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OU광장   강성남의 그노시스

진정으로 지혜로운 자는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만든다는 말처럼

각자는 자기 운명의 건축가다.
 
행동해야 한다. 행동이란 정신의 의복이다.
내 마음을 떠받쳐주는 아틀라스를 지식에서
구할 행동을 할 때다.

 

 

우리는 팬데믹을 겪으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게 보이는 것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북한의 살상무기 시연보다 바이러스 확산에 사람들이 동요했다. 동요는 끊임없는 추락의 위험을 뜻한다. 사람들은 마음속에 각자의 ‘아틀라스(Atlas)’를 통해 자신의 동요를 막으려고 애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고대 아틀라스의 신화를 풀어내면서 땅의 서단에서 하늘을 떠받치는 아틀라스의 두 어깨로 인해 하늘이 내려앉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하늘 위에선 천체가 계속 회전한다.
우리는 평생 크고 작은 사건과 사물들 때문에 동요한 나머지 위험에 처하기도 한다. 이 중에서도 존재 자체에 대한 위협에 노출될 때 가장 동요가 크다. 그 위협이 정신적인 것으로부터 올 때 동요의 진폭은 크다. 신경 쓰이는 일이 곰비임비 쌓이면서 지적 공황은 심화한다.
프랜시스 베이컨은 지식 추구에서 걸림돌로 작용하는 네 개의 우상을 파괴하지 못하면 우리는 지적 공황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걸 암시했다. 인간의 보편적 본성에서 유래하는 종족의 우상, 각 개인의 특유한 습성에서 비롯된 동굴의 우상, 언어에서 유래한 시장의 우상, 다른 철학자의 영향이나 잘못된 이론 해석에서 비롯된 극장의 우상에서 해방돼야 함을 역설했다.
이 중에서도 특히 사람들은 동굴의 우상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고 하소연한다.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는데, 이제 와서 될 수 있겠어?’라며 지적인 도전을 포기한다. 나이가 들기 때문에 늙는 게 아니다. 아저씨란 호기심을 잃고 겸허함도 잃고 새로운 것에 감탄하며 계속 배우겠다는 자세마저 잃어버린 사람이다. 과거의 성공적인 경험에 기반해 형성된 스키마에 갇혀 있다면 아저씨다. 그래서 베이비부머들이 이상한 얘기를 할 때 그게 왜 틀렸는지 설명하려면 그들이 수십 년간 쌓아왔던 잘못된 정보와 무지를 깨야 하기 때문에 그냥 무시하고 ‘오케이’(됐어요!)라고 하곤 이들을 향해 ‘오케이 부머(ok boomer)!’라고 조롱한다(Urban Dictionary).
그래서 아저씨들은 이 점을 명심해야 한다. ‘축적된 경험이 판단능력을 향상시킬 거라는 단순명제는 늘 옳지 않다는 것을’. 동굴의 우상에 사로잡힌 아저씨를 옹호하는 철학자가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천성적으로 고정된 것이 습관에 의해 바뀔 수는 없다고 주장하며 돌을 예로 든다. 돌을 천 번 이상 위로 던져봐도 돌 스스로 올라가는 법을 깨우칠 수는 없듯이, 우리가 아무리 자주 보고 들어도 더욱 잘 보거나 잘 듣는 법을 배울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베이컨이 논박한다. 돌의 원리는 그 본성이 확고하게 고정된 사물이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 변화를 폭넓게 허용하는 본성을 지닌 사물을 돌처럼 봐서는 안 된다. 장갑도 사용하다 보면 점점 편해지고, 원래 곧은 막대기도 자주 쓰다 보면 구부러지게 마련이다. 자주 목소리를 내다보면 더욱더 굵고 강한 목소리를 낼 수 있고, 열기와 냉기에 견디기를 자주 하다 보면 점점 더 참을 수 있게 되는 게 이치란다.
베이컨의 반론에 편승해 나이 들었다고 교만하거나, 반대로 ‘라떼는 말이야’라고 조롱당하더라도 비굴해서는 안 된다. 교만이 남의 자유를 망각한 자의 태도라면, 비굴함은 자신의 자유를 망각한 자의 태도이기 때문이다.
내가 무너지지 않으려면 내 마음의 아틀라스 자리를 보이지 않는 힘인 지식과 지혜로 채워야 한다. 아틀라스의 힘을 갖춘 지식이 깊이와 길이, 그리고 너비까지 갖춘 것이면 더욱 좋다. 깊이는 지식을 입체적으로 만들어주고, 너비는 다른 지식과 연결되도록 하며, 길이는 실천으로 옮겨지도록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혜를 발휘하고 지혜롭게 되는 삶을 살자. 지혜를 발휘하는 것이 남을 위한 조언의 지혜라면, 지혜롭게 되는 것은 자기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는 지혜라고 할 수 있다. 진정으로 지혜로운 자는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만든다는 말처럼 각자는 자기 운명의 건축가다.
이를 위해서는 대학 생활을 통해 많은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스어에서 깨달음의 어원은 ‘촛불을 끈다’는 뜻. 별빛을 보려면 눈앞에 있는 촛불을 꺼야 한다. 이성의 작은 촛불을 끄지 않고서는 대우주의 별빛을 볼 수 없다. 작은 지식이 큰 지혜를 가린다. 어둠이 짙을 때 깨달음의 길이 열리는 법이다.
인간의 운명에서 최대 장애물은 더 이상 적합하지 않은 것을 그대로 유지하는 태도다. 상황이 바뀌면 원래의 자리를 떠나야 한다.
괴테는 『파우스트』에서 “인간은 지향이 있는 한 방황한다”라고 썼다. 지향의 목표를 가진 사람은 방황할 수밖에 없다. 방황의 동요는 진보를 위한 도약대가 될 것이다. 행동해야 한다. 행동이란 정신의 의복이다. 내 마음을 떠받쳐주는 아틀라스를 지식에서 구할 행동을 할 때다. 그것도 평생에 걸쳐 정신의 의복을 입고 살아야 한다.
방송대 교수·행정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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