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삶   정년퇴임하는 강승구 교수(미디어영상학과)

“리더보다는 ‘트레일블레이저(trailblazer)

라는 표현을 좋아하고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트레일블레이저’란 ‘자취를 남기는 자,

새로운 길을 여는 자’ 등을 의미합니다.

남들이 간 적 없는 곳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고 그 방향으로

새 길을 내는 사람, 즉 개척자죠.

우리 모두는 적어도 스스로에겐

리더이자 개척자여야만 해요.”


우리가 어떤 길을 걸을 수 있는 것은 누군가가 그 길을 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원격교육의 지평을 연 방송대의 수많은 교수들 중에서도 유독 새 길을 찾는 데 열심이었던 이가 있다. 방송대학TV 개국 직후인 1997년 부임한 이래 교육매체 혁신을 위해 쉼 없이 달려온 미디어영상학과 강승구 교수다. 퇴임을 앞둔 강 교수를 만나 그가 학자이자 교수로서 열어온 길과 걸어온 길에 대해 들어봤다.


이현구 기자 zuibm@knou.ac.kr


방송대 초창기에 교육매체개발연구소장, 출판부장 등의 보직을 역임하셨습니다

예, 교육매체개발연구소는 현재의 디지털미디어센터의 전신입니다. 제가 소장을 맡은 시절은 방송대 원격강의의 주된 매체가 라디오 방송에서 (방송대학TV 채널을 통한) 텔레비전 방송으로 이행하던 과도기였죠. 또 방송대출판부(현 방송대출판문화원)를 이끌던 시기도 교재 출판 환경이 지금과는 판이하게 달랐습니다.

방송대 원격교육 방식과 매체의 변천사를 최일선에서 겪으신 셈이군요

교육매체개발연구소장으로 있을 무렵엔 기존의 라디오 강의를 조금씩 대체해가던 텔레비전 강의 녹화에 거부감을 보이는 교수님들이 많았습니다. 매체 변화는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이라고 생각한 저는 텔레비전 강의 방식의 장점과 매력을 알리기 위해 노력해야만 했죠. 강의 녹화에 대한 교수님들의 적극적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 교육행정 측면의 고민과 시도도 많이 했었습니다. 텔레비전 강의가 정착된 후에는, 모두가 익히 알고 있는 것처럼, 인터넷을 활용한 온라인 강의 시대로 접어들었죠.


예전의 방송대 캠퍼스 문화는 지금과는 많이 달랐나요

특히 코로나 전후로 많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예전엔 학과 행사나 출석수업을 위해 교수들이 각 지역을 방문했기 때문에 교수와 학생 간의 교류가 더 많았었죠. 덕분에 학생들의 열의를 온몸으로 느낄 수도 있었고요. 방송대는 기본적으로 원격교육기관이지만, 때로는 직접 얼굴을 맞대고 소통할 필요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울지역대학장도 역임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서울뿐인가요? 전북, 울산, 부산지역대학장도 맡았었습니다. 서울지역대학장 시절엔 정관계 인사들을 찾아다니며 남양주 학습센터 부지를 확보하고 교육부를 설득해서 건축비 73억 원을 지원받았습니다. 사회과학대학장으로 재임하던 기간엔 일각에서 제기된 반대를 무릅쓰고 사회복지학과 신설과 점진적인 학과 확장을 주장해서 관철시켰고요. 제 자랑만 늘어놓는 것 같기도 합니다만, 사실이기도 하고 또 제 전문 분야가 광고와 PR이니까요.(웃음) 안 될 일도 어떻게든 되게 하려고 노력해온 전 어떤 면에선 승부사 기질을 타고난 것 같습니다.

 

출판부장으로 계실 때 출판계의 상황은 지금과는 어떻게 달랐나요

그 시절은 저작권에 관한 일반적인 인식이 지금보다 훨씬 희박할 때였고, 심지어 방송대 교재를 무단으로 복제해서 대량으로 판매하던 출판사가 성업 중이었어요. 제가 출판부장일 때 출판부의 여러 직원들과 함께 사방팔방으로 노력해서 결국 방송대 교재의 불법 복제를 막아냈었죠.『역사를 바꾸는 리더십』이라는 제목의 교양도서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전임 출판부장의 임기에 기획안이 통과됐었는데 번역자의 개인 사정으로 진행이 교착 상태에 빠져서 실무자들도 ‘출간을 포기하자’는 말까지 할 정도였죠. 하지만 그냥 포기하기보단 어떻게든 방법을 찾으려 노력하면서 번역자를 설득했고 결국 출판에 성공했습니다. 당시 대통령 당선자가 공중파 TV 프로그램에서 이 책을 소개한 덕분이기도 하지만, 출판문화원 교양도서 중에선 역대 최다 판매량을 기록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 제 임기엔 학술 서적 브랜드인 ‘에피스테메’가 만들어지기도 했어요.


