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처럼 불어나는 음모론
실체 접근 가로막는
가짜뉴스들 넘쳐나
방역은 ‘정쟁’대상 될 수 없어
감염자에 대한 무차별적 혐오
부추겨선 안 돼

또다시, 중국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사스와 메르스에 놀랐던 우리 사회를 공포로 몰아가고 있다. ‘다시’라고 말한 것은, 2002년 11월에 중국 광둥성에서 첫 환자가 발생한 사스 때문이다. 그런데 사회적 재난에 가까운 이들 바이러스의 기습은 흥미로운 성찰점을 제공한다. 검역과 방역 시스템이라는 의료정책적 측면에서부터 바이러스가 어떻게 사람들을 두려움에 빠지게 하는지 하는 사회심리적 대목, 그리고 이 반갑지 않은 불청객을 각자의 셈법에 따라 활용하는 정치공학적 부분 등에서 그렇다. 이들은 각종 음모론과 만나면서 ‘가짜뉴스’와 풍문으로 더 강하게 증폭된다. 이를 두고 ‘전염병의 정치학’이라고 명명할 수 있겠다.
<KNOU위클리> 37호는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의 확산과 함께 증폭된 이들 문제를 짚었다. 음모론과 가짜뉴스, 그리고 우한 교민을 격리하는 문제를 놓고 빚어진 지역갈등 등은, 지금 우리 사회가 어디에 서 있는지, 과연 이들 목소리에는 이성적·합리적 진단이 작동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만든다.
어떤 끔찍한 바이러스가 퍼져나가는 속도보다 더 빠른 게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이 바이러스를 둘러싼 온갖 억측과 해괴한 소문들일 것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뉴스가 쏟아지는 가운데 지난달 말 <한겨레>가 흥미로운 기사를 냈다. ‘신종 코로나 가짜뉴스 총정리’가 그것이다. 가짜뉴스의 제목들은 이렇다. ‘우한 폐렴, 실제 감염자 9만명 이상…현지 의료인 폭로(?)’, ‘우한 폐렴, 중공의 생물학 무기 음모론 확산’, ‘존스홉킨스의대, 우한폐렴으로 1년 안에 전세계 6억5천만명 사망 예측’… 이렇게 가짜뉴스의 제목은 끝이 없다.
기자는 이렇게 지적했다. “중국 우한에 있는 교민 등을 데리고 오기 위해 전세기를 띄우기로 한 한국 정부 결정이 알려진 27일 밤 이후 신종 코로나 가짜뉴스가 집중 전파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2018년 제주도에 예멘 난민 입국이 알려진 직후, 막연한 공포로 가짜뉴스가 창궐했던 때와 흡사합니다. 누군가는 지금의 불안을 정부에 대한 반감과 공포로 연결지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가 나오기 이전에 ‘우한 폐렴 진원지에서 목숨 걸고 올린 영상’이란 제목의 유튜브 영상이 현지에서 직접 호소하는 목소리를 담고 있어서 눈길을 끌었다. 조회수가 600만을 훌쩍 넘겼다. 가짜뉴스들은 이 청년의 유튜브 영상을 왜곡, 출처를 알 수 없는 이미지들을 덧붙이고, 영상에는 없었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치사율이 사스의 10배에 달한다’는 내용을 추가했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신종 코로나의 전파력은 메르스보다는 높지만 사스보다는 낮은 것으로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치사율은 아직 유행 초기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바이러스와 가짜뉴스, 그리고 음모론
사회심리학 박사인 이철우는 음모론의 심리를 ‘긍정적 피드백’현상이라고 말했다. ‘긍정적 피드백’이란 자기 가설에 부합하는 사실만 채택하고 맞지 않은 것은 버리는 심리행태를 지칭한 것이다. 그는 “원인과 결과를 확실히 알고 싶어하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심리인데, 사건의 해석이 쉽지 않은 경우 단순명쾌한 ‘음모론’이라는 블랙박스를 선호하는 경향이 나타난다”고 풀이했다. 중국 우한의 시장이 ‘중국 중앙정부가 정보를 충분히 제공하지 않았다’고 지적한 데서 알 수 있듯 실체에 좀처럼 접근할 수 없을 때 음모론이 확산될 수 있다. 이 말은, 제한된 정보, 가려진 진실, 진실 규명을 가로막는 방해물 등이 음모론의 자양분임을 시사한다. 이는 정보의 투명성을 강조한다.
