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돈 동문은 30년 동안 조국을 위해 헌신해 온 정통 군인이다. 해군사관학교 18기로 임관해 1993년 대한민국 해병대 제1사단장을 끝으로 전역한 그는 군의 요직과 최전방을 두루 거치며 국가 안보의 최일선에서 청춘을 바쳤다. 흥미롭게도 그가 군 생활의 막바지와 전역 이후에 이르기까지 가장 치열하게 몰두했던 화두는 다름 아닌 ‘중국’이었다.
기자가 이 동문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해군학사장교중앙회(OCS)’ 명예회장인 김종진 경영학과 명예교수의 전화 한 통 때문이었다. 김 명예교수는 방송대학보 〈KNOU위클리〉를 통해 학우들과 함께 공유하고 싶은 동문이 있다고 말하면서, 2025년 출간한 『누가 중국을 움직이는가』(전 5권)라는 그의 저서를 접하고 깜짝 놀랐다고 소개했다. 그는 김 명예교수의 해군장교 교육생 시절 훈육관(중대장)이었다. 자신의 ‘중대장님’이 방송대를 졸업했다는 소식을 훗날에서야 알게 된 김 명예교수는 “신국판 3천500쪽 분량의 방대한 중국 연구서를 내놓은 ‘중대장님’의 한결같은 열정이 뭉클하게 느껴졌다. 방송대 공부를 통해 자신의 새로운 길을 열어간 이재돈 장군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면 좋겠다”라고 이유를 밝혔다.
무더위가 시작된 6월 29일, 이재돈 동문 부부는 서로 손을 잡고 30여 년 만에 방송대 대학본부를 찾았다. 열린관 1층 카페에서 80대 중반의 ‘노병(老兵)’이자 ‘중국 연구자’인 그를 만났다.
최익현 선임기자 bukhak@knou.ac.kr
“저는 방송대를 만나면서 완전히 새로운 인생,
즉 ‘학자이자 전략가로서의 제2의 인생’을 선물 받았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방송대는 제 인생의 종착역이 아니라,
가장 화려한 출발역이었습니다.
방송대 동문이라는 사실이 제 인생에서
해병대 사단장을 지낸 일 못지않게 커다란 자부심을 줍니다.”
1941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난 이재돈 동문은 유교적 분위기 속에서 성장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6·25전쟁을 겪었고,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월남전에 두 번이나 참전했다. 일제 강점기 끝자락에서 귀동냥했던 중국은 ‘대국’이었고, 전쟁 통에는 ‘무찌르자 오랑캐’가 됐다. 소년 시절의 이 ‘중국 인식’은 그의 뇌리 한편에 깊이 새겨졌고, 늘 ‘중국은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가?’라는 질문으로 남게 됐다.
이 동문은 군 생활 동안 한반도를 둘러싼 지정학적 위치를 끊임없이 복기하며, 주변 강대국들의 거대한 흐름을 읽지 못하면 진정한 국가 안보를 실현할 수 없다는 확신을 가지게 됐다.
“30년 동안 군인이라는 자부심 하나로 해병대 사단장의 중책까지 숨 가쁘게 달려왔습니다. 하지만 군의 최고위 지휘관으로 올라갈수록 한반도의 평화와 안보는 단순히 우리 내부의 국방력 강화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절감했어요. 특히 우리와 바다를 마주하고 있는 거대한 대륙, 중국은 우리 안보의 핵심 변수이자 거대한 산이었습니다. 중국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그들의 군사 전략과 대륙의 흐름을 파악하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의 미래 안보 역시 모래 위에 성을 쌓는 것과 다름없다고 보았습니다. 그것이 제가 군 생활 속에서도, 그리고 전역을 앞둔 시점에서도 중국이라는 거대한 대륙을 학문적으로 철저히 해부해 보겠다고 다짐한 강력한 동기이자 배경이었습니다.”
그는 단순히 문헌으로만 중국을 이해하려는 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1993년 전역 후 군의 배려와 스스로의 강력한 의지에 힘입어 중국 현지로 직접 건너가 온몸으로 대륙의 공기를 호흡하며 연구할 기회를 거머쥐게 됐다. 1992년 8월 24일 적대적 관계에 있던 중국과 국교가 수립된 뒤 1년 만의 일이었다. 한국의 고위급 장교 출신으로서 ‘공산주의의 때가 가시지 않은’ 중국 땅을 밟은 최초의 사례였다.
