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시네마   「비광」에서 추락한 톱여배우 ‘남미’ 맡은 배우 하지원

 

영화 「해운대」, 「7광구」, 「담보」를 비롯해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 「시크릿 가든」, 「기황후」를 거쳐 최근 「클라이맥스」까지 매 작품에서 새로운 얼굴을 보여왔던 하지원 배우가 「비광」에서 여배우 남미 역을 맡아 깊이 있는 연기를 선보인다. 한순간에 추락한 생계형 연예인 남미는 화려했던 과거와 절망적인 현재를 오가는 입체적인 감정 변화를 보여줘야 하는데, 캐릭터에 몰입하기 위해 탈색을 하고 여배우라면 꺼릴 촌스러운 화장, 동물적인 감각의 의상을 찰떡같이 소화해 내며 남미 그 자체를 연기하는 데 성공했다. “여배우로서 여배우 역할 맡은 이번 영화에서 자신과 인생을 돌아봤다”라는 하지원 배우를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윤상민 기자 cinemonde@knou.ac.kr

 

 

시사회 전에 감독님과 부둥켜안고 우셨다고요(웃음).
감독님이 대기실에 계시는데, 제가 딱 등장해서, 그냥 말하지 않아도 알잖아요. 촬영 마치고 몇 년 동안 후반작업에 공을 들이신걸요. “너무 고생하셨다”라고 말씀드리면서 안아드렸는데 막 우시더라고요.

 

영화 보시고 어떠셨어요?
개봉하기를 늘 고대하고 있었는데, 드디어 개봉하게 돼서 기분이 너무 좋아요. 시간이 좀 지나서 보다 보니, 제가 연기한 ‘남미’라기보다 그냥 영화처럼 보게 된 느낌도 있어요. 엄마 ‘기실’이 춤추면서 “우리 자식들 비광인데, 내가 완성시켜 주고 싶다”라고 말하는 장면에서는 엄마 생각도 많이 났죠.

캐스팅 제안 받고 어떤 점에 끌려서 합류하게 됐나요?
제가 판타지나 액션 같은 장르에서 강한 캐릭터를 많이 했잖아요. 그런데 「비광」 남미는 진짜 리얼한 삶에 놓인 캐릭터라서 더 매력있었던 거 같아요. 남미뿐 아니라 가족들 모두 그랬어요. 그 안에 있는 삶들이 굉장히 끈적하고 생생했고요. 시나리오도 마음에 들었고, 류승룡 선배랑도 호흡을 맞춰보고 싶어서 선택했습니다.

 

배우이면서 영화에서 배우를 연기하셨어요.
캐릭터에 몰입하면서 제가 그동안 배우로서 살아온 시간에 대한 회고를 더 많이 하게 된 거 같아요. 늘 바쁘게 지내오면서 챙기지 못했던 가족, 무대 위의 저만 바라보다가 무대에서 내려와서 제가 그동안 살아왔던 저를 거시적 개념으로 바라보니 롤러코스터 타듯 수많은 감정도 들었어요. 태어나면서부터 첫 관계를 맺은 엄마부터 많은 분들이 떠올랐고,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 캐릭터였죠. 남미를 내 몸으로 느끼면서 촬영하다 보니, 가슴도 아프고 힘들기도 했어요. 여배우로 사는 게 쉽지만은 않은데, 그런 걸 느꼈던 작품입니다.

굼벵이, 개구리 먹방 장면이 충격적이었습니다(웃음).
영화 초반에 먹방 리포터 씬이었죠. 굉장히 덥고 습한 날이었어요. 먹방 유튜브도 많이 보면서 연구했고, 실제 앞에 굼벵이랑 개구리 놓고 정말 열심히 찍었는데, 좀 세게 나왔는지 편집이 많이 됐더라고요(웃음). 그게 요즘 짤로 돌아다니는 걸 보니, 제 모습인데도 낯설더라고요. 엄마도 좀 충격을 받으신 거 같고요(웃음).

 

남미 캐릭터를 구축하기 위해서 12시간이나 리딩을 하셨다고요.
프리 단계를 이렇게 열심히 또 오랫동안 한 작품은 「비광」이 처음인 것 같아요. 톱스타였을 때와 추락했을 때의 갭이 정말 큰 캐릭터라, 감독님과 그 부분에 대해 ‘씬 바이 씬’으로 정말 오랜시간 공을 들였어요. 남미가 놓인 삶의 상황을 충분히 이해해야 대사와 표정이 나올 수 있으니까요. 여배우로서의 저의 삶과 감독님의 살아온 이야기들도 나누면서, 캐릭터를 잡아갔죠. 프리 단계를 너무 탄탄하게 해서, 현장에서는 오히려 더 많은 걸 내려놨던 거 같아요.

