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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이렇게 캐릭터에 딱 맞게 붙어 있을 수 있을까? 「왕과 사는 남자」(감독 장항준)에서 단종의 시신을 수습한 실존 인물 엄흥도 역할로 분한 유해진 배우의 이야기다. 모두 아는 이야기지만, 엄흥도는 기록에 단 두 줄만 남아있다. 역사의 빈 공간을 마주하며 유해진 배우는 그 당시 인물들은 어떤 마음이었을지, 어떤 생각이었을지를 그려보기 위해 단종의 능과 그 옆의 엄흥도 동상을 찾아갔고, “단종을 바라보는 엄흥도의 눈빛이 사실적으로 묘사된 모습을 보면서 그때 당시로 들어가 보려고 노력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국 최다 관객 동원 배우 2위’라는 타이틀답게 「왕과 사는 남자」에서 유해진의 연기는 마치 ‘신들린 듯’하다. 영화 전반부를 ‘원맨 차력쇼’ 하듯 끌어가며 웃음을 던지더니, 후반부에서는 기어이 관객의 눈물샘을 터뜨리고 만다. 감정 진폭의 극한을 오간 이번 영화는 아무래도 그의 필모그래피에 한 획을 그은 작품으로 남을 것 같다. 2005년 「왕의 남자」(감독 이준익)에서 감초 조연 ‘육갑’ 역을 맡았던 유해진 배우는 20년이 지나 「왕과 사는 남자」에서 오로지 마을 사람들을 배 불리는 것이 목적인 주연 광천골 촌장 엄흥도로 완벽히 변신했다. 어떤 역할을 맡아도 잘 녹아드는 비결에 대해서는 “끝까지 대본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 그러다 보면 뭔가가 튀어나온다”라고 말하는, 이번 현장에서 모든 배우들의 맏형으로 무게 중심을 지켜준, 그리고 햇빛 좋은 날 현장에 있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는 유해진 배우를 만났다.

윤상민 기자 cinemonde@knou.ac.kr

 

 

영화 보고 많이 우셨다고요.
저도 그렇고 지훈이도 많이 울었어요. 저는 이홍위를 관아에 고발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돌아오는 장면부터 울었습니다. 이홍위가 “나는 더 이상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싶지 않다”라고 말할 때 엄흥도가 “그 안에 저도 있습니까?”라고 묻거든요. 아유, 주책맞게 정말 많이 울었습니다.

 

단종이 관한 이야기는 다양한 장르에서 다뤄졌는데요. 「왕과 사는 남자」에는 어떤 차별점이 있었길래 출연하게 되신 건가요?
역사 기록으로는 너무 간단하게 되어 있더라고요. 우리 영화의 차별점은, 유배지에 와서 그분이 어떻게 마지막을 보내셨을까, 얼마나 쓸쓸히 가셨을까 하는 부분에 대해 역사에 나오지 않는 부분이지만 상상력을 발휘했다는 거죠. 그런 면에서 단종의 마지막 삶을 돌이켜볼 수 있는 점이 다른 작품들과의 차별성이 아닐까 싶습니다.

장항준 감독은 특유의 ‘가벼움’으로 캐스팅을 제안했나요(웃음)?
가볍게 하면 안 할 거 같으니까 마치 진지한 것처럼 하더라고요(웃음). 줄거리를 이야기해주는데, 왜 이렇게 안 까불지, 하고 생각했다가 시나리오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 봤을 때 그런 부분이 좋았어요. 폭넓은 세대가 볼 수 있는 작품이 될 거 같아서요. 2030 세대를 타깃으로 하는 영화가 많이 기획되는 시대인데, 이 영화는 전 세대가 좋아할 것 같은 재미가 있는 영화 같았어요. 굉장히 색다르고 쇼킹한 영화는 아니지만, 요즘 시대에 보기 드문 작품이었죠. 그래서 출연을 결심했습니다.

