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   서구지성사를 만나다

자유주의의 ‘위기’와 ‘승리’는
같은 동전의 양면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의 모든
불확실성, 불안, 혼란의 책임이
자유주의에 있다는 묘사는
자유주의가 현재 그만큼
지배적이고 완전히 승리했다는
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위기’ 개념과 개념의 위기
개념사(Begriffsgeschichite) 연구의 창시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코젤렉(Reinhart Koselleck)은 ‘위기(Krise)’ 개념의 본질은 단순히 미래 예측이 불가능한 혼란상태를 의미하는 데에 있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는 고대 그리스어 어원 ‘크리시스(κρίσις)’가 원래 생사가 결정되는 양자택일의 국면을 의미했으며, 서양의 위기 개념의 본질도 여기에 있다고 봤다. ‘크리시스’의 어근인 동사 ‘크리노(κρίνω)’는 ‘분리하다’, ‘선택하다’, ‘판단하다’, ‘결정하다’, ‘다투다’, ‘싸우다’ 등을 의미했다. 당시 의학에서 ‘크리시스’는 환자의 생사를 가르는 고비(국면)이자 그에 대한 진단 모두를 지칭했다. 이 말은 의학뿐만 아니라 법과 신학에서도 사용됐는데, 정의냐 불의냐가 결정되는 ‘판결’, 혹은 구원을 받느냐 천벌을 받느냐가 결정되는 ‘심판’을 의미했다. 이로부터 탄생한 ‘위기’ 개념은 근대에 정치적이고 역사철학적 의미를 획득한다. 정치적으로 삶과 죽음, 정의와 불의, 구원과 천벌 사이에서의 양자택일이 요구되는 국면 혹은 상황을 의미하게 됐고, 동시에 역사적으로 그 의미와 중요성이 극대화되는 결단의 국면을 지칭하게 됐다.


근대의 정치적이고 역사철학적인 용어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위기’ 개념은 중대한 변화를 겪는데, 정치적이고 정파적인 투쟁개념(Kampfbegriff) 혹은 투쟁구호로의 변화가 그것이다. 이제 ‘위기’란 투쟁의 양쪽 편에서 모두 상대편에 맞서 사용하는 개념 혹은 수사가 됐다. ‘위기’란 ‘우리’와 ‘그들’ 사이에서 어느 편에 설 것인가 하는 선택이 요구되는 상황인데, 이때의 선택은 곧 삶과 죽음, 옳고 그름, 그리고 구원과 천벌 사이에서의 결단과 같은 실존적 무게를 부여받는다. 코젤렉은 프랑스 혁명기 페인(Thomas Paine)과 버크(Edmund Burke)의 사례를 제시했다. 이들은 각각 정치적으로 완전히 반대되는 입장에서 당시의 동일한 국면을 구체제의 몰락과 자유의 승리(페인), 혹은 유럽 문명 전체의 붕괴(버크)가 걸린 ‘위기’라고 진단하면서 독자들의 결단을 촉구했다.


결국 근대적 개념으로서의 ‘위기’는 사태에 대한 객관적 묘사를 위한 것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증대로 인해 다양한 대안을 고려할 수 없게 되고 오직 양자택일만 가능하다는 것, 그리고 완전히 타협이 불가능한 두 대안 중 오직 한쪽만이 삶, 정의, 구원임을 설득 혹은 강요하기 위한 철학적이자 수사적인 개념이 됐다. 그리고 이러한 ‘위기’ 개념은 우리 시대에 이르러서는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어떤 상황에서나 그 중대성을 과장할 필요가 있을 때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부정확하고 모호한 의미의 유행어가 돼버렸다고 코젤렉은 한탄한다. 개념의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위기’ 개념 자체가 위기를 맞이했다는 것이다.


자유주의 ‘위기’의 역사와 자유주의의 역사
이러한 코젤렉의 묘사와 진단은 자유주의의 역사, 특히 자유주의 ‘위기’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에 필수적인 틀을 제공한다. ‘자유주의의 위기’는 ‘자유주의의 승리’ 선언만큼이나 그 자체로 이념적이고 정치적인 선언이었고, 이는 지금도 다르지 않아 보인다. 물론 ‘위기’가 정치적 선언에 불과하기 때문에 반대로 자유주의가 ‘여전히’ 건재하며 그 미래도 불투명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만으로 투쟁 개념으로서의 ‘위기’의 지평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자유주의가 지금 위기인가 아닌가 하는 진단 여부 자체가 이미 정치적 성격을 띠기 때문이다.


이러한 진단은 다음의 두 가지 중 하나의 모습을 보여준다. 첫 번째는 현재의 불확실성과 혼란, 불안의 책임이 모두 자유주의에 있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는 유일한 길은 자유주의에 대한 완전한 청산과 극복을 위한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든) 반자유주의적 결단에 있다는 것이다. 혹은 반대로 이 모든 혼란은 반자유주의 탓이며,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든) 자유주의만이 이 위기를 타개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는 결론이 제시된다.


따라서 자유주의의 ‘위기’와 ‘승리’는 같은 동전의 양면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현재의 모든 불확실성, 불안, 혼란의 책임이 자유주의에 있다는 묘사는 자유주의가 현재 그만큼 지배적이고 완전히 승리했다는 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승리주의(triumphalism) 혹은 승리의식이 전제된 극단적 과장이 자유주의가 위기라는 진단에 반드시 포함될 수밖에 없다. 정치적으로 이러한 과장의 수사가 매우 효과적이고 유용하다는 점은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현 상황에 대한 극도의 불안감과 절망감을 공유하는 독자와 청중에게는 자신들과 공감할 수 없는 ‘상대방’의 승리의식이란 ‘그들’과 ‘우리’ 사이에는 전혀 타협의 여지가 존재하지 않으며, ‘그들’과의 역사적 대결을 통해서만 현재의 불행하고 불안한 국면을 돌파할 수 있다는 확신을 뒷받침하는 가장 강력한 증거가 되기 쉽다.


