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김옥렬의 미술로 보는 세계사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난 러시아에서는대상의 이미지를 완전히 벗어난 순수 기하학적 형태만으로 구성된 비(非)대상미술이 지적인 젊은 미술가들에 의해 시도됐다. 대표적인 인물이 말레비치다.그의 절대주의는 기하학적 형태로 순수추상을 추구하는 한편 2차원의 공간에 4차원이라는 새로운 지각작용을 미술로 구체화됐다.   1917년 노동자들은 ‘평화, 빵, 토지’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봉기에 나섰다. 페트로그라드(Petrograd,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옛 이름, 1919~1924년까지 지명)에 여성 노동자들도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러시아에서 일어난 노동자 농민의 혁명은 로마노프 왕조(1613~1917년)를 무너뜨리고, 억압받는 민중을 해방시켰다. 이 혁명으로 수세기동안 국가권력을 정당화하는 도구이자, ‘성(聖)과 속(俗)’을 지배해왔던 러시아정교회도 국가와 분리됐으며, 여성들은 이혼할 권리뿐만 아니라 낙태할 권리와 투표권도 갖게 됐다. 구체제에 맞서 투쟁한 피의 대가는 억압과 착취에서 해방된 인간의 기본권에 대한 최소한의 보장이었다. 농민중심의 혁명세력을 강조했던 볼셰비키의 영웅인 레닌은 1917년 11월 소비에트 정부수립을 선포했다. 자신의 삶조차 스스로 결정할 수 없었던 노동계급은 이 혁명을 통해 비로소 스스로의 권리를 갖게 됐다. 이렇게 1917년의 혁명은 그 피의 대가로 세계의 노동자와 민중에게 해방에 대한 희망과 열정을 불러일으켰다. 유럽 각국에서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투쟁이 고양됐고 식민지, 반식민지인 나라에도 민족해방투쟁정신이 전파됐다. 이 결과 새로운 혁명적 제3인터내셔널의 창립 역시 가능해졌다.러시아의 아방가르드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난 러시아에서는 대상의 이미지를 완전히 벗어난 순수 기하학적 형태만으로 구성된 비(非)대상미술이 지적인 젊은 미술가들에 의해 시도됐다. 대표적인 인물이 말레비치(Kazimir  Malevich, 1878~1935)다. 절대주의(suprematism. 진리, 가치 등의 절대성을 추구하는 이론. 미술에서 절대주의는 1913년 말레비치로부터 출발하며 극단적으로 단순화한 그림을 말한다)를 추구했다. 그의 절대주의는 기하학적 형태로 순수추상을 추구하는 한편 2차원의 공간에 4차원이라는 새로운 지각작용을 미술로 구체화됐다.  타틀린(Vladimir Tatlin, 1885~1953)의 구축주의(constructivism)는 1917년 러시아 혁명 후, 러시아의 실험적인 전위예술, 일명 러시아 아방가르드 운동으로 혁명정부를 위한 새로운 미술로 탄생했다. 이것은 혁명적 이상의 실현을 위한 실용적이고 진보적인 조형예술 및 건축운동으로서 사회적 참여를 추구한 예술운동이었다. 러시아 아방가르드의 열기는 제1차 세계대전 직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당시 러시아에서는 큐비즘과 미래주의에서 영감을 얻은 개념이 급속도로 ‘입체-미래주의(cubo-futurism)’으로 변형되고 있었다. 나중에 말레비치는 그것으로부터 절대주의를 발전시켰다. 이렇듯 1917년부터 1920년 초까지 모더니즘 미술이 러시아에서 환영을 받았던 이유는 대상 재현전통에 대한 모더니즘 미술의 도전이 곧 황제통치기의 관습에 대한 도전으로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당시 서로 대립적인 두 개의 방향이 짧은 시기동안 러시아의 전위적 미술 안에서 발전 가능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말레비치의 절대주의1878년 우크라이나의 키예프에서 태어난 말레비치는 1895년부터 1896년까지 키예프에 있는 미술학교에서 드로잉을 공부했으며, 1904년에 모스크바로 와서 모스크바 미술·조각·건축학교에 입학해 1910년까지 공부했다. 이후 화가로서 다양한 미술에 관심을 가지고 야수파, 미래파, 입체파의 영향을 받은 미술단체 활동을 하면서 점차 추상미술에 빠져들면서 대상의 흔적을 지우고 순수추상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1915년 추상의 우월성을 단언한 말레비치는 39점으로 구성된 비(非)대상 작품들을 페트로그라드의 도비치 화랑에서 선보였다. 「마지막 입체: 미래주의 전시 0.10」라는 공개 전시였다. 이 전시에 출품한 작품들은 모두 평평한 기하학적인 형상으로 구성된 완전한 추상이었다. 이때 처음 ‘4차원’이라는 말이 언급됐다. 4차원의 개념은 제1차 세계대전 이전 러시아에서 유행하던 대화와 연구의 주제이기도 했다. 말레비치는 「큐비즘과 미래주의에서 절대주의로: 회화에 있어서 새로운 리얼리즘」(1916)에서 “나는 나 자신을 형태의 제로상태에 있게 하였다. 그리고 무(無)의 상태에서 탈출해 창조의 세계인 절대주의로(회화의 새로운 리얼리즘) 혹은

0좋아요 URL복사 공유
현재 댓글 0
댓글쓰기
0/300

사람과 삶

영상으로 보는 KNOU

  • banner01
  • banner01
  • banner01
  • banner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