 

엄흥도라는 실존 인물을 연기하셨어요. 기록도 단 두 줄 뿐이어서 캐릭터 구축이 쉽지 않았을 거 같습니다.
영월 엄씨 가문에서는 정말 대단한 분입니다. 동료 배우 중에 엄씨가 한 분 있는데, 자기 가문에서 제일 존경하는 분이라는 말을 듣고 굉장히 조심스럽긴 했어요. 실제 기록에는 단종 시신을 수습했다는 두 줄밖에 없는 상황에서 이 영화를 만든 건데, 그런 훌륭한 분에게 누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 있었죠. 단종의 시신을 수습하고 평생 숨어 살았다잖아요. 자식은 평안도, 함흥도로 가고, 개인의 삶을 포기한 거죠. 물론 영화를 끝까지 보시면 엄흥도라는 인물이 존경할 만한 분이었단 걸 알게 되시겠지만요. 결말 부분을 잘 전달하기 위해서 초중반까지 무겁게 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위대한 분이잖아요. 그 이야기를 전하려면 앞에 좀 가벼운 부분이 필요했어요. 수위 조절이 어려웠죠. 처음에는 좀 가볍고 재밌게 가야 끝까지 갈 수 있으니까, 재미 요소를 초반부에 넣긴 했는데, 까딱하면 너무 희화될 수 있어서, 감독님과 상의도 많이 하면서 상당히 조심하면서 연기했습니다. 그래도 이 정도는 관객들도 좀 이해해 주지 않을까, 뒤에 이분의 공이 나오니까 요 정도 웃음까지는 이해해 주시지 않을까 하는 선에서 연기하려 노력했습니다.

초반에 호랑이 씬은 물론 CG였겠지만, 아무 것도 없는 상황에서 어떤 상상을 하면서 연기하셨어요?
아유, 진짜 있었으면 못 했을 거예요(웃음). 사실 크게 준비해 갈 거는 없어요. 호랑이 자체가 무서운 동물이니까.

 

영화 초반부는 거의 ‘원맨 차력쇼’로 영화를 이끌어가더군요. 특유의 애드리브도 많이 하셨을 거 같아요.
쌀밥은 시나리오에 있었던 거고요. 기억 나는 건 기와집을 지을 때 엄흥도가 일은 안 하면서 마당에 앉아 무를 씹으며 거들먹거리는 씬이예요. 그 장면에서 대사들은 제가 많이 만들었습니다. 아, 뿌듯한 게 하나 있는데요. 마지막 장면에서 갑자기 단종이 강가에 앉아 물장난을 치는 장면으로 돌아가요. 그 모습을 엄흥도가 슬프게 바라보는 장면이 사실 없었어요. 감독님께 찍어두자고 했죠. 어디 쓸지는 몰랐는데, 완성된 영화를 보고 정말 편집점을 잘 찾았다고 느꼈습니다.

왜 이홍위가 물장난치는 장면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나요?
어, 이건 비하인드 스토리인데요. 스태프 한 분이 촬영 중에 박지훈 배우가 강가에서 손 씻는 걸 찍어서 SNS에 올린 거예요. 영화 내용이 노출되면 안 되는 상황이었는데, 그 사진을 봤더니 아, 어린 단종이라면 이랬겠구나, 싶은 감정이 드는 거예요. 실제 단종이었다면 물가에서 한양을 그리워하며 물장난치다가, 멀리 한 번 바라보기도 하면서요. 그걸 멀찌감치서 보고 있는 엄흥도를 같이 찍으면 좋겠다고 감독님께 말씀드린 거죠. 어쩌면 아버지의 심정일 수도 있을 거 같다고 고집해서 찍었는데, 잘 들어간 거 같아요. 마음이 저렸겠죠. 엄흥도에게 이홍위는 처음에는 모시는 분이었지만, 나중에는 부자 관계로 변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여러 번 그러셨지만, 이번에 특히 신들린 연기 보여준 거 같아요.
뭘 준비한다거나 중점을 두고 연기해야겠다는 생각은 안 했던 거 같아요. 시나리오에 글자로 적혀 나오니, 막연하게 상상했던 슬픔이나 정, 사람들의 온기 같은 것들이 현장에서 스멀스멀 스며들더라고요. 단종의 마음을 마음으로 이해하고 스며들게 표현해야겠다는 생각은 많이 한 거 같아요.

