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나물 리뷰]는 ‘영화가 나에게 물었다’의 앞 글자를 딴 연재로 최근 개봉한 영화를 리뷰하는 기사다. 한 편의 영화에는 하나의 세상이 담겨 있다. 감독은 자신이 창조한 세상에서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영나물 리뷰]는 영화가 던지는 그 질문에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정답은 없다. 백 명의 관객에게서 백 개의 영화평이 나올 수 있는 것이 영화의 매력이기에. 세상 어딘가에서 영화를 보며 고민하는 누군가에게 닿기 바라는 마음으로, 이야기 나누고 싶은 마음으로 띄우는 씨네마 레터.

와, 웃겨도 정말 이렇게까지 웃길 수 있을까요? 뻔하디뻔한 설정을 단 ‘1’도 벗어나지 않는 이야기 전개인데도 극장 곳곳에 웃음 폭탄이 터집니다. 한 번 웃기면 좀 쉬었다가 갈 법도 한데, 쉴 틈 없이 계속 웃음을 터트리게 하고, 영화가 진행될수록 웃음의 강도는 점점 커집니다. 후반부 클라이막스 장면에 도달하면 ‘꺽꺽’ 오열하는 관객들이 넘쳐납니다. 무슨 영화냐고요? 지난 6월 3일 개봉해 박스오피스 2위에 오르며 54만 관객의 배꼽을 빠지게 만든 「와일드씽」(감독 손재곤)이 그 주인공입니다(6월 8일 기준).
데뷔 1년 만에 가요계 접수했다 생계형 연예인으로
데뷔 1년 만에 2집 타이틀곡 「Shout it out」으로 ‘가요톱텐’ 1위에 등극한 3인조 혼성 댄스 그룹 ‘트라이앵글’의 리더는 ‘댄스머신’ 황현우(강동원)입니다. ‘폭풍래퍼’ 구상구(엄태구)와 ‘절대매력’ 변도미(박지현)는 대기실에서는 티격태격하지만, 무대에만 오르면 언제 그랬냐는 듯 환상 케미를 펼치죠. 39주째 2위에 머무르며 1위를 꿈꿨던 발라드 가수 ‘최성곤’(오정세)은 트라이앵글이 첫 1위를 차지하면서 40주 연속 2위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웁니다. 벌써 웃깁니다. 그날 밤 1위 축하파티가 꽤나 거나하게 열리고, 이튿날 숙취로 널부러진 트라이앵글의 숙소에 기자들이 들이닥칩니다. 표절 이슈가 터진 겁니다. 트라이앵글을 키워낸 미다스의 손 박 대표(신하균)에게 전화했더니, 이미 인천공항 출국장입니다. 하루아침에 해체된 트라이앵글. 저는 여기까지를 오프닝 시퀀스라고 봐도 될 것 같습니다.

내 시간은 천천히 가는 것 같지만, 남의 시간은 빨리 흐르죠. 20년이 흐릅니다. 리더 현우는 생계형 방송인으로 여전히 방송국을 기웃거립니다. 고정 프로그램이라곤 라디오 하나인데, 여기서도 자리가 위태위태해요. 잘 나갈 때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동료 가수들의 거들먹거림도 참아야 하고요. 그런데, 일생일대의 기회가 찾아옵니다. 지역 엑스포 유치 행사에 트라이앵글 완전체로 섭외가 들어온 거죠. 마지막이란 심정으로 현우는 도미와 석구를 찾아 나섭니다. 그런데 석구는 보험을 팔면서 솔로 앨범을 내느라 사채업자에게 쫓기는 신세고요, 도미는 재벌가 며느리가 되었지만, 화상전화로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하며 살고 있습니다. 20년 만에 불쑥 나타나 팀을 재결성하자는 리더, 서로가 미덥지 않은 팀원들은 과연 다시 무대에 설 수 있을까요? 아니, 과거에 주고받았던 상처들을 극복하고 팀으로 뭉칠 수 있을까요?

1990년대부터 2000년대 가요계 완벽 재현
우선 이 영화의 첫 번째 매력은 1990년대와 2000년대 가요계를 그대로 재현한 것만 같은 정서입니다. 빨간색, 파란색, 초록색 풍선들을 들고 ‘오빠!’를 외치는 팬들, 1집에서는 발랄하고 귀여운 분위기로 팬심을 공략한 후 2집에서는 뭔가 사회 비판적인 메시지가 가득한 곡으로 컴백하던 그 시절 불문율 같던 공식, 1위 후보들의 대기실을 직접 찾아가는 리포터 인터뷰 같은 깨알 고증까지, 그 시절을 지나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법한 공기가 생생하게 스크린에 되살아납니다.

