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   에세이로 읽는 과학 대 과학

유전자는 단지 정보일 뿐이며 그것의 발현과 의미를
조절하는 것은 언제나 환경이라는 점에서,
인간 이해는 생물학적 결정론을 넘어서는
인문학적 성찰로 확장된다.


‘7천300만 원’. 머리 좋고 키가 크며 병에 잘 안 걸리는 아기를 디자인하는 데 드는 비용이다. 미국의 유전학 스타트업 헤라사이트(Herasight)는 최근 ‘맞춤형 아기’를 가질 수 있도록 돕겠다고 홍보해 논란의 중심에 섰다. 비슷한 서비스를 하는 기업들은 고액의 비용(5만 달러)을 받고 질병 위험뿐 아니라 신체적·인지적 특성까지 평가해 준다고 홍보하고 있다. 이게 정말 가능할까?


지난해 말 <가디언>은 영국에서 일부 생명공학 스타트업들이 배아의 유전 질환 선별을 넘어, 신장이나 지능과 같은 특성까지 예측하겠다고 나서면서 확산된 논쟁을 다뤘다. 시험관 아기 시술 과정에서 배아의 유전체 정보를 해외 기업에 보내 분석을 의뢰하는 사례가 늘어나자, 이를 두고 ‘신(新)우생학’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하지만 좋은 유전자를 가진 아이를 낳고 싶은 나머지 이런 기업들에 호응을 보내는 이들도 있다. 일부 예비 부모들은 특정 질환 위험이 낮고 학업 능력이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배아를 선택하겠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클리닉 현장에서는 환자가 특정 배아의 이식을 요구할 경우 제어하기 쉽지 않다는 우려도 나온다. 의료 전문가들은 기업들이 부모의 불안을 자극해 과장된 기대를 판매하고 있다며, 생식의 영역이 시장 논리에 종속되는 상황을 경계하고 있다.


당신에게 묻고 싶다. ‘유전자’ 하면 제일 먼저 무엇이 떠오르는가? 뭔가 나의 운명을 압박해 오는 과학적 진실 같지 않은가? 그런데 운명이라는 단어와 과학은 어울리지 않는 듯하다. 하지만 과학은 모든 학문과 마찬가지로 역사 속 시행착오를 토대로 한다. 즉, 과학은 다가오는 불안한 미래를 예측하고자 하는 집단지성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튼 유전자는 나의 미래를 좌우하는 오래된(?) 운명 같다.


우리 몸의 대부분은 물이다. 그 나머지 고형(固形: 굳은 형태) 성분 중에서 가장 많은 건 바로 단백질이다. 단백질은 분자인 DNA(디옥시리보핵산)의 정보를 바탕으로 만들어져 몸의 구조와 기능을 수행한다. 이중나선 구조의 DNA는 우리 몸의 설계도를 담고 있고, 유전자는 DNA에 기록된 생명 정보다. 복잡해 보이지만, DNA→유전자→단백질→몸의 구조와 기능 순으로 기억하면 편하다. 다시 말해 DNA(설계도)에서 유전자(레시피)를 읽어 단백질(일꾼)을 만들고, 그것이 모여 우리 몸의 구조와 기능(완성품)을 이룬다.


유전자에 관한 편견
『나쁜 유전자』(이른비, 2025)의 저자 정우현 덕성여대 교수(약학과)는 “유전자와 관련해 좋았던 기억은 좀체 없다”라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만약 몸이 아프거나 공부를 못하면 나의 특정 유전자 때문이라고 쉽게 치부한다. 하지만 내가 이른바 잘나가면 나의 노력 때문이라고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유전자가 우리 운명을 결정한다는 사고방식은 여러 예가 있다. 그중 가장 위험한 것이 우생학이다. 우생학은 인간 집단의 ‘유전적 질’을 높이기 위해 우수하다고 여겨지는 사람의 번식을 장려하고, 열등하다고 규정된 사람의 번식은 제한하려는 사상이다. 20세기 초 미국과 유럽에서 지적장애인·빈민 등을 대상으로 강제 불임 수술이 시행됐는데, 이는 대표적인 우생학 정책이다. 우생학은 유전 형질이 고정적이고 세대를 거쳐 그대로 전달된다는 강한 유전 본질주의에 기초했다.


