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부터 4·3 영화를 꼭 찍어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었던 건 아닙니다. 이데올로기의 광풍과 남북문제는 전작「남부군」,「남영동 1985」에서 치열하게 쏟아냈으니까요. 누군가는 만들겠지, 하는 마음으로 기다렸는데, 아무도 만들지 않더군요. 시나리오를 받고, 이름을 잃어버린 한 여자가 진짜 자신의 이름을 찾아간다는 모티브에 완전히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아직 정명(定名)을 얻지 못해 공식적인 이름 없이 떠도는 ‘제주4·3사건’의 핏빛 현실과 닮았다고 느꼈거든요.”
팔순 노장 정지영 감독이「내 이름은」(4월 15일 개봉)으로 돌아왔다. 제주4·3사건을 다룬 첫 상업영화다. 4·3은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를 시작으로 1948년 4월 3일부터 6년 동안 제주도민 3만여 명이 국가폭력으로 희생당한 사건이다. 지금까지 한국 영화계는 4·3을「지슬」(감독 오멸, 2013) 같은 소수의 독립영화나 다큐멘터리「비념」(감독 임흥순, 2012) 같은 한정된 틀로 다뤄왔다.

4·3이 공론장에 올라온 1998년 이후부터 제주도민 사이에서는 4·3을 더 많이 알릴 대중영화가 나와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2021년 3월,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와 제주4·3평화재단이 주최한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당시 오라리 방화 사건을 다룬「내 이름은」이 대상을 받았고, 정 감독이 각색에 1년 6개월을 들여 3개의 시간대가 교차하는 탄탄한 서사 구조의 이야기로 완성했다.

1998년 봄, 촌스러운 이름이 최대 콤플렉스인 18세 소년 ‘영옥’(신우빈)은 서울에서 사고를 치고 제주로 전학 온 ‘경태’(박지빈)의 눈에 들어 난생처음 반장이 된다. 하지만, 경태의 꼭두각시로 전락해 단짝 ‘민수’(최준우)와 멀어지고, 친구에게 ‘뺨 때리기’를 지시하며 무기력하게 폭력을 방관한다. 손주뻘 아들 영옥을 홀로 키우는 엄마 ‘정순’(염혜란)에게도 1949년의 봄이 다시 찾아온다. 열 살 이전의 기억이라곤 없는 그녀는 봄만 되면 까닭 모를 현기증과 눈부심으로 병원 신세를 지고 있다. 서울에서 온 의사(김규리)의 도움으로 어린 시절 기억의 파편들을 하나씩 떠올리게 되고, 반세기 넘게 가슴 깊이 묻어뒀던 비밀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내 이름은」은 독특하게도 4·3과 학교 폭력을 병렬 구조로 끌어간다. 영화 초반부는 아들 영옥이 전학생 경태를 만나며 학교에서 벌어지는 폭력의 양상을 그리고, 후반부는 엄마 정순이 겪어야 했던 참상으로 이어진다.

이에 대해 정지영 감독은 “국가 등의 집단폭력이 일어나는 메커니즘은 학교 폭력과도 비슷하기에 4·3과 학교 폭력을 병치시켰어요. 영화 후반부에 나오는 4·3 당시의 폭력은 제가 보기에도 너무 끔찍합니다. 그걸 느닷없이 보여주면 관객에게 충격적으로 다가갈 것 같아서 학교 폭력이라는 완충지대를 설정했습니다. 또 하나의 이유는 폭력의 세습화를 보여주기 위해서예요. 과거의 폭력은 보이지 않으니 멈췄거나 사라진 것 같지만, 아닙니다.『순이 삼촌』에도 나와요. 어린아이보고 할아버지 뺨을 때리라고 하거든요. 그게 1998년의 학교에서도 나타나는 거죠”라고 설명했다.
영화에는 4·3 외에도 5·18광주민주화운동, 베트남전쟁 장면도 조금씩 나오는데, 정 감독은 “사실 그것이 우리들의 얼굴이라고 생각했어요. 대한민국이 그렇게 살아왔다는…”이라며 말을 아꼈다.
한국 현대사에 새겨진 폭력의 역사는 정순이 78년간 간직해왔던 비밀을 통해 민낯을 드러낸다. 제주 올로케이션으로 제작된「내 이름은」에는 예전 제주 가옥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제주민속촌 전경부터 바다, 오름, 메밀밭까지 제주의 아름다운 풍광이 담겨 있지만, 4·3으로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가 돼야만 했던 당시 제주도민들의 이면의 아픔이 느껴져, 처연한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내 이름은」에는 특정 투자자가 없다. 자본의 잣대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크라우드 펀딩 방식을 택한 것. 펀딩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 소설 『순이 삼촌』을 쓰고 보안사에 끌려가 고문을 당했던 현기영 작가부터 함세웅 신부,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등 사회 원로들이 앞장섰다. 역대 극영화 펀딩 최고 수준인 9천778명이 십시일반 해 한 달 만에 4억 원을 모았다.
정 감독은 “엔딩크레딧에서 끝없이 올라가는 그 이름들 덕분에 4·3을 소재로 한 첫 번째 상업영화를 찍을 수 있었습니다. 60~70억 원은 투입해야 할 영화인데 연기자도, 스태프도 모두 희생해 줬고요. 제주도민은 4·3을 알지만, 많은 국민은 몰라요. 아픈 이야기이지만, 많은 분들이 봐야 하는 이유죠. 영화를 보고 4·3이 무엇인지 찾아보게 만드는 것이 저의 가장 큰 바람입니다”라고 말했다.

「내 이름은」의 가치는 해외에서 먼저 알아봤다. 제76회 베를린국제영화제 포럼 부문에 공식 초청돼 “제주의 비극이 세계의 치유가 되다”라는 압도적 극찬을 받았고, 이재명 대통령 부부를 비롯해 12만 관객이 봤다(4월 23일 기준).
정 감독의 마지막 말이다. “아직도 이름을 정하지 못한 4·3이 남긴 트라우마로 앓고 있는 제주도민이 많습니다. 그런데 1998년의 학생들은 그 폭력을 극복했어요. 무덤을 찾아가고, 우정을 회복하면서 연대했거든요. 과거의 비극에만 매몰되지 않고, 세대를 건너뛰며 인식의 변화를 쫓아가다 보면, 마침내 우리는 추모와 화해라는 목적지에 닿게 될 것입니다. 이제 관객 여러분의 연대를 기다리겠습니다.”
윤상민 기자 cinemonde@kno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