남미 캐릭터를 맡으면서 이지원 감독님께 욕을 배우셨다고요.
제 주위에 욕을 하는 분들이 많지 않아요. 유일하게 감독님이 가장 많이 하시는 편인데요. 그래서 리딩할 때 감독님한테 욕을 좀 해달라고(웃음). 감독님 말투를 녹음해서 연습했어요. 엄마 놀라실까봐 제방 테라스에서 매일매일 욕 연습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감독님은 “너무 천사라서 그런지, 아무리 연습을 시켜도 입에 안 붙더라”라고 한숨을 쉬더라고요(웃음).
저는 욕을 한 지 얼마 안 됐잖아요(웃음). 욕도 숙성이 필요한 것 같아요. 같은 욕인데도 뉘앙스가 다른 것 같기도 해요. 진짜 욕은 뭔가 뱉어내는 자체보다, 남미가 그런 삶에 처해서 하는…. 후시녹음할 때도 수십 번은 했는데, 그래도 감독님의 오래 숙성된 욕을 따라가진(웃음).

 

강렬한 의상도 남미 캐릭터를 돋보이게 하는 장치가 되는 것 같아요.
배우가 어떤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의상, 헤어, 메이크업에 도움받았을 때 더 완성도가 있잖아요. 저는 피팅하고 헤어도 더 탈색해서 안 좋게 만들고, 눈썹도 밀고, 새로운 남미에 맞는 분장하는 과정들이 재미있었던 거 같아요. 저도 낯선 제 얼굴들을 보면서 ‘아, 이런 것들로 남미의 캐릭터들이 만들어지는구나’라는 느낌이 들었죠. 피팅하면서 깜짝깜짝 놀랄 때가 많았어요. 약간 동물적인 컬러나 룩들이, 처음에는 낯설기도 했지만 또 그런 의상들이 남미 캐릭터를 하나하나 입혀줘서 즐겁게 했던 기억이 나네요. 처음엔 밀림에 온 줄 알았어요(웃음). 자세히 보면 남미는 피부도 땀에 절어 있고, 립스틱 컬로도 막 채도 하나까지 같은 레드도 아니고(웃음). 눈썹도 밀고 탈색도 하면서 딱 남미가 삶에 놓인 그 무드를 연기하려고 노력했어요.

생생하고 끈끈함이 느껴지는 시나리오가 마음에 든다고 했는데, 혹시 선뜻 동의가 되지 않는 부분은 없었을까요? 스포일러라 말할 수는 없지만, 특히 영화 후반부에서 남미의 선택에 대해서도요.
만약 저의 시선으로 그 상황을 본다면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이 굉장히 많았을 거 같아요. 남미라는 사람이 살아온 시간으로 봐야 했기에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없었던 거 같습니다. 어쩌면 남미도 동주를 보면서, 자신과 너무 닮아 있다고 느꼈을 거예요. 부모도 모르게 태어났고, 사랑받지도 못했죠. 버릴 수도, 거둘 수도 없으니, 정체성에 혼란이 왔을 거 같아요. 단순한 감정선이 아니라, 본인의 어린 시절부터 현재까지의 감정선이 동주를 맞이하면서 정말 복잡하게 되는 거죠. 나중에 동주가 남미에게 도와달라고 하잖아요. 되게 힘든 순간이지만, 동주의 선택이 남미를 한 단계 성숙해지게 만드는 계기가 된 거 같아요.

류승룡 배우와 호흡 맞춰보고 싶은 마음에 영화를 선택했다고 하셨는데, 호흡은 어떠셨어요?

되게 유쾌하시고, 아재 개그 1위세요(웃음). 그런데 현장에서는 아재 개그도 안 하고 되게 진지하셨죠. 요즘은 홍보활동 하면서 막 터졌어요. 너무 따뜻한 분이신데, 이번 영화에서는 파경을 맞은 부부 역할, 그런 씬들로 만나서, 다음 작품에서는 뭔가 재밌는 영화로 만나면 좋을 거 같긴 합니다.

시어머니 역을 맡은 김해숙 배우와의 호흡은요.
너무 영광이었어요. 씬이 많지는 않았지만 너무 강렬해서, 지금도 당시 대사, 호흡, 느낌이 다 기억나요. 김해숙 선배가 남미 캐릭터를 더 선명하게 보일 수 있게끔 연기하신 거 같아요. 그냥 호흡하는 거 자체로 너무 행복했어요. 너무 좋아서 떨리는 것도 있었지만.