아무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마지막 씬이겠죠?
그렇죠. 어떤 계산도 하지 않고, 오로지 그 마음만 가지고 있으려고 노력했어요. 굉장히 중요한 감정 씬이라 카메라도 여러 대가 있었습니다. 대체적인 동선을 짜뒀지만, 제가 어떻게 움직일지 모르니 촬영팀도 제 감정을 방해하지 않으려 신경을 많이 써줬고요. 너무 구체적으로 보여주면 잔인하잖아요. 이야기 자체의 힘이 있는 영화라 시간이 지나도 감정이 많이 남아있을 거 같은, 그런 좋은 작업이었습니다.

 

박지훈 배우의 눈빛 연기가 큰 도움이 되었을 거 같아요.
그런 거죠. 주로 감정 씬에서 그랬는데요. 문 열고 들어가서 눈 마주치면 벌써부터 눈물이 그렁그렁 고여있는 거예요. 그 모습을 보면 왕으로 보이는 게 아니라 아, 저 어린 것이, 하는 동정심이 확 드는 거죠. 후반부에 서로 눈빛을 주고받는 감정씬들이 많았어요.

그렇게나 호흡이 잘 맞는 배우였는데, 첫 미팅에서 깜짝 놀라셨다고요(웃음).
노란 머리에 뚱뚱한 애가 온 거예요! 저러면 안 되는데 하고 걱정을 많이 했죠. 「약한 영웅 class1」은 제가 안 봐서 연기에 대해서는 몰랐고요. 그런데 촬영장에 왔는데 진짜 반쪽이 돼서 온 거예요. 15kg을 뺐다고요. 그 모습이 너무 안 되어 보일 정도였어요. 현장에서 지훈이는 먹지도 못했거든요. 살을 빼더라도 조금씩 먹어가면서 빼야 하는데요. 끼니마다 밥차에 데려가서 조금이라도 먹이면 다 게워 내요. 정말 고생을 많이 했죠. 이홍위의 모습이 확 나왔어요. 초반에 감정씬을 맞춰볼 때 에너지에도 깜짝 놀랐죠. 발성도 그렇고요. 저는 아역부터 연기한 줄 몰랐거든요. 아역부터 활동한 배우들이 알게 모르게 내공이 있다고 하던데, 박지훈 배우가 진짜 그래서 깜짝 놀랐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장면이었을까요?
절벽에서 떨어지려고 하는 장면에서요. 초반에 찍었는데, 와, 에너지가 되게 좋다고 느꼈어요. 또 엄흥도 아들 태산이가 곤장 맞는 장면에서 한명회에게 “네 이놈! 왕족을 능멸하는가!”라고 소리칠 때도 가볍지 않구나, 진솔하면서도 에너지가 참 좋구나, 하는 걸 느꼈죠. 그 표현들이 진솔한 것이 어쩌면 박지훈이라는 사람과 닮아 있는 거 같아요. 지훈이가 그냥 진솔한 사람인 거죠.

한명회의 악함이 극에 달하는 장면이 바로 곤장 씬이었던 거 같아요.
약간 호랑이 같은 느낌이 있죠. 예전에 실제로 한명회라는 인물이 그랬대요. 풍채에서 나오는 무게감도 있고, 인물도 좋다고 역사서에 기록이 있다고요. 그래서 미술팀이 분장할 때 눈썹도 날카롭게 보이게 했어요. 그런 호랑이 같은 느낌이 발휘된 장면이었죠.

 

노루골 촌장 역의 안재홍 배우 연기를 보니 ‘제2의 유해진’, ‘유해진의 수제자’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수제자가 아니라, 이미 너무 훌륭한 배우죠. 후배지만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는 배우 중 한 명입니다. 자신을 잘 만들어가는 좋은 배우인 거 같아서요. 그런 친구들 보면 제가 더 자극을 받아요. 내가 고여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죠. 그래서 이런 친구들과 연기하면 새로운 자극을 받습니다. 안주하지 말아야겠구나, 그냥 ‘깡’소주를 먹어야겠구나, 아, 농담입니다(웃음).

