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4일은 방송대 2026년도 전기학위수여식이 열린다. 짧게는 2년, 길게는 십수 년의 세월을 완주한 이들의 ‘진짜’ 빛나는 별의 순간이다. 지면 2~3면에 학사학위를 받는 이들 가운데 87세 고령 졸업자 신숙자 학우(교육), 열네 번째 학과를 졸업하는 창원의 김춘호 학우(생활체육), ‘노노케어’를 준비하겠다는 부산의 졸업예정자 손정곤 학우(경영)를 만나, 졸업에 담긴 의미를 들었다. 이들은 졸업과 동시에 새로운 학과에 도전한다는 공통점을 보였다. 이번 인터뷰는 지역 학생기자들과 함께했다.
최익현 선임기자 bukhak@knou.ac.kr
초등 졸업 후 70년 만의 도전
야학과 검정고시 거쳐
방송대 졸업까지
가장 늦었을 때가 가장 빠른 법,
인생의 진정한 봄날은 지금부터
1940년 늦은 봄, 충남 서천군 판교면 우라리의 한 평범한 가정에서 1남 3녀 중 둘째 딸로 태어난 신숙자 학우의 유년기는 배움보다는 생존이 우선시되던 시절이였다. 그는 초등학교 졸업 이후 배움에 대한 열망을 마음 한구석에 묻어둔 채 세상 속으로 뛰어들어야 했다. 48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보험설계사로 근무하며 두 딸을 키워냈다.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베테랑으로 인정받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는 늘 채워지지 않는 허기가 있었다.
“젊어서는 그저 먹고사는 데만 급급해 살았어요. 그러다 보니 제가 마치 우물 안 개구리처럼 세상을 너무 모르고 산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어요. 그렇게 세월을 보내다 비로소 더 넓은 세상을 보게 됐고, 방송대라는 존재를 알게 됐어요.”
그의 인생 2막은 ‘야학’을 만나며 시작됐다. 70대 후반의 나이에 야학 중·고등학교 과정에 도전한 그는 한 야학 교사의 헌신적인 지도와 두 딸의 든든한 권유에 힘입어 중졸, 고졸 검정고시를 차례로 통과할 수 있었다. 남들은 은퇴 후 편안한 노후를 즐길 나이에, 그는 비로소 ‘공부의 맛’을 알게 됐다.
“대학생 신숙자, 꿈이라면 제발 깨지 않기를”
검정고시 합격 후, 그는 주저 없이 방송대의 문을 두드렸다. 처음에는 문화교양학과에 입학했지만, 공부하면 할수록 또 다른 학문에 대한 욕심이 생겼다. 결국 3학년에 올라가면서 교육학과로 전과를 결정했다. ‘교사’가 되고 싶었던 어린 시절의 순수한 꿈을 학문적으로나마 이뤄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먼저 졸업할 수 있게 이끌어주신 학과 교수님들께 깊은 감사를 드리고 싶어요. 대학이란 제 인생에서 감히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던 곳이었어요. ‘언감생심’이라는 말이 딱 맞는 거 같아요. 처음 입학했을 때, 제가 대학이라는 곳에 소속돼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르더라고요. 이게 혹시 꿈은 아닐까, 꿈이라면 제발 깨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랄 만큼 행복했죠.”
하지만 80대 중반의 나이에 시작한 전공 공부는 결코 만만치 않았다. 특히 교육학의 복잡한 이론과 생소한 용어들은 그를 끊임없이 시험에 들게 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장애물은 야속하게 쇠퇴해가는 기억력이었다.
과제물 작성하다 병원 신세 지기도
디지털 기기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의 학습자에게 방송대의 원격 학습 시스템은 거대한 장벽처럼 느껴질 수 있다. 컴퓨터 자판조차 칠 줄 몰랐던 그는 야학에서 김민제 선생과 ‘자서전 쓰기’를 시작하며 한글 타자를 익힐 수 있었다.
