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제50회 방송대문학상

 

‘다음 세기의 문장’을 찾는 제50회 방송대문학상이 60여 일의 현상 공모를 통해 시, 단편소설, 에세이 세 부문에서 당선작을 내며 반세기에 걸친 문학적 유산을 이어갔다. 일과 학업, 가사를 병행하는 다채로운 삶의 궤적 속에서 써 내려간 학우들의 작품은, 삶의 고단함 속에서도 배움에 대한 열정과 문학을 향한 순수한 집념이 만들어낸 것이어서 더욱 값진 결실이다. 제50회 방송대문학상 현상 공모전에는 시 160편, 단편소설 30편, 에세이 35편이 경쟁을 벌였다. △주제의식 △창조성 △실험성 △표현력 △구성력 등을 기준으로 삼아 9월 19~22일까지 심사를 진행했다. 이영주 시인(대학원 문예창작콘텐츠학과 외부교수), 김종광 소설가, 신현욱 교수(영어영문학과)가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최익현 선임기자 bukhak@knou.ac.kr


[시]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고 삶을 일으켜 세운 치열한 언어
시 부문 당선작「눈물을 손에 쥘 수 있다면」으로 당선의 영예를 안은 강수지 학우에게 방송대에서의 공부와 글쓰기는 인생의 힘든 시기를 지나온 스스로를 구원하는 과정이었다.
2020년 제44회 방송대문학상 에세이 부문 가작 수상 당시 국어국문학과에서 공부했던 강 학우는 이후 법학과로 전공을 바꿔 학업을 계속하고 있다. 방송대 선택 이전에는 편협한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는데 방송대에 다니면서 스스로가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 또 사람은 나이를 먹을수록 안주하지 않고 계속 배워야 한다는 걸 절실히 깨닫게 됐다.
자신이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걸 확인하고 싶어 제50회 방송대문학상에 도전했다는 그는 방송대문학상 수상 경력을 지녔던 터라 ‘어쩌면 당선될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가졌다고 솔직하게 말하면서 이렇게 전했다.
“코로나 백신을 맞은 뒤로 계속 몸이 아파서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는 저에게 이렇게 기쁜 소식이 오다니 참 행복하다. 건강이 좋지 않은 상황 속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고 계속 도전할 수 있는 건 방송대에서의 가르침과 좋은 사람들의 영향력 덕분이다. 특히 방송대 학보 〈KNOU위클리〉를 꾸준히 구독하면서 인생의 가치관과 방향이 좋은 쪽으로 많이 향상됐다.”
시 부문 심사를 맡았던 이영주 시인은 심사평에서 강 학우의 작품「눈물을 손에 쥘 수 있다면」의 당선 이유와 시적 성취를 이렇게 평가했다.
“강수지 학우의「눈물을 손에 쥘 수 있다면」은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이었다. ‘눈물을 손에/ 쥘 수 있다면/ 바둑돌을 만지는 기분일까요?’라는 첫 연부터 독자를 사로잡는 힘이 느껴졌다. 눈물이라는 액체성과 바둑돌이라는 고체성의 결합이 시적 상상력에 의해 새로운 감각으로 탄생하는 순간이다. 바둑을 두시던 생전 아버지의 모습을 통해 애도의 과정을 애틋하고 아련하게 표현함으로써 시적 재미와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함께 동봉된 다른 작품들도 그의 시적 가능성을 기대하게 한다.”

