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나물 리뷰]는 ‘영화가 나에게 물었다’의 앞 글자를 딴 연재로 최근 개봉한 영화를 리뷰하는 기사다. 한 편의 영화에는 하나의 세상이 담겨 있다. 감독은 자신이 창조한 세상에서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영나물 리뷰]는 영화가 던지는 그 질문에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정답은 없다. 백 명의 관객에게서 백 개의 영화평이 나올 수 있는 것이 영화의 매력이기에. 세상 어딘가에서 영화를 보며 고민하는 누군가에게 닿기 바라는 마음으로, 이야기 나누고 싶은 마음으로 띄우는 씨네마 레터.

「군체」(감독 연상호)의 기세가 심상치 않습니다. 제79회 칸 영화제 미드나이트 스크리닝 부문에서 월드 프리미어로 선보였는데, 5월 21일 국내 개봉 이후 채 일주일이 안 되어 200만 관객을 돌파했습니다. 손익분기점이 300만 명으로 알려져 있는데, 해외 124개 국가에 선판매된 걸 감안하면 이미 투자금 회수는 끝났고, 얼마만큼 흥행할지가 관건인 듯합니다.
군체는 연상호 감독의 세 번째 좀비 영화입니다. 애니메이션 「서울역」까지 치면 네 번째고요. 일부 언론에서 군체를 두고 연상호 감독의 좀비 3부작을 완성하는 작품이라고 하는데, 좀비를 이렇게나 ‘애정’하는 연상호 감독이 앞으로 좀비 영화를 ‘끊을’ 것 같지는 않아 보입니다.
보통 감독이 한 편의 영화를 만들고 차기작까지 4~5년이 걸리는 데 반해, 연상호 감독은 다작 스타일입니다. 2011년 걸출한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으로 데뷔 후 현재까지 14개 작품에서 메가폰을 잡았습니다. 1년에 한 편꼴입니다(각본, 프로듀서로 참여한 작품 제외). 글로벌 OTT 넷플릭스의 러브콜을 오랫동안 받으며, 한때는 영화판에서 ‘넷플릭스의 아들’로 불리기도 했죠(웃음). 놀랍게도 한두 편을 제외하고 흥행했고, 평론계에서도 ‘연니버스’(연상호 감독의 세계관)를 구축했다는 호평을 받고 있어요. 차기작으로 두 편을 준비 중인데, 내년에 한 편이 나온다고 합니다.

전지현·구교환·고수 등 초호화 캐스팅
서설이 길었습니다. 본격적으로 영화 이야기를 해볼게요. 서울 도심의 초고층 빌딩에서 원인 불명의 집단 감염 사태가 발생하고, 건물은 경찰차 벽으로 봉쇄됩니다. 생존자는 9명입니다. 불의라곤 참지 못하다 교수 재임용 심사에서 탈락한 권세정(전지현), 까칠한 권세정의 재취업을 도우려는 살가운 전 남편 한규성(고수), 하반신 마비 누나 최현희(김신록)를 지극 정성으로 챙기는 빌딩 보안 요원 최현석(지창욱), 육상선수 출신 60대 노인(김재록), 40대 회사원(황재열), 일진 여학생(채서은), 왕따 여학생(이담희), 서울경찰청 대테러 팀장 이봉석(이중옥) 등이죠. 조금 더 있긴 한데, 영화가 진행되면서 예상했던 것처럼 생존자 수는 점점 줄어듭니다. 구조대만을 기다리던 생존자들은 자신의 몸에 백신을 주입했다고 신고한 서영철 박사(구교환)을 찾아 옥상으로 오면 구출해 주겠다는 이봉석 팀장의 말을 믿고 목숨을 건 탈출을 시도합니다. 생명공학자인 권세정 교수가 감염자의 행태를 분석하면서, 생존자 그룹의 리더가 되는데요. 희망도 잠시, 서영철 박사는 감염자들을 조정하면서 이들의 탈출을 막습니다.
생존자의 리더 역을 맡은 전지현 배우는 「암살」(감독 최동훈, 2015) 이후 무려 11년 만의 스크린 귀환인데요, 어색함은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특유의 차진 욕설도 없고, 화려한 액션도 없이 생명공학자 권세정 교수 역할을 맡았는데, 극을 이끌어가는 중량감이 상당합니다. 어느덧 충무로의 중견배우로 자리매김한 것이겠죠. 이번 영화에서는 특히나 전지현 배우의 클로즈업이 많이 담겼는데요. 이에 대해 연상호 감독은 “이 영화에서 가장 걱정했던 부분은 끊임없이 룰이 변화되고, 관객이 그걸 따라가야 한다는 점이었다. 룰을 놓치는 순간 관객은 영화를 즐길 수 없게 되는데, 그러다 보니 룰을 찾아내고 깨닫게 되는 얼굴을 권세정의 얼굴로 투영해야 했다. 명확한 쉼표, 마침표처럼 영화 내에서 반복적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는 작품적인 이유가 있다”라고 설명하면서도, “영화배우가 스크린에 나와야 영화 아닌가요?”라고 팬심을 드러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습니다.

