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7학년도 수능이 100일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수험생 자녀나, 2022 개정 교육과정이 전면 도입되는 2028학년도부터 수능을 치를 자녀를 둔 방송대 학우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최근 차정인 국가교육위원장의 “서·논술형 평가 도입 시 폭넓은 독서만으로 수능 준비가 가능하다”라는 발언이 거센 비판을 받으며, 공교육 체계하에서 독서만으로 매년 가파르게 증가하는 사교육비를 잡고(2025년 기준 27.5조원), 대학 서열을 완화하면서 대한민국 교육을 정상화할 수 있을지 의문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백년지대계로 불리는 교육 정책은 정권마다 바뀌면서 지리한 논쟁을 양산하고 있다. <KNOU위클리>는 300호 커버스토리로 ‘메가스터디’ 창립 멤버로 사교육의 최전선에 서 있다가, 서울시교육청 정책보좌관으로 공교육의 최일선에서 활동 후 현재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연구 중인 이범 교육평론가를 만나 한국 교육 정책이 실패해 온 이유에 대해 들었다. 그는 프랑스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의 ‘인식론적 장애’라는 렌즈로, 해방 이후부터 지금까지 교육 정책 결정자들이 못 봤거나, 보지 않으려 했던 3가지 부분을 조목조목 짚었다. 교육 정책 개혁 방법은 견인견지(見仁見智)이기에, 추후 이에 대한 의견이 있을 경우 jebo@knou.ac.kr로 보내면 편집국 논의 후 소개할 예정이다.
윤상민 기자 cinemonde@knou.ac.kr

‘교실 붕괴’ 시작된 1990년대
추락한 교권으로 소송에 끌려다니는 교사, 옆자리 친구와 무한 경쟁하는 학생, 작은 일에도 학교를 안방처럼 드나드는 학부모…. 각자 기준은 다르지만, 교육의 3주체라 불리는 교사, 학생, 학부모 중 한국 교육 정책에 대해 자신있게 “만족한다”라고 답하는 사람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한국 경제 성장을 견인한 힘으로 각광받는 K-교육의 이면에는 몇 년째 세계 1위인 청소년 자살율, 부임 5년 이하 신임 교사의 역대급 퇴직률 증가, 학교폭력으로 소송이 난무하는 교실 등 어두운 면이 존재한다.
이 교육평론가가 꼽은 첫 번째 요인은 직업 교육의 실패다. 1980년대 전체의 45%에 달하던 실업계 고등학생 비율은 1990년대부터 축소되면서 현재는 15% 수준으로 대폭 줄었다. 특목고, 자사고 5%를 제외하면, 흔히 인문계고로 불리는 일반고에 80%의 고등학생이 재학 중인데, 사실 1990년대 중반부터 수업 시간에 엎드려 자는 학생들이 ‘교실 붕괴’라는 이름으로 언론에 보도되기 시작했다. 일각에서는 이에 대해 ‘자사고·특목고 때문에 공교육이 황폐해졌다’, ‘혁신학교로 전환하며 학력이 낮아졌다’라고 주장했지만, 이 교육평론가의 진단은 다르다. 인문계 고등학교(academic high school)는 국어, 영어, 수학, 과학 등 특정 교과의 학문적 교육에 중점을 두는데, 정책 결정자들이 직업계 고등학교를 줄이고 인문계 고등학교를 늘리면서 정작 학생들이 적성에 맞지 않는 교육과정을 이수하게 됐다는 지적이다.
교육과정의 ‘미스 매치’ 상태가 오랫동안 심하게 누적된 것도 문제지만, 상대평가로 인해 일정 비율 이상의 학생은 교실 내에서 실패자로 낙인찍히게 된다는 점도 큰 문제로 지적했다. 직업 교육과 아카데믹 교육 사이에 제대로 된 관계 설정이 부재했기에 교육 정책은 늘 실패하고 있다는 첫 번째 진단이다.
선진국들은 어떻게 대처하고 있을까? 유럽과 북미의 해법은 조금씩 다르다. 독일은 초등 5학년 때부터, 네덜란드는 중학교 때부터, 나머지 대다수 유럽 국가들은 고등학교부터 직업 교육과 아카데믹 교육을 분화한다. 미국과 영국은 직업계 고등학교가 거의 없지만, 일반고등학교 내에서 직업 교육을 병행한다.
두 번째 실패 요인은 대학 간 불평등이다. 쉽게 말하면 교육비다. 서울대는 1년에 학생 1인당 교육비로 약 6천만 원을 투입하고, 연세대·고려대는 4천만 원 수준이다(학부·대학원생 총합). 이어 서강대, 성균관대, 한양대가 3천만 원, 중앙대, 경희대, 한국외대, 서울시립대가 2천만 원 정도를 투입한다. 학부모와 수험생 사이에서 ‘스카이-서성한-중경외시’로 회자되는 대학 서열이 그대로 드러난다. 경북대, 충북대, 전남대 등 지방거점국립대(지거국)도 1년에 2천만 원 남짓을 1명의 학생에게 쓴다. 그런데 이른바 입결(입시 결과)은 지거국보다 중경외시 대학이 더 높은데, 이는 취업 환경 등 서울 선호 현상이 반영됐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비 투자 서열이 대학 서열의 근간이라는 것이 이 교육평론가의 분석이다.
