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공포의 마스크를 벗기다

 
 
뭉크(Edvard Munch, 1863~1944년)의 「칼 요한 거리의 저녁」. 1892년 작품으로 대표작인 「절규」를 그리기 1년 전에 발표했다(캔버스 유채, 84.5×121cm). 어둑해지는 저녁, 거리의 사람들은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 창백한 얼굴과 영혼 없는 퀭한 눈으로 배회하고 있다. 심각한 우울증과 신경쇠약증 그리고 알코올 중독에서 비롯된 잦은 싸움과 소동 속에서 불안을 안고 살았던 뭉크. 그는 절망과 불안을 피하기보다 정면으로 맞서 일생 동안 자신의 예술 주제로 삼았다. 불안증이 그의 창작 동기로 작용한 것이다. 
 
 
요즘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코로나19 때문에.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 바이러스가 퍼지기 이전에도 불안은 우리의 일상적인 감정이었다. 스마트폰이 없을 때 느끼는 불안감, 어떤 특정한 벌레를 무서워하거나 높은 곳에 올라가지 못하는 고소공포증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이러한 두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벌레 퇴치약을 쓴다거나, 휴대폰을 집에 두고 왔을 때 먼 길이라도 다시 돌아간다. 높은 곳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고 근처에는 가지도 않는다. 피할 수만 있다면 끝까지 피하고 싶은 것이 불안감이다. 그런데 불안이라는 것이 꼭 나를 공포감에 휩싸이게 하는 부정적인 정서로만 작용할까? 

불확실성, 예측과 통제의 불가능성
스마트폰이 없을 때, 특정한 벌레나 높은 곳에 대해 평정심을 잃고 불안함을 느끼는 이유는 왜일까? 그것은 익숙하지 못한 상황에 빠질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항상 지니고 다녔던 필수품의 부재, 나를 위협하는 존재, 평소와 다른 환경은 나를 불안하게 만든다. 익숙함이라는 것은 내가 하는 행동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예상할 수 있다는 것이며, 내 선에서 충분히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불안은 독감의 유행과 신종 감염성 질병에 대응하는 방식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독감 역시 사망률이 높은 감염성 질병이지만 이미 정체를 알고 있기에 불확실한 상황에 빠뜨릴 수 있는 미지의 대상이 아니다. 만약 독감에 걸렸다면 치료를 받으면 되고, 예방하기 위해 백신을 맞을 수도 있다. 독감은 상황을 ‘선택’하고 ‘통제’할 수 있어 불안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태고부터 가장 강렬한 감정은 공포이며, 가장 강렬한 것은 바로 미지의 대상에 대한 공포다.” 현대 호러 문학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19세기 미국의 소설가 러브크래프트의 말처럼, 새로 출연한 감염병은 정체를 알 수 없어 공포의 대상이 된다. 신종 감염병에 대한 정확한 원인, 감염 방식, 치료 방법 등을 모르기 때문에 상황을 예측하거나 통제할 수 없다. 이러한 위협 때문에 사람들은 더 쉽게 불안에 사로잡히게 된다. 

가짜에 휘둘리다
불안(anxiety)은 ‘목이 조이다(angere)’라는 뜻의 라틴어 동사에서 유래한다. 목이 조여 오는 압박감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불안을 야기하는 원인을 제거하면 된다. 코로나19의 정체가 아직 완전히 드러나지 않아 불안의 원인을 없앨 수 없는 경우에는 어떻게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는가? 정신분석학의 아버지인 프로이트는 불안과 초조의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 인간의 심리에 방어기제가 작동한다고 보았다.

문제는 방어기제가 긍정적으로 작용할 때가 아니라, 불안을 회피하는 과도한 경향성에서 불거진다. 불안을 없애기 위한 긍정적인 심리적 방어기제의 한 방편은 경계심을 갖고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노력으로 나타난다. 미디어의 발전으로 정보의 유통과 전파가 쉬운 현대 사회에서 나타나는 사람들의 노력 중 한 가지가 바로 부지런히 뉴스를 확인하고 정보를 수집해 불확실성에서 탈피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노력이 과도해지게 되면  정보 수집에 적극적이고 민감한 만큼 가짜 뉴스에 현혹되어 휘둘릴 가능성도 높아진다.

가짜뉴스는 마치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서 감시와 통제로 인한 내부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외부의 적에게 증오와 혐오를 표출하게 하는 구조와 비슷하다. 가짜뉴스도 공포의 대상에 의해 야기되는 내적인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심리적 방어기제로서 외부의 무언가에 증오와 혐오를 쏟아 붓도록 한다. 가짜뉴스에 휘둘리는 사람들은 코로나19에 집중하기보다는 인종차별적 행위로 불안을 해소한다. 비합리적인 의사결정에 의한 폭력적이고 파괴적인 행동은 윤리를 넘어 사회병리적 현상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불안증의 패러독스
불안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사람들은 공포를 느끼게 되면, 공포의 원인에 대처하기 위한 준비를 한다. 그 결과, 공포는 우리의 생존 확률을 높였다. 진화심리학에서는 불안감이 잠재적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심리적 각성 상태를 제공해 안전한 행동을 추구하게 만든다고 본다. 인간에게 공포에 대응하는 예민한 심리적 방어기제가 없었더라면, 그야말로 겁을 상실한 채 온갖 위험천만한 상황에 내몰려 인류 전체의 생존을 위협했을 것이다.
 
불안은 생존과만 관련된 것이 아니다. 심리학자 폴 에크만은 지구의 모든 인류 문화권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공포의 정서가 인류를 발전시킨 심리적 근간이라고 했다. 폭풍우와 추위에 대한 공포가 안전한 주택에 대한 갈망을 불러일으켜 다른 어떤 동물들보다 주거공간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게 되었다. 그 결과 인류는 경이로운 건축문화를 발전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긍정적인 범주에서의 두려움은 문명의 발전을 당겨왔다. 일상의 불안도 우리가 많은 영역에서 안전하고 질서 있는 삶을 영위하도록 도와준다. 출근 시간에 늦지 않을까 걱정해서 알람시계를 맞춰 놓는 것, 맡은 업무를 잊지 않으려고 다이어리에 메모해 놓는 것처럼 불안은 우리의 일상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많은 예술가들은 불안감을 느낄 때 창작열을 불태우고, 학생들은 시험을 앞둔 상황에서 불안감 때문에 공부를 더 열심히 하기도 한다. 불안을 견디는 힘이 없다면 작품은 빈약하고, 성적은 향상되지 않을 수도 있다.  

세계보건기구는 전염병 경고 단계 중 최고 위험 등급인 6단계인 세계적 대유행(Pandemic)을 선언했다. 마스크를 언제까지 쓰고 다녀야 하는지 예측할 수 없다. 그러나 과도한 공포에 휩싸일 필요는 없다. 역사적 시기마다 새로운 감염병은 나타났으며 인류가 지속하는 한 새로운 전염병도 출연할 것이다.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인 공포를 부정적으로 표출하기보다 긍정 에너지로 승화시킬 수 있다. 이번을 바로 공중보건의 중요성과 위생적인 생활 습관을 정착시키는 기회로 삼는 것이 어떨까. 변화의 에너지가 불안에서 나온다는 사실이 역설적이지만 말이다. 
 


0좋아요 URL복사 공유
현재 댓글 1
댓글쓰기
0/300
  • hjhw***
    hj193456
    2020-03-23 10:19:48

사람과 삶

영상으로 보는 KNOU

  • banner01
  • banner01
  • banner01
  • banner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