메인 빌런 서영철 박사를 연기한 구교환 배우의 연기는 또 어떻고요. 출연하는 영화마다 관객에게 각인되는 캐릭터를 갱신하고 있는 그의 능력은, 「군체」에서도 어김없이 발휘됩니다. 모든 사람의 지능이 연결되는 신인류를 창조하겠다는 과학자의 신념으로 좀비들 사이를 유유히 걸어 다니는 서영철 박사의 모습은 조금만 오버스러우면 비호감으로, 조금 덜 진중하다면 캐릭터 장악력이 낮다고 느껴질 수 있는데, 구교환 배우는 과연 그 절충점을 찾아 즐기는 것처럼 보입니다. 관객에게 공포와 짜증을 동시에 유발하면서요.
서로가 애틋한 남매 역을 맡은 김신록, 지창욱 배우의 연기는 불가항력의 위기에 처했을 때 나오는 ‘찐’ 현실 남매의 모습입니다. 다리가 불편한 누나를 캠핑용 장비에 앉혀 영화 내내 업고 다니는 남동생의 모습에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지거든요. 액션 전문 배우라고 할 만큼 뛰어난 지창욱 배우가 감염자들과 벌이는 액션씬들은 타격의 쾌감을 스크린 밖으로까지 생생하게 전해줍니다. 초반에는 곤봉으로 감염자들을 물리치다가, 비극적 사건 이후 식칼 액션으로 진화하는데요. 연상호 감독은 곤봉 끝에 식칼을 달고 마치 ‘청룡언월도를 휘두르는 관운장’처럼 표현하고 싶었다고 해요. 스크립트에는 지창욱 배우의 액션 잘 보여주려고 여러 컷으로 쪼개 준비했는데, 현장을 ‘날아 다니는’ 모습을 확인하고는 망원렌즈로 교체해 롱샷으로 따라가기로 즉석에서 바꿨다고 합니다. 청룡언월도 대신 식칼만으로도 충분해서요.

주연 배우들 외에도 보기만 해도 화가 솟구치는 일진 학생들, 백신(서영철 박사)을 확보하기 위해서 생존자들을 버리고 가는 형사 등의 인물들이 보여주는 위기 상황에서의 인간 군상 모습들은 연상호 감독 전작의 캐릭터들과 큰 차이는 없어 보입니다. 다만, 「군체」 스토리라인과 캐릭터는 연 감독의 전작에 비해 확실히 신파조를 덜어냈습니다.
집단지성 공유하며 진화하는 K-좀비의 탄생
화려한 캐스팅을 차치하고도, 「군체」는 전작들을 뛰어넘는 한층 진화한 좀비를 구현했다는 점에서 박수를 받아 마땅합니다. 전작 「부산행」(2016)과 「반도」(2020)에서 오로지 앞으로 질주하는 ‘클래식’한 좀비가 등장했다면, 「군체」의 좀비들은 집단지성을 공유하며 진화합니다. 연상호 감독의 말에 따르면 “처음으로 좀비가 주인공인 영화”입니다.
처음에는 짐승처럼 기어다니던 감염자들은 점점 진화하며 두 발로 걷기 시작하고, 사람을 식별하며 무리를 지어 생존자들을 공격합니다. 생존자의 모습을 모방하는 좀비들도 생겨나는데요. 연상호 감독은 개별적이 아니라 군집으로 움직이는 새로운 유형의 좀비를 만들기 위해 기존 브레이크 댄서, 스턴트맨 외에 3개의 현대무용팀을 섭외해 조언을 구했다고 합니다. 아이디어를 내고 표현하는 데 거침없는 현대무용팀 덕분에, 연 감독이 시나리오 쓸 때는 상상조차 못 했던 좀비의 아방가르드하고 아크로바틱한 움직임이 탄생하게 된 거죠.