[단편소설]   고단한 현실 속에서도 끈질기게 이어간 서사의 마침표
「마모(磨耗)되는 것들의 연대(連帶)」로 단편소설 부문에서 당선의 영예를 안은 서민지 학우는 영어영문학과에 재학하면서 중어중문학을 복수전공하며, 직장 생활을 병행하고 있다.
동남아시아에서 10여 년간 머물다 돌아와 현재 IT 기업에 근무 중인 서 학우는 배움에 대한 갈증으로 고민하던 중 방송대에 재학 중이던 지인이 ‘생업의 무게를 짊어지고도 배움의 숲을 거닐 수 있다’며 권유해 방송대에 진학했다.
문학상 응모 계기를 묻자 그는 “방송대문학상은 제가 매년 두드려야만 하는 숭고한 문이었다. 타국에서 이방인으로 홀로 견뎌낸 시간들과 어둠 속에서 쏟아낸 제 외로운 문장들이, 마침내 세상과 맞닿을 수 있는 유일한 출구라 믿었기 때문이다”라고 답했다.
서 학우의 당선작은 버려진 솜인형을 모티브로 삼아 오늘을 사는 청년들의 삶과 연대를 그려낸 작품이다. 그는 당선 소감을 이렇게 전했다.
“소설 속 인형이 낡고 빛이 바랬음에도 두 우주를 연결하는 ‘고요한 닻’이 됐듯, 우리의 삶에 새겨진 생채기들 역시 단순한 흉터가 아니라 서로를 단단하게 붙잡아 매는 ‘연대의 매듭’이 될 수 있음을 믿는다. 글을 쓴다는 것은 끊임없이 흔들리며 세상의 아픔을 체화하는 일과 같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차가운 사막 한가운데서 소외되고 마모돼 가는 존재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따뜻한 문장들을 써 내려가겠다.”
심사를 맡았던 김종광 소설가는 그의 작품이 지닌 이채로운 설정과 강력한 문체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하면서 당선을 축하했다.
“당선작「마모되는 것들의 연대」는 시적 소설인데도 불구하고 힘이 느껴지며, 잘 읽히기까지 한다. 인간이 아닌 사물이 화자인 우화소설답게, 풍자성이 강하다. 여섯 개의 장으로 이뤄졌는데, 인상적인 산문시 여섯 편을 합체해놓은 듯 문장이 매혹적이었다. 진부한 설정의 진부한 서사를, 참신한 설정의 이채로운 이야기로 탈바꿈시키는 강력한 문체였다. 가혹한 청년 노동의 실태를 이토록 멋있게 고발할 수 있다니! 멋있어서 더 비애스럽다. 적당히 무겁고 간간짭짤한, 통찰력 가득 담긴 잠언스러운 문장도 곳곳에서 빛난다. 확실한 작가로 성장해 남다른 창법을 많이 들려줄 것이라고 확신한다.”

[에세이]   배움의 기쁨과 삶의 진정성이 만들어낸 진솔한 울림
에세이 부문 당선작「오십」의 주인공 신후덕 학우는 영어영문학과, 국어국문학과, 통계·데이터과학과를 거쳐 현재 법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이며, 현업 심리상담사로서 배움을 이어가고 있다.
“방송대 선택은 제 인생에서 가장 자율적인 선택이었다. 공부를 지속하고 있는 제 자신이 자랑스럽다. 처음 방송대를 선택했을 때는 배움에 대한 목마름인 줄 알았다. 그런데 공부를 계속하면서 깨달았다. 결국 공부의 목적은 ‘나 자신’, 즉 ‘나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것’이었음을 알게 된 것이야말로 가장 값진 변화다.”
그런 그가 제50회 방송대문학상 에세이 부문에 응모한 것은 정말 우연이라면 우연이었다. 2026년 어느 이른 새벽, 잠에서 깬 신 학우는 자신이 곧 50세가 된다는 걸 알고 문득 마음이 헛헛해졌다. ‘여전히 너무도 미숙하고 어린아이 같은 채로 내가 쉰이 됐구나’라는 생각이 스쳤다. 그런 신 학우에게 당선은 어떤 의미일까?
“이번 수상은, 지난날을 버텨낸 저에게 조용히 손을 내밀어 준 다정한 위로이자 앞으로의 삶을 지탱해 줄 의미가 되어 줄 듯하다. 불안에 압도되기도 하고, 조급해지기도 하던 마음을 꾹꾹 누르며, 그 막막했던 미명을 홀로 견뎌낸 후에 이제는 좀더 인간적이고 따뜻한 글을 써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사에 참여한 신현욱 교수는 신 학우의「오십」이 지닌 문장력과 디테일의 깊이를 높이 샀다. “당선작「오십」은 우선 많은 문장을 써온 훈련, 그러면서 습관에는 묶이지 않은 기율이 주목된다. 아직 딱 맞는 언어가 없어 속상하고 불편한 어린 시절에 대한 첫 대목의 서술, ‘아버지는 그냥 웃으시다 내 감정과 경험을 자신의 언어로 해석해 주었다. 나는 아버지의 말을 들었고, 이해 없이 그것에 설득됐다’에 실린 여러 겹의 의미는 아름답다. 타인의 언어로 자신을 정립하던 어린 시절의 취약함, 그런데 그 타인이 아버지라는 든든한 ‘내 편’이어서 웃음과 안정감에 싸여 있던 세계에서 어떻게 자신의 언어와 세계를 찾아 확장·심화해 나가는지를 잘 보여준다.”

