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OU광장   [방방톡톡]

뉘엿뉘엿 해 지는 퇴근 길, 저 먼발치 어렴풋이 무언가를 양손에 들고 집으로 걸어오는 아빠의 모습이 보이면 종일 아빠를 기다리던 나는 “아빠!”를 부르며 아빠 품으로 내달렸다.
‘오늘은 저 상자 안에 무엇이 있을까?’ 잔뜩 기대에 찬 눈으로 아빠 손에 들려진 상자 안을 들여다보면, 내가 먹고 싶었던 빵, 눈깔사탕, 내가 갖고 싶었던 캐릭터 시계 등이 있었다.
매일 막내딸을 위한 선물 보따리를 들고 퇴근하던 어릴 적 내 기억 속의 아빠처럼 난 아빠를 닮은 자상한 남편 상을 꿈꿔왔지만 남편은 나에게 주는 선물만큼은 야박할 정도로 인색했다. 내가 "기념일이다. 생일이다"라고 말하면서 선물을 달라고 조르고 졸라야 그제야 생색내며 줄까 말까 약을 올리다가 내가 잊고 지쳐갈 때 쯤 내가 원하는 선물대신 본인이 주고 싶은 위주로 선물을 주는 남편이 밉게만 보이던 그 날도 난 남편에 대한 섭섭함에 스트레스를 풀러 피아노 앞에 앉았다. 하지만 남편으로부터 어김없이 들려오는 말 한 마디는 “당신은 그냥 아마추어일 뿐이야!”
다재다능해지라며 적극적인 지지를 아끼지 않았던 부모님 덕에 난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이 바로 자기 개발이라고 여겨왔던 반면 결혼 후 남편은 프로가 되지도 않을 거 다방면에 욕심을 내는 것은 돈과 시간을 허비하는 것이라며 늘 못마땅하게 여겼다. 게다가 음악 전공자도 아니고, 수입을 창출하는 프로도 아니면서 취미로만 즐기는 것은 아마추어일 뿐이니 ‘좋아하는 것을 하려 하지 말고 미술 전공, 중국어 전공을 살려서 그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라’고 강조해 왔다.
이런 남편의 권유로 시작된 2014년 방송대 대학원 실용중국어학과(3기)과의 인연은 여태 나와 의견 차이를 보이던 남편과 처음으로 의견이 합치된, 방송대인으로서의 첫 발을 내딛게 해 준, 남편이 내게 준 최고의 선물이 됐다.
이뿐이랴! 20여 년 넘게 나와 동고동락해 온 내 미술 작품이며 첼로가 본인의 관심사와 다르다는 이유로 ‘팔아 버려라. 갖다 버려라’라는 등의 일침을 날리면서 칭찬에 인색하던 남편이 이제는 불평이 아닌 감상평을 해 주고, 심지어 골프 연습을 집에서까지 하냐며 던지던 핀잔 대신 아마추어 골프 대회 참가를 권유하며 자신이  캐디도 자처해 주겠다는 관심까지 내비쳤다.
남편에게 받은 선물상자―참고 문헌 100권을 토대로 쓴 2016년 문학 석사 학위 논문 「현대 중국어 신해음(新諧音) 연구」와 2020년 방송대 법학과 학위―같은 ‘방송대’는 남편의 변화뿐만 아니라 학업에 충실한 나에게도 장학금으로 보상을 해 주는 곳이자 배우고 싶은 학문이 넘쳐나는, 그래서 평생 같이 연구하고 싶은 나의 소중한 동반자가 됐다.
남편과 ‘공부’라는 공동 관심사를 갖게 되면서 방송대 대학원 이러닝학과에서 석사 논문 연구를 진행 중인 남편과 논문 방향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요즘 나는 ‘대학원에서 법학 연구를 계속할까? 아니면 새로운 학문에 도전을 해 볼까?’ 선물상자를 앞에 두고 기뻐하던 어린 시절의 나처럼 행복한 고민에 빠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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