마치 그 시절로 돌아간 듯 익숙한 멜로디의 삽입곡들은, 한 번 들으면 귀에 쏙쏙 꽂힙니다. 트라이앵글의 데뷔곡 「Love is」는 어깨를 들썩이게 만들고, 최성곤의 달달 고백송 「니가 좋아」는 한 번 듣는 순간 극장을 나설 때까지, 아니 일상으로 돌아와서도 계속 흥얼거리게 되는 ‘매직’을 발휘합니다. JYP 엔터테인먼트 소속 K-pop 전문가들이 직접 참여해 음악의 완성도를 높였죠. 안무는 유재석과 이효리, 비의 프로젝트 그룹 ‘싹쓰리’와 작업한 양욱 안무가가 합류해 캐릭터의 개성이 톡톡 살아 있는 안무를 만들었고, 마치 90년대 가요 프로그램을 보는 듯한 현란한 카메라 앵글이 이를 생생하게 담았습니다.

이 영화의 두 번째 매력은 캐스팅입니다. ‘오빠’라고 부르기엔 이제는 뭔가 어색한 듯한 강동원 배우가 헤드스핀을 대역 없이 소화하고, 세기말 스타일링은 ‘당연히’ 완벽하게 소화합니다(강동원 팬 여러분께 미리 죄송합니다). 손재곤 감독은 처음부터 강동원 배우를 현우 역으로 점 찍고, 강동원 배우에게 시나리오를 보냈다고 해요. 「전우치」를 보고 강동원 배우에게서 코미디에 특출난 재능이 있음을 느꼈기 때문이랍니다. 아, 지난 20년 동안 줄기차게 시나리오를 보냈는데, 실제 캐스팅이 된 건 이번 영화가 처음이라고 하네요.

‘내 이름은 구상구, 앞뒤로 해도 구상구, 폭풍래퍼 구상구, 엄마 아들 구상구, 아빠 아들 구상구, 하고 싶은 건 성고, 현실은 똥통’이라는 가사를 직접 쓴 엄태구 배우는 또 어떻고요. 「낙원의 밤」(감독 박훈정, 2021), 「택시운전사」(감독 장훈, 2017) 등에서 살벌한 카리스마를 보여줬던 엄태구 배우가, 이렇게까지 망가질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연예계 대표 ‘내향인’으로 꼽히는 배우지만, 현장에서는 손태곤 감독과 하나부터 열까지 상의하며 열의를 보였다고 해요. 영화의 웃음 분량에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는 캐릭터입니다.

「히든 페이스」(감독 김대우)로 청룡영화상 여우조연상을, 시리즈 「은중과 상연」(연출 조영민, 작가 송혜진, 넷플릭스, 2025)로 백상예술대상 최우수연기상 후보에 오르며 그야말로 대세 배우에 등극한 박지현 배우도 웃깁니다. 무대 위에서는 상큼발랄하지만, 대기실과 연습실에서는 걸크러시가 터지고요. 재결성을 위해 검증을 받는 자리에서는 흡연으로 쉬어버린 목소리를 감추려 노래방마이크를 들고 오는데, 비주얼 담당만이 아닌 게 드러나더군요.
그리고 원조 ‘고막남친’ 최성곤 역할을 맡은 오정세 배우는요. 아, 오정세라고 쓰는 순간부터 웃음이 터져 나옵니다. 맞습니다. 이 영화 웃음 지분의 90%는 오정세 배우에게 있다고 확신합니다. 분량이 적은데도 말이죠. 하얀 블라우스와 부드러운 슬랙스, 한쪽 눈이 가려진 헤어스타일로 “니가 좋아~”라고 부르는 오정세 배우를 보는 순간 입술이 씰룩거립니다.

뜻밖의 사건에 휘말려 연예계를 떠나는 잠깐 장면에서도 웃깁니다. 영화 후반부에 순수 발라더와 180도 변한 모습으로 강렬하게 등장하는 비주얼과 이어지는 대망의 클라이막스 부분, 아, 더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모자무싸>에 이어, <와일드씽>까지, 2026년은 오정세 배우의 해임이 틀림없습니다. 영화를 보시고 나면 대한민국이 ‘오정세 보유국’이라는 사실이 뿌듯해질 겁니다.
대한민국은 ‘오정세 보유국!’
이 영화의 세 번째 매력은 다름 아닌 손재곤 감독입니다. 로맨스와 스릴러, 코미디를 결합한 독특한 장르로 평단과 관객을 사로잡은 데뷔작 「달콤, 살벌한 연인」(2006), 한정된 공간에서 팽팽한 긴장감과 날카로운 유머를 선보인 「이층의 악당」, ‘동물 없는 동물원’이라는 기발한 설정을 무리 없이 풀어냈던 「해치지 않아」까지, 코미디 전문 감독이죠. 물론 본인은 “예전만큼 웃긴 사람이 아니다”라고 극구 부인했지만요. 「와일드씽」은 대사의 말맛이 아주 맛깔나게 느껴지는 영화인데요, 손 감독은 “결국은 타이밍이다 어느 상황에서 어떤 대사가 나오느냐가 중요한데, 설정을 잘하면, 코미디 연기에 능하지 않은 배우가 진지하게 역할을 잘 수행할 때 웃음이 나올 수 있다고 봤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대사, 상황 모두 상상할 법하고, 그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도 웃깁니다. 캐스팅도 설정도 조금은 위험해보였는데, 배우들이 작정하고 웃기려고 할 때도 아슬아슬한 선을 절대 넘지 않죠. 이 모든 건 현장에서 웃음의 선을 지킨 손 감독의 철저한 ‘메타인지’ 덕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2002년에 입봉해 20년 넘는 세월 동안, 오로지 코미디 한 길을 파왔던 그는, 홈런까지는 아니더라도 범타로 꾸준히 그의 웃음 세계를 관객에게 스며들게 했었는데, 「와일드씽」에서는 그 균형감각이 절정에 이르렀거든요. 감독이라면 응당 조금이라도 더 웃기고 싶을 테고, 조금이라도 더 보여주고싶은 게 인지상정인데, 손 감독은 철저히 제3자의 입장을 견지한 것처럼 보입니다.

