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방송대 진로·심리상담실

“상담자는 대신 선택하고

해결해주는 사람이 아니라,

내담자가 삶의 방향을

스스로 찾아가도록 함께 걷는 사람”


방송대 진로·심리상담실(실장 은혜경)의 역사는 4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3년 ‘학생생활연구소’가 발족하면서 방송대 심리상담 서비스가 시작됐다. 원격교육연구소(현 원격교육혁신연구원) 소관이던 심리상담은 2011년 학생처로 이관됐고, 학생생활연구소는 ‘진로·심리상담실’로 명칭을 바꾸며 영역을 확장했다. 2020년부터 대학본부 창조관에 둥지를 튼 진로·심리상담실은 한때 온라인 상담만 실시했다. 그러나 요구 조사 결과 90% 이상의 학우가 사람과의 직접 대면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나 오프라인 상담의 비중이 다시 커졌다. 현재 은혜경 실장을 비롯해 심리상담과 진로상담에 각각 3명씩 배치된 전임상담원 등 총 7명(진로상담 파트 1명은 육아휴직 중)으로 구성된 진로·심리상담실은 지난해 1만 명이 넘는 학우를 대상으로 온·오프라인 상담과 검사, 특강·워크숍 등을 제공했다. 이번 커버스토리에선 진로·심리상담실 구성원들이 생각하는 상담의 기능과 이들이 만나온 방송대 학우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요청에 따라 전임상담원들은 실명 대신 알파벳 대문자로 표기했다.
이현구 기자 zuibm@knou.ac.kr


행복을 위한 두 가지 과제, 심리와 진로
E 전임상담원(이하 상담원)은 심리상담과 진로상담의 차이를 이렇게 설명했다. “비유하자면, 진로상담은 함께 별자리를 보며 방향을 찾는 일이고, 심리상담은 하늘을 나는 새의 두 날개가 균형을 잡도록 돕는 일인 것 같다.”


A 상담원은 이에 대해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두 가지 분야 모두 방향과 균형이 중요하다. 진로상담이 내담자와 함께 관련 정보를 찾고 실행 계획을 짜는 결과 지향적 과정이라면, 심리상담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내담자의 ‘기본기’를 다지는 작업이다.” C 상담원은 “진로를 준비할 힘이 없을 때, 스스로에 대해 정리하고 해결되지 않은 내면적 문제를 풀어내며 그 힘을 되찾는 게 심리상담”이라면서, “결국 심리와 진로는 행복한 삶이라는 같은 방향을 추구하는 하나의 스펙트럼에 포함된다”라고 말했다.

 


열의는 크고 사연은 깊은 방송대 학우들
상담원들은 학우들의 폭넓은 연령대와 사연의 밀도가 일반적인 대학생에 비해 두드러진다고 말한다. 10대부터 70대에 이르는 학우들은 학업뿐 아니라 이직, 은퇴, 돌봄 같은 인생의 전환 문제로 진로·심리상담실을 찾아온다. A 상담원은 “일반 대학의 20대 학생이 대체로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다면, 방송대 학우는 진로 관련 고민에 경력단절, 가족 돌봄, 오래된 상처 등이 얽혀 있는 경우가 많다”라고 털어놓았다. 그래서 상담의 밀도가 높고 준비해야 할 것도 많다.


기억에 남는 사례로 A 상담원은 70대 후반의 학우를 떠올렸다. 평생을 앞만 보며 숨 가쁘게 달려왔지만 삶이 무료하게 느껴졌던 그는 심리상담과 특강을 거쳐 자신의 성향을 알게 됐고, 자기보다는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살아왔음을 깨달았다. 그는 상담을 통해 삶의 활력을 찾았고 주변 사람들에 대해 여유 있는 태도를 갖게 됐다.


C 상담원은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았지만 대인관계 문제로 고민하던 40대 여성 내담자의 일화를 전했다. 어린 시절에 비극적인 사건을 겪은 그는 평생에 걸쳐 스스로를 책망해왔음을 상담 과정에서 깨닫고 족쇄에서 풀려났다고 고백했다.


네트워크 보안 분야로 전직하길 희망하던 어떤 학우는 이론적인 기반도, 실무 경험도 없어 막막해하던 중 D 상담원을 만났다. 관련 검사와 상담을 통해 본인의 가치관·적성·흥미·성격 등에 대해 살펴본 후 대학원 진학을 준비 중이다.


심리상담과 진로상담이 맞물려 진행되기도 한다. 어떤 학우는 심리상담 후 내면이 한층 단단해져 이직 준비에도 더욱 적극적인 태도를 갖게 됐다. 이어지는 진로상담을 맡은 D 상담원은 “심리상담 영역에서 복합적인 내면 문제를 잘 풀어준 덕분에 저의 상담 과정이 훨씬 수월해졌다”라고 전했다. 반대로 진로 문제로 찾아왔다가 그 밑에 눌려 있던 심리적 어려움을 함께 다루게 되는 학우도 많다.