배움과 글쓰기가 선사하는 삶의 의미
반세기의 역사적 반열에 오른 방송대문학상은 단순한 학내 공모전의 범주를 훨씬 뛰어넘는다. 일터와 가정, 그리고 학교를 오가며 고단한 일상을 견뎌내는 학우들에게 문학상 도전은 스스로의 삶을 재해석하고 존재의 이유를 확인하는 거룩한 통과의례다.
당선과 가작의 영예를 얻은 학우들, 그리고 깊은 밤 홀로 자신의 문장을 써 내려갔던 학우들 모두가 보여준 성취는 ‘배움과 문학에는 결코 늦은 때가 없으며, 방송대라는 배움의 터전 안에서 피어난 삶의 진정성은 세상을 바꾸는 따뜻한 힘이 된다’라는 사실을 단적으로 증명해 준다.
배움에 대한 끊임없는 열정과 문학을 향한 순수한 집념으로 반세기의 문학적 유산을 빛낸 방송대문학상 도전자들, 이들이 써 내려간 치열한 문장들은 오늘도 삶의 수많은 갈림길에서 학업과 공부를 이어가는 학우들에게 용기와 희망의 이정표로 남을 것이다.

 

 

* 다음은 당선의 영예를 안은 강수지, 서민지, 신후덕 학우 인터뷰 전문이다.

 

● 시 부문 당선 강수지 학우(법학과 3)

제가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걸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영혼 없는 로봇처럼 막연하게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애너벨 리」와 「검은 고양이」를 쓴 애드거 앨런 포처럼 선과 악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제 영혼이 끝없이 갈등하며 존재하고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습니다.

간단히 자신을 소개해주세요
1979년 6월 25일은 저보다 먼저 태어난(살아있다면 마더 테레사가 됐을) 아기의 생일이지만, 제 생일이 됐습니다. 아버지께서 첫째나 둘째나 같은 부모가 낳았고 또 통일을 염원하는 마음을 담고 싶어 하셨기 때문이지요. 대입 검정고시 출신이고 공장을 다니다가 간호조무사로 근무했습니다. 코로나 후유증으로 현재는 직장을 쉬고 있어요.
 
방송대에 진학한 데는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전 제가 당연히 40세 전에 결혼할 거라고 생각했었는데요, 제 착각이었었나 봐요. 게다가 예지몽을 꾸시는 아버지께서 살아계실 때, 제가 많이 부족한 아들을 낳을 거라고 하셔서 자존심이 많이 상한 적이 있어요. 우수한 여자들은 부시맨 같은 남편을 만나도 솔로몬 같은 아들을 낳는데 말이에요. 전 문학 소년이라도 만들어 보자는(아이가 싫다면 할 수 없지만) 허황된(?) 꿈을 안고 방송대에 입학하게 됐습니다. ‘글 쓰는 어머니, 글 쓰는 아내’라는 타이틀, 멋지지 않나요?

2020년 제44회 방송대문학상 에세이 부문 가작을 수상했을 때는 국어국문학과에 재학 중이었어요. 지금은 법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인데요. 이번에 장르를 바꿔 새롭게 도전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코로나 백신 부작용의 영향이 컸어요. 초등학교 2학년 때, 독감주사를 맞고 사경을 헤맨 일이 생각나더라고요. 국어국문학과는 나를 위한 글쓰기였지만, 법학과에서는 소외받는 사람들을 위해 도움을 줄 수 있는 공부를 하고 있어요. 법학이란 어렵고 까다로운 학문이 아니라, 만화책으로도 만들 수 있다는 걸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서요. 저와 같은 서민들도 법학을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시인은 바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편견을 깨고 싶어서 시 부문에 도전하게 됐답니다.