로드무비로 전환되는 후반부의 뭉클함
개인적으로 저는 영화가 로드무비로 전환되는 후반부가 참 마음에 들었는데요. 우여곡절 끝에 20년 만에 재결합한 트라이앵글이 엑스포 유치 기원 무대에 서기 위해 가는 동안 기이한 일들이 얽히고설킵니다. 20년 전 도망친 박 대표와 똑같이 생긴 스페인 사람을 만나고요, 놀라운 모습으로 변해버린 최성곤도 마주칩니다. 그 과정에서 오해를 사기에 충분한 몰골들로 경찰에 쫓기기도 하고요, 사고로 차는 멈춥니다.
그리고 어렵게 마음을 모았던(것으로 보이는) 트라이앵글은 20년 전 해체하는 그날처럼 또 싸웁니다. “니가 리더로서 뭘 했는데!”, “말은 똑바로 하자, 사건 터지고 니들이 바로 살실 찾아가는 바람에 내가 이렇게 된 거 아니냐고!”, “래퍼는 지나가는 따까리라는 말 때문에 정신과 치료도 받았다고!”, “사장은 날라버리고 표절혐의는 내가 다 뒤집어 썼다!” 서로에 대한 원망, 불평, 불신으로 가득한 날 선 말들을 쏘아대면서요. 재결성은 했지만, 이들의 감정은 20년 전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던 거니까요.

이렇게나 다른 3명인데. 이들에게는 공동 목표가 하나 있었죠? 다시 무대에 서는 겁니다. 그래서 이들은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상황에서도 무대로 향합니다. 어떻게든 무대에(가요톱텐도 아닌데!) 오르려고 갖은 수단을 쓰고 궂은일을 도맡는 리더 현우, 실컷 부추키고는 자기는 그렇게 하라고 한 적 없다며 발 빼는 상구, 이 상황이 짜증나서 리더만 탓하는 도미지만, 이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달립니다. 힘든 순간에도 팀을 이끌어가야 할 리더는 끝까지 상대 가수의 비위를 맞춰가면서까지 무대에 오르려 노력하고, 그걸 한순간에 망친 팀원들을 원망하지도 않아요.
항상 자기만 잘났던 보컬 도미는 “이제야 니가 리더로 보인다”라고 한마디 무심하게 툭 던지죠. “다 형 잘못이라고, 자기는 그런 적 없다”라며 결정적 순간에 발을 빼는 막내 상구에게 화를 내기는커녕 “노래 처음부터 끝까지 비는 곳에 전부 랩을 넣어”라고 격려하죠. 이 순간에도 자기 말만 하는 세 사람의 모습이 상당히 묘하게 다가옵니다. 각자의 말을 하면서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모습에서 뭔가 뭉클함이 느껴집니다.

우정출연한 신하균까지 웃깁니다….
아참, 박 대표로 우정 출연한 신하균 배우까지 웃깁니다. 그야말로 거를 타선이 하나도 없어요. 올 상반기 개봉한 한국 영화 중 1위라고 감히 추천드립니다. 혹시 삶이 우울하고 짜증나시나요? 회사에서는 이상한 상사와 동료 때문에 스트레스 받으신다고요? 고된 일을 마치고 집에 가도 아무도 반겨주지 않아 속상하시다고요? 아니, 아무 일이 없는 평온한 일상을 보내고 계신다고 해도, 웃음이 필요하시다면, 아무 생각 없이 「와일드씽」 표를 예매하시길. 그리고 97분의 ‘강약약중간약강!’ 웃음 리듬 속에 몸을 맡기시길!
윤상민 기자 cinemonde@kno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