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어느 날, 기자의 메일함에 안산에 거주하는 한 학우의 제보 메일이 도착했다. 스터디가 있는 날이면 누구보다 먼저 학습관에 도착해 강의 준비를 하고, 학우 한 명 한 명의 안부를 챙기며 학과를 이끌고 있으며, 디지털 환경이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과제 제출, 온라인 강의, 시험까지 스스로 해내며 ‘포기하지 않는 공부’가 무엇인지 몸소 보여주고 있는 고령의 학우를 학보에서 취재하면 어떻겠냐는 메일이었다. 82세의 나이에 ‘보건환경안전학과’ 공부를 하고 있는 유대길 학우였다. 곧 4학년이 되는 그는 새해부터 안산학습관 보건환경안전학과 학생회장으로 학우들을 위해 봉사하게 된다. 암 투병이라는 육체적 한계 속에서도 입학 이후 늘 솔선수범하며 젊은 학우들에게는 의지를, 동년배들에게는 희망을 전하고 있다. 눈발이 날리던 1월 12일 안산학습관에서 유 학우를 만났다.
최익현 선임기자 bukhak@knou.ac.kr
늦게 꽃피운 배움의 열망
1944년 충북 괴산군의 작은 농촌 마을에서 태어난 유대길 학우는 가난한 형편 탓에 중학교 졸업 후 곧바로 농사일에 뛰어들어야 했다. 배움에 대한 갈증을 가슴 한구석에 묻어둔 채, 군 제대 후 크라운제과 공무 부서에서 30년간 근면하게 근무했다. 퇴직 후에도 아파트 관리사무소 기계과장으로 25년을 더 일하며 80세가 돼서야 현직에서 물러났다.
긴 세월 생업에 종사하면서도 그는 늘 배움을 가까이했다. 직장 생활 중 환경기사, 보일러산업기사 등 다수의 국가 자격증을 취득하며 실무 능력을 쌓았고, 이는 훗날 방송대 보건환경안전학과를 선택하는 밑거름이 됐다. 마침내 2022년, 그는 독학으로 고졸 검정고시에 합격했고, 이듬해인 2023년 방송대 보건환경안전학과에 당당히 입학했다. 그는 왜 이 분야를 선택했을까?
“평생 기계 설비와 안전 관리 업무를 해온 경험이 있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우리의 건강과 안전한 삶을 위한 학문을 깊이 있게 배우고 싶었어요. 이걸 배워서 어디에다 쓰겠다는 생각보다는 제 삶의 터전이 됐던 분야를 제대로 이해하고 싶었던 거죠.”
물론 80대 나이에 전공 공부는 결코 만만치 않았다. 특히 환경화학이나 보건통계학처럼 기초 지식과 수치 계산이 필요한 과목은 그에게도 큰 벽이었다. 시력과 청력, 기억력이 예전만 못하다는 신체적 한계도 그를 괴롭혔다. 하지만 유 학우는 포기하는 대신 ‘반복’을 택했다. 교재를 수없이 읽고 강의를 되풀이해 들으며, 모르는 용어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 끝까지 파고들었다.
그가 가장 흥미를 느끼는 분야는 ‘대기오염 관리’와 ‘수질 관리’다. “대기와 물은 지구온난화와 생태계 변화에 직결된 요소로, 우리 모두가 깨끗하게 보전해 후손에게 물려줘야 하잖아요. 관련 공부를 하면서 몰랐던 부분을 알게 됐고, 또 무엇을 어떻게 실천해야 할지도 깨달았어요”라고 강조하는 그의 모습에는 진지함이 가득 묻어났다.
암 투병 속에서도 학우들부터 챙겨
유 학우의 도전이 더욱 값진 이유는 그가 현재 큰 병과 싸우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2년 전 요관암 수술로 한쪽 신장을 제거했으며, 최근까지도 방광 종양 수술을 받는 등 힘겨운 항암 치료를 이어가고 있다. 체력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믿는 그는 아침에 동네 운동장을 달리는 일을 멈추지 않고 있다. 인터뷰가 있던 날에도 운동장 다섯 바퀴를 돌았다고 귀띔했다.
이런 강인한 의지는 학생회 활동에서도 빛을 발한다. 올해 안산학습관 보건환경안전학과 학생회장을 맡게 된 그는, 누구보다 먼저 학습관에 도착해 스터디 준비를 하고 학우들의 안부를 챙겨왔다. 학생회 활동이 처음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선배들에게 받았던 도움을 후배들에게 돌려주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기꺼이 봉사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그의 솔선수범은 동료 학우들에게 큰 귀감이 된다. 가사와 직장, 학업을 병행하며 포기하고 싶어 하던 한 여학우가 “직장과 가사일, 어려운 공부로 힘들어 포기하려는 생각이 들 때도 유 학우가 공부하는 모습을 보고 의지를 다지게 됩니다”라고 말했을 때, 그는 배움의 길이 혼자만의 것이 아님을 깊이 깨달았다고 한다.
온라인 강의 수강과 과제 제출 등 디지털 환경은 고령 학우들에게 가장 큰 장애물이다. 유 학우 역시 초기에는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스터디 학우들에게 묻고 배우며 하나씩 익혀나갔다. 그는 “정보화 시대에 디지털 환경 적응은 필수”라며, 중도 포기를 고민하는 학우들에게 “기초부터 단계별로 천천히, 매일 실행하는 습관을 가져보라”고 진심 어린 조언을 건넨다.
유 학우에게 공부는 단순히 지식을 얻는 수단이 아니다. 그는 “공부를 통해 지식을 공유하고 사회와 소통하는 과정 자체가 자기 인격을 형성하는 과정이자 사회화”라고 정의한다. 배움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히고, 삶의 마지막 조각을 완성해나가는 과정인 셈이다.
인생을 완성해주는 대학, 방송대
기자에게 유 학우를 취재해달라고 메일을 보낸 학우는 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후배 학우들에게 ‘나도 하는데, 여러분은 더 잘할 수 있다’며 웃으며 건네는 말은 안산학습관 안에서도 큰 울림이 되고 있습니다. 고령에도 멈추지 않는 배움의 열정은 평생교육의 현주소를 보여주며, 나아가 방송대가 지닌 사회적 가치를 가장 현실적이고 따뜻하게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졸업까지 이제 30학점 남짓을 남겨둔 유대길 학우. 학생회장으로서의 책임감과 학업의 무게가 가볍지 않지만, 그는 방송대를 선택한 것에 대해 “후회 없이 보람차다”라고 말하면서 “방송대는 인생을 완성시켜 주는 대학”이라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인터뷰를 마칠 즈음 유 학우는 학교와 총학생회에 대한 건의가 있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지역대학내 임원 장학금을 좀더 균형 있게 배분해주면 학습관 학우들도 더 신명나게 일할 것 같다. 컴퓨터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지길 바란다. 그리고 학생회에서 지역 내 학습관에도 더욱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
배움에는 끝이 없고, 열정에는 나이가 없음을 삶으로 증명하고 있는 유대길 학우. 그의 4학년 대학 생활이 건강하고 활기차게 이어지기를, 그리고 그의 발자취가 공부의 길에서 주춤거리는 많은 학우들에게 등불이 되기를 응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