물에 빠지고 산을 뛰어오르면서 엄청 힘들었을 것 같아요. 청령포 촬영지는 어땠나요?
장소를 정말 좋은 곳으로 선택했더라고요. 사실 집 뒤에 절벽은 CG인데요. 그 앞에 보이는 강과 절벽은 그대로였는데, 너무 좋아요. 물안개가 쫙 피어오르고요. 밤 촬영한다고 불 끄라고 하는 곳도 있었는데, 청령포는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촬영에만 몰입할 수 있는 여건이었죠. 다들 좋아했어요. 그리고 촬영장까지는 큰 차가 못 들어가서 2km 정도 되는 길을 걸어다녔는데요. 지훈이랑 같이 그 길을 걸으면서 작품 이야기도 하고, 쓸데없는 이야기도 하면서 더 돈독해졌던 거 같아요. 지훈이가 단종처럼 묵직한 면이 있거든요. 물론 그 나이 또래의 발랄함도 있지만, 진지함이 있어서 괜찮은 느낌이 있죠. 걸으면서 가까워졌고, 그렇게 감정의 마일리지가 쌓인 거 같아요. 단종이 유배와 엄흥도와 가까워지는 것처럼 자연인 유해진과 박지훈도 그렇게 스윽, 갔던 것 같습니다.

 

단종의 죽음에는 여러 설이 있는데, 영화에서 선택한 결말이 관객에게 좀 파격적일 수도 있을 거 같아요.
그럴 수 있죠. 그런데 저는 이해가 되더라고요. 그쯤 되었으면 서로 관계가 생긴 거잖아요. 그 마당에 저들 손에 죽고 싶지 않다는 단종의 입장이 엄흥도에게는 100% 이해되지 않았을까요? 거기서 아니, 제가 어떻게 그렇게 합니까 라고 하면 또 이야기가 길어질 거 같아서, 현장에서도 논의를 많이 했습니다. 영화적으로 가면, 관객도 영화적 요소로 이해해 주시겠지 하는 마음으로 찍었어요.

엄흥도의 말투가 약간 장항준 감독 말투처럼 느껴지는 건, 느낌적인 느낌일까요(웃음)?
제가 그렇게 가벼웠습니까(웃음)? 사실 감독님을 떠올리면서 한 건 아니고요. 저도 그런 가벼운 면이 있어서(웃음). 또 전반, 중반까지는 밝은 톤 가져가려고 하다 보니 그렇게 보였던 거 같네요.

 

현장에서 장항준 감독은 어떻던가요?
늘 가볍죠(웃음). 그런데 가벼운 것도 좋아요. 사람들 마음을 풀어주니까요. 그렇게 하니까 제가 뭔가 제안을 할 수도 있었어요. 너무 엄격한 감독이라면 배우 입장에서 이야기를 하고 싶어도 에이, 이 정도만 하자, 하고 접죠. 괜히 제안했다가 감독님이 쓸데없는 이야기 하지 마라고 하면 민망하기도 하고요. 그런 면에서 장항준 감독은 정말 열려있고, 또 현명하게 받아줍니다. 가벼움이 있지만 긍정적인 가벼움이라고 할까요?

에피소드 하나 말씀해 주신다면요.
저는 작업할 때 일방적인 건 싫어해요. 감독과 교류하면서 같이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걸 좋아하는 편이죠. 장항준 감독은 개인적으로는 친구니까 필터가 좀 덜한거죠. 이야기할까말까 하다가 했더니 좋은 게 나오고. 그런 면에서 좋았던 거 같아요. 이번에는 장 감독이 글을 정말 잘 쓴다는 걸 알게 되었는데요. 제가 어떤 요구나 제안을 하면, “아, 이틀만 시간 줘”라고 말하고 가요. 저는 뭐 어디 작가들에게 하청을 줘서 시나리오를 수정하는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 제안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면, 본인이 직접 수정하는 거예요. 그리고 제작자, PD 의견을 다 듣고는 또 방 잡고 가서 막 쓰는 거예요. 그렇게 돌아올 때는 어떻겠어요. 또 한없이 가볍겠죠(웃음)? “죽이지 않아?” 이러면서요. 그런데 그렇게 딱 수정해서 온 시나리오가 제가 요구한 것 이상으로 좋았던 부분이 많았어요. 생각이 좀 남다른 감독인 것 같아요.

