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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5월이 돌아오면 마음부터 무거워진다. 5·18을 생각할 때마다 우리는 아직도 그 역사를 다 말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공식 명칭으로는 제주 4·3은 ‘사건’이고, 5·18은 ‘민주화운동’이다. 그러나 행정의 이름이 역사의 깊이와 사람들의 고통, 저항의 성격까지 모두 담아내지는 못한다. 제주 4·3은 국가폭력의 비극이었고, 5·18은 국가폭력 앞에서 공동체를 지키려 했던 시민들의 항쟁이었다.

 

나는 1980년 당시 스물셋 청년이었다. 그 시간의 광장 가까이에 있었고, 예비군 동원훈련에도 참여했다. 그러나 길이 막혀 시내로 더 깊이 들어가지 못했다. 열흘쯤 뒤 돌아와 보니 총알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긴 세월이 지난 후 나는 오랫동안 5·18 해설사 역할을 맡아 오월의 현장을 설명하는 일에 참여했다. 뒤늦게라도 빚을 갚고 싶은 마음이었다.

 

오월 광주는 단지 저항의 현장만이 아니라 피와 밥을 나눈 생명공동체였다. 사람들은 위험 속에서도 서로를 숨기고, 먹이고, 살렸다. 그러므로 5·18은 민주주의를 향한 운동이면서 동시에 생명을 지키기 위한 시민항쟁이었다. 국립 5·18 민주묘지가 지금도 현재형의 공간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또 망월묘역은 더 특별하다. 국립묘지가 정리된 기억의 자리라면, 망월은 아직도 살아 움직이는 현대사의 현장이다.

 

제주 4·3과 5·18은 서로 다른 지역의 사건이지만, 그 바탕에는 닮은 상처가 있다. 국가폭력 앞에 민간인이 희생되었고, 왜곡과 침묵을 견뎌야 했으며, 뒤늦게라도 진실과 명예를 회복하려는 노력이 이어져 왔다. 여기에 4·19와 6월항쟁까지 놓고 보면, 이름은 달라도 모두 불의한 권력에 맞서 민주주의를 지키려 한 민중의 역사였음을 알게 된다. 이 역사를 세계가 더 깊이 바라보게 된 데에는 문학의 힘도 컸다. 한강 작가의 작품과 노벨문학상 수상은 이 땅의 상처를 세계 독자들이 함께 읽는 인간의 문제로 넓혀 놓았다.

 

올해 우리 지역대학의 5·18 행사는 ‘함께 나누고, 함께 지켜낸 5월’을 슬로건으로 삼았다. 광주·전남 지역대학에서 기념식을 마친 뒤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찾아 먼저 가신 님들의 삶을 기억하고, 이어 ‘민족민주열사묘지’를 찾아 현대사의 고민과 과제를 다시 생각해 보고자 한다. 이런 자리는 오월을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오늘의 삶과 연결된 현재형 기억으로 되살리는 계기가 될 것이다.

 

묘역에 잠든 초등학생, 중고생, 청년, 장년, 노년의 삶을 우리는 다 알지 못한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는 꿈이 있었고, 가족이 있었고, 계속 살아가려던 일상이 있었다. 그 삶들이 국가폭력으로 끊겼다. 살아남은 우리가 바쁘다는 이유로 그 이름들을 충분히 기억하지 못하는 일은 늘 미안한 일이다.

 

5·18은 특정 세대나 지역의 기억으로만 머물 수 없다. 오월을 다시 읽는 일은 과거를 추모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오늘의 시민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묻는 공부가 돼야 한다. 민주주의는 교과서의 문장으로만 익혀지지 않는다. 아픈 역사를 이해하고,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며, 공동체의 책임을 자기 삶의 문제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삶의 가치가 된다.

 

역사는 민중의 봉기를 자주 ‘폭도’라고 불러 왔지만, 시간이 지나면 드러난다. 폭도가 아니라 시민이었고, 난동이 아니라 저항이었으며, 혼란이 아니라 존엄을 지키려는 몸부림이었다는 사실 말이다. 다시는 이런 역사에 ‘폭도’라는 이름이 붙지 않는 나라, 기억이 사회를 바꾸는 힘이 되는 나라, 평화와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나라. 그 길을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일, 그것이 오늘 우리가 5·18을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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