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본 사회가 가능한 한 죽음으로부터 눈을 돌리고 되도록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는 측면이 강하다고 생각합니다. 병원에서 의사의 관리하에 죽는 일이 대단히 많습니다. 이것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당사자의 만족, 삶을 다 살았다고 느끼는 일로부터 우리를 소외시키고 있는 건 아닐까요?
어머니가 호스피스 병원에 입원하신 지 올여름으로 3년이 됩니다. 3년 전에 뇌경색이 발생했고, 혈전이 심장까지 가서 아주 잠깐이지만 심장이 멈췄기 때문에 왼쪽 뇌가 기능을 못 하게 됐습니다. 우반신은 움직일 수 없고 듣지도 보지도 못하고 누운 채로 의식은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했습니다.
확실히 처음에는 눈을 뜨고 있어도 몽롱한 것이 아무것도 못 보는 느낌이었는데, 점점 시선이 분명해지고 컨디션 좋을 때는 물끄러미 쳐다보곤 합니다. 말도 못하고 들어도 이해하는 것 같지도 않지만, 이따금 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갑자기 눈물을 흘릴 때도 있으니, 뭔가 기억과 감정이 작동하는 일도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상태를 의식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요.
면회를 가면, 저는 근황을 이야기합니다. 이해하고 있는지 어떤지는 모르지만, 계속 듣고 있으면 목소리가 기억의 어딘가에 닿을 거라고 생각하니까요. 그리고 어머니가 좋아하던 고시지 후부키(越路吹雪)라는 가수가 노래하는 샹송 「장미빛 인생」이나 아즈사 미치요(梓みちよ)의 「안녕, 아가」비디오를 보여드립니다. 일본에서 섣달 그믐에 방영되는 「홍백 가요대전(紅白歌合)」이라는 인기 프로그램의 1969년 녹화입니다. 제가 네 살 때 어머니는 아직 한 살이었던 여동생에게 「안녕, 아가」를 불러주었습니다.
어머니 침대는 3인실 한가운데 있습니다. 요 3년간, 양옆 침대의 환자들은 몇 번이나 바뀌었습니다. 퇴원하셨는지 돌아가셨는지 알 수 없지만, 아무래도 호스피스 병원에는 나아서 퇴원할 만한 환자는 들어오지 않겠지요.
어머니는 기본적으로 육체가 건강한 것 같습니다. 식사는 액체 영양제를 코로 삽입한 튜브를 통해 직접 위로 흘려 넣어 섭취합니다. 폐가 산소를 충분히 들이쉬지 못하므로 호흡도 목으로 삽입한 산소 튜브에 의존합니다. 심장비대증이 있긴 해도 그 상태로 이미 3년이나 지냈고, 작년에 아흔이 되셨습니다.

어머니의 치매와 의지의 상실
튜브를 몸에 달면서까지 살고 싶지 않다는 것이 노년기에 접어든 후 어머니의 입버릇이었습니다. 무슨 일이 생기면 연명 조치는 거부하고 싶다고 언제나 말씀하셨습니다.
그 바람과 달리 ‘연명 조치 거부’라는 선택을 스스로 할 수 없었던 것은 어머니가 치매에 걸렸기 때문입니다. 2020년 초에 치매로 그룹 홈 시설에 들어갔고, 코로나 때문에 외출도 면회도 못한 채 심신이 급속히 쇠약해져 극도의 운동부족으로 걸을 수도 없게 되었고, 뇌경색이 왔습니다.
아들인 저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것이 내내 죄송한 기분으로 남아 있습니다. 지금 계신 병원에 입원할 때, 앞으로 무슨 일이 발생하면 연명 조치를 할 것인지 병원 측에서 가족의 확인을 구했습니다.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솔직히 연명하려고 작정한다면, 그저 목숨이 붙어 있는 상태만이라도 괜찮다면 현대의학으로 몇 년이라도 살릴 수 있습니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정말 인생이란 무엇일까 싶고, 어쩌면 좋을지 몰랐습니다.
저는 연명 조치는 하지 않고 싶다는 것이 어머니의 뜻이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렇게 부탁했지만, 여동생은 생각이 달라서 가능한 한 생명을 연장하고 싶어 했습니다. 두 사람이 합의하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어머니가 더욱 위독해질 경우 추가적인 연명 조치는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만, 여동생은 완전히 납득한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이 지점에선 가족 간에 의견을 맞추는 것이 정말 어려운 부분이라고 느꼈습니다.
요 몇 년간, 저와 같은 세대인 친구와 친척들도 어머니를 잃고 있습니다. 친구의 어머니는 돌아가시기까지 건강했지만, 어느 순간 스스로 식사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정말 먹지 않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가셨습니다. 저의 큰어머니는 정정하셨지만 치료하기 어려운 암이 발견되자, 입원도 항암제 치료도 거부하고 오랫동안 지내온 정든 자택에서 올해, 자녀들과 손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돌아가셨습니다.
두 분 모두, 강한 의지로 이끌어온 삶이었습니다. 멋진 인생의 종료 방식에 감명받았습니다. 큰어머니와는 이따금 이야기를 나눴는데, 큰어머니를 지켜보면서 일종의 깨달음과 각오를 가진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모두 건강할 때 훌쩍 떠나고 싶지만, 그게 좀처럼 쉽지는 않겠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큰어머니의 가족은 충분히 치료받지 못한 점이 속상한 듯하지만, 저는 큰어머니가 바라던 대로 가장 행복한 마무리를 실현했다고 생각합니다.
죽음을 외면하는 사회
조금이라도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면, 저의 어머니도 그 두 사람처럼 선택했을까, 생각해 봅니다. 제 어머니는 아주 의지가 강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치료는 여기까지만 하자고 분명히 말씀하셨을 거라고 상상합니다. 하지만 지는 걸 싫어하기도 했기 때문에 병과 노쇠함에 맞서 마지막까지 싸우려고 애썼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연명치료라는 길을 스스로 선택했을 수도 있겠지요.
그러면, 저는 어떨까요? 저 역시 어머니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필요 없는 연명치료는 하지 않고 죽을 때가 왔다고 느끼면 죽음을 정면으로 받아들이고 싶다고, 지금은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때가 되면, 어떻게 느낄지 모르겠습니다. 또 어머니처럼 판단할 여지가 없을 가능성도 있을 테지요.
연명을 어떻게 생각할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사회가 인생의 종료 방식을 어떻게 생각하는가는, 그 사회의 문화나 관습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저는 일본 사회가 가능한 한 죽음으로부터 눈을 돌리고 되도록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는 측면이 강하다고 생각합니다. 병원에서 의사의 관리하에 죽는 일이 대단히 많습니다. 이것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당사자의 만족, 삶을 다 살았다고 느끼는 일로부터 우리를 소외시키고 있는 건 아닐까요? 저의 어머니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친구 어머니나 큰어머니를 생각할 때마다, 뭔가 본인이나 주변 사람이 납득할 수 있는 마지막을 맞이하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물론, 이것은 여러 가지 보호와 간호를 받으며 살고 있는 분들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죽을 때가 다가왔을 때 어떻게 마주할 것인지에 따라 안락사를 추구한다거나 그것을 제도화하고 싶다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아주 어렵고, 만인이 납득할 수 있는 결론에는 이르지 못하는 주제이긴 하지만, 제 자신을 위해 명료하게 생각해 두고 싶은 부분입니다.
번역 김석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