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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채식주의자가 되셨지요? 나는 이런 질문을 수백 수천 번 들었다. 딱히 내세울 만한 이유가 없었기에 내 답변은 매번 어눌했다. 그냥요. 아니면 풀만 먹고도 살 수 있나 싶어서요. 내가 제출할 수 있는 최선의 답안이었다. 라이프 스타일이 다른 일개 채식주의자에게 쏠리는 이런 관심 덕분에 나는 더러 피곤하다. 그러나 이렇게 이어지는 진지한 질문은 대개 일회성 호기심에 불과하다.


사람은 저마다 다르다. 먹는 일은 물론 입는 옷, 헤어스타일, 마음씨, 생각하기까지 다 제각각이다. 나와 다른 남의 모습에 호의적 관심은 가질 수 있으되 그를 비판적 입담거리로 삼아서는 안 된다. 교육받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생각할 줄 아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배려하는 마음의 유무에 있다. 나만 생각하는 사람에게 배려는 없다. 배려는 간섭과는 차원이 다르다. 간섭은 자신이 중심에 있고, 배려는 남을 중심에 둔다. 배려는 사람을 키우고, 간섭은 사람을 위축시킨다. 

 
나는 영어학 전공의 언어학자로서 우리말의 기원과 갈래에 관심이 많다. 내가 살고 있는 지금, 이곳 밖의 세상에 대해서도 궁금한 게 많다. 그래서 시간 여유가 있고 주머니 사정이 괜찮을 때 이 나라 저 나라 여행을 즐겨했다. 한마디로 나는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다. 그리고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사람이다.


내게 있어 여행은 놀러가는 게 아니다. 나는 골프채도 안 잡아 본 사람이고, 볼링도 못하며, 찜질방에도 안 가 본 사람이다. 먹을 게 넘쳐나는 이 시대에 식복이 없는 가련한 채식주의자라 남들이 맛있다고 칭송하는 삼겹살, 불갈비 따위의 아름다운 맛의 고기도 못 먹고(누가 시킨 게 아니라 불만은 없다), 술도 못하고, 담배도 안 피운다. 대신 나는 문명의 뒤안, 척박한 산간오지에서 험한 삶을 살고 있는 소수민족들을 만나 그들의 언어와 풍속습관 등을 조사하는 데서 보람을 느꼈다. 혹시 전생이 인도와 인연이 있을지 모른다며 인도를 여러 차례 방문한 것도 기실은 한글의 자모가 고대 범자(梵字)를 모방한 것이라는 조선 성종조의 학자 성현 선생의 글 때문이었다. 나는 이렇게 내 호기심을 키웠다. 내 마음을 궁금증으로 채우는 일이 즐거웠고, 부단히 다른 세상을 바라보는 내면의 눈을 불편과 게으름, 마땅찮음과 같은 부정적 현실의 안대로 가리지 않으려 했다.


내겐 늘 새로운 호기심이 생겨난다. 어린이는 호기심이 많다. 어른도 그러해야 한다고 믿는다. 내게 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호기심의 충족을 통해 기쁨을 주는 일이 무엇인가? 공부하는 일이 즐겁다. 지적 호기심이 있어야 ‘즐겁기’가 가능한 공부가 재미있다. 그래서 수년 전 중앙아시아사 전공으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과정에 코피깨나 쏟았고, 돈과 시간의 지출이 상당했으나 마음은 십년쯤 젊어졌다. 어느 면에서 나는 어른이기에는 어리석으나 여전히 손에 바람개비를 들고 학문의 들길을 달리는 어린 소년으로 살고자 한다. 타자와 현실에 대해 삭발하고 저항하는 도전보다는 호기심을 따라가는 즐거운 도전으로 내 삶이 지속되었으면 한다.

 

연호탁 가톨링관동대 교수, 영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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