 

항상 좋은 연기를 보여줬는데, 「왕과 사는 남자」에서는 웃음과 눈물의 진폭이 훨씬 깊었던 것 같습니다. 어떤 이유가 있었을까요?
장항준 감독, 박지훈 배우 두 분의 영향이었던 거 같아요. 장 감독의 열려있음이 제가 의견을 제시할 때 망설임이 없게끔 했고요. 영화에서 제가 많은 배우들을 상대하는데요, 박지훈 배우가 정말 잘 던져줬어요. 눈만 마주쳐도 그 감정이 전해질 정도로요. 촬영하면서도 되게 고마웠고, 보고 나서도 그런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왕과 사는 남자」는 유해진 연기에 획을 그은 작품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기분은 좋네요. 저는 한다고 했는데, 그렇게 보였다면 다행인 거고요. 사실 배우들은 모든 작품에서 다 칼을 갈죠. 그런데 「왕과 사는 남자」가 그런 면을 보여주는 작품 같아요.

 

「올빼미」에서는 왕을, 「왕과 사는 남자」에서는 촌부를 연기했죠. 역할이 극과 극을 오가는데 매번 잘 소화하세요. 연기도 작품마다 다르고요.
에이, 안 그래요. 잘 보면 똑같아요(웃음). 제가 생각하기엔 크게 변한 건 없는 거 같아요. 이야기가 변할 뿐이고 옷만 다르게 입을 뿐이지 전 똑같아요. 저는 그런 걸 숨기고 싶지는 않아요. 다만, 제가 노력하는 부분은 뭐냐면, 그 이야기 속에 잘 녹아 있으면 된다는 거죠. 저 보면 다 똑같이 유해진이죠, 뭐. 그런데 그 유해진이 이야기 속에 잘 있느냐, 좀 불편하게 있느냐 그 차이인 거 같아요. 불편하게 있다면 연기를 못한 거죠. 유해진인데 어색하진 않게 느껴진다면 그 이야기에 녹아든 거고요. 매 작품을 할 때 제 목표는 하나하나의 작은 씬에 녹아 있자, 그 씬의 대사를 내 것으로 만들자는 거예요. 어찌 보면 작은 목표일 수 있는데, 그것들이 모여서 큰 작품을 만드는 거죠. 그러면 영화가 뭘 전달하려고 하는지, 유해진이 그 이야기 안에서 뭘 전하려고 하는지 관객들이 알겠다고 말씀하시지 않을까요?

매번 이야기에 잘 녹아드는 비법이 궁금하네요.
그냥 녹아들려고 하지, 다른 방법은 없는 거 같아요. 「왕과 사는 남자」에서는 2km를 걷는 시간뿐 아니라 촬영 전에 계속 걸리는 씬이 있으면, 되게 오래전부터 계속 시나리오를 봐요. 그러면서 그 안에서 상황이 어떨까를 반복해서 그려보죠. 이 무식한 방법밖에 없는 것 같아요. 대사를 못 외울 때도 많은데요. 어쩌면 그게 제 비법 중 하나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갑자기 드네요. 마지막까지 대본을 안 놓으니까요. 뭔가 있겠지, 뭔가 더 있겠지, 하면서요. 그러면 뭐가 튀어나오거든요.

 

「왕의 남자」의 감초 조연 육갑 역부터 「왕과 사는 남자」의 주연까지, 지금까지 살아남은 비결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제가 생존한다고 해서 그게 생존비결이 되는 건 진짜 아닌 거 같아요. 어떤 배우라도 다 생존하려고 하잖아요. 잘 모르겠어요. 반대로 이야기하면, 내가 연기를 지금까지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를 돌아보는 거죠. 제 생각에는 감독님, 제작자분들과 같이 만들어가는 작업에 서로 도움이 되려고 노력한다는 점인 거 같아요. 그래서 저도 계속 아이디어를 내고, 어떻게든 같이 좋은 작품 만들려는 데 동참하려는 거죠.