방송대를 선택한 일에 대해 잘했다고 생각하는지요? 방송대 선택 이전과 비교했을 때 달라진 점이 있다면요
방송대 선택은 참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독단이나 독선에서 벗어나 넓고 유연한 사고방식을 갖게 해주니까요. 방송대 선택 이전에는 편협한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는데 방송대에 다니면서 제가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 또 사람은 나이를 먹을수록 안주하지 않고 계속 배워야 한다는 걸 절실히 깨닫게 됐습니다.

제50회 방송대문학상에 응모하신 계기도 궁금합니다.
제가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걸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영혼 없는 로봇처럼 막연하게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애너벨 리」와 「검은 고양이」를 쓴 애드거 앨런 포처럼 선과 악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제 영혼이 끝없이 갈등하며 존재하고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습니다.

혹시 수상할 거라고 예상했는지요
음, 조금요. 하지만 시를 쓰는 과정이 참 행복했습니다.

응모하면서 어려운 부분은 없었나요
전혀요. 평소 머릿속에 구상해 뒀던 시들이 많아서요. 몇 시간 동안 5편을 쓰고 하루 만에 완성했습니다. 노트북이 고장 나는 바람에 애를 좀 먹었지만요.

문학상 응모 전에도 ‘시’를 쓴 경험이 있는가요? 글쓰기 공부는 어떻게 했는지 궁금합니다
초등학교 때 아버지와 함께 시를 쓰곤 했어요. 아버지께서는 ‘나’를 주제로 한 자작시를 자주 짓곤 하셨는데 세상이 날 알아주지 않는다며 쓰레기통에 버리셨어요. 그 생각만 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픕니다. 초등학교 때 문예반이었는데, 문예 선생님께서 조언을 많이 해 주셨어요. 초등학교 6학년 때 희곡을 써서 공연한 적도 있어요. 그밖에 글쓰기 공부는 한 적이 거의 없는 것 같네요. 하지만 전 머릿속에 구상한 문학적 내용을 일필휘지로(잘 쓴 글이든, 못 쓴 글이든) 쓸 수 있어요.

이번 수상을 계기로 앞으로 문학적 구상이 있다면요
사람과 사람 사이의 텔레파시와 진심에 관해서 쓰고 싶어요. 예전에는 나를 위한 글쓰기, 나의 이상형, 나의 야망 이런 이기적인 것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었는데요, 역시 제일 소중한 건 진실한 사람이더군요. 혼자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저는 혼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거든요. 이렇게 부족한 제가 따뜻하고 좋은 사람들 덕분에 아름다운 글을 쓰게 됐네요. 독서를 싫어하는 분들도 매혹시킬 수 있는 그런 시를 쓰고 싶어요.

상금은 어디에 사용할 계획인가요
글쎄요, 백수라서 생활비로 쓰게 되지 않을까요?(웃음)

 

● 단편소설 부문 당선 서민지 학우(영어영문학과 4)

이야기를 짓는 내내 주인공인 작고 낡은 솜인형에 깊이 동화돼 참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원고를 다듬느라 수천 번은 족히 읽었을 거예요. 상처받고 마모되어 가는 존재의 고독을 온전히 나의 살갗으로 체화해야 했던 그 짙은 감정의 격랑이, 이 소설을 쓰며 겪은 가장 고단하고도 아름다운 산고(産苦)였습니다.