우생학자가 된 스탠퍼드대 총장
과학 전문기자인 룰루 밀러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곰출판, 2021)를 단숨에 읽었던 기억이 있다. 읽기 시작한 후 책을 놓을 수 없을 만큼 그 인상이 강렬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어류 분류학의 권위자이자 우생학 지지자였던 데이비드 스타 조던 미국 스탠퍼드대 초대 총장(1851~1931)의 삶을 따라가며, 생명의 다양성을 연구한 과학자가 어떻게 인간을 ‘우열’로 나누는 사상에 이르렀는지를 추적한다. 조던은 “백치들은 모두 자기 핏줄의 마지막 세대가 돼야 한다”라고 공공연히 주장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그의 사고가 개인적 일탈이 아니라 세계를 질서화하려는 분류의 욕망에서 비롯됐음을 드러낸다.


또한 룰루 밀러는 ‘물고기’조차 엄밀한 계통분류학적 실체가 아니라는 사실을 통해 우리가 자연스럽다고 믿는 범주가 인간이 만든 구성물임을 밝히며, ‘우월한 인간’과 ‘열등한 인간’이라는 구분 역시 얼마나 허구적인지 질문한다. 그땐 그랬을지 모른다고 치부하기에는 엄청난 폭력을 저지른 게 바로 유전자 결정론이다. 생각해 보자. 태어났을 때부터 누군가의 인생이 결정돼 있다고 한다면 과연 삶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겠는가.


과학은 절대적 진리가 아니다. 하지만 그 옛날 종교처럼 현대인에게 과학은 맹신에 가깝다. 그래서 우생학 같은 비과학이 맹위를 떨치는 것이다. 『나쁜 유전자』의 저자 정우현 교수는 “우리는 어딘가 모두 비정상이다”라고 선언하면서 과학에 대한 맹신이 우생학적 사고를 낳는다고 비판한다. 그리고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절대적 기준이 아니라 사회가 구성한 선에 불과한 것으로 되돌려놓는다. 돌연변이가 파괴가 아니라 진화의 동력이라면, 차이는 결함이 아니라 가능성의 조건이 된다. 더 나아가 유전자는 단지 정보일 뿐이며 그것의 발현과 의미를 조절하는 것은 언제나 환경이라는 점에서, 인간 이해는 생물학적 결정론을 넘어서는 인문학적 성찰로 확장된다.


유전자 같아도 활성화 여부가 중요
과학의 최첨단인 유전학 중에서도 후성유전학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후생유전학의 연구 대상인 후성유전체란 DNA 염기서열 위에 덧붙는 화학적 표시로, 같은 설계도를 지닌 세포들이 서로 다른 모습과 기능을 갖게 하는 조절 장치다. 인체 세포 수백 종은 동일한 DNA를 공유하지만, 어떤 유전자를 활성화하고 억제하느냐는 이 표식의 배열에 달려 있다. 유전자 자체는 변하지 않더라도 발현을 조정하는 스위치 체계가 달라질 수 있는데, 이를 설명하는 분야가 후성유전학이다. 이 과정에는 DNA 메틸화와 히스톤 단백질의 구조 변화가 핵심 기전으로 작용한다. 특히 히스톤 H3의 화학적 변형은 유전자 발현 조절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히스톤 H3는 DNA가 감겨 있는 뉴클레오솜의 핵심 단백질이다. 그 꼬리 부분의 화학적 변형이 유전자 발현 조절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국내에서도 이러한 히스톤 작동 원리를 규명하려는 연구가 진행되며 질환 치료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후성유전학은 DNA를 하나의 ‘설계도’에 비유하되, 실제로 무엇이 구현될지는 세포 환경과 분자적 상호작용이 좌우한다고 설명한다. 더 나아가 환경 적응 과정에서 형성된 후성적 변화가 다음 세대로 이어질 가능성도 제기되며, 흡연이나 식습관 같은 생활 조건이 그 사례로 논의되고 있다. 한마디로 유전자와 환경을 대립시키기보다 둘의 상호작용을 설명하는 이론에 가깝다.


