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바이러스, 전염병의 정치학

한 사회나 공동체에서 전염병이 돈다는 것은 치명적이다. 위생과 방역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곳은 그야말로 절체절명 상태가 된다. 거대한 로마제국도 말라리아로 금이 갔고, 십자군 전쟁도 바이러스 때문에 결과가 바뀌었다. 중세 유럽을 휘몰아친 흑사병(페스트)은 결국엔 유럽을 바꿔놓고 말았다. 스페인이 남미에 가져간 천연두는 남아메리카 문명을 집어삼켰다. 발진티푸스는 승승장구하던 나폴레옹의 러시아 진격을 꺾어버렸다. 일부 연구자들은 ‘스페인 독감’이 제1차 세계대전의 종결을 앞당겼다고 지적한다.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앞으로의 시간을 어떻게 변화시킬지도 주목된다. 역사를 바꾼 바이러스들을 따라가 본다. 

로마제국과 말라리아
서구문명의 기초를 만들었다고 평가받는 고대 로마제국의 멸망도 말라리아와 관련이 깊다.  성장기의 로마는 세계 각지와 교통하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북아프리카의 카르타고 및 여러 나라들과 교류가 활발해졌는데, 이 지역에 있던 열대열 말라리아가 로마에 전해지면서 혼란이 빚어졌다. 말라리아는 모기를 통해 전파되는 전염병이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혼란한 와중에 있던 로마제국은 하천이나 해안의 관리가 부실했다. 늪지대에 모기가 늘어나자 말라리아가 더 기승을 부렸다. 로마인들은 혼란에 빠졌고 군인들은 전투력을 상실해갔다. 특히 말라리아는 도시보다 늪지대가 많은 농촌에서 더 유행했는데, 전염병에 노출된 농민들이 터전을 버리고 도시로 유입되면서 농작물 생산량도 크게 줄 수밖에 없었다. 게르만족의 침입이 외부 요인이라고 하다면, 말라리아는 로마제국 붕괴의 내부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고대 로마제국은 476년 멸망하고 말았다.

중세 유럽을 강타한 페스트
처음 페스트가 유럽에 전해진 것은 1347년이었다. 동양에서 유행하던 바이러스가 여러 물건들과 함께 이탈리아의 항구 도시 제노바에 전해진 것이다. 제노바에서 시작된 페스트는 이탈리아 각지는 물론 3년 만에 전 유럽으로 퍼져 나갔다. 당시 유럽은 무역이 발달해 도시끼리 왕래가 잦았다. 덕분에 병균도 이동하기 쉬웠던 것이다. 또 중세 유럽은 상하수도 시설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 위생 상태가 매우 불결했다. 병이 빨리 퍼질 수 있는 최상의 조건이 마련돼 있었던 것이다. 순식간에 유럽을 잠식한 페스트는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당시 유럽 전체 인구의 3분의 1에 달하는 약 3천만 명의 사람들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었다.

 


흑사병이 휩쓸고 지나간 뒤 유럽은 크게 변화하기 시작했다. 경제적인 상황이 달라졌고, 종교적인 부분에서도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페스트 앞에 속수무책이던 교회 시스템을 보면서 대중들의 인식이 변화한 것이다.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은 그런 무기력하면서도 탐욕적인 중세 수도승들의 모습을 잘 묘사했다. 재난에 대처하지 못하는 종교를 보면서 의학과 과학기술이 서서히 발전하기 시작했다.

남아메리카 문명을 쓰러뜨린 천연두
1519년, 스페인의 에르난 코르테스는 550명의 군사를 이끌고 오늘날의 멕시코인 아즈텍 제국을 침략했다. 당시 아즈텍 제국은 테노치티틀란이라는 거대 도시를 중심으로 뛰어난 문화를 꽃피우고 있었지만, 코스테스의 스페인 군대와 함께 들어온 천연두 앞에서 무기력했다. 이미 천연두를 겪었던 스페인 사람들은 천연두에 면역력이 있었지만, 평생 천연두 균을 접해 본 적이 없던 아즈텍 사람들은 속수무책으로 쓰러져갔다. 결국 아즈텍 제국은 겨우 500여 명의 코르테스군에게 정복당하고 말았다. 천연두는 멕시코 일대를 비롯해 과테말라, 남아메리카의 잉카 제국으로까지 순식간에 퍼져 나갔다. 원주민들이 천연두로 인해 죽어 나가는 동안 유럽인들은 다른 남아메리카 지역도 손쉽게 정복할 수 있었다.

1918년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스페인 독감)
2019년 4월 국내 연구진이 20세기 최악의 세계 대유행(팬데믹)을 일으킨 1918년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발병 원리를 밝혀내 화제가 됐던 ‘스페인 독감’은 1세기 전인 1918년 발병해 전 세계에서 최고 5천만 명 이상의 사망자를 발생시킨 것으로 추정되는 치명적인 전염병이다. 그해 8월 처음 발생해 1차 세계대전 뒤 귀환 병사들을 통해 세계에 전파되기 시작해 2년 동안 창궐했다. 우리나라에서도 14만여 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산된다. 제1차 세계대전은 서둘러 매듭지어졌고, 평화 조약이 맺어졌다.

스페인 독감의 영향으로 시애틀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은 아예 전차 탑승이 거부됐다. 출처=ko.wikipedia.org이 일을 계기로 독감 예방 접종 문화가 시작됐다. 발생원은 1918년 3월 미국 시카고 부근이었다. 전 세계 인구의 약 3~6%가 죽었으며, 일부는 걸린 지 2~3일 만에 사망에 이르는 경우도 있었다. 스페인이 병원체의 발원지가 아닌데도 제1차 세계대전 연합국은 이를 ‘스페인 독감’으로 불렀는데, 이유가 있다. 스페인이 제1차 세계대전의 참전국이 아니었기 때문에 전시 보도 검열이 이뤄지지 않아 스페인의 언론에서 이 사태가 깊이 있게 다뤄졌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영화 「에곤 쉴레; 욕망이 그린 그림」의 실제 모델이었던 화가 에곤 쉴레는 클림트로부터 열렬한 후원을 받았는데, 28세에 스페인독감에 걸려 생을 마감했다.

국내에서는?
『삼국사기』에 역병이 유행했다는 기록이 있는 걸로 봐서는 삼국시대부터 전염병이 돌았음을 알 수 있다. 『고려사』에는 예종 17년인 1122년에 학질(로마제국을 멸망시켰던 말라리아)이 번져 많은 사람이 죽어, 길거리에 널린 시체를 땅에 묻게 했다는 기록이 전한다. 조선 시대에는 천연두가 가장 무서운 전염병이었다. 일제강점기인 1918년 무오년 독감(戊午年毒感)도 끔찍했다. 『조선총독부통계연보』에 의하면, 당시 조선인 1천678만3천510명 중 절반에 가까운 742만2천113명(44%)이 감염돼 13만9천128명(전체 감염자의 1.87%, 전체인구의 0.83%)이 희생된 것으로 나타났다.

도움 받은 책=『세상을 바꾼 전염병』, 『사람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전염병 이야기』, 『초대하지 않은 손님, 전염병의 진화』, 『바이러스 폭풍의 시대』, 『바이러스』


1좋아요 URL복사 공유
현재 댓글 0
댓글쓰기
0/300

사람과 삶

영상으로 보는 KNOU

  • banner01
  • banner01
  • banner01
  • banner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