간단하게 자신을 소개한다면요
이방인으로서 동남아시아의 뜨거운 몬순을 10여 년간 맨몸으로 통과해 왔습니다. 타국에서의 낯선 시간들은 제 삶의 질감을 한층 깊게 만들어준 고단하고도 아름다운 자양분이었습니다. 지금은 IT 기업의 모니터 불빛 앞에서 묵묵히 현실의 밥벌이를 직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 안에는 늘 활자와 배움을 향한 지독한 갈증이 고동치고 있었습니다. 그 짙은 목마름을 달래고자 바쁜 직장 생활 속에서도 학업에 매달렸고, 감사하게도 성적우수 장학금이라는 다정한 격려도 곁에 머물렀습니다.
배움은 늘 저를 무대 위로 이끌었습니다. 영어영문학과의 ‘잉글리시 페스티벌’에서 매년 제 언어의 보폭을 넓혀왔고, 복수 전공인 중어중문학과의 총장배 전국어학경시대회는 제 한계를 허무는 치열한 축제였습니다. 서울 뚝섬역 대강당 무대에서 개최된 2024년과 2025년 대회에서 연이어 본선의 문턱을 넘고, 마침내 중급 부문 우수상을 거머쥐며 그 넓은 무대 위 마이크 앞에 섰던 순간의 벅찬 떨림은 여전히 제 맥박을 뛰게 합니다. 다가오는 10월 말, 고급 부문이라는 더 깊은 바다로 뛰어들기 위해 지금도 매일 저 자신을 담금질하고 있습니다.

방송대 진학에는 어떤 계기가 있는지요
대학을 졸업하고 1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치열한 생존의 최전선에 있었습니다. 해외 바이어들과 수없이 말을 섞으며 사업을 이끌었지만, 실전의 매끄러운 언어 이면에는 늘 문법이라는 단단한 뼈대에 닿고 싶다는 본질적인 목마름이 있었습니다. 일상의 사막을 걷던 중, 마침 방송대에 재학 중이던 지인이 “생업의 무게를 짊어지고도 배움의 숲을 거닐 수 있다”라며 저를 이끌어 주었습니다. 직접 그 좁고도 환한 길을 걸어본 이의 추천이야말로, 제 삶의 궤도를 바꾼 가장 선명한 나침반이 됐습니다.

영어영문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인데, 졸업 선물을 미리 받은 거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요
네, 중어중문학을 복수전공하느라 5학년의 시간을 걷고 있습니다. 곧 다가올 졸업을 앞두고 제 청춘의 한 장(場)을 닫는, 가장 낭만적이고도 찬란한 책갈피를 선물 받았습니다. 실은 제 삶의 묵직한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세상의 다양한 학문들을 온몸으로 섭렵하는 방송대 학위 컬렉터가 되는 것입니다. 이번 방송대문학상 수상은 그 길고 고독한 순례의 길에서 저를 주저앉지 않게 밀어주는 다정한 순풍이 됐습니다. 이 따뜻한 온기를 가슴에 품고, 앞으로도 앎의 조각들을 하나씩 차곡차곡 주워 모아보려 합니다.

그때 방송대를 선택한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누군가 제게 묻는다면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제 삶을 관통한 최고의 선택이라 답할 것입니다. 훗날 더 깊은 사회인으로 뿌리내려 방송대의 이름을 널리 알리는 홍보대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꿀 만큼, 제게 이곳은 배움의 성소(聖所)입니다.
가장 경이로운 것은 단연코 전국 최고라 자부하는 수업의 밀도입니다. 예컨대 중국어 출석수업의 풍경은 그야말로 치열한 언어의 제련소 같습니다. 두 과목을 연달아 듣는 날이면, 교수님께서는 학생들의 목소리가 탁하게 쉴 때까지 6시간 내내 한 명씩, 한 줄씩, 분단 별로 짝을 지어 쉼 없이 중국어를 뱉어내게 하십니다. 미세한 혀끝의 떨림까지 짚어내어 기어코 정확한 성조를 찾아주시는 그 지독하리만치 섬세한 헌신. 이토록 육중한 진리의 시간을 한 학기 34만 4천 원이라는 겸허한 대가로 누릴 수 있다는 것은, 단순한 가성비를 넘어선 기적 같은 축복이라 생각합니다.