특히 애착을 갖고 계신 교양도서 제목이기도 한 ‘역사를 바꾸는 리더십’이란 무엇일까요

‘역사를 바꾸는 리더십’이라는 말은 좀 거창하게 들릴 수 있을 것이고, 어떤 면에선 역사의 흐름을 읽어내는 게 진정한 리더십이 아닐까 싶어요. 과거에 안주하거나 독단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노력하면서 다가오는 변화를 예민하게 감지해야만 많은 이들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 수 있겠죠.


리더에게는 ‘경청’도 중요한 덕목인 것 같습니다

독단적인 리더십은 위험하지만, 주변에서 들려오는 이야기에 무조건적으로 귀를 기울이는 것도 바람직하진 않아요. 민주주의 사회에서 다수결의 원칙은 중요하지만 다수의 의견이 항상 옳은 것만은 아니니까요. 때로는 많은 사람이 반대하는 길이 옳은 길일 수도 있는데, 그렇다면 리더는 그 사람들을 설득해서 협의를 이끌어내고 조직 전체가 옳은 길을 향하도록 해야겠죠.


그런 리더십을 발휘하기 위해 방송대 안에서도 노력하신 것 같습니다

전 ‘리더’보다는 ‘트레일블레이저(trailblazer)’라는 표현을 좋아하고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트레일블레이저’란 ‘자취를 남기는 자, 새로운 길을 여는 자’ 등의 의미를 갖고 있는 단어입니다. 남들이 간 적이 없는 곳을 향해 발걸음을 옮겨보고 그 방향으로 새 길을 내는 사람이죠. 우리 모두는 적어도 자기 자신에겐 리더이자 트레일블레이저여야만 해요. 내면의 여러 가지 목소리가 일으키는 갈등을 조율하고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많고, 또 삶 속의 수많은 변곡점 앞에서 머뭇거리면서도 결국엔 용기를 내어 첫 발걸음을 내디뎌야 하니까요.

 

연구 분야와 관련해 방송대 강의가 아닌 외부 활동도 많으신가요

특히 광고와 관련해선 몇몇 기업의 광고에 대한 자문위원을 맡은 적도 있고, 한국 광고 전체를 평가하는 협회의 위촉을 받아 심사를 맡기도 했습니다. 광고의 역사를 다룬 공역서인 『서양 광고 문화사』, 국내외 굴지의 기업들의 이미지 마케팅에 대해 다룬 저서인 『성공적인 글로벌 기업 이미지 마케팅』 등을 출간했고, 미디어 아트 같은 주제를 다루는 국외 세미나에 참석하기도 합니다.


VR이나 XR 기술을 활용한 ‘가상실험실습 콘텐츠’에 대해선 어떻게 보시나요? 쌍방향 상호작용을 고려한 교육과정 설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가상실험실습은 방송대를 비롯한 원격교육기관은 물론이고, 일반 대학에서도 역점을 두고 개발하고 있는 분야입니다. 특히 이공계 학과의 경우엔 실험 및 실습의 비용과 위험성을 획기적으로 줄여줄 수 있는 수단입니다. 방송대 같은 원격교육기관의 경우엔 그러한 이공계 학과를 신설할 여건을 마련해줄 수도 있겠죠. 새로운 교육과정 설계가 필요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공감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학문 분야에 속한 전문가들의 융합적 연구가 필요하겠죠. 여담입니다만, 제8대 총장선거에 출마할 때 주요 공약 중 하나가 "XR(확장현실), MR(혼합현실), 메타버스 등의 기술을 활용해 방송대 원격교육을 첨단화, 고도화하겠다"는 것이었어요. 교육매체개발연구소장 자리에서 물러난 지는 오래됐지만, 교육의 방법과 매체에 대한 연구와 고민을 멈춘 적이 없습니다.

 

퇴임 이후의 계획은 세우셨나요

같은 학과의 이영음 교수 인터뷰 기사를 보니 ‘바다로 떠난다’라는 표현이 있더군요. 취미 생활을 위한 환경, 즉 말 그대로의 바다뿐만 아니라 방송대라는 기관 밖의 더 넓은 세상까지도 동시에 가리키는 중의적 표현 같았습니다. 저 역시 방송대를 떠난 후엔 여러 가지 제약은 사라지는 반면에 시간은 많아질 테니 연구에 몰두하고 싶습니다. 크라이슬러, GM, 포드 등 미국 자동차 회사의 ‘기업 이미지 광고’의 설득 효과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이후에도 관련 연구를 계속 진행하면서 출판문화원을 통해 『광고와 철학적 사고』라는 제목의 학술도서를 출간했었습니다. 퇴임 후에는 그 책의 개정판을 집필하면서, ‘기업 이미지 마케팅’에 관한 연구에 매진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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