 

검사와 상담은 만병통치약 아냐
심리검사나 진로검사와 관련해 상담원들이 가장 자주 경험하는 오해는 그 두 가지에 대한 맹신이다. 검사는 참고자료일 뿐, 상담원은 그 밖의 여러 요소를 종합해 판단한다. 또 최대한 많은 검사를 받는 것보다는, 신청 후 사전 접수면접에서 필요하다고 판단된 검사를 선별적으로 받는 편이 효율적이다.


방송 매체에서 비롯되는 오해도 있다. 전문가가 직설적으로 답을 제시하고 꾸짖기까지 하는 TV 속 상담 장면에 익숙해진 나머지, 실제 상담에서도 명확한 정답을 얻게 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경우가 있다. 은 실장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지시적으로 개입할 때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내담자의 주도성”이라고 말했다. 상담자는 대신 선택해주고 해결해주는 사람이 아니라, 내담자가 자기 삶의 방향을 스스로 찾아가도록 함께 걷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진로상담을 받는 내담자들은 상담원의 정보력에 대해 지나친 기대를 갖기도 한다. E 상담원은 “우리도 모든 직업에 대해 아는 것이 아니라, 내담자가 필요한 정보를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찾도록 도울 뿐”이라며 “진로상담의 본질은 정보 제공보다는 내담자가 마음속에 간직한 열정을 찾아 그것을 구체적 진로로 승화시키도록 돕는 데 있다”라고 말했다.


AI에게 물어본 후 결국 사람을 찾아
상담원들에게도 인공지능(AI)은 중요한 화두 중 하나다. A 상담원은 “요즘엔 AI에게 고민을 다 털어놓은 후에 상담실을 찾아오는 분이 많다”라고 말했다. 그는 “AI의 답변을 듣고 궁금한 점을 해소할 수 있지만, 자기 마음에 대한 진정한 통찰은 인간 상담자와의 대면 상담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 같다”라는 한 내담자의 말을 전하며, “사람이 변화하고 성장하는 힘은 결국 관계에 있다”라고 덧붙였다.


상담원들이 AI를 무조건 경계하는 것은 아니다. 라포(rapport, 상담자와 내담자의 신뢰 관계) 형성 전엔 꺼내기 어려운 이야기를 AI에게 먼저 풀어놓으며 사전 지식과 스스로에 대한 통찰을 얻고, 실제 상담에 대한 부담감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B 상담원은 “AI는 이용자 편에서 공감하는 것처럼 ‘보이는’ 데 최적화돼 있으므로 좀더 객관적인 관점에서 함께 점검해주는 게 상담자의 역할이 된다”라며 “내담자에겐 AI를 맹목적으로 믿기보다는 비판적으로 수용하면서 잘 활용하라고 권한다”라고 밝혔다.


소진을 견디며 버텨내는 사람들
내담자의 심리적 문제를 이해하고 공감하다 보면, 상담원들도 소진(burnout)을 피하기 어렵다. A 상담원은 “위태로운 시기를 겪는 내담자와 통화할 때는 심장이 떨리기도 한다. 그럴 때면 다른 동료들과 의견을 나누며 서로를 지탱해주기 위해 노력한다”라고 고백했다.


특히 심리상담은 진로상담과 달리 성과가 외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크고작은 심리적 문제는 신체적 만성질환처럼 평생에 걸친 관리를 요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상담원들은 ‘내 상담을 받고 단 한 명이라도 힘을 얻고 행복을 찾는다면, 그것만으로도 성공’이라는 마음으로 일한다고 입을 모았다.


학우들에게 전하는 말
상담원들은 학우들에게 각자의 메시지를 전했다. “우리는 ‘혼내지’ 않아요. 걱정 말고 찾아오세요.” 상담 신청을 망설이는 것은 자존감이 낮아진 상태에서 스스로를 드러내기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 보는 D 상담원의 말이다. B 상담원은 “상담이 필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단정하고 미리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당부했다. 다만, 상담원 수가 5~6명이므로 10만 명에 달하는 학우들 모두가 원하는 시점에 곧바로 상담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교육부가 재학생 1천 명당 1명의 전문 상담 인력을 확보하도록 권고하고 있음을 고려하면, 방송대엔 100명의 상담원이 필요한 셈이다.


은 실장은 “방송대 진로·심리상담실의 상담이나 검사·특강의 질적 수준은 높은 편이지만, 교육부 권고에 부합하는 상담원 수를 확보하는 데는 현실적 제약이 있다. 이로 인해 상담 신청 가능 시간이 제한돼 있고, 신청이 접수되더라도 실제 상담까지 대기 시간이 소요된다는 점을 학우 여러분이 양해해주길 바란다”라고 밝혔다. 또 좀더 조기에 상담을 받고자 할 경우, 심리상담은 보건복지부에서 시행하는 ‘정신건강 심리상담 바우처사업’, 진로상담은 지자체 일자리센터나 여성새로일하기센터, 중장년내일센터 등을 통해 무상 또는 저렴한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방송대 진로·심리상담실 https://www.knou.ac.kr/sites/career/intro/intro.html

▶여성새로일하기센터 https://saeil.mogef.go.kr

▶중장년내일센터 https://www.elifepla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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