잘 생기셔서 그런 건 아닐까요(웃음)?
시사회 때 누가 태블릿에 ‘조선 차은우 유해진’이라고 써서 진짜 깜짝 놀랐네(웃음).

 

오랜 기간 배우 생활을 하면서 지금까지 변하지 않는 신조가 있다면요.
없어요. 그런 건 잘 모르겠어요. 없다가 질문을 받으면 뭐, 없던 게 갑자기 생겨요(웃음)? 그냥 행복하면 좋겠다는 거죠. 제가 제일 행복할 때는요. 햇빛 좋은 날 현장에 있을 때, 즐겁게 촬영했을 때, 그리고 소주 한잔할 때, 그럴 때 행복해요. 그렇게 계속 살면 좋겠어요.

 

지금 유해진에게 하고 싶은 말 한마디!
잘 하자(웃음)!

코로나19 이후 이번 영화까지 6편을 찍으셨더라고요. 한 편 빼고 다 흥행했어요.
벌써 6편이나요(웃음)? 부담감은 있죠. 예전에는 제작비 많이 들어가는 영화를 하면 좋아했어요. 여유롭게 표현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요즘은 제작비 많이 들어갔다고 하면 겁나요. 어떻게 본전을 구할 수 있을지부터, 요즘은 그냥 BEP(손익분기점)만 되면 좋겠다는 바람이 제일 큰 바람이죠. 그런데 「왕과 사는 남자」는 아무래도 타깃 층이 넓다 보니, 많은 분이 보셔서 BEP를 좀 넘겼으면 하는 게 제 자그마한 소망입니다(웃음). 제가 시나리오를 선택하는 여러 기준 중 하나가 재미있느냐 없느냐인데요. 그런 재미가 있는 시나리오였고, 모처럼 여러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왕의 남자」로 천만 관객을 넘은 이준익 감독이 시사회에서 극찬을 남겼죠.
“해진아, 니가 차곡차곡 쌓아나가는 게 너무 좋더라. 이렇게 하려고 차곡차곡 쌓아왔구나”라고 말씀해 주셔서 너무 좋았어요. 제가 많은 영화를 찍었지만, 「왕의 남자」가 지금의 「왕과 사는 남자」를 찍게 만들어준 밑바탕이 되는 작품인 거 같아요. 그 영화의 감독님과 정진영 선배가 오셔서 더 뜻깊었던 자리가 되기도 했고요. 감사하죠.

 

15세기 조선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가 2026년 한국 사회에 전하려는 메시지는 뭐라고 생각하세요?
이 시대라기보다는, 그냥 한 인간의 삶을 보여주는 거 같아요. 슬픈 결말이지만, 거기서 한 인간이 다시 살아나려는 의지를 보여준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좋았습니다.

오달수, 유해진이라는 관객동원력 1, 2위 배우가 참여했고, 설 연휴도 있어서 많은 관객이 영화를 볼 것 같아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이 이야기의 타깃층이 2030만은 아닌 거 같아요. 뭐 2030 관객은 지훈이가 충분히 커버할 거 같고(웃음). 12세 관람가 영화니까 가족이 함께 보면 좋을 것 같아요. 모두가 좋아할 만한 이야기잖아요. 모처럼 폭넓은 세대가 호응할 수 있는 작품이 나온 거 같아요. 이런 영화 만나기가 되게 힘들거든요. 정말 오랜만에 이런 영화가 나왔다는 점에서도 많이 보시면 좋겠어요. 또 「왕과 사는 남자」가 왠지 구정과 어울리는 영화 같기도 해서요. 저만의 생각인가요(웃음)? 뭐 영화가 크리스마스 시즌에 개봉이었다면 제가 크리스마스에 어울리는 영화라고 이야기했겠지만요. 근데 뭐, 명절이랑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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