제50회 방송대문학상에 응모한 계기도 궁금합니다
방송대문학상은 제가 매년 두드려야만 하는 숭고한 문이었습니다. 타국에서 이방인으로 홀로 견뎌낸 시간과 어둠 속에서 쏟아낸 제 외로운 문장들이, 마침내 세상과 맞닿을 수 있는 유일한 출구라 믿었기 때문이죠. 지난 몇 년간 수상작들의 행간을 쓸어내리며, 세상의 온도를 어떻게 담아내야 심사위원 선생님들의 마음에 가닿을 수 있을지 수없이 되묻으며 치열하게 저 자신을 비워냈습니다.
이번 50회 공모를 앞두고 여러 부문 중복 응모가 가능한지 묻고자 방송대 출판문화원에 조심스레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때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담당 선생님의 다정한 안내와 “좋은 작품 부탁드립니다”라는 짧은 한마디가 제 마음에 잔잔하지만 깊은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그 따스한 음성에 부응하고 싶어, 저 역시 누군가의 얼어붙은 마음을 덥혀줄 온기 어린 문장들을 지어 올렸습니다. 원고를 띄워 보내고 다시 전화를 드렸을 때 건네주신 “수고 많으셨습니다”라는 인사 역시 제겐 잊지 못할 다정한 위안으로 남았습니다.

혹시 수상할 거라고 예상은 했나요
당선을 확신했다기보다는, 이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아야 할 가장 완벽한 때가 왔다는 강렬한 직감이 있었습니다. 사실 이 단편소설은 다른 신춘문예를 위해 오랜 시간 차가운 하드디스크 깊은 곳에 숨죽여 아껴두었던 문장들입니다. 하지만 50주년이라는 찬란하고도 상징적인 시간을 마주했을 때, 반세기의 역사를 품은 이 문학상이라면 제가 쓴 낡고 오래된 슬픔의 연대기를 기꺼이 품어줄 것이라 믿었습니다. 비로소 그 닫힌 폴더를 열 때가 도래했음을 깨닫고 제 안의 묵직한 확신을 묵묵히 따랐으며, 감사하게도 그 믿음은 당선이라는 눈부신 꽃으로 피어났습니다.

작품을 응모하면서 어려운 부분은 없었나요
이야기를 짓는 내내 주인공인 작고 낡은 솜인형에 깊이 동화돼 참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원고를 다듬느라 수천 번은 족히 읽었을 거예요. 다음 문장의 토씨 하나까지 입안에서 맴돌 만큼 서사를 훤히 꿰고 있는데도, 이상하게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활자를 짚을 때면 매번 속수무책으로 문장들이 시야에서 하얗게 번져나갔습니다. 상처받고 마모되어 가는 존재의 고독을 온전히 나의 살갗으로 체화해야 했던 그 짙은 감정의 격랑이, 이 소설을 쓰며 겪은 가장 고단하고도 아름다운 산고(産苦)였습니다.

문학상 응모 전에도 ‘소설’을 쓴 경험이 있는지요? 글쓰기 공부는 어떻게 했나요
한국인이 거의 없는 낯선 타국에서 이방인으로 떠돌며, 차별과 서러움이라는 날 선 폭력에 홀로 베여야 했던 밤들이 많았어요. 마음이 쉴 곳을 잃어 까마득한 벼랑 끝에 선 기분이 들 때마다, 저는 소리 없이 울며 어둠 속에서 차가운 키보드 자판을 두드렸습니다. 깜빡이는 커서를 따라 빈 모니터 화면 위로 제 안의 상처들을 토해내듯 타자를 쳐 내려갔습니다. 당시의 제게 글쓰기는 거친 세상으로부터 저를 지켜내는 유일한 방패이자, 생존을 향한 데스노트와도 같았어요. 전자책이나 동영상 강의조차 닿지 않던 느린 인터넷의 고립 속에서, 저는 오직 내면의 잉크에만 기대어 일기, 에세이, 소설, 동화, 가사, 시 등 장르의 경계를 허물고 제 안의 파도들을 미친 듯이 쏟아냈습니다. 그 캄캄했던 결핍의 시간들이 역설적이게도 저를 글 쓰는 사람으로 길러낸 단단한 요람이 된 것 같아요.

이번 수상을 계기로 앞으로 문학적 구상이 있다면요
이번 수상작의 좁은 세계에 웅크려 있는 이야기의 외연을 조금 더 뻗어 나가게 하고 싶습니다. 억수 같은 비가 쏟아지는 길거리에 유실돼 진흙을 뒤집어쓴 다른 인형 친구들에게도 저마다의 절박하고 애달픈 서사가 맥박치고 있을 테니까요. 제 마음 한편에 여전히 머물러 있는 그 작고 버려진 존재들에게 기꺼이 목소리를 빌려주어, 마모되는 것들을 위한 스핀오프 형태의 후속 이야기들을 지어볼 계획입니다.