2011년 개봉돼 화제가 됐던 영화 「컨테이젼」(Contagion)은 이 점에서 반면교사다. 일상생활에서의 ‘접촉’을 통해 진행된 전염은 그 수가 한 명에서 네 명, 네 명에서 열여섯 명, 수백, 수천 명으로 늘어난다. 이런 가운데 진실이 은폐됐다고 주장하는 프리랜서 저널리스트(주드 로)가 촉발한 음모론이 그가 운영하는 블로그를 통해 빠르게 세계로 퍼져나가면서 혼란이 극심해진다. 음모론은 이 영화의 한 부분일 뿐이지만, 음모론의 생리를 정확히 묘사했다는 점에서 시선을 끈다. 전염병이 만들어내는 사람들의 ‘두려워하는 마음’은 언제든지 쉽게 음모론과 만나 사회질서를 무너뜨릴 수 있다.
최근 유튜버 4명이 대구의 기차역에서 환자가 발생한 것처럼 몰래카메라를 찍다가 경찰에 붙잡힌 사건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연출’ 혹은 의도된 불안 확대는 조회수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지만, 결과는 대중의 공포감을 확대할 수밖에 없다. 상황에 대한 제한된 정보와 지식의 한계가 이성적·합리적 접근을 가로막는 것이다.
감염과 혐오를 넘어서
바이러스 확산이라는 위급 상황을 놓고
정치공학적 접근을 벌이는 모습도 국민에겐 불편하게 보인다. 방역 문제를 놓고 정치인들이 논쟁을 벌일 수는 있지만, 어디까지나 국민의 생명 우선이라는 대의를 전제해야 한다. 우한 교민을 데려오기 위해 전세기를 띄우겠다는 정부 대응에 대해, 1월 26일 자유한국당의 한 국회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정부는 전염 확산을 차단할 대책을 밝히고 중국 관광객 입국을 즉각 금지하라”고 주장하면서, “방역에 구멍이 뚫렸다. 국내 세 번째 우한 폐렴 환자 발생, 정부는 우한 사람들을 실어 올 전세기 파견을 검토하고 있다. 신중하기 바란다”고 글을 올려 반대 의사를 밝혔다.
나라와 세계가 밀접하게 연결된 오늘, ‘중국 관광객 입국 금지’반대는 물론 하나의 의견으로서는 존중될 수 있지만, 외교관계와 국익이란 관점에서 과연 타당한 것이냐는 비판을 피해갈 수 없다. 더구나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 조치를 취하는 것까지 어깃장을 놓는다면, 이런 행위의 근간에는 감염자에 대한 혐오와 배제의 극단적 논리가 깔려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우려마저 든다. 이는 우한 교민을 데려와 어떤 지역에 ‘격리 수용’할 것인가의 문제와도 이어진다. 우리사회의 숙의민주주의를 측정할 수 있는 잣대의 하나다.
이와 비슷한 혐오적 태도는 용어 사용에서도 나타난다. WHO가 우한에서 발생한 바이러스를 두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명명할 것을 권유했음에도, 국내 언론 등 일부에서는 여전히 ‘우한 폐렴’이라는 이름을 실어 나르고 있다. 국가와 지역을 병명에 붙일 때, 이것은 특정 국가나 인명을 사회, 집단, 인종에 대한 적대적 혐오를 부추기는 의도로밖에 달리 해석되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생명우선주의는 설 자리가 없다.
미국의 에세이스트이자 소설가, 평론가인 수잔 손택(1933~2004)은 일찍이 질병의 사회적 함의에 관한 성찰로 주목받았다. 그는 1978년에 발표했던 『은유로서의 질병』을 통해 특정 질병에 대해 사회와 대중이 만든 은유나 상상적 관념이 얼마나 우리를 공포로 몰아넣는지, 그것이 얼마나 소수와 약자에 대한 폭력이 되는지 고찰했다. 사회가 질병을 사회, 문화, 도덕적 타락의 은유로 사용할 때, 질병 자체는 모호하고 신비한 것으로 변형된다. 우리사회가 과연 어떤 성숙한 모습으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에 대처할까?
▶관련 기사 2~3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