 

김선영 배우 역시 동물적으로 연기를 하더라고요.
아쉬울 정도로 너무 좋았어요. 배우고 싶은 게 많은 선배님이세요. 너무 좋아요. 둘이 술 마시는 씬에서 막 마요네즈 바르는 것, 속눈썹 이야기 전부 애드리브였어요. 리허설 하면서 딱딱함 하나도 없고 제가 이렇게 하면 받아주시고, 언니가 이렇게 하면 제가 또 받고요. 중간에 모니터하러 갔더니 감독님이 제 머리에서 김치 냄새 난다고(웃음).

젠지 세대인 김시아 배우랑은 어떻게 친해지셨나요?
저 시아랑 같은 학번이에요(웃음). 감독님이랑 저랑 시아랑 있으면, 저랑 시아는 말이 통하거든요(웃음). 제가 경희대 치어리더 동아리 출신인데요. 요즘 유튜브 하면서 그때 기억이 나더라고요. 봄에 열린 창밖으로 선배들이 안무하는 걸 보는데, 갑자기 눈물이 나는 거예요. 제가 스무 살의 지원이를 만나러 가는 감정이 들었달까요? 그 당시에는 그때의 소중함을 즐길 줄 몰랐던 거 같아요. 오디션 보러 다니고 연기하면서요. 지금은 예전에 하지 못했던 동아리 활동, 축제, 선배들과 밥약속 끝나고 학교 근처에서 소맥 마시고, 이런 걸 다 해본 거 같아요. 너무 감사한 건 저보다 한참 어린 동기, 선배님들이 저를 진짜 26학번으로 대해주셨다는 거에 정말 감사합니다(웃음).

 

여배우가 여배우를 연기한 작품이라, 촬영 마치고 남미 캐릭터에서 벗어나기가 쉽지는 않았을 거 같아요.
머릿결을 일부러 상하게 했는데, 계속 상해 있더라고요(웃음). 진짜 남미의 흔적이 정말 오랫동안 남았어요. 감정적으로 남았다기보다 오히려 정신없이 살던 저를 돌아보는 시간이 됐죠. 지금도 그 과정 안에 있는 거 같아요. 남미 캐릭터에서 벗어났다기보다, 여배우로서 살아가는 나라는 생각, 고민의 연장선에 있는 거 같고요.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주입식 교육을 받고, 부모님, 선생님, 회사가 바라는 모습으로 살잖아요. 진정한 나는 누구인지 고민하기보다요. 여배우를 떠나서 전반적으로 우리 사회가 바라는 모습 같아요. 저 역시 사람들이 기대하는 배우로서의 하지원 이미지가 있으니까요. 그래서 여배우로 살아가기 쉽지 않다고 이야기한 적도 있었고요. 가끔 그런 이야기를 해요. 나라는 존재는 가족이랑 있을 때 다르고, 애인이랑, 회사랑 있을 때 다 다르잖아요. 결국 누군가가 바라는 모습일 텐데, 그러면 진정한 나는 누구일까, 하는 질문을 3년째 제게 하고 있어요. 「비광」이 좋았던 이유는 그런 관계 속에서 자신을 볼 수 있기 때문이었어요. 그래서 처음에 말씀드렸듯이 시간이 좀 지나서 내가 연기한 영화가 아니라, 그냥 영화 한 편으로 마주할 수 있었던 점이 좋았고요.

20년 전과 거의 바뀐 게 없는 거 같은데요(웃음).
고맙습니다(웃음).

 

「비광」이라는 영화가 하지원 배우 필모그래피에 있어서 어떤 의미로 남을 작품일까요?
난 누구이고, 왜 배우를 하고 있는지, 나라는 존재에 대한 고민을 할 때 「비광」 제안을 받았어요. 그때 남미라는 캐릭터를 만났기 때문에, 더 딥하게 저라는 사람을 되돌아봤죠. 배우라는 존재, 나라는 존재, 남미라는 사람에 대해서까지 그런 고민을 너무 많이 하던 시기에 촬영르 해서, 저한테는 진짜 연기를 처음 할 때 그 이상의 떨림을 갖고 연기를 했던 작품인 거 같아요.

올해로 데뷔 30년인데, 앞으로 꿈이 있다면요?
많은 작품을 하긴 했지만, 배우로 신중하고 진지하게 졌다고 해야 할까요? 그러니까, 책임감도 더 따라야 하는 거 같아요. 가볍게 짠(!), 이런 캐릭터 하고 싶다는 것보다, 이제 한 작품, 한 작품 더 캐릭터와 메시지에 더 많은 고민과 책임감을 갖고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 같아요. 좋은 작품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감독님들, 좋은 작품 주십시오. 열심히 하겠습니다(웃음)!

윤상민 기자 cinemonde@kno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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