상금은 어디에 사용할 계획인가요
내년 2월, 영어영문학의 숲을 빠져나오면 3월에는 곧바로 방송대의 또 다른 낯선 학과로 재입학할 예정입니다. 당선 상금은 그 새로운 지적 항해를 위한 든든한 뗏목, 즉 등록금으로 온전히 사용할 계획입니다. 방송대의 품이 너그러워, 상금만으로도 새 학과의 입학부터 졸업까지 너끈히 감당하고도 남습니다. 참으로 경이로운 선물입니다.
영어와 중국어학이 제가 오랜 시간 익숙하게 걸어온 오솔길이었다면, 내년에 마주할 학과는 완전히 낯선 미지의 대륙입니다. 그 낯선 세계에서 흡수하게 될 다양한 지적 자양분은 훗날 제가 써 내려갈 이야기의 새롭고도 다채로운 서사의 재료로 다시 피어날 테니까요. 이 값진 상장을 나침반 삼아, 새로운 학문의 바다를 향해 돛을 활짝 펴고 치열하게 나아가며 정진하겠습니다.

 

● 에세이 부문 당선 신후덕 학우(법학과 4)

에세이 부문 주제가 ‘50’이었고, 마침 저와 동갑인 문학상이라 꼭 글을 써 보고 싶었습니다. 벌써 50회째를 맞이한 방송대문학상이야말로 많은 사람들의 ‘50년의 이야기’를 오롯이 담아내는 자리인 것 같습니다. 이런 뜻깊은 기회를 꾸준히 이어오고 계신 것 자체에 깊이 감사드려요. 거창한 계기라기보다는, 글 한 편을 온전히 완성하고 제출하는 그 전 과정을 직접 겪어보고 싶었습니다.


간단히 자신을 소개해주기 바랍니다
전남 해남 출신으로, 2009년 방송대에서 영문학과 국문학을 공부했습니다. 공부하는 과정에서 상담학 석사(2013년)와 박사 학위(2022년)를 취득했고, 필요에 따라 통계학도 전공했습니다. 지금은 법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이며, 현업은 심리상담사입니다.
 
방송대에 진학한 계기는요
처음엔 영어를 좋아해서 시작했는데, 훌륭한 교수님들의 명강의를 접하다 보니 어느새 깊이 빠져들게 되더라고요. 특히 영어영문학과의 김문수·신현욱 교수님, 국어국문학과의 고성환·이상진 교수님, 통계·데이터과학과의 장영재 교수님과 새로 부임하신 젊은 교수님들, 그리고 청소년교육복지상담학과의 하혜숙 교수님 수업을 정말 좋아했어요. 한참 전에 졸업했음에도 지금껏 영어 산문 수업을 타과 수강생으로 듣곤 합니다. 현업이 바빠 성적 관리를 제대로 못 해 늘 죄송한 마음이지만요(웃음). 다시 들을 때마다 새로운 면을 배우게 되어 참 좋아요. 20세부터 80세까지 다양한 학생들이 온·오프라인으로 소통하는 따뜻한 공간이고, 교수님들이 학생을 향해 보여주시는 배려와 온정을 느끼며 큰 위로를 받기도 합니다.