이 교육평론가는 투입되는 교육비가 높을수록 교육의 질이 높다고 보는데, 이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KAIST와 POSTECH을 꼽았다. 대전, 포항에 있지만, 설립과 동시에 서울대와 못지않은 최고의 대학으로 손꼽혔고, 지금도 그 위상은 크게 다르지 않다. 충분한 투자를 통해 ‘인서울’ 최고 대학 못지않은 랭킹을 차지했다는 것이다. 설립 직후부터 예술 계열 최고의 인재들이 지원하고 있는 한국예술종합학교 같은 맥락으로 봤는데, 이 교육평론가는 “이른바 명문대를 선호하는 것이 학벌 때문이라고 많이 생각하는데, 학벌의 의미는 동문이 가진 사회적 권력과 대학의 이름값에서 나온다고 보면, 위에 언급한 3개 대학은 처음 생길 때부터 최고의 인재를 흡수했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 굳어지면서 학벌이라는 것이 생길 수도 있지만, 위 사례를 보면 결국 교육비 투자의 격차로 인한 대학 불평등을 확인할 수 있다”라고 분석했다.
그런 면에서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그는 ‘맛집’에 비유했다. 모든 사람이 서울의 맛집 하나에 길게 줄을 서는 것보다, 각 지역에 여러 개의 맛집에 나눠 줄을 선다면 기다리는 고통의 총량이 줄어든다. 마찬가지로 교육비 차이로 벌어졌던 교육 황폐화를 외면하지 않고, 여러 지거국에 서울대 수준의 교육비를 투입하면, 극심한 대학 서열화 및 학생간 경쟁은 완화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사립대 제외).
교사의 양심에 맡기는 평가 기준?
마지막으로 한국 교육 정책이 계속해서 실패하는 요인으로는 독일의 아비투어, 프랑스의 바칼로레아 등 다수 선진국의 자격시험이 절대평가인 반면, 한국은 상대평가를 한다는 점 그리고 국가 차원에서 공유된 평가 시스템이 없다는 점을 꼽았다.
한국은 교육과정에 따른 학생 개인의 성취도가 일정 수준에 도달했는지 절대평가하기보다 상대평가를 통해 줄을 세운다. 상대평가는 내신에서 학생들에게 치열한 경쟁을 강요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게 하는 문제점도 내포하고 있다. 소수가 1~3등급을 차지하기 위한 피 튀기는 ‘제로섬 게임’이 교실에서 매일 일어난다는 점에서 비교육적인 평가 방식으로 비판받기도 한다.
상대평가 방식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꾸준히 높아지면서 한때 절대평가로 전환했지만,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고등학교들에서 시험 쉽게 내기 경쟁이 불붙었다. 당시 서울시교육청 관계자에 따르면 모 사립고등학교에서 90% 이상 학생이 1등급을 받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절대평가를 전제로 추진한 고교학점제 역시 실제 도입 시 상대평가로 전환되면서 학생들에게 경쟁 시스템을 강요하게 된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고 있다.
유럽 국가는 국가 교육 과정을 제시하고, 이에 조응하는 평가 시스템을 공유한다. 교사가 자의적으로 점수를 주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훈련받는다. 하지만, 한국 교사들은 그런 공유된 평가 시스템 없이 ‘교사의 자율권’이라고 예쁘게 포장된 말로 평가를 해야 한다. 결국 점수대로 줄 세워서 등급을 부여하는 상대평가가 ‘내신 부풀리기 의혹’을 받게 만드는 절대평가보다 수월한 평가 방식으로 유지된다.
“그래도 수능은 공정한 것 아닌가?”라는 반론도 있지만, 이 교육평론가는 수능을 교육과정에 근거한 시험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다. 근거로는 <BBC>를 비롯한 외신에서도 지적한 △킬러문항 △상대평가 △객관식 등을 들었다. 더불어 이런 약점을 가진 수능 때문에 학생들이 적성에 맞지 않는 과목을 들어야 하는 악순환이, 내신 때보다 더 악화한다고 강조했다. 점수를 받기 위해 쉬운 과목을 선택하는 역선택의 함정이 발생한다는 지적이다.
그렇다면 대안은?
이 교육평론가가 제안하는 대안은 무엇일까? 그는 프랑스 중등 과정 졸업 시험 바칼로레아를 벤치마킹해 스위스가 만든 ‘국제 바칼로레아(IB)’에 주목한다. AI 시대를 맞아 기존의 지식 전달 위주 수업에서 벗어나 토론, 발표, 탐구 학습 시스템을 구축하고, 논·서술 중심 평가로 전환해 학생 간 경쟁을 완화하며, 국가 차원의 절대평가 시스템을 교사에게 공유하고, 교육청이 주도해 학교별·과목별로 인증해 주는 제도다. 국내에는 2019년 대구, 제주교육청이 선도적으로 도입했고, 현재 전국 공립 IB 운영학교는 269개교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고등 53·중등 94·초등 122개교, 2026년 7월 기준).
이 교육평론가는 “IB를 한국적 교육 상황에 맞게 보완한 KB를 설계할 수 있다면, 모든 경쟁이 없어질 수는 없지만 수영 선수, 높이뛰기 선수 등을 다양하게 키워야 하는 상황에서, 적어도 지금처럼 모든 학생을 달리기 선수로 키우는 교육의 시대는 저물 것”으로 전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