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   에세이로 읽는 과학 대 과학

원자력은 ‘안정성과 고밀도 에너지’,

재생에너지는 ‘지속가능성과 분산형 에너지’
라는 서로 다른 과학기술적 철학 위에서

미래 전력 체계를 놓고 경쟁하고 있다.
결국 에너지의 미래는 기술 자체보다,

그 기술을 사회가 어떻게 선택하고

감당할지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최근 서울 하늘공원을 처음 방문했다. 서울 한복판의 높은 곳에 드넓은 광장이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그런데 더욱 흥미로웠던 것은 바로 풍력발전기였다. 거대한 축 위에 세 개의 프로펠러가 돌아가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이곳은 난지도의 친환경 에너지 공간으로 조성됐다. 그러면서 ‘얼마나 높은 에너지 효율을 갖추고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풍력발전이 환경 측면에서 좋아보일 수 있지만, 배(생산되는 에너지)보다 배꼽(투입되는 에너지)이 더 크면 안 되기 때문이다.


정범진 경희대 교수(원자력공학과)는 올해 4월 1일자 <교수신문>에 게재한 칼럼에서 “에너지 정책에는 세 가지 정책 목표가 있다. 안정성, 경제성, 그리고 환경성. 끊기지 않고, 값싸며 환경에 악영향이 없어야 한다. 이를 모두 만족시키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트릴레마’(Trilemma)라는 표현도 사용한다”라고 설명했다. 에너지 효율을 갖추기가 그만큼 힘든 것이다.


2011년 9월 15일의 정전 사태를 기억하시는 분들이 많으리라. 필자도 강남의 한 건물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던 와중에 갑작스러운 정전을 겪고 깜짝 놀랐다. 작업 중이던 문서 파일이 날아간 것은 일도 아니었고, 복도에선 비명이 들렸다. 우리가 공기처럼 당연하게 생각하는 전력이 얼마나 귀한지 실감할 수 있는 경험이었다.


그리드가 에너지 전쟁을 좌우한다
에너지의 미래에서 중요한 것이 바로 ‘그리드(grid)’다. 그리드는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를 가정·공장·도시 등에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 연결한 전력망 시스템을 뜻한다. 그레천 바크가 쓴『그리드』(동아시아, 2021)에 따르면, 미국의 연간 평균 정전 시간은 120분으로, 일본 11분, 독일 15분, 한국 16분, 이탈리아 51분에 비해 압도적으로 길다. 전기는 생산 즉시 1,000분의 1초 만에 1,000킬로미터 거리로 전달될 만큼 즉각적이지만, 노후화된 그리드 인프라는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다.


전력은 필요할 때 해외에서 곧바로 들여올 수 있는 자원이 아니다. 앞으로의 사용량을 미리 계산해 발전소와 전력망을 선제적으로 구축하지 않으면 안정적인 공급 자체가 어려워진다. 한국은 태양광·풍력 같은 재생에너지 비중이 빠르게 늘어나면서, 기존 중앙집중형 전력망만으로는 변동성이 큰 전력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이에 따라 에너지 저장장치(ESS), AI 기반 수요 관리, 지역 분산형 전력망, 초고압직류송전(HVDC) 같은 차세대 그리드 기술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한마디로 ‘스마트그리드’ 현대화가 미래의 에너지 전쟁을 좌우한다.


에너지 주권을 위한 분투
한국이 원자력 기술을 처음 손에 넣은 것은 맨손이나 다름없는 상태에서였다. 1950년대 후반, 우리는 미국의 도움을 받아 연구용 원자로 트리가 마크-Ⅱ를 들여왔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땅에서 에너지를 자력으로 확보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원자력 개발의 출발점이었다.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1995년, 한국원자력연구소(현 한국원자력연구원)는 다목적 원자로인 ‘하나로’를 자력으로 설계·완공했다. 트리가 마크-Ⅱ의 약 300배에 달하는 열출력을 가진 하나로는 의료용 동위원소 생산부터 신소재 개발까지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 모방에서 창조로 나아간 이 여정은 단순한 기술 이전의 이야기가 아니라, 에너지 주권을 향한 한 나라의 분투기이기도 하다.


