돌 그룹 ‘2am’의 정진운 씨도 영화에서 보면 누군지 못 알아볼걸요? 마지막까지 저항하다가 죽는 충신인데, 관객이 그 장면을 보고 ‘죽어도 못 보내~’라는 노래를 떠올리면 안 되잖아요. 역시나 협곡 전투 씬으로 나흘 동안 고생을 시킨 기억이 나네요.

수고한 배우들에게 감독으로서 한 마디 해주신다면요.
복을 받은 감독이라는 생각이 많았습니다. 인기도에 크게 연연하지 않고, 캐릭터의 싱크로율과 오로지 연기력만 봤는데, 정말 캐스팅이 잘 되었다 싶어요. 이 좋은 시절을 저와 함께 해주셔서 배우들에게 너무 감사합니다.

 

감독으로 장수하는 비결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저도 그거는 연구기관에 의뢰하고 싶어요(웃음). 저보다 잘하는 감독이 너무 많은데, 진짜 내 또래가 몇 명 안 남았어요! 음, 저는 앞뒤가 같아요. 정치하지 않고요. 속에 생각하는 게 저도 모르게 밖에 다 나와 있기도 합니다. 잘나간다고 칭찬하지 않고, 못 나간다고 외면하지도 않아요. 이건 어릴 때부터 그랬던 거 같아요.

호랑이를 장치로 사용하기도 하셨어요.
왕을 표현할 때 호랑이라는 상징성 있잖아요. 마을 사람들이 왕으로 인식하는 건 산중의 왕인 호랑이었죠. 그 호랑이를 이홍위가 죽이면서 마을 사람들이 이홍위가 왕의 자질을 갖췄다고 인정하게 되는 겁니다. 이홍위 역시 그 사건을 통해 잠들어 있던 자질이 깨어나게 되는 거고요.

 

가벼운 질문인데, 호랑이 CG가 좀 아쉽긴 했습니다만(웃음).
몇 달 더 작업을 해야 했는데, 털 있는 짐승을 CG로 표현하려면 한 프레임에 열 시간 넘게 랜더링을 걸어야 한다더라고요. 물리적으로 수정할 시간이 부족했죠. 그래도 누가 연기를 못 했네, 후반부가 엉망이네, 역사를 왜곡했네, 같은 이야기보다 CG 이야기가 나오는 게 다행 아닌가 싶습니다(웃음).

1457년 조선시대에 있었던 이야기로 2026년 한국 사회에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던 건가요?
실현되지 못한 정의의 뒷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실패한 의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어때야 하는가, 진정한 충효란 무엇인가를요. 흔히들 말하잖아요. 돈 벌면 끝이야, 성공하는 게 복수야, 라고요. 그러면 진짜 도덕이든 어떤 가치든 다 없어져도 되는 건가요? 저는 잊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성공한 불의에 대해 박수 치고, ‘괜찮아, 성공했으니!’라고 말하는 게 과연 옳은 태도일까요? 실현되지 못한 의는 잊혀도 되는 걸까요? 우리에게 손가락질할 자격이 있나요? 조선시대에도 일제 강점기에도 그런 일들이 반복되어 왔잖아요. 사실 엄흥도처럼 할 수 있는 사람이 지금 있을까요? 삼족을 멸한다고 해도 친구의 시신을 건질 수 있는 사람이요. 역사에서 세종대왕, 이순신 장군 같은 큰 인물들도 물론 중요하지만, 엄흥도처럼 감춰진 작은 인물을 통해서 역사를 돌아보면서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을 반추하고, 잘못된 것들을 개선하려고 하는 노력들이야말로 중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 그것이 역사와 희생을 대하는 태도로서, 추모의 태도로서 적합한 것이 아닐까 하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관객들이 영화를 어떻게 보면 좋겠다고 생각하세요?
후반작업 하면서도 관객이 영화를 어떻게 봐주면 좋을까 하는 생각은 언뜻언뜻했어요. 실현되지 못한 정의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랄까요. 성공한 역모는 박수를 받아야 하는가, 실현되지 못한 정의는 잊혀야 하는가 같은 것들이죠. 단종의 끝을 끝까지 지킨 엄흥도를 기억해야 하는 거 아닐까, 관객이 영화를 보고 그런 감정을 느끼면 좋겠습니다.

기대 관객 수와 공약도 궁금합니다.
제가 관객 수를 말씀드리는 건 좀 그렇고요. 투자자나 저희를 믿어준 사람들이 손해 보지 않게 손익분기점은 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그래서 좀 한국 영화가 2026년에 다시 살아나는 데 「왕과 사는 남자」도 일조했고, 그렇게 재도약의 밀알이 되어 다른 한국 영화들이 우리 영화의 바통을 이어받아서 모두 잘 되면 좋겠습니다.


3좋아요 URL복사 공유
현재 댓글 0
댓글쓰기
0/300

사람과 삶

영상으로 보는 KNOU

  • banner01
  • banner01
  • banner01
  • banner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