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OU광장   프리즘

다시 걸음을 옮길 수 있었던 것은,

결국 그 “왜?” 앞에서 나 자신과

솔직하게 마주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제 인생의 중요한 선택들은 늘 주변 사람들에게 “왜?”라는 질문을 불러왔습니다. “왜 중국에 갔어?”, “왜 지금 대학원에 가?”, “왜 그런 공부를 하는 거야?” 등 수없이 많은 질문을 받으며 여기까지 온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정작 그 질문들에 답할 때마다 저는 조금 당황하곤 했습니다. 무언가 거창한 포부를 갖고 한 선택들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냥’이라는 대답이 성의 없어 보일까 봐 스스로도 멋쩍어서 애써 이유를 덧붙였으나 사실은, 그저 괜찮아 보였고, 더 알고 싶다는 마음이 전부였습니다.

 

“왜”라는 질문을 가장 많이 들었던 순간은 보이차를 공부하기 위해 다시 중국 유학길에 올랐을 때였습니다. 우연히 만난 보이차는 와인과도 같아서, 원료와 제조, 보관 방식에 따라 각기 다른 가치를 만들어냈고, 그 복합적인 매력에 이끌려 저는 맛이 형성되는 원리를 과학적으로 이해하고자 새로운 공부를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저 좋아서, 더 알고 싶다는 이유로 중국농업과학원 차엽연구소의 문을 두드리게 된 것입니다. 다만 문과생이었기에 이과 공부를 새로 익혀야 했고, 뒤처진 학업을 따라잡기 위해 남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쏟아야 했습니다.

 

힘들게 들어간 실험실에서 저는 과학 지식이 형성되는 과정을 배우는 동시에, 실험실의 ‘데이터’와 현장의 ‘경험’이 단절된 현실을 마주하게 됐습니다. 또한 차를 함께 즐기며 연구하는 삶을 기대했지만, 다른 연구자들에게 차는 철저히 분석의 대상일 뿐이었기에 매일 차를 마주하면서도 즐길 수 없는 아이러니한 날들을 보냈습니다.

 

1년 뒤 선택한 또 다른 길은 ‘과학기술학’이라는, 이름조차 낯선 학문이었습니다. 다시 한번 “왜” 그런 공부를 하느냐는 질문이 이어졌죠. 잠깐이지만 과학기술학을 통해 그동안 알던 것과는 전혀 다른 세상의 풍경을 마주하며 강렬한 매력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또한 문과와 이과를 모두 경험한 제게, 과학기술 지식이 만들어지고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과정을 인문사회학적 시선으로 탐구하는 일은 더없이 흥미롭게 다가왔습니다. 새로운 분야의 대학원 문을 두드렸습니다.

 

올해부터 저는 방송대에서 과학기술학을 가르치게 됐습니다. 그저 재미있고 더 알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이어온 선택들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이 자리가 다소 과분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돌아보면, 누군가에게는 방황처럼 보였을 시간들 속에서 최선을 다해왔고, 바로 그 시간들이 지금의 저와 제 연구를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학부에서의 미디어 공부는 과학 지식이 대중에게 어떻게 확산하는지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고, 실험실 경험은 과학 지식의 본질적 성격에 관한 질문으로 확장됐습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같은 공간에서 일하는 과학자와 인문학자가 왜 서로의 지식을 충분히 공유하지 못하는지를 탐구하는 석사 연구로도 이어졌습니다. 또한 농업과학원에서 새롭게 인식하게 된 농업의 가치는 박사 연구의 출발점이 됐으며, 중국의 독특한 시스템을 경험한 시간은 과학기술이 국가 정책과 자연환경, 그리고 사람들의 삶과 어떻게 얽혀 있는지를 역사적으로 분석하는 계기를 마련해 줬습니다.

 

방송대를 선택한 분들은 늦지 않았다고 믿으며 새로운 배움을 향해 한 걸음을 내디딘 분들입니다. 그 여정 속에서 누구나 한 번쯤은 “왜?”라는 질문 앞에 서게 될 것 같습니다. 저 역시 누군가는 늦었다고 여겼을 시점에 시작했고, 잠시 멈춰 있던 시간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다시 걸음을 옮길 수 있었던 것은, 결국 그 “왜?” 앞에서 나 자신과 솔직하게 마주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방송대에서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시는 분들의 용기가 어떤 것인지 조금은 알기에, 그분들과 함께 걸으며 작은 보탬이라도 될 수 있다면 더없이 기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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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ixz***
    교수님의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반갑습니다!!! 앞으로 기대 많이 하겠습니다!!! ^^
    2026-04-27 13:30:22

사람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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