원자력은 강력한 에너지원인 동시에 무거운 숙제를 안고 있다. 1986년 체르노빌 원전 폭발사고는 원자력이 지닌 위험성을 전 세계에 각인시켰다. 사용후핵연료는 원자로에서 나오는 폐기물의 70~90%를 차지하는데, 반감기가 21만 년에 이르는 핵종도 있다. 이처럼 수십만 년을 관리해야 하는 폐기물 문제는 원자력이 지금껏 완전히 풀지 못한 난제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은 사고 방지, 피해 완화, 사후 관리라는 3중 안전장치를 마련하고 있지만, 장수명 핵종 소멸처리 기술은 아직 개발 중인 과제로 남아있다. 에너지를 얻는 대가가 이토록 길고 무거운 책임을 요구한다는 사실은, 원자력을 둘러싼 논쟁이 단순히 효율의 문제가 아님을 보여준다.


기후 위기가 가속화되면서 원자력과 재생에너지 사이의 선택은 더욱 첨예한 논쟁을 낳고 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는 향후 전 세계 전력의 27%를 원자력으로 공급할 것으로 전망했다. 탄소를 거의 배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원자력은 기후 변화 대응의 유력한 수단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반면 태양광·풍력 같은 재생에너지는 연료비가 없고 폐기물 문제에서도 자유롭지만, 간헐성과 저장 기술이라는 벽을 아직 완전히 넘지 못했다. 결국 이 논쟁은 ‘어느 쪽이 더 안전한가’를 넘어 ‘우리가 어떤 위험을 감수할 것인가’라는 사회적 선택의 문제로 귀결된다.


지정학이 에너지원을 결정한다
페르 회그셀리우스 스웨덴 왕립공과대학교 교수는『에너지 지정학』(메디치미디어, 2026)에서 원자력과 재생에너지를 대립 구도가 아니라 복잡한 지정학적 조건 속에서 작동하는 사회기술적 시스템의 일부로 파악한다. 인도는 핵확산금지조약(NPT) 미가입으로 국제 우라늄 공급에 제약을 받았다. 이것은 석탄 의존 심화를 가져온 요인 가운데 하나였다. 이러한 사례는 에너지원의 선택이 기술이나 경제성보다 지정학적 조건에 의해 결정될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재생에너지 측면에서는 파도 에너지처럼 기술적 가능성이 있더라도 투자자·정치인·규제당국·대중의 지지와 동원이 없으면 현실화되기 어렵다는 점이 강조되며, 유럽에서는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원활히 하기 위한 ‘가교 에너지’로서 천연가스가 여전히 불가결하다는 시각도 소개된다. 결국 이 책은 원자력 대 재생에너지라는 이분법을 넘어, 에너지 전환이 물질적 인프라와 다층적 행위자들의 정치경제적 역학관계 속에서 이뤄진다는 점을 일깨운다.


이 책에서 저자는 “러시아에서 한반도로 연결되는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이야말로 남북한의 정치적 통합을 촉진할 수 있는 촉매제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묻는다. 이 물음은 에너지가 단순한 자원이 아니라 외교와 평화의 언어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 책을 번역한 권효재 서울대 해양시스템공학연구소 연구원은 “전 세계 석유 물동량의 상당 부분이 호르무즈해협과 믈라카해협 같은 ‘조임목’을 통과하며, 이곳의 정치적 불안정이나 군사적 충돌은 곧바로 한국의 에너지 공급망 전체를 마비시킬 수 있는 잠재적 위험 요소”라며 “우리의 경제와 일상은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의 지정학적 안정성에 인질처럼 잡혀 있는 셈”이라고 우려한다. 그는 공급망 다변화와 ‘동북아 에너지 공동체’ 구축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LCOE가 보여주는 경제성의 역전
숫자는 냉정하다. 균등화발전비용(LCOE)은 발전소를 짓고 운영하는 데 드는 전체 비용을 생산 전력량으로 나눈 평균 발전 단가다. 〈포브스〉의「전력의 승부: 원자력 대 재생에너지의 경제학」(2025.02.12.)에 따르면, 미국 에너지정보청 기준 2023년 원자력의 LCOE는 메가와트시(MWh)당 110달러이며 2050년까지 같은 수준에 머물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태양광은 같은 해 55달러에서 2050년에는 25달러로, 육상풍력은 40달러에서 35달러로 하락할 것으로 예측된다. 배터리 저장 비용은 2010년부터 2023년 사이 무려 89%나 떨어졌다.