새로운 움직임을 보이는 좀비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제목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군체’는 ‘무리 군(群)’에 ‘몸 체(體)’로 이뤄진 단어로 여러 개체가 모여 하나의 집단 또는 유기체처럼 움직이는 것을 뜻합니다. 개미 집단처럼 개별 개체들이 하나의 덩어리를 이뤄 해동하는 생물 집합체가 군체인 거죠. 연상호 감독은 ‘황색망사점균’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해요. 페로몬으로 소통하는 개미도 조사했다고 합니다. 군체의 특성은 각 개체가 떨어져 있어도 브레인 네트워크를 공유하면서 집단지성을 획득해 간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연상호 감독이 처음 접한 군체인 황색망사점균을 조사할 때만 해도, 「군체」에 좀비를 등장시킬 계획이 없었다고 합니다!
연 감독은 오래 시나리오 작업을 함께 해온 최규석 작가와 오늘날 사회의 잠재적 공포는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고 해요. 초고속 정보 교류를 통해 생겨나는 집단적 사고와 거기서 배제되는 개별성 같은 키워드들이 떠올랐답니다. 이쯤에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게 있죠? 네, 맞습니다. 바로 인공지능입니다. 생성형 인공지능은 최적의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 끊임없이 연산합니다. 이때 좀비물로 만들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해요. 집단으로 교류하면서 잘못된 방향이든, 옳은 방향이든 계속해서 업데이트되는 좀비로요. 끈적끈적한 점액질로 소통하는 새로운 좀비의 모습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옵니다. 어쩌면 연 감독은 관객들에게 우리가 인공지능에 대해 느끼는 거부감과 이질성, 위협감을 집단지성을 공유하며 진화하는 좀비로 표현한 것은 아닐까요?
칸 영화제에 참석한 외신기자들의 질문도 이 부분에 집중됐다고 해요. 최적의 결과값을 도출하기 위해 끊임없이 연산하는 인공지능의 모습이, 재난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집단지성을 공유하는 좀비와 인간의 대결로 그려진 거죠. 흥미로운 지점은, 좀비가 아주 원시적인 상태에서 시작해서 급격히 진화하는 데 비해, 생존자 그룹은 문명적인 것에서 야만으로 퇴화하며 소통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겁니다. 아마도 연 감독은 인간이 퇴화하고, 퇴화해 마침내 문명이 사라졌을 때 남는 것은 무엇이었는지, 아마도 그것이 그가 오랫동안 천착해 온 인간성의 핵심이 아니었을까를 생각하면서 좀비와 인간을 대비한 것 같습니다.

군체의 특성 중에 돌연변이 생성이 있습니다. 하나의 성질로 이뤄졌다는 점이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으니, 항상 돌연변이를 만들어 살아남기 위해 노력한다는 거죠. 다수가 하나의 의견으로 모일 때라도, 소수 의견을 보호해야 한다는 연 감독의 주제 의식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영화의 엔딩 장면에서 나오는 돌연변이에 대해서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더 이상 말하지 않겠습니다(웃음). K-좀비의 새로운 진화를 확인하고 싶다면, 지금 극장으로!
윤상민 기자 cinemonde@kno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