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시네마   인터뷰

「낙원의 밤」(감독 박훈정. 2021)에서 라이벌 조직폭력배 보스를 제거한 뒤 쫓기는 태구 역으로, 「택시운전사」(감독 장훈, 2017)에서 서늘한 눈빛으로 극장의 공기를 일순간 얼어붙게 만든 박 중사 역으로 관객에게 각인된 엄태구 배우가 작정하고 망가졌다. 「와일드씽」(감독 손재곤)에서 스웨그 넘치는 정통 힙합 전사를 꿈꿨지만, 솔로 앨범 실패 후 보험 설계사로 살아가는 ‘폭망래퍼’ 상구 역을 맡았는데, 짠내 풀풀 나면서도 순수함을 잃지 않은 모습에서 웃음이 터져나온다. 연예계 대표 ‘내향인’으로 소문난 그는 랩과 안무를 소화하기 위해 5개월간 JYP 엔터테인먼트로 출근하며 칼을 갈았다고. 귀엽지 않으면 차라리 죽겠다는 마음으로 ‘윙크’를 날리며 코미디 배우로 완벽 변신한 엄태구 배우를 삼청동에서 만났다.

윤상민 기자 cinemonde@knou.ac.kr

 

 

「낙원의 밤」이나 「택시운전사」 같은 영화에서 눈빛만으로 관객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누아르 전문 배우가 이번 영화 「와일드씽」에서 작정하고 망가졌습니다. 도대체 무슨 결심을 하신 건가요(웃음)
결심이라기보다 대본이 원래 재밌었어요. 제가 아니라 다른 배우가 했어도 너무 재밌었을 대본이었죠. 감독님 미팅을 했는데, 감독님도 너무 좋으신 분이셨어요. 또 댄스머신 현우 역에 강동원 선배가 이미 캐스팅된 상황이어서 같이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죠. 그런 배경들로 도전했습니다.

 

그런 배경들이 있다고 해도,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코미디 장르에 뛰어들려면 용기가 필요하지 않나요
그래서 사실은 자신이 없었어요. 그런데 배우라는 직업이다 보니, 지금까지와 너무 다른 캐릭터라서 또 더 해보고 싶었던 마음도 생겼던 거 같습니다. 잘 소화해 보고 싶다는 욕심도 생기면서, 이 영화에 참여하고 싶었죠. 그래서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랩도 안무도요(웃음).

랩과 안무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준비하셨어요
촬영 들어가기 전부터 5개월 정도 준비했어요. 열심히 하고 싶어서 영화사가 준비해 준 거보다 더 했죠. 계속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랩, 안무 모두 선생님께 100% 의지했습니다. 발성 연습은 어떻게 할까요, 리듬은 어떻게 타나요, 물어보면서 하라는 대로 다 했어요. 상구가 사실 랩을 잘하는 캐릭터는 아니잖아요? 5개월간 진짜 열심히 하면, 어차피 잘하지 못하는 캐릭터니까 거기까지는 갈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진짜 열심히 연습하지만 진짜 못하는 느낌이랄까요(웃음). 선생님들과 대화하면서 특유의 제스처와 말투가 있다는 걸 캐치해서, 저도 모르게 계속 따라하게 됐어요. 이런 게 현장에서 자연스럽게 나왔을 때 기분이 좋더라고요.

 

상구 캐릭터는 어떻게 구축하셨어요
래퍼지만 랩을 못하잖아요. 그래도 순수하고 랩에 대한 열정도 가득하고요. 어린 아이 같은 모습이 마음에 들었어요. 저는 어떤 배역이든 제 안에 50% 정도는 있다고 생각하고 연기해요. 다행히 아직은 상구만큼 열정이 있는 거 같고요.

상구는 어찌 보면 굉장히 순수하면서도 순진해 보이는 인물인데요, 후반부로 가면 사고 치고 리더에게는 자기는 그렇게 하라고 말한 적 없다고 굴기도 합니다. 이중적이죠(웃음)
음, 듣고 보니 그렇긴 하네요. 군데군데 특이한 게 있는 캐릭터이긴 해요. 콧털 뽑혔을 때, 아 아프겠다고 말하는 거 보면, 이기적인 면도 있네요.

 

본인의 경험을 녹여서 연기한 부분도 있나요
그런 건 별로 없었어요. 그런 부분은 의상, 분장, 무대 등으로 도움을 많이 받았던 거 같네요. 도미나 현우의 헤어 스타일이나, 사이버틱한 느낌들 그리고 가수 대기실로 인터뷰를 가는 장면들이 그 시대를 재현하는 거라서요. 막상 연기할 때는 상구 입장에서는 어떤 기분일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저 역시 그 시절을 보냈기에, 맞아, 테크노가 유행했지 하는 생각도 하면서요.