원자력은 이와 대조적으로 공사비 초과와 건설 지연이 반복되고 있다. 현재 전 세계에서 건설 중인 58기의 원자로는 평균 6년 이상이 지났음에도 완공에 이르지 못한 경우가 많다. 영국 힝클리 포인트 C 원전은 당초 160억 파운드로 예상됐던 건설비가 340억 파운드로 두 배 이상 불어났다. 정부 보조금 흐름도 재생에너지 쪽으로 기울고 있다. 1975년 공공 에너지 연구개발 예산의 73%를 차지하던 원자력 지원 비율은 2015년 20%로 쪼그라들었다. 2017년 기준 전 세계 에너지 보조금 총액 6천340억 달러 가운데 원자력 몫은 210억 달러(3%)에 그쳤고, 재생에너지는 1천280억 달러(20%)를 받았다. 중국은 2022년 한 해에만 재생에너지에 5천460억 달러를 투자해 세계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결국 원자력은 저탄소 기저부하 전원으로서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경제성·건설 기간·폐기물 문제라는 삼중 부담을 안고 있는 반면, 재생에너지는 비용 하락과 정책 지원을 등에 업고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구분

원자력

재생에너지(태양광·풍력 등)

에너지 철학

안정성 및 고밀도 에너지

지속가능성 및 분산형 에너지

발전 원리

우라늄 핵분열 시 발생하는 열에너지 이용

햇빛, 바람 등 자연에서 반복 수확

공급 안정성

매우 높음(날씨·시간 영향 없는 기저전원)

낮음(기후·자연 조건에 따른 간헐성존재)

환경성(탄소)

발전 과정에서 탄소를 거의 배출하지 않음

연료비가 없고 발전 과정에서 탄소 배출 없음

주요 장점

높은 에너지 효율, 안정적 전력 공급, 부지 절약

지속 가능한 자원, 방사성 폐기물 없음

주요 단점과 과제

사고 위험성(: 체르노빌),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사용후핵연료) 처리 난제

간헐성 극복 필요. ESS(에너지저장장치), 스마트그리드 등 추가 인프라 비용 부담

경제성(LCOE)

(EIA 2023년 보고)

MWh110달러(2050년까지 정체 전망, 공사비 초과 및 건설 지연 리스크)

태양광 55달러, 육상풍력 40달러(2050년 각각 25달러, 35달러로 하락 전망)

 

 

안정성과 지속가능성, 두 개의 에너지 철학
원자력과 재생에너지는 모두 탄소 배출을 줄인다는 공통 목표를 지니지만, 전기를 생산하는 방식과 과학기술적 기반은 크게 다르다. 우라늄 핵분열 과정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에너지를 이용해 안정적으로 전력을 생산하는 원자력은 날씨와 시간대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아 대규모 기저전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 강점이다. 반면 방사성 폐기물 처리와 사고 위험, 냉각수 문제 등은 오랫동안 미해결 과제로 남아있다. 특히 원전은 높은 에너지 밀도를 지니는 대신, 사고 발생 시 피해 규모가 크고 관리 체계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필수적이라는 특징을 가진다.

 

재생에너지는 태양광·풍력처럼 자연에서 반복적으로 얻을 수 있는 에너지를 활용한다는 점에서 지속가능성이 높고, 연료가 필요 없고 발전 과정에서 탄소 배출이 거의 없다는 장점도 있다. 그러나 햇빛과 바람의 변화에 따라 발전량이 달라지는 간헐성이 핵심 한계로 꼽힌다. 이 때문에 에너지 저장장치(ESS), 스마트그리드, 초고압직류송전(HVDC) 같은 보완 기술이 함께 발전해야 한다. 결국 원자력은 ‘안정성과 고밀도 에너지’, 재생에너지는 ‘지속가능성과 분산형 에너지’라는 서로 다른 과학기술적 철학 위에서 미래 전력 체계를 놓고 경쟁하고 있다.


결국 에너지의 미래는 기술 자체보다, 그 기술을 사회가 어떻게 선택하고 감당할지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서울시립대에서 수학을, 서울대 대학원에서 철학(윤리학)을 공부했다. 브릭에 ‘생태 에세이’를 기고하고 있고,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지배한다』, 『인공지능, 인간을 유혹하다』(공저) 등을 썼으며, 『기나긴 수학의 짧은 역사』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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