법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인데, 법학과 이전에 여러 학과에서 공부하셨군요
상담을 하다 보면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많은 경우 그 사람의 전공은 삶과 직결돼 있습니다. 삶은 곧 언어입니다. 내담자들의 세계를 더 깊이 이해하고 공감하고 싶었던 마음이, 제가 계속해서 새로운 학문의 문을 두드리게 된 이유입니다. 요즘은 다양한 채널에서 지식 관련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지만, 저는 좀 더 정제되고 안정적인 경로로 깊이 있게 지식을 습득하고 싶었어요. 정제된 강의를 병행하며 작품과 지식을 마주하는 것은 방송대만의 차별성이자 학생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특권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방송대 선택 이전과 이후를 비교한다면요
네, 방송대 진학은 제 인생에서 가장 자율적인 선택이었고, 공부를 지속하고 있는 제 자신이 자랑스럽습니다. 처음 방송대를 선택했을 때는 배움에 대한 목마름인 줄 알았습니다. 방송대 편입 후 졸업한 덕분에 대학원에 진학할 발판을 마련하게 된 것도 정말 고맙게 생각하고요. 그런데 공부를 계속하면서 깨달았어요. 결국 제 공부의 목적은 ‘나 자신’, 즉 ‘나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것’이었음을 알게 된 것이야말로 가장 값진 변화입니다.

제50회 방송대문학상에 응모하게 된 계기도 궁금합니다
에세이 부문 주제가 ‘50’이었고, 마침 저와 동갑인 문학상이라 꼭 글을 써 보고 싶었습니다. 벌써 50회째를 맞이한 방송대문학상이야말로 많은 사람들의 ‘50년의 이야기’를 오롯이 담아내는 자리인 것 같습니다. 이런 뜻깊은 기회를 꾸준히 이어오고 계신 것 자체에 깊이 감사드려요. 거창한 계기라기보다는, 글 한 편을 온전히 완성하고 제출하는 그 전 과정을 직접 겪어보고 싶었습니다.

혹시 수상할 거라고 예상했나요
지난해 응모작에 대한 정보를 전혀 몰랐고, 전혀 예상하지도 못했어요. 당선이라는 결과가 너무 신기하기도 합니다. 당선이 안 됐다면 저 혼자만의 조용한 일화로 남았을 것입니다.

사실 에세이는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문학 장르다 보니, 글쓰는 데 딱히 어려운 것은 없지만 바로 그런 이유에서 깊이와 넓이를 측량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기도 합니다. 이번 작품 응모를 하면서 어려운 부분은 없었나요
에세이는 자기가 던진 화두에 스스로 응답해야 하는 묵직한 작업인 동시에 지극히 사적인 글쓰기입니다. 쉰이 되도록 마음속 글의 가닥이 잡히지 않아 한참을 부대끼며 곰곰이 들여다보니, 제가 그동안 삶의 언저리에 아슬하게 걸쳐 있을 뿐 삶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거나 직면하지 않았음을 깨달았습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마음에 뭐라도 해보자는 심정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전에도 ‘에세이’를 쓴 경험이 있나요? 글쓰기 공부는 어떻게 했는지요
글을 외부에 공개하고 공모해 본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다만 저를 아껴주시는 분들이 늘 “에세이스트가 되어보는 건 어떻겠냐”라는 말씀을 해주시곤 했습니다. 대단하게 글쓰기 공부를 했다기보다는, 이리저리 일기처럼 메모를 남기곤 했습니다. 그러다 마음에 드는 어휘나 표현, 문장을 발견하면 이곳저곳에 적어두었죠. 그것들을 한곳에 모아두거나 다시 읽어보진 않았습니다. 대부분 잊혔겠지만, 돌이켜보니 시간이 흐르는 동안 그 파편들이 저마다 알아서 글의 얼개를 갖춰나갔습니다.

이번 수상을 계기로 앞으로 문학적 구상이 있다면요
AI 시대에도 여전히 살아가야 하는 우리이기에, ‘신성한 노동’에 대한 글을 써보고 싶습니다. 효율로 계산되는 노동이 아니라,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시선으로 노동을 해석해 보고 싶습니다.

상금은 어디에 사용할 계획인가요
상금은 잘게 나눠 어른들께 용돈도 드리고, 최근 새로운 일을 시작한 친구의 가게 정원에 말간 작약과 장미를, 마음 결이 좋은 친구에겐 화장품을 선물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묵묵히 제 곁을 지켜준 친구들에게 커피 쿠폰도 좀 쏘고, 저를 위해서는 몇 권의 책을 사거나 어학에 투자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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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ais***
    부럽고 대단하십니다! 고단한 삶 속에서 배움과 문학을 지켜내신 모습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2026-10-03 15:35:29

사람과 삶

영상으로 보는 KN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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