현장에서 즉석으로 아이디어 낸 것도 있나요
보험을 거절하는 과거 장면에서 원래 대사는 “나 배가 너무 고파요”였는데, 제가 ‘꼬르륵’을 집어넣었어요. 그래서 “배가 나에게 꼬르륵이라고 해요”라는 대사가 나왔죠(웃음).

 

20년 시간 텀을 오가면서 연기했는데, 어떤 면에서 차이를 주려고 했나요
피부는 CG로 해주신다고 해서 큰 차이를 두고 연기한 건 없어요. 다만, 상구라는 캐릭터가 무섭게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래서 캐릭터적으로 상구가 욕하는 부분이 있거든요. “개XX”라고요. 잘못하면, 제가 다른 영화에서 했던 것처럼 위협적으로 들릴 수 있을 거 같아서, 욕이 좀 귀엽게 들릴 수 있게 하려고 고민했죠(웃음).

엔딩크레딧 올라가는 데 ‘작사’에 이름이 들어가 있더라고요
JYP 선생님과 랩 선생님이랑 함께 가사를 썼어요. 제가 가사를 쓰면 선생님이 라임을 맞춰주셨고, 그걸 감독님께 가서 피드백 받았죠. ‘내 이름은 구상구, 앞 뒤로 해도 구상구, 폭풍래퍼 구상구, 엄마 아들 구상구, 아빠 아들 구상구, 하고 싶은 건 성공, 현실은 똥통’ 등 모든 가사는 제가 썼어요. 무조건 웃겨야 한다기보다는 상구의 솔직한 마음을 드러내고 싶었죠. ‘내 랩은 강폭풍, 불꽃슛’ 같이 유치하지만 뭔가 상구스러운 이미지로요(웃음).

 

직접 쓴 랩의 핵심 키워드를 꼽는다면요
‘요, 베베’. 음, 그리고 ‘랩은 나의 전부!’인 거 같습니다. 칼 맞고 나와서도 ‘랩은 나의 전부’ 라고 말하는 대사가 있는데, 그게 상구에게는 진짜 전부인 거 같아서요. 그리고 ‘엄마, 아빠’인 거 같아요. 계속 엄마, 아빠 이야기를 한 번씩 하니까요.

아까 강동원 배우와 함께 연기하는 게 합류의 큰 이유라고 하셨는데, 현장 호흡은 어땠나요
제작보고회 때 대화가 많지는 않았지만(웃음), 강동원 배우뿐 아니라 모든 배우들과 합이 잘 맞았던 거 같아요. 코미디는 특히 호흡이 중요한데, 선배 배우들이 잘 이끌어 주셨어요.

 

의외로 강동원 배우는 코미디를 가장 좋아하는 장르로 꼽더라고요. 엄태구 배우는 어떤가요
저는 공포 빼고는 다 좋아해요. 무서운 거 잘 못 봐요. 코미디가 가장 어렵다는 건 머리로는 알고 있었죠. 누군가를 웃기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인데, 이번에 몸으로 부딪치면서 알게 됐습니다.

이번 영화에서 완전히 자신을 내려놓았는데요. 그래도 발라드 가수 최성곤 역의 오정세 배우에게 코믹함에 있어서 좀 밀린 감이 있다고 보세요(웃음)
밀리는 게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게 아닌가 싶어요. 상대가 안 됩니다. 체급이 달라서요(웃음).

 

그래도 보컬 변도미 역의 박지현 배우가 엄태구 배우의 ‘윙크’에 밀렸다고 하더라고요(웃음). 끼 부리는 건 랩이나 안무처럼 선생님도 없을 텐데, 어떻게 준비하셨어요
현장에서 갑자기 바뀐 부분이예요. 가발 쓰고 의상 입고 현장에서 리허설하는데, 안무 선생님이 “상구가 이 동작 좀 더 귀엽게 해보면 좋겠다”라고 하시더라고요.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했죠. 귀여운 제스처는 연습한 적이 없어서요. 현장에서 슛 간다는 소리는 들리는데, 정말 공포스러웠어요. 그래서 귀엽지 않으면 차라리 죽겠다는 마음으로(!) 그런 표정을 저질렀습니다(웃음). 제가 어디선가 봤던 동작이나, 할 줄 아는 것 중에 귀엽다고 생각했던 동작은 다 했던 거 같아요. 그중 하나가 윙크였고요.

이번 영화 하면서 무대 체질이라고 느낀 적 있으세요
무대 체질이라기보다는 무대 위에서 액션 했을 때 민망한 것 없이 어떻게든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했어요. 그동안 준비 많이 했으니까, 억지스럽지 않고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도록 하자, 무조건 저지르자, 이런 느낌으로요. 마치 네댓 살 아이가 샤워하고 나와서 신나게 노는 것처럼 무대 위에서 놀아보고 싶었던 거 같아요.