상하이 푸단대에서 방송대 중어중문학과로
이재돈 동문이 중국을 공부하기 위해 선택한 곳은 중국 상하이에 있는 명문 사학, 푸단대학이었다. 아내와 함께 떠난 중국 유학길이었다. 이 유학 기간은 그가 단순한 야전 군인의 시각에서 벗어나, 국제 정치와 대륙 전략을 아우르는 전략가로서 안목을 넓히는 결정적인 전환점이 됐다.
푸단대학 국제학원에서 중국어 과정을 수료하며 지독하게 학업에 매달린 시간은 그에게 새로운 세상의 문을 열어줬다. 언어 장벽과 늦은 나이의 학업이라는 이중고 속에서도 그는 군인 특유의 악바리 정신으로 버텼다.
“나이 오십이 다 되어 상하이 푸단대학에 발을 디뎠을 때, 솔직히 두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30년 동안 총을 잡고 군대를 지휘하던 손으로 다시 펜을 쥐고 낯선 중국어 성조를 따라 부르려니 눈앞이 아찔하더군요. 하지만 ‘내가 여기서 중국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면 대한민국의 안보 전략 한 축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무거운 책임감으로 버텼죠. 푸단대에서 보낸 시간은 제게 단순히 언어를 익히는 과정을 넘어섰습니다. 중국인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중화(中華)의 시각, 그들의 역사적 자부심, 그리고 사회주의 체제 속에서 꿈틀거리는 거대한 경제적·군사적 역동성을 현장에서 생생하게 목격할 수 있었던 소중한 기회였습니다. 대륙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들의 언어와 문화를 먼저 품어야 한다는 값진 진리를 배운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푸단대학에서의 공부는 계획했던 대로 나아가지 못했다. 생각지도 못했던 연령 제한 문제로 그의 공부는 마침표를 찍어야 했다. 푸단대학에서의 치열했던 유학 생활을 마치고 귀국했지만, 배움에 대한 그의 갈증은 오히려 더 깊어졌다. 현지에서 익힌 중국어와 지식은 단편적이고 경험적인 수준에 머무를 수 있다는 경계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어느 날 문득, 그의 뇌리에 ‘방송대’가 스쳤다. 이 동문은 더욱 체계적이고 깊이 있는 학문적 뼈대를 세우기 위해 중어중문학과의 문을 두드렸다. 이번에도 아내인 장옥규 동문과 함께였다.
주변에서는 이미 군에서 장성까지 지내고 해외 유학까지 다녀온 그가 왜 다시 원격 대학인 방송대에 입학해 고된 학업을 이어가려 하는지 의아해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동문에게 방송대는 자신의 지식을 완성할 최고의 학문적 도장이었다.
“중국 현지 유학을 다녀왔고 군에서도 최고위직을 지냈지만, 제 안의 학문적 갈증은 쉬 채워지지 않더군요. 현지에서 배운 지식들이 구슬이라면, 이를 보배로 만들기 위해 실처럼 단단하게 꿰어줄 체계적인 이론과 커리큘럼이 절실했어요. 그때 제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방송대였어요. 방송대 교과과정은 상상 이상으로 깊고 방대했습니다. 기초 어학부터 시작해 중국의 고전문학, 현대문학, 그리고 그들의 깊은 사상과 문화까지 총망라돼 있었죠.”
해병대 장군 출신인 이 동문에게도 매 학기 쏟아지는 교재와 방송 강의를 따라가기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밤새 돋보기를 쓰고 교재를 읽으며 과제물을 준비할 때는 해병대 훈련 못지않은 고통과 희열이 교차했다. 이런 고통과 희열을 교차한 덕에 그는 “방송대에서의 혹독한 학업이 있었기에, 비로소 제가 가졌던 중국에 대한 단편적 지식들이 하나의 거대한 학문적 체계로 완성될 수 있었다”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게 됐다.
대륙전략연구소 설립과 저술 활동
방송대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며 학문적 토대를 완벽하게 구축한 이재돈 동문은 이를 기반으로 자신의 사회적 소명을 다하기 위해 본격적인 행보에 나섰다. 사단법인 대륙전략연구소를 창설하고 초대 소장으로 취임해 평생 축적한 군사 안보 역량과 중국학 지식을 융합하기 시작했다.