자유주의가 정말로 위기에 처했는가 하는 문제를 둘러싼 정치적 논쟁은 그래서 실제로는 대체로 승리의식 혹은 그에 대응하고 맞서기 위한 반-승리의식(counter-triumphalism) 간의 경쟁의 형태를 띠게 된다. 그리고 여기에 반드시 뒤따르는 것은 바로 역사서술과 역사적 서사의 재구성이다. 위기의 의미와 향방을 둘러싼 경쟁의 양측은 바로 이 점에서 이해가 일치한다. 현재 위기의 원인이 구조적이며 심층적인 성격의 것이기 때문에 근본적인 단절과 결단을 촉구하려는 측에서는 자신의 주장을 강화하기 위해서 이 원인의 ‘뿌리 깊음’ 혹은 ‘유서 깊음’을 입증할 필요가 있다. 역사적으로는 이 원인이 ‘우리’에게 익숙한 가까운 과거가 아닌 먼 과거에 있다는 점을 설득력 있게 보여줄수록, 그리고 그 원인이 ‘우리’가 살고 있는 문명사회의 탄생에서부터 ‘우리’를 위협해왔다는 점을 입증할수록 지금의 위기와 결단이 피할 수 있는 숙명이라는 확신이 마찬가지로 단단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적이 강하게 평가될수록 이를 물리칠 운명에 있는 전사의 명예도 그만큼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논쟁의 반대편에게도 이러한 역사서술과 서사의 재구성은 그 자체로만 보면 결코 해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에 대한 가치 판단만 뒤집을 수 있다면 이러한 역사는 바로 자신들의 대의의 유서 깊음과 전통으로서의 권위를 뒷받침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위기’ 논쟁의 양측이 겉으로는 마치 실존적 투쟁에 직면한 것처럼 행동하지만, 사실은 비밀리에 협조하고 있다거나 ‘공범’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잘못이다.


이러한 환원주의적 단순화는 사태에 대한 비현실적인 인식만을 강화할 뿐이다. 현실에서 역사서술과 역사적 서사의 재구성에 관한 ‘친구’와 ‘적’ 사이에서의 이해관계의 수렴은 훨씬 더 복잡하고 장기적인 지적·정치적 영향관계 및 비판·반박·모방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리고 자유주의 ‘위기’의 역사는 바로 이러한 방식으로 전개됐다.


슈미트의 역사서술과 그 이후
‘자유주의 위기’ 담론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는 바로 독일 보수 법학자 카를 슈미트(Carl Schmitt, 1888~1985)일 것이다. 그는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에 보여준 자유주의에 대한 매우 날카로운 비판과 이후 나치 정권에 협력한 행적으로 인해 더 많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 인물이다. 그는 정치의 본질을 비상사태에서 찾은 것으로 유명하다. 급박한 위기 혹은 비상사태 상황에서도 자유주의자들은 의회에서 절차에 따라 합리적인 토론을 하면 가장 이성적인 답에 도달할 수 있다는 시대착오적 믿음에 빠져 결국에는 아무런 결정도 못내리는 무능한 집단이라는 것이 그의 ‘판결’이다. 반면에 불확실성에 직면해 곧바로 삶과 죽음, 옳고 그름, 구원과 천벌, 친구와 적을 구별하는 권위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헌법적 권한과 지위만이 ‘주권적’이라고 주장하면서 그는 입법부가 아닌 행정부, 특히 대통령의 국가긴급권을 통한 통치체제를 옹호했다(이런 점에서 코젤렉과 슈미트 사이의 지적·개인적 친분관계는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주목할 것은 그의 비판이 단지 제1차 세계대전 패전국 독일의 당시 상황에 대한 진단과 분석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는 반자유주의적·반의회주의적 비판을 뒷받침하기 위해 19세기 자유주의의 주요 경쟁 이념인 사회주의와 보수주의를 끌어들인다. 당연히 자유주의와 이들 이념 간에 존재했던 타협·중첩·공존의 역사는 자유주의에 물들었거나 전염된 결과로 매도된다.


그가 재구성한 역사에서 자유주의와 사회주의는 무산계급의 참정권 문제를 두고 결코 타협할 수 없는 적대관계로 환원된다. 그리고 가톨릭 평신도 법학자라고 스스로를 규정한 그는 프랑스혁명을 기점으로 증폭된 자유주의와 가톨릭교회 사이의 관계 또한 완전한 적대관계로 대체한다. 현재의 위기에 대한 결단이 바로 권위와 질서를 위협하는 무신론자들에 대한 심판이며, 특히 프랑스혁명 이후 계속돼온 신을 부정하는 세속주의자(자유주의자와 공산주의자)와 반혁명 가톨릭 보수주의자 사이의 실존적 투쟁을 종결시킬 결단이라고 주장했다.


슈미트의 자유주의 역사서술은 이후 자유주의와 반자유주의의 역사에 관한 표준적 서사로 자리 잡는다. 사회주의·보수주의와 자유주의 사이의 적대관계를 중심으로 재구성된 역사서술은 냉전 시대에는 공산주의와 파시즘 모두에 맞선 반전체주의적 자유주의의 역사적 투쟁을 입증하는 서사로 탈바꿈하게 된다.

서울대에서 서양정치사상을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대정치의 위기와 비전: 니체에서 현재까지』(공저), 『통일의 정치사상적 기초』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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