 

손태곤 감독님이 “엄태구 배우는 내향인인 줄 알았는데, 현장에서 캐릭터 이야기만 하면 그렇게 수다스러울 수 없었다”라고 하더라고요(웃음)
진짜 작품에 대해서는 계속 말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이번에 특히 더 그랬고요. 감독님, 이게 더 재밌을까요? 저게 더 재밌을까요? 이게 더 재밌지 않을까요? 이렇게 계속 여쭤봤습니다. 감독님이 선장님이니까 선택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제가 웃기다고 생각한 부분이 틀릴 수도 있는 거라서, 가볍게 보여드리고 뭐가 더 재밌으세요? 이렇게 계속 대화를 했죠. 사실 출연을 결심하기 전까지는 많이 주저했는데, 하겠다고 한 순간부터는 할 이야기가 많아지더라고요. 이야기를 많이 해야 했고요.

‘극’내향인 배우로 알려져 있는데 답답하지 않나요
사실 이게 편하죠. 상구가 불편한 거죠(웃음). 모험을 한다는 느낌으로 저지른 건데, 사실 관객들이 저의 변신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굉장히 공포스러운 부분이 분명 있었거든요. 하지만 제 직업이 배우이고, 맡은 롤이 그런 캐릭터라는 생각이 더 크니까 제 성향 부분은 미뤄두는 거죠. 저도 사적인 자리에서는 수다, 농담도 많이 합니다. 진짜 친한 친구들이랑 있으면 장난도 많이 치고, 재밌게 해주는 것도 좋아하고요(웃음).

 

관객 반응이 공포스럽다면서 연기하는 이유가 궁금해요
일할 수 있음에 감사한 거죠. 과정이 힘들 수는 있지만, 결과가 잘 나왔을 때 그만큼 행복하고 뿌듯한 게 없거든요. 매일 촬영이 잘 나올 수는 없지만 한 씬 때문에 몇 개월 고민하고 갔는데, 저도 생각지 못한 진실된 장면으로 나오면 그만큼 기분 좋은 날이 없어요.

 

이번에 첫 코미디 영화에 도전하셨는데, 다음에도 한 번 더 도전하고 싶으신가요
대본이 재밌으면 사실 뭐든 좋아요. 해보고 싶은 캐릭터는 있어요. 락커를 해보고 싶습니다. 코미디 말고 되게 진지하게요. 이번에 랩을 배워봤더니, 락을 배우면 뭔가 재밌을 거 같아요.

벌써 데뷔 18년 차입니다. 작품 선택 기준은 뭔가요
일단은 대본이 재밌는 게 가장 중요한 거 같아요. 그다음에 캐릭터랑 감독님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네요.

 

상구는 “랩이 내 인생의 전부”라고 말하는데, 엄태구 배우에게 활력을 주는 건 뭔지 궁금해요
그때그때 너무 달라요. 작품 할 때랑 안 할 때랑 차이가 나서요. 작품 없을 때는 체육관으로 가요. 작품할 때는 운동하러도 안 나가요. 너무 피곤해서요. 해도 집 안에서 하든가, 아니면 동네 한 바퀴 잠시 뛰고 오는 정도고, 작품에만 몰두하는 편입니다.

영화에서 20년 고군분투한 상구처럼, 엄태구 배우에게 다시 도전하고 싶은 게 있다면요
사실 매 작품이 다 도전이에요. 매번 새로운 대본에 새로운 캐릭터를 새로운 스태프들과 하는 거라서요.

 

악인의 얼굴 또는 순수한 얼굴만 가지고 있는 줄 알았는데, 「와일드씽」은 엄태구 배우에게서 코미디 얼굴을 발견하게 한 영화 같아요. 이 영화가 배우 필모그래피에서 어떤 지점을 점유하는 작품일까 궁금합니다.
이제 개봉하고 나서 관객분들이 어떻게 봐주시냐에 따라서 의미가 달라지지 않을까 싶어요. 좋게 봐주시면 제게는 또 다른 의미가 있을 거 같고. 그래서 기대 반, 걱정 반 느낌이 있는 거 같아요. 제가 「와일드씽」 찍으면서 전력질주를 시작했거든요. 마음이 힘들어서, 잠깐 나가자, 했다가 숨이 차도록 뛰었는데 뭔가 기분 전환도 되면서 너무 좋더라고요. 제게 「와일드씽」은 ‘전력질주’로 남을 것 같기도 합니다(웃음).

이번에 변신한 모습을 보고 가족들은 뭐라고 하던가요
딱히 어떤 반응이라기보다 ‘영화 너무 재밌다’, ‘너무 잘될 거 같다’라고 하시면서 굉장히 기분 좋아하셨어요. 뿌듯해하셨고요.

 

혹시 ‘트라이앵글’ 무대 요청 있으면 할 의향이 있으세요
강동원, 박지현 배우가 한다면 무조건 하겠습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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