교육과 소득 그리고 다유전자 지수
그렇다고 후성유전학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도 아니다. 『유전자 로또』(에코리브르, 2023)의 저자 캐스린 페이지 하든 텍사스대 교수(심리학과)에 따르면, 최근 연구는 교육 성취와 연관된 DNA 변이를 합산한 ‘다유전자 지수’가 삶의 결과와 통계적으로 연결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다유전자는 하나의 특징이나 성향이 단일 유전자가 아니라 여러 유전자의 복합적인 작용에 의해 형성되는 경우를 가리킨다. 이 글의 서두에서 언급한 맞춤형 아기도 다유전자를 토대로 한다.


일부 집단에서는 다유전자 지수가 낮을수록 평균 자산도 낮게 나타난다는 분석이 제시된다. 그러나 이는 개인의 부나 학력을 유전자가 직접 결정한다는 뜻이 아니라, 무작위적 유전 조합과 주어진 환경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확률적 경향을 설명하는 데 그친다. 결국 우리는 유전자도 환경도 선택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생애 경로가 DNA에 의해 고정되는 것은 아니며, 이를 절대화하는 순간 우생학적 사고로 기울 위험이 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루비라는 한 여성은 어느 날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옷가게 계산대에 서 있던 루비는 예전에 만난 적 있는 유전 상담사로부터 연락을 받고, 직감적으로 평범하지 않은 소식임을 알아차린다. 잠시 후 다시 걸려온 전화에서 그녀는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돌연변이가 확인됐다는 말을 듣는다. 심장에 치명적일 수 있는 결합조직 이상과 연관된 유전자였다. 통화는 몇 분에 불과했지만, 그 짧은 순간은 루비의 삶을 전과 다르게 분절해 놓았다. 아직 아프지 않지만 ‘위험을 지닌 사람’이 됐다는 사실, 그리고 자녀들 또한 검사를 받아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는 현실이 그녀를 압도했다. 이후 그녀는 논문과 자료를 찾아 헤매며 스스로 전문가가 되려 애썼지만, 과학의 언어는 불확실성과 확률로 가득 차 있었다. 아무도 그녀의 돌연변이를 정확히 해석해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은, 지식의 진보가 동시에 새로운 모호함을 낳고 있음을 보여줬다.


앞의 이야기는 대니얼 데이비스 임페리얼 칼리지 교수(생명과학과)가 쓴 『인체에 관한 모든 과학』(2023, 에코리브르)에 소개된 것이다. 과학은 질병을 예측하고 예방하려는 야심을 키워가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는 ‘가능한 미래’를 먼저 부여받은 채 현재를 살아가게 된다. 루비는 실제 환자가 아니라 잠재적 환자였고, 그녀의 삶에서 달라진 것은 몸이 아니라 인식이었다. 유전자 정보는 우리를 더 안전하게 만들 수도 있지만, 동시에 정체성과 선택을 흔드는 무기가 된다. 데이비스 교수는 과학의 발전이 불러올 이런 상황이 결코 예외적 사건이 아니라고 본다. 언젠가 우리 모두가 유전 상담사의 전화를 받는 자리에 설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 「가타카」(1998, 앤드류 니콜 감독)는 ‘우리는 DNA인가, 그 이상인가’라는 질문을 제기한 수작이다. 영화 제목이기도 한 ‘가타카(GATTACA)’는 우주항공 회사의 이름이다. 하지만 동시에 인간을 네 개의 문자 조합으로 환원하는 체계를 은유한다. 즉, DNA를 구성하는 네 가지 염기 G(구아닌), A(아데닌), T(티민), C(사이토신)의 문자만으로 이뤄진 인공어인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영화 포스터에서 특정 글자(G·A·T·C)가 강조되며, 주인공이 그 결정론을 넘어 자신의 의지로 운명을 개척하려는 서사가 제목의 기계적·결정론적 이미지와 대비를 이룬다는 점이다. 주인공 빈센트 프리맨은 “운명을 결정짓는 유전자는 없다”라고 강조했다.

 

‘유전자냐, 환경이냐’는 지금도 격론 중이다. 인류는 언제쯤 이러한 흑백논리를 벗어날까?

서울시립대에서 수학을, 서울대 대학원에서 철학(윤리학)을 공부했다. 브릭에 ‘생태 에세이’를 기고하고 있고,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지배한다』, 『인공지능, 인간을 유혹하다』(공저) 등을 썼으며, 『기나긴 수학의 짧은 역사』 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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