연구소 설립 이후 그는 놀라울 정도로 방대하고 깊이 있는 저술 활동에도 뛰어들었다. 2001년 『지앙수와이(將帥)』를 시작으로, 2025년에는 『누가 중국을 움직이는가』(전 5권)를 선보였는데, 이 책은 대륙을 뒤흔든 역사적 인물 100인을 분석하고 동북아 정세를 진단하는 총서로 손색이 없다. 30년 군 생활과 방송대에서 다진 학문적 저력이 폭발적인 집필 에너지로 승화된 결과였다.
“제가 대륙전략연구소를 만들고 펜이 닳도록 책을 쓰는 이유는 오직 하나, 우리 후배들과 대한민국에 ‘중국을 보는 올바른 나침반’을 쥐여주기 위해서입니다. 방송대에서 중국의 역사와 문학, 인간을 심도 있게 공부했기에 중국을 이끌어가는 인물들의 내면과 사상적 배경을 깊이 파헤칠 수 있었어요. 『누가 중국을 움직이는가』 등의 저술 작업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니었죠. 수많은 사료를 고증하고 분석하는 지루한 싸움이었죠. 하지만 그때마다 저를 지탱해 준 것은 방송대 시절 혼자 외롭게 책상 앞을 지키며 길렀던 학업적 끈기와 해병대의 정신력이었습니다. 제가 남긴 기록들이 급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대한민국이 대륙을 상대로 승리할 수 있는 귀중한 전략적 자산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누가 중국을 움직이는가』는 이 동문의 경륜과 식견이 녹아든 결과물이지만, 이 책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아내인 장옥규 동문의 역할도 컸다. 원고 타이핑에서부터 초고를 읽고 논평을 덧붙여주는 일까지가 온갖 일을 도맡았다. 3천500쪽 분량 전체가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여담이지만, 장 동문은 “방대한 저술 작업에 도움을 줬지만, 중어중문학과 재학 시절 학과 공부나 시험과 관련해서는 남편으로부터 손톱만큼도 도움을 받지 않았어요. 둘 다 자신의 공부를 완주했을 뿐이죠”라고 웃으며 말했다.
‘방송대’, 학위 그 이상의 의미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이재돈 동문은 자신에게 방송대가 어떤 의미로 자리 잡고 있는지에 대해 깊은 감회와 애정을 쏟아냈다. 그에게 방송대는 단순히 졸업장 하나를 더해준 학교가 아니라, “인생 2막의 위대한 시작점이자 인생의 외연을 무한히 넓혀준 지혜의 요람”이었다. 그는 방송대를 통해 배움에는 지위의 높고 낮음도, 나이의 많고 적음도 없다는 평생학습의 참된 가치를 깨달았다고 고백했다.
“사람들은 흔히 군 장성 출신이라고 하면 퇴임 후에 안락한 노후를 보내거나 과거의 명예에 기대어 살아갈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방송대를 만나면서 완전히 새로운 인생, 즉 ‘학자이자 전략가로서의 제2의 인생’을 선물 받았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방송대는 제 인생의 종착역이 아니라, 가장 화려한 출발역이었습니다. 30년 군 생활이 제 몸과 마음을 단단하게 만든 시간이었다면, 방송대에서의 시간은 제 영혼과 지성을 풍요롭게 채워준 시간이었습니다. 방송대 동문이라는 사실이 제 인생에서 해병대 사단장을 지낸 것 못지않게 커다란 자부심을 줍니다. 한국 최고의 전략 연구소로 자리잡은 대륙전략연구소를 설립, 운영할 수 있었던 것도, 『지앙수아』에 이어 『누가 중국을 움직이는가』를 출판할 수 있었던 데도 방송대에서 익히고 배운 경험이 밑바탕이 됐습니다. 배움을 망설이는 많은 이들에게 제 이야기가 조그만 용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배움이 있는 한, 우리는 영원히 청춘입니다.”
월남전에 두 번이나 참전해서 전쟁의 참상과 아픔을 직접 목격하고 체험했기에, 다시는 이 나라에 전쟁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신념을 품고 국민에게 전쟁의 비극과 참담함을 제대로 알리고 싶다는 80대 중반의 이재돈 동문. 그의 신념과 열정은 현재진행형이다. 이 동문은 춘추전국시대부터 마오쩌둥 시기까지 중국의 역대 전쟁시를 모아 곧 책으로 출판하겠다고 귀띔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