“잘하지 못하고 속도도 느렸지만, 4년 동안 모든 과제물을 제 손으로 직접 작성해 제출했어요. 하다가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딸들에게 도움을 구하기도 하고, 동아리 학우들을 끈질기게 붙잡고 물어보며 하나씩 익혀나갔죠. 동료들을 무던히도 괴롭혔어요(웃음).”
(서울지역대학에 마련된 ‘어우러짐 글쓰기 연구회’ 동아리실에서 인터뷰를 했는데, 신 학우를 응원하기 위해 함께 자리했던 후배들은 ‘기를 너무 가져갔다’라며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과제물을 완수하기 위해 밤을 지새우는 날이 허다했고, 무리하게 고개를 숙이고 공부한 탓에 목에 큰 이상이 생겨 2년 동안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다. 하지만 병원 치료 중에도 그의 손에는 늘 교재가 들려 있었다.
신숙자 학우의 성실성을 엿볼 수 있는 또 다른 단면은 재개발로 거주하던 서울에서 경기도 안산으로 삶의 터전을 옮긴 뒤에도 매주 수요일마다 뚝섬 서울지역대학 121호실에서 열리는 스터디 모임에 단 한 번도 빠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왕복 3시간이 넘는 거리였지만, 그에게 ‘거리’는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거리가 먼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어요.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기 때문이죠. 제가 조금만 더 일찍 서두르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함께 공부할 수 있잖아요. 서로 어우러져 노력하고 배운 것을 공유하는 그 시간이 제게는 무엇보다 소중한 보람이었습니다.”
‘어우러짐’ 속에서 찾은 인생의 동료들
신숙자 학우가 힘든 학업 과정을 완주할 수 있었던 원동력 중 하나는 바로 ‘사람’이다. 그는 ‘어우러짐 글쓰기 연구회’ 활동을 통해 외로움을 달래고 학업 의지를 다졌다. 이 동아리는 야학 시절 김민제 선생과 뜻을 함께하는 학우들이 모여 만든 곳으로, 대학 공부의 기본인 글쓰기와 독서 훈련을 병행하는 곳이다.
“이곳 동아리 학우들이 제 최고의 친구들이죠. 동네에는 친구가 하나도 없지만, 학교에 오면 함께 웃고 떠들 수 있는 이분들이 있어 외롭지 않았어요. MT가서 교수님들이 구워주시는 삼겹살에 막걸리 한 잔 곁들이며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떠들던 기억, 동아리 회원들과 1박 2일 여행을 다니며 음식 솜씨를 뽐내던 순간들이 제 인생에서 가장 생생하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았어요.”
동료들과의 유대감은 그를 더욱 겸손하게 만들었다. 87세라는 최고령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늘 자신을 낮추며 동료들에게 배움을 구했다. 그에게 배움이란 혼자서 정상을 정복하는 고독한 레이스가 아니라, 손을 잡고 함께 나아가는 ‘어우러짐’의 과정이었다.
이제 신 학우는 2월 24일, 당당히 교육학사 학위를 가슴에 안게 된다. 그는 졸업과 동시에 다시 문화교양학과로 재편입해 학업을 지속할 계획이다. 배움에는 끝이 없으며, 알면 알수록 세상은 더 넓고 아름답게 보이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 이 순간에도 학업의 문턱에서 고민하거나 지쳐있는 후배들에게 진심 어린 조언을 건넨다.
“가장 늦었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이 사실은 가장 빠른 때죠. 저 또한 늦게라도 배움의 기쁨을 알게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해요. 배움에는 정말 나이가 없습니다. 일단 시작했다면 ‘포기’라는 단어는 머릿속에서 지워버리세요. 도전했다면 반드시 실행에 옮겨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시작할 때 가졌던 그 뜨거운 초심을 절대 놓지 마십시오.”
그런 그에게 ‘방송대’가 어떤 존재인지 물었다. 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방송대는 제 인생의 ‘새로운 시작’입니다. 팔십 평생 보지 못했던 세상을 이제야 제대로 보기 시작했으니까요. 저는 오늘도 새로운 출발선 위에 서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가 쓰게 될 학사모가 더욱 빛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