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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니 큰 언니도 오십 즈음에 방송대에 입학했다.

그리고 나도 곧 오십이 된다. 나는 이제 무얼 하면 좋을까.

나보다 나이 많은 언니들은 여태도 쑥쑥 자라는데,

내인 나 혼자 어려서 얻은 작가라는 이름 하나에 매달려

깊어지지도 자라지지도 못하고

인생 후반을 살아가게 되는 건 아닌지, 정신 바짝 차려야겠다.

 

나 공부하려고. 불쑥 큰언니가 말했을 때 우리는 그 말이 친한 학부모들과 스터디 그룹을 만들겠다거나 아니면 어학학원에 등록하겠다는 말인 줄 알았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주로 그런 경우에만 공부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방송대에 지원했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또 생각했다. 시어른을 모시는 언니가, 몇 년 전 나중을 대비해 요양보호사 자격증도 딴 적 있는 언니가 아예 체계적으로 그쪽 분야 공부를 시작해서 전문 자격증을 얻으려나. 다시 말하지만 중년의 우리에게 공부란 그런 의미였다. 뭐가 됐든 써먹을 수 있는 것, 삶을 한 단계라도 높여줄 수 있는 것, 명함에 한 줄이라도 적어놓을 수 있는 것.

그런데 언니가 선택한 전공은 자격증이나 취업과는 전혀 무관했다. 언니가 선택한 전공은 문화교양학과였는데 찾아보니 문학과 철학, 역사와 사회 그리고 예술을 향유하는 방식에 대해 공부하는 곳이었다. ? 라고 묻는 우리에게 뭐라고 대답했더라. 그냥 배우고 싶어서, 라고 했던가. 재미있을 것 같아서, 라고 했던가. 평소에도 우리 남매들 중에서 가장 많은 책을 읽는 언니였다. 영화도 전시회도 가장 많이 다녔다. 읽고 보면서 아 좋다, 느끼는 감상도 좋지만 낯선 언어로 해석 가득한 평들에 대해서도 공감하고 싶다고도 했던가. 모르겠다. 기억나지 않는다. 언니가 그렇게 말했는지 내가 언니에게 그런 욕망이 있어서 공부를 한다고 오해한 건지. 어쩌면 그 중 어떤 것도 언니가 한 대답이 아닐지도 모른다. 나는 그런 걸, 그러니까 취미나 감상을 학문으로 배울 수도 있다는 걸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 건 읽고 보고 듣다 보면 저절로 얻어지는 거 아닌가 하는 어떤 오만을 가지고 있었던 셈인데, 생각해 보면 그건 동시에 자만이기도 했다.

가난한 집의 셋째였던 내가 대학에 갈 수 있던 건, 언니들이 동생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꿈과 욕망을 내려놓았기 때문이었다. 언니들의 미래를 담보로 내가 배운 것이 문학이었고, 글쓰기였는데, 내가 언니를 오독한 방식으로 말하자면 글자만 알면 누구나 쓸 수 있는 글을 굳이 비싼 등록금을 치러가며 배운 것이다. 그러나 헛되지 않은 과정이었고, 그 덕분에 나는 조금은 더 나은 삶을 살기도 했다. 그런데 왜 그게 이제 와서의 언니에게는 무의미한 시간이라고 생각했던 걸까. 뭔가 새롭게 시작하기에는 늦은 중년이라서? 아니면 성취를 독차지 했던 오랜 막내의 근성을 여태 버리지 못해서?

동생 심보가 그리 고약한 줄도 모르고, 언니는 늘 그랬듯 어느 학기도 허투루 시간을 보내지 않고 있다. 어느 해엔가는 같이 김장할 날짜를 잡아야 하는데, 기말고사 공부해야 한다고 쉽게 주말을 내주지 않아 겨울을 코앞에 두고 김장을 한 적도 있었다. 그런 극성으로 내내 장학금을 받더니 졸업이 1년 앞으로 다가왔단다. 그 남은 1년이 끝나면 언니는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 모르긴 몰라도 여전히 나보다 나은 사람일 것이다.

큰 언니의 졸업 학기를 앞두고 바통을 넘겨받듯 작은 언니가 다른 사이버 대학에 입학지원서를 내기로 했다. 작은언니는 심리학을 공부해볼 거라고 했다. 작은언니는 이제 오십을 넘었다. 생각해보니 큰 언니가 그 즈음 방송대에 입학했다. 그리고 나도 곧 오십이 된다. 나는 이제 무얼 하면 좋을까. 나보다 나이 많은 언니들은 여태도 쑥쑥 자라는데, 막내인 나 혼자 어려서 얻은 작가라는 이름 하나에 매달려 깊어지지도 자라지지도 못하고 인생 후반을 살아가게 되는 건 아닌지, 정신 바짝 차려야겠다.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돼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으로 『안녕, 레나』와 『미필적 고의에 대한 보고서』 그리고 산문집